596화
공장 사람들이 도진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문했다.
한국어였고 어려운 말이 아니었지만 워낙 현실성이 없어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말을 이해한 사람도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나 고민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앞에서 그 말을 한 것이 소천마였으며 공장을 인수한 것이 천마신교란 소릴 어찌 바로 이해하고 믿겠느냔 말이다.
천마신교가 어떤 곳인가.
무림에서는 천하제일을 논하는 곳이요 사회에서도 국내보다 세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이었다.
천마신교란 이름을 선포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명문세가라 힘주던 곳들은 물론이요 세계적인 대문파도 그 앞에서는 빛이 바래는 천하제일의 기세를 자랑하고 있다.
당장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의천검가의 현판을 한 줌 가루로 흩날리게 만든 것이 소천마 아니던가.
기업의 측면에서도 무림 못지 않은 위세를 떨치고 있었으니 한국에서는 '금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한 마디로 정리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런 천마신교를 이끄는 것이, 천마신교의 교주 소천마다.
수많은 세계 무림의 고수들 앞에서 허공을 걸어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그가 군림하여 발을 구르면 천하의 고수들이 모두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다.
테러 단체가 수없이 총을 갈겨댔으나 그 총탄이 몸을 뚫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어디 말 그대로 신의 이적을 기록한 서적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다.
허나 그 이야기들이 기록만 전해지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이 현대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며 과장은 있을지언정 거짓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숭배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무인.
그런 무인이 직접, 자신이 교주로 있는 단체가, 이런 공장을 인수하였다고 말한다고?
꿈이라도 이런 허무맹랑한 소릴 듣는다면 믿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이 꿈보다 더한 법이다.
"저희 천마신교가, 이 공장을 인수하였고 앞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소천마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그 말은 신비한 힘이 담긴 것처럼 그들의 머리에 선명하게 새겨졌고 현실을 잠시 떠나 있던 정신을 현장으로 되돌려 주었다.
이 또한 현실적이지 않은, 신비한 이적이었으나 그것은 위협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으니 과연 천마신교의 교주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머리에 새겨지는 소천마의 이적이 담긴 말이 이어졌다.
"공장에서 수주한 일이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수주받은 일을 정상적으로 다 처리하고 재정비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셔야 할 일은 그리 변함이 없을 겁니다. 다만 발주가 천마신교로 고정될 뿐이죠."
"퇴직금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부분까지 다 포함하여 저희가 인수받은 거니까요. 업무 환경과 복지 등은 오히려 개선될 겁니다. 제도적인 부분에 있어 낡고 잘못된 관행은 철폐하고 여러분들이 당연히 받아야 했던 혜택은 모두, 직원 복지 차원에서의 부분까지 모두 받으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
믿기 힘들다.
만약 눈앞에서 말하는 게 소천마가 아니었다면, 설령 비싼 외제차를 타고 번듯한 외모에 양복을 차려입고 왔더라도 사기꾼이라 생각하고 내쫓았을 거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소천마였으니까.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믿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현재 공장에서 수주한 일들을 다 끝낸 뒤 평일에 날을 잡아 설명회를 가질 예정입니다. 설명회 참석 또한 업무에 포함되니 정상 근무입니다. 그때 설명을 들으시고, 원하시는 분들은 계속 근무해 주시면 됩니다. 원하시지 않는 분들에게는 퇴직금과 함께 절차를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정상 근무를 해 주시면 됩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저희 쪽에서 몇 분이 상주할 테니 추후 이곳을 찾을 불청객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소천마는 떠나 버렸다.
아무래도 계속 이 자리에 있는 게 직원들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빠르게 떠난 것이다.
대신 전문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몇 명이 들어와 간식과 건강 음료를 나눠준 뒤 질문을 받았고.
"저, 저기!"
공장 안이 뒤늦게 소란스러워졌다.
* * * *
[속보! 천마신교, 인신매매단 연루 사장의 공장 인수!]
['가해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발언했던 소천마,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공장 인수?]
도진의 공장 인수 소식은 금방 기사가 되어 크게 퍼져 나갔다.
-허미;; 그걸 그냥 인수를 해 버리네 ㅋㅋㅋ
-천마신교 클라스 오지네 ㅋㅋㅋㅋㅋ
-그렇지. 그걸 그냥 인수해 버리면 망할 일이 없지ㅋㅋㅋㅋㅋㅋ;;;
언론은 물론이요 여러 커뮤니티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천마전으로 돌아온 도진은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강예지가 돌려준 모자를 드레스룸에 두고 업무실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나 큰일을 겪고 정신이 없었을 텐데.
-세, 세탁소에 맡겨서 깨끗하게 했어요.
강예지는 도진이 주었던 모자를 세탁소에 맡겨 클리닝까지 해서는 돌려주었다.
인간 말종이었던 강치환과는 정말, 다른 인간이었다.
공장 인수는…… 도진으로선 쉽게 간 길이었다.
공장이 도진에 의한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길.
공장을 인수하여 운영함으로써 거기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돈지랄'은 아니었다.
천마신교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인수다.
현재 천마신교의 의류를 포함한 분야는 웨일스 후작의 의류 사업체가 맡아주고 있다.
그러니까 무복부터 시작하여 심지어 유니폼까지도 명품을 쓰고 있다는 소리다.
허나 아무리 '혈맹'인 웨일스 후작의 업체라고는 해도 하나부터 열까지, 소소한 것까지 그 명품 의류 사업체에게 의지할 수는 없으니 일부는 그때그때 외부에 발주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이 부분을 천마신교 내에서 자체적으로 맡을 수 있는 '계열사'를 하나 두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나왔고 공장 인수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 공장에서는 앞으로 소소하게는 수건까지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도진이 여기까지 대번에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고 총괄부의 오성아, 그리고 한유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큰 계획이 잡혔다.
이렇게 천마신교가 공장을 인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도진이 직접 공장 직원들에게 하였는데, 출근하지 않은 사람은 강예지가 유일하여 도진이 직접 집에 찾아갔었던 거다.
"……후."
생각을 정리하며 도진은 긴 숨을 내뱉었다.
그것은, 하나의 일을 끝내면서 나온 것이었다.
곽필섭부터 시작하여 배경석까지.
전생의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가져왔던 범죄자들에게 벌을 내렸다.
누군가는 복수가 허무한 것이라 했지만 강하게 말하면 뭣도 모르는, 유하게 말하면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
복수가 끝나고 허무가 찾아왔다면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모든 걸 걸고 그 외 어떤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복수를 끝내고 여생이 남았을 때 그 목표가 사라진 여생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도진에게 있어 복수는 삶의 여정 사이에 있는 목표 중 하나였고 그것을 완수하였으니 허무함을 느낄 이유가 없다.
오히려, 평범하게는 다시 삶을 산다 해도 엄두도 못낼 힘을 가지고 있던 원수들을 소천마이자 사신의 제자로서 철저하게 단죄하였으니 뿌듯하기만 하다.
그렇게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도진은 나지윤을 만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로운 삶에서 항상 그랬듯, 도진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 * * *
금화 본사 내에서 가장 보안이 엄격한 곳.
오직 한유성만이 출입할 수 있는 격리된 곳에서 화상 회의가 시작되었다.
한유성의 앞에 배치된 모니터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일본 신풍회의 회주 카자카미 노보루, 이제는 레너 공방이 된 미국 최고 규모 공방의 주인인 레너 집스, 한국 대호문의 문주인 태무진 등 세계를 움직이는 거물들이다.
일부는 알려져 있고 일부는 알려져 있지 않은 그들은 '회(會)'라는 이름으로 묶인, 무형독을 부리는 음지의 집단에 소속되어 세계를 움켜쥐려 한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신풍회의 회주, 카자카미 노보루였다.
"우리 금화의 부회장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군."
"……."
평소 여유 있는 태도가 중요하다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던 한유성은 근래 들어 그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카자카미 노보루의 말대로, 겉으로 드러낼 만큼 심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원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천마신교, 소천마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성질대로 할 것 같으면 죽여도 백 번은 더 죽여 버렸을 거다.
…그걸 못해서 더 화가 뻗치지만 이 부분은 애써 외면하는 한유성이었다.
'건방진 놈…….'
까득.
한국에서는 요즘 이런 말이 돌고 있었다.
-천마신교가 금화의 아성을 무너뜨릴 만큼 그 기세가 대단하다.
으레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그럴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는 말이어서 한유성의 심기를 끊임없이 건드리고 있었다.
천마신교는 재계의 기준으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기업이 되었다.
뭐 어떻게 견제를 할 틈도 없이 삽시간에, 그리고 강력하게.
한국에 그치지 않고 세계 무대에 그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으로 천마신교가 대한민국 재계 서열 부동의 1위인 금화를 무너뜨릴 거라 말하는 게 아니다.
천마신교가, 세계 무대에 이름을 떨치는 천마신교가 오성과 '동맹'을 맺은 것이 특히나 한국에서 천마신교가 금화를 뒤흔드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었다.
그래. 요즘 오성은 천마신교와 단단히 손을 잡았다.
그 사자군 오군성이, 독불장군이었던 오군성이 갑자기 훅 사람이 바뀌더니 직접 나서서 천마신교와의 관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기껏 손녀를 빼앗아 가 놓고서 청첩장을 안 준단 말이지?
이런 농담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정도로 천마신교와의 관계가 좋다는 걸 과시하는 오성은 마치 게으르던 사자가 사냥에 나서는 듯 기세를 올리고 있다.
그 기세로 금화의 턱끝까지 추격해 온 오성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소천마의 천마신교가 맺은 동맹은 제아무리 재계 서열 1위를 공고히 해 온 금화라 해도 흔들어 볼 만하다고 천민들 따위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조짐이 보이는 것이,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절대적인 지위를 자랑하던 금화의 주인이라는 한유성의 자부심을 긁어댔다.
심지어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마신교에는 성아 여신님만 있는 게 아니자너.
-ㅇㅇ 유아 여신님도 계시지..
-근데 성아 여신님이랑 다르게 유아 여신님은 푸대접을 받았지 ㅋㅋㅋ
잘 틀어막았던 한유아의 처지에 관한 부분이 어느 정도 유출되면서도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오성은 김도진이 무명 학생 시절 때부터 관계 탄탄히 잘 쌓아왔으니 괜찮은데 금화는 아니잖아.
-소천마님이 니 친구냐? 최소한 교주님을 붙이도록.
-;;; 어쨌든. 금화는 유아 여신님 푸대접한 것도 드러났고 관계 개선하려면 한유성 부회장이 직접 가서 사바사바 해야 할 듯 ㅋㅋㅋㅋ
'누가, 뭘 한다고?'
내가. 이 내가. 금화의 주인인 이 내가 직접 김도진한테 가서 관계를 구걸 하라고? 그 잡종에게도?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었다.
그리고. 한유성의 자존심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한유성이 언젯적 한유성이냐. 이젠 소천마님이시제.
'이런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