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4화
저녁.
아직 여덟 시도 되지 않았으니 저녁치고는 이른 시간이다.
그러나 겨울은 어둠이 이른 시간부터 내리는 시기이고 항구의 특성상 어둠이 내린 때에는 고요해지는 법이니 화려한 빛들이 곳곳에 있음에도 인천항은 고요하기만 했다.
웨에에에에엥-!!
허나 돌연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가 항구의 고요를 깨트렸으니 경찰차의 것이었다.
한두 대가 아닌 여러 대가 항구를 가로질렀고 심지어 무장 경찰을 실은 버스마저 뒤따랐으니 갑작스런 소요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어디 무림인들이 칼부림이라도 했나?"
그들은 호기심을 보이지만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그것이, 무림이 있는 이 시대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호들갑은 일반인들이 아닌 인천항에 몰래 기생하는 흑도 무리가 대신 떨었다.
"뭐, 뭐야 이거."
"들킨 새끼들이 있나 본데요."
"씨발! 대가리 박으라고 연락 돌려!"
켕기는 게 많으니 거북이마냥 팔다리와 대가리를 쑥 감춘다.
허나 그들은 말단이기에 모른다. 정보가 늦고 감각이 둔하다.
이미 일은 벌어졌으며 목표가 되었던 놈들이 잡혔다는 걸, 아직 모르는 채 호들갑을 떨 뿐이다.
* * * *
조용히, 현장에서 약 5분을 기다려 도진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우선은 경찰 특공대 소속의 무인들.
무공 수위는 평균 A-3이지만 국가 소속의 무력 집단인 만큼 그 장비가 대단히 위협적이며 흑도 무리를 대상으로는 발포를 망설이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적극 협조하는 무림맹의 무인들이다.
이 두 집단에는 그리 오래 도진의 시선이 머물지 않았다.
인연이 있는 이들이 없었고 특별히 시선을 둘 만한 요소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도진이 그들을 지나 시선을 오래 두는 건 세 번째 집단.
군홍무가의 무인들이었다.
군홍무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무림세가.
특징으로는 정치권과의 끈끈한 관계로, 그에 힘입어 인천항의 치안 유지 계약을 따냈다.
일반적으로 치안 유지 계약이라 하면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가 있는 것처럼 중소 문파가 도맡곤 했지만 공항이나 항만 같은 중요 시설은 별개로 대문파가 맡게 되어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인신매매단을 붙잡았다는 신고에 군홍무가의 무인들이 다급히 달려온 것이다.
"빨리 오셨네요."
"아, 예. 예."
담담히 말하는 도진에게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온,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달려온 무인들 중 한 명이 대표로 대답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이 평범하게 몇 분 달리는 걸로 땀을 흘리거나 헉헉거릴 리가 없으니 이건 정말 젖 먹던 힘과 내공까지 다 짜내어 최선을 다해 달려온 증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천마가 전화로 인신매매단을 잡아 뒀다는 신고를 한 일이었으니 이럴 수밖에 없었다.
평화롭던 일상에 떨어진 거대한 폭탄에 그들은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빠르게 준비를 갖추고 달려왔고.
"정리해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이미 다 제압이 끝난 놈들의 체포와 뒷정리를 맡게 되었다.
소천마가 명령권자도 아닌데 그 말에 따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으나 그럼에도 반발심이 전혀 들지 않는 게 스스로도 신기하다.
그리고.
"…꿀꺽."
범죄자들의 손발 힘줄과 뼈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로 아작난 것을 바로 알아보고 저도 모르게 힘을 삼켰다.
소천마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긴장하는 모습들이었으나 그들 또한 엘리트 무인.
나뒹구는 범죄자들의 몸 상태를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손발의 힘줄과 뼈, 일부 칼에 상처입은 부위를 제외하면 상처가 없다.
저항을 전혀 하지 못하고 당했다는 뜻이었으며, 상처를 제외한 곳들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깔끔하여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젊은 무인들은 인터넷에서 본 것들을 떠올렸다.
-불살(不殺)의 아이콘.. 그것이 소천마지.
-불살ㅋㅋㅋ 아 ㅋㅋㅋ 시바 ㅋㅋㅋ
-아 살려는 드릴게 ㅋㅋㅋ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던데 ㅋㅋㅋ
-아, 옛말에 틀린 게 있었네 ㅋㅋㅋㅋ
자기 일이 아니니, 그리고 인터넷이니 가볍게 소모되던 소천마의 '불살'에 관한 이야기들.
그것을 실제로 보고 겪게 되니 댓글들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되어 가슴을 뒤흔든다.
놈들의 사지는 제 기능을 영구히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천수를 다 누리며 살 것이다.
-죽는 건 도피입니다. 죄를 지었다면, 살아서 갚아야죠.
부르르르……!
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뒷정리를 계속했다.
죄를 지은 게 없음에도 소천마의 앞에서 지극히 행동을 조심하면서.
* * * *
'…….'
마치 모래처럼 무거운 물 속에 갇혀 있었던 것 같은 정신이 어렵사리 그 위로 부상했다.
강예지는 느릿하게 공회전하는 머리를 힘주어 정상으로 되돌리려 노력했고.
"……!!!"
와락-!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밀쳐내며 상체를 일으켰다.
"괜찮아."
그리고 옆에서 들리는, 토할 정도로 진탕된 속과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부드럽게 가라앉히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작게 입이 벌어지며 놀람이 담긴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김도진.
같은 동네에 살았던, 그것이 명백한 사실임에도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존재가 되어 버린.
소천마의 존재가 두 눈 가득 들어왔다.
"아무 일도 당하지 않았어. 그놈들은 다 연행되었고 너의 삶에 두 번 다시 끼어들지 못하게 되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 그…… 네. 고맙습니다."
강예지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우물거리고선 어렵사리 감사의 말을 했다.
그녀의 말이 막혔던 이유가 무엇인지 꿰뚫어 본 도진이 옅게 웃었다.
"그렇네. 같은 동네 살았는데 그렇게 친하게 지내진 못했지. 내가 오빠 소리 들을 수 있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아니, 널 탓하는 건 아니야. 탓할 이유도 없지. 니가 잘못한 건 아무 것도 없잖아?"
"그러니까 그냥 오빠라고 불러도 돼. 교주님이나 소천마 님, 이렇게 부를 필욘 없잖아? 같은 동네 살았었는데."
"……네."
상상과는 다른, 마치 목소리에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힘이 담긴 것만 같은 도진의 말에 강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경석, 사장이랑 인신매매단은 소탕했어. 지금은 그 뒷처리 중이고 너는 잠시, 임시 천막으로 옮겨진 거야."
"네에."
그녀가 옮겨진 곳은 인신매매단이 범죄를 저지르던 야산 근처에 마련된 임시 거점의 천막이다.
약품에 의해 잠들었을 뿐이니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경찰 쪽에서는 니가 진술하기를 원하고 있어. 지금 어렵다면 미룰 수 있고 혹시 필요하다면 병원에서의 정밀 검사도 요청할 수 있을 거야."
"…진술할게요."
"그래?"
"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었다.
그럼에도 바로 진술하겠다는 모습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가 강한 아이다.
옅게 웃으며 모자를 벗어 강예지에게 주었다.
"…이건?"
"쓰고 가. 그리고 널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없을 거고 강압적으로 구는 사람도 없을 거야. 이번 사건으로 신상이 파헤쳐지는 일도 없을 거고 인터넷에 떠돌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도진의 말에 강예지가 꾸욱, 모자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 습니다. 오빠."
* * * *
강예지가 건네 준 모자를 쓰고 경찰 대동 하에 진술을 위해 떠나고 도진은 한 사람을 만났다.
경찰 간부도 아니고 무림맹의 간부도 아니지만 이번 사건과 연관된 이들 중 한 손에 꼽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젊은 무인.
"오랜만이네."
"그래."
큰 키에 화려한 패턴의 알없는 안경이 특징인 그는 도진의 숭무고 동기이자 군홍무가의 실세인 무진혁이었다.
군홍무가 가주의 둘째인 그는 이미 가주로 내정된 형이 있었는데 그 자리를 노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후계 구도와 가내 권력 때문에 싸울 일이 없었고 견제를 받을 일도 없어 벌써부터 2인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배경으로 인천항 계약과 관련하여 '본부장' 타이틀을 달고서 이 자리에 온 것이었다.
학창 시절 S4 노릇을 하며 도진과 적대했던 그는 그러나 철저하게 몰락한 곽필섭이나 권민국과 달리 도진의 앞에서 굽힘으로써 부딪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그것을 비굴하게 생각한다거나 도진에 대한 앙심을 품지 않았으니 오히려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정계와의 끈끈한 관계를 다져 온 군홍무가 특유의 처신.
직계답게 그것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무진혁이 말했다.
"고마워."
"뭐가?"
"우리 체면을 세워줘서."
"따지고 보면 내가 너희 영역에 끼어든 거니까. 최소한의 해야 할 걸 한 거지."
도진은 일을 벌이기 전 무진혁에게 연락을 넣었다.
인신매매단을 발견했는데 군홍무가에서 놈들의 사무실을 급습하라고.
본래 인천항은 군홍무가의 영역이다.
그곳의 인신매매단을 천마신교가 나서서 덮치면 군홍무가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되는데 그걸 방지할 수 있도록 먼저 연락을 해 준 것이다.
"나랑 군홍무가가 협력해서 인신매매단을 소탕했다는 쪽으로 입장을 내면 되겠지?"
"그래주면 고맙지."
도진의 물음에 무진혁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손을 과하게 썼다느니 하는 태클이 들어올 일도 없을 거야."
"그래."
바할라와 달리 한국의 법은 조금 더 빡빡한 면이 있었으나 도진의 손속이 과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도록 군홍무가에서 신경쓸 거라는 말이었다.
인신매매를 한 흉악범들인 데다 그 희생자들 중 경찰이 있었으며 총기마저 사용했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하나 더.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되거나 과하게 언급되지 않도록 해 줬으면 싶은데."
강예지는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될 뻔 했으나 소천마에 의해 구출되었다.
'기레기'들이 달려들어 떠벌이기에 너무 좋은 소스였으나 그것은 피해자를 난도질하는 역겨운 행위였다.
무진혁은 도진의 말에 담긴 뜻을 바로 알아 듣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보도 관련해서도 지침을 내려 둘게. 강하게."
"땡큐."
도진은 스윽 웃었다.
말귀가 빠르고 싹싹하다.
분명히 나쁜 놈 편이었는데 이러면 부딪칠 일이 없다.
악자(惡者)에겐 자비가 없는 도진이지만 이런 타입에는 역시나 손이 나가지 않는다.
도진이 손을 쓰게 만들 정도의 명분, 그러니까 선을 넘는 악행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무진혁 본인은 물론이고 군홍무가 차원에서도 처신을 아주 잘하고 있다.
이번 일만 해도 알아서 척척 잘 움직여 주었고 무언가 요구를 하면 100%를 넘어 120% 잘 처리해 준다.
원래 그런 뜻이 아니긴 하지만 '필요악'이라고 해야 할까.
있으면 일을 하기에 편하고 선을 넘지 않는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그래."
대화가 끝나고 지시를 내리기 위해 무진혁이 움직였다.
그리고 도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들었다.
"네, 성아 누나."
도진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