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화
배경석과 접촉한 인신매매단을 속속들이 파악하는 건 세이전에게는 지극히 쉬운 일이었다.
도진은 그렇게 세이전이 조사한 내용을 머릿속에 넣었고 배경석의 수작을 은밀히 따라가며 지켜 보았다.
'…….'
"……."
일을 벌일 장소는 인신매매단의 사무실과 작업장이 있는 인천항이었다.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주변의 시선이 차단되는 미로 속.
어느 곳보다 활발하고 밝지만, 그렇기에 그만큼의 어둠이 공존하는 현장이다.
CCTV가 빼곡히 일대를 비추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공백이 곳곳에 있었고 이곳의 인신매매단은 누구보다 그 공백을 잘 알고 작업을 벌이곤 했다.
우선은 인신매매단의 계획에 따라 배경석이 CCTV를 이용하여 알리바이를 만든다.
강예지와 함께 안에 들어섰다가 모종의 이유로 바깥에 다시 데려다주는 장면이 분명하게 찍혔다.
그리고 이후, CCTV 사이의 공백을 이용하여 조직원이 강예지를 납치했다.
당연하게 마지막으로 강예지를 바래다 준 배경석은 조사를 받게 되겠지만 혐의를 찾진 못할 것이었다.
강예지를 바래다 준 뒤 다시 삼일무역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눴다는 분명한 알리바이가 있으니까.
그를 위해 존재하는 삼일무역의, 인신매매단의 사무실이었다.
그들 조직은 말단 주제에 제법 치밀했다.
'물건'을 수출하거나 수입하기 위하여 세운 무역 회사를 제법 본격적으로 운영하였고 그것이 인신매매단과 연관되어 있다는 게 드러나지 않도록 솜씨 좋게 위장하였다.
본래 운반을 위한 위장이었으나 진짜가 된 회사와 조직이 '배달'을 제외하고는 별개로 운영되는 형태였다.
배경석과 삼일무역은 그러니까 조사를 받기야 하겠지만 본격적이지 않은 그 조사로 오히려 의심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축장'이다.
사람을 해체하는 곳을 그들은 도축장이라 불렀다.
도축장은 인근의 야산에 은밀하게 마련되었으며 인천항에서도 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비밀 통로는 컨테이너 하나를 위에 덮어 위장하였는데, 그것만으로도 대대적이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아니면 찾을 수 없는 위장이 되었다.
"야, 이번 물건은 좀 꼴리네."
"한 입 먹고 작업 할까?"
도진은 생각했다.
이놈들이지 않을까.
배경석과 연결되어 있는 이놈들이 전생에서 죽은 도진의 시체를 털어먹은 놈들이 아닐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래야지. 가는 길에 육보시라도 하고 가야 천국 가지 않겠냐, 얘도."
"낄낄. 육보시는 지랄로."
언제까지고 배경석이라는 놈에게 매달려 일을 오래 끌 만큼,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외면할 만큼, 지금 도진의 삶이 하찮지 않으니까.
이런 놈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박멸시키는 것이 가능한 위치에 있으니까.
저벅-
"?"
"뭐, 뭐야!"
도진은 담담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더러운 수술대 위에 정신을 잃은 강예지를 눕혀 놓고 짐승이 되려던 놈들이 크게 놀라며 메스를 들었다.
1학년 때 개미굴 사건에서 보았던 장팔이들이 떠오른다.
인간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도축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무림인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은 그들과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놈들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를 도축하러 온 사람."
놈들의 처분에는 일말의 자비도 연민도 필요하지 않았다.
"미친 새끼가!"
놈들은 모자를 쓴 도진의 정체를 묻거나 확인하는 대신 메스를 들이밀었다.
실력은 형편없지만 그 기세는 심약한 이를 짓누를 만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해체해 왔다는 것이고 그만큼의 죄를 가진 놈들이다.
도진은 메스를 내지르는 한 놈의 손목을 쳤다.
꽈작-
그리고 좌측에서 메스를 휘두르는 놈의 손목도 쳤다.
꽈직-!
소리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었으나 그 사이를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은 도진을 제외하고 하나뿐이었다.
"끄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두 마리의 짐승이 바닥을 나뒹굴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도진이 친 손목이 완벽하게 박살이 났고 주입된 천마기에 의해 잘게 부서진 뼈가 발작을 하듯 퍼졌기 때문이다.
너무나 처절한 비명에 사람을 무수히 해체한 놈들마저 등골이 서늘해졌고 놈들 중 하나가 작업대 사이에 은밀히 숨겨 두었던 비장의 수단을 꺼내들었다.
철컥-!
권총이었다.
이 시대에는, 특히 한국에서는 뒷골목이라 해도 보기가 쉽지 않은 물건이다.
무림이 주류가 되고 무림의 발전을 중시하는 시대였기에 총기에 대한 규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대였으니까.
그것을 놈들이 입수한 루트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놈이 겨눈 권총이 다름 아닌 한국 경찰의 제식 권총이었으니까.
놈들에게 당한 이들 중 경찰이 있었다는 소리다.
타다당-!
겨누자마자 말없이 바로 조준하여 삼점사한다.
이런 부분에서 뒷골목에서 오래 구른 티가 나지만.
터더덩-
그 총알이 도진을 뚫지 못하고 찌그러진 탄두들이 바닥에 나뒹구는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너, 너, 너……!"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총이 미친듯이 떨리며 달칵거리는 소리를 낸다.
정확히는, 총을 든 놈의 몸이 통제를 잃고 벌벌 떠는 것이었다.
놈만이 아니었다.
나뒹구는 두 놈을 제외한 남은 넷이 모두 전의를 상실하고 공포에 몸을 떨었다.
총알을 저런 식으로 튕겨내는 무인 중 한 명의 이야기가, 바로 얼마 전에 세상을 휩쓸었으니까.
"소, 소, 소."
스각-
도진은 통제를 잃은 혓바닥을 움직여 단어를 짜내려는 놈들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백설을 뽑아 놈들의 팔다리 힘줄을 모조리 조각조각내 바닥에 나뒹굴게 만들었다.
덤으로.
푸욱-
"으아아아아악!!"
망설임없이 놈들의 몸에 칼집을 내었다.
몸 속 깊숙이 박히는 칼에 놈들이 공포에 절어 똥오줌과 함께 비명을 내질렀지만 도진은 담담했다.
"걱정하지 마. 죽지 않을 거니까."
담담히 말했으나, 놈들의 공포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그라들 수가 없었다.
소천마가 말하는 '죽지 않는다'는 죽인다를 아득히 넘어서는 공포를 선사하는 천벌의 선고였으니까.
그렇게 천벌을 내리던 도진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었다.
기척을 느낀 것이다.
이곳으로 다가오는 두 놈의 기척을.
끼이이익-
"뭐, 뭐야."
낡은, 검게 굳은 핏자국이 묻은 철문이 열리고 생각지 않았던 두 놈의 방문에 도진이 옅게 웃으며 말했다.
"제 발로 왔네?"
"……."
너무 놀란 놈들은 즉각 반응하지 못했다.
여전히 모자를 쓰고 있지만 백설을 든 도진의 모습에서 대번에 소천마를 연상해낸 것이다.
이윽고 놈들 또한 감당하지 못할 공포가 넘쳐 흘러 몸을 벌벌 떨어댔다.
"왜. 왜. 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고장난 기계처럼 튀어나오는 '왜'라는 단어는 그거다.
소천마 같은 사는 세계가 아득히 높은 인물이 이런 바닥을 기는 놈들의 세계에 있냐는 거다.
본래 사는 세계가 달라 만날 일이 없어야 할, 접점이 없어야 할 사신의 등장에 그들은 하늘을 원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진은 그렇게 하늘을 원망하는 놈들의 의문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답해줄 이유가 없었다.
그저 내려야 할 벌을 내리기 위하여 백설을 들었고.
스윽-
그런 도진을 갑자기 나타난 노인이 막아섰다.
"나설 줄은 몰랐는데."
갑작스런 등장에도 도진은 전혀 놀라지 않고 말했다.
은밀히 몸을 숨긴 채 지켜보고 있었음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태도에 노인의 눈 속에 파문이 일었다.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소천마가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존재라지만 그 또한, 경계를 넘어선지 오래된 고수였다.
하물며 기척과 몸을 숨기는 공부가 깊었으니 그가 마음 먹고 자신을 숨기면 웬만한 화경의 고수라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한데 그런 그를, 소천마는 눈치채고 있었으며 그걸 자신은 알아채지 못했다.
'어찌 이런……!'
그는 놀랐으나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제아무리 은신술에 일가견이 있다 해도 감히 사신(死神)이라 불리던 장호에게 댈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도진은 장호에게 사사받은 사신의 제자였다.
스승이 그러했듯 세상에 드러내지 않을 뿐.
지금 도진의 무흔잠영은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고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이내 사신의 진신절기에 도달하였다.
이 영역에 이르른 도진에게 있어 노인의 은신술은, 적나라하게 말해 아이의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
도진은 노인의 놀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지그시 응시한다.
이윽고 노인은 감정을 추스르고.
슥-
배경석의 수혈(睡穴)을 짚어 재운 뒤.
캉-!
그 옆의 남자를 베려다 도진의 백설에 제지당했다.
노인과 도진의 시선이 마주했다.
노인은 옷에 가치를 두지 않는 듯 낡은 무복을 걸쳤으나 외길을 고집해 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인상이다.
외부와 타협하지 않고 곁눈질하지 않는 성정을 가진 그는, 그러나 배경석을 보는 눈에 틈이 있었다.
"왜 나섰죠?"
도진이 물었고.
"…내 아들이야."
노인이 답했다.
그는, 배경석의 아버지였다.
* * * *
"…무(武)에 미쳐 살았던 삶이었지."
그는 무에 미쳐 살았다.
해야만 하는 일을 수행하는 시간을 제외하고선 무에만 몰두하였고 집착하였다.
그 때문에, 가정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임신하였으나 관심을 두지 못했고 남아를 출산하였을 때도 한참이 지나서야 얼굴을 비추었다.
그때는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재물이 부족하지 않게 해 주었으니 더더욱.
"하지만 뒤늦게 깨달은 게야."
경계를 넘어선 뒤에야,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이 깊어지고서야 알았다.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큰 잘못을 하고 있었음을.
허나 그것을 아는 것이 너무 늦었다.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이는 아비를 증오하며 엇나갔다.
"그러니까 이 아이가 엇나간 건, 내 탓이란 말이지."
그 고집스런 얼굴에 후회가 묻어나고 단단한 성정이 잘못을 인정한다.
"그래서. 이렇게 숨어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도진이 서늘하게 마른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외천 소속의 무인이었으나 천외천으로서가 아닌 개인으로서, 배경석의 아버지로서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도진이 배경석에게 천벌을 내리기 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고.
"아이가 큰 잘못을 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아들이야. 나는 자네가 이 아이의 잘못을 눈 감아 주었으면 하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눈치를 보고 있던 배경석과 함께 온 놈에게 칼을 휘두르려 하였으나.
캉-!
이번에도 도진이 막았다.
노인은 도진의 의도를 읽지 못했으나 말을 이었다.
"나는, 천외천에서도 제법 핵심이 되는 자리에 있어. 자네가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면 들어줄 수 있을 게야. 그것으로 자네가 검을 거두었으면 하네."
제법 메리트가 있는 이야기였다.
천외천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히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평범하게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쥐고 있을 것이었다.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도진은 단번에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이 자리에서 노인과의 사이가 틀어지면 천외천과 정식으로 만나기도 전에 무언가가 어긋날지도 모른다.
나중에라도 천벌은 내릴 수 있다.
당장은 좋게 일을 끝내는 게 이성적인 판단이다.
도진은 옅게, 숨에 웃음을 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역겹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쿠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