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89화 (589/741)
  • 588화

    오군성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리고 몸 또한, 지극히 미세하게 떨렸다.

    오군성 정도 되는 고수에게는 그 미미한 징후가 벼락만큼 큰 것이었다.

    그러니까.

    도진의 말이 그만큼이나 오군성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이다.

    오군성이 물었다.

    "자네는, 나를 아나?"

    수없이 많은 것이 생략되고 함축된 물음이다.

    간략하게, 한 마디로 줄이면 네가 내가 퇴보했다고 할 만큼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나를 아냐고 묻는 것이다.

    도진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데, 어찌 내가 퇴보했다고 말하는 거지?"

    "그것만큼은 지금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요."

    "……."

    쿠구구구궁-!

    오군성이 다시 기세를 피워 올렸다.

    마치 뒤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최대로.

    그를 중심으로 하여 일대의 기운이 실제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주위의 모래를 몰아치게 만들었다.

    꽈아앙-!!

    그리고 쇄도했다.

    막대한 기운에 휘감긴 주먹은 그 별호처럼 집채만 한 사자가 단번에 인간을 짓이기는 듯한 기세를 담고 있다.

    직선임에도 그 타점을 확정할 수 없는 신묘한 이치가 담긴 주먹은 도진의 어떤 움직임에도 대응할 수 있는 곡선을 품었다.

    도진은 그 주먹을 이번에도 정면에서 맞상대하였고.

    꽈아아앙-!

    "……!"

    폭음과 기의 여파가 휘몰아치는 중에 돌연 우측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지금 받아낸 주먹보다 강력한 권격에 슬쩍 눈이 커졌다.

    오른 주먹을 내뻗은 자세이기에 비게 된 우측의 옆구리를 노리는 까다로운 권격.

    분명히 눈앞에 오군성이 있고 그 주먹을 맞대고 있음에도 우측에 '또 한 명의 사자군'이 나타나 지금 받아낸 것 이상의 위력을 품은 주먹을 쏘아낸 것이다.

    상상도 못한, 그렇기에 설령 동급의 무인이라 해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을 이적의 일격.

    도진은 그것을 찰나의 순간 받아냈다.

    쿵-!

    한 번 내딛었던 오른발을 다시 한 번 구르고 그와 연계하여 온몸이 발생한 힘을 증폭, 천마기와 나선을 그리며 경(勁)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경력을 팔꿈치에 실어 우측의 옆구리를 노리던 권격을 내리찍었다.

    꽈아아앙-!!

    발을 구르는 순간 이미 팔꿈치로 내리찍는 결과가 발생한 것처럼 동시였고 그랬기에 공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허나 그 순간 동시에 또, 정면의 오군성이 왼 주먹을 내뻗었기에 도진은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오군성이 가장 선호하는, 정면 대결보다 더 그를 유리하게 만드는 상대의 '후퇴'가 이루어졌다.

    물러선 도진의 눈에 '단 한 명'의 오군성이 쇄도한다.

    가속도가 더해진 패도를 가득 두른 거대한 사자의 습격이 또 한 번 도진을 노렸고.

    꽈아아아앙-!!

    불리한 형세에서도 도진은 정면 대결을 택했다.

    사자군을 상대로 물러서는 건 하책이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정면 대결이 '중책(中策)'이 된다.

    상대를 몰아침으로써 기세를 올리는 것이 사자패권의 요결이었으니까.

    정면 대결은 최소한 사자군이 기세를 올리는 걸 저지할 수는 있다.

    허나 이번에도 도진은 조금, 뒤로 물러나야 했다.

    앞서와 같은 '이적'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꾸우웅-!

    하지만 이번엔 '또 하나의 사자군'이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방금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힘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더한 사자군의 왼 주먹이 몰아칠 뿐.

    도진은 그것을 받아내는 대신 한 걸음 물러섰고.

    "……!"

    또 한 번, 또 하나의 사자군을 마주하게 됐다.

    훅-!

    사자군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한 걸음 물러섰는데.

    왼 주먹을 내뻗은 사자군은 분명히 그 자리에 있는데 그 앞에 또 하나의 사자군이 나타나 도진에게 쇄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자군의, 사자패권의 오의(奧義)라고.

    도진은 이해했다.

    꽈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격돌하여 발생한 힘으로 도진이 크게 거리를 벌렸으나 오군성은 도진을 놓아주지 않았다.

    거침없이 쇄도하였고 그로 인하여 얻은 가속도를 일절 버리지 않고 주먹에 더하였다.

    끊임없이 몰아치며 기세를 올리는 권공(拳功).

    사자패권을 상대로 물러서는 것이 하책이 되는 이유였으며 평범한 무인이 사자군 오군성을 상대로 단 두 수(手)도 버티지 못하는 이유였다.

    웬만한 무인은 한 수조차 버티지 못한다.

    설령 필사적인 회피로 감당하지 못할 첫 수를 피하여도 첫 수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두 번째 권격이 이어지니까.

    그런 면에서 볼 때 도진의 정면 승부는 오히려 사자패권을 현명하게 상대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처할 수 있는 무인을 상대로 오군성이 내보이는 오의가.

    바로 '진영(眞影)'이다.

    공격은 필연적으로 허점을 동반하지만 상대가 공격을 방어하거나 맞상대하기에 그것이 허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한데.

    분명히 1:1인 대결에서 돌연 또 한 명의 적이 나타나 그 방비하지 않은 허점을 노린다면.

    그것을 실현한 것이 사자패권의 오의 진영이었다.

    꽈아아앙-!

    막대한 기운이 담긴 사자패권이 소천마의 주먹에 막힌다.

    허나 그 순간 발생한 반탄력이 준비되어 있던 '여력'과 합쳐져 폭발하고 오군성의 의지에 따라 외부로 분출, '또 하나의 사자군'을 만든다.

    외부로 발출한 기운이 사자군의 기세를 고스란히 품은 채 사자패권의 초식에 따라 상대의 드러난 빈틈을 노리니 상대에게는 찰나, 또 하나의 사자군이 나타나 별개의 초식을 펼치는 것처럼 느끼고 마는 것이다.

    상대가 이 오의를 사용할 만큼 고수이기에 가지는 민감한 오감이 더욱 혼란을 주게 된다.

    오군성을 상대하는 무인은 정면 대결에 집중하지 못한 채 언제 나타날지 모를 또 하나의 오군성을 경계해야 하니 말 그대로 1:2의 상황에 내몰린다.

    도진은 그것을 이해했다.

    '그야말로 진무(眞武).'

    화경의 고수가 평생을 쌓은 것들로 자아낸,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신비가 깃든 훌륭한 무공이다.

    하지만.

    도진에게, 소천마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두우웅-!

    도진의 의지에 따라 해일처럼 일어난 천마기에 세상이 한 번 크게 울었다.

    꾸우우웅-!

    그리고 그 천마기의 기세를 격발하는 진각.

    오군성은 세상 그 자체가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감각에 이를 악물고 끌어올린 기세를 모두 담아 주먹을 내뻗었지만.

    꾸우우우웅-!

    '두 번째 진각'으로 한 번 더 공간을 좁힌 도진의 주먹이 더 빨리 최대로 뻗었다.

    천격(穿擊).

    그저 꿰뚫는 주먹.

    두 번의 군림하는 걸음으로 발생한 미증유의 폭력적인 기운은 오롯이 그 뜻만이 담긴 주먹을 따라 쏘아지고.

    꽈아아아아앙-!!

    몇 번이고 기세를 올린 오군성의, 그러나 채 다 뻗지 못한 주먹을 꿰뚫었다.

    "……!"

    뿌득-!

    허나 오군성은 이를 부서질 듯 악물고서 그 자리에서 버텨냈다.

    버텨내고서, 자신의 주먹을 꿰뚫은 힘마저 붙잡아 다음의 일권에 담았다.

    도진은 그 일권 또한 정면에서 받아 주었다.

    꽈아앙-!

    오오오오오오-!

    '세 번째' 진각에 호응하여 천마기가 포효한다.

    그리고 쏘아지는 도진의 왼 주먹에 깃드는 뜻과 이치는.

    천괴(天壞).

    천격에 꿰뚫린 하늘이 붕괴하여 쏟아지는 듯한 '천재지변'이 이를 악문 오군성을 덮친다.

    "……!!"

    이것이 정녕 권(拳)인가.

    이것이 정녕 무(武)란 말인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인간의 몸으로 감내하여야만 하는 듯한 이것이, 정말로 인간이 쏘아낸 일권일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인간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선연한 심상(心象)으로 그리고 주먹에 담아낼 수 있는 것인가.

    감당하지 못할 미증유의 압력에 으스러질 것만 같다.

    "오오오오오오-!!"

    하지만 오군성은 그 공포를 피를 토하는 듯한 고함으로 몰아내며 기어코 주먹을 내뻗었다.

    꽝-!

    미력한 인간 따위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어찌 막겠는가.

    그리 고하는 것처럼 오군성의 주먹은 소천마의 주먹에 닿지 못했다.

    여기에 한 번 더, 오군성이 주먹을 내뻗는다.

    오의, 진권(盡拳).

    진영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오군성은 일부러 권기(拳氣)를 만들지 않고 여력을 둔다.

    동시에 외부에서 기운으로 사자패권을 구사하기 위한 여력 또한 둔다.

    그 모든 여력을 단 한 번의 주먹에 모두 담으니 극치에 달한, 오군성의 모든 것을 담은 최후의 패권(覇拳).

    격돌로 인해 발생한 힘까지 활용하여 쏘아지는 '두 번째 최후의 주먹'.

    그 최종 오의 또한.

    콰앙-!

    일말의 자비없이 깨지고 말았다.

    털퍼덕.

    사자군 오군성.

    그의 거체가 허공에서 추락하여 사막의 모래에 파묻혔다.

    * * * *

    "…어떻게 알았나."

    모래에 파묻힌 채 오군성이 물었다.

    그 곁에 앉은 도진이 말했다.

    "대용이의 사자천권을 봤거든요."

    "대용이의."

    "네. 대용이의 사자천권에는 스스로에 대한 올곧은 믿음이 있었어요."

    "사자천권은 거침없이, 강렬하게 내뻗어 가로막는 모든 것을 꿰뚫어야만 하는 무공이죠. 사자패권의 기본이며 기본이기에 무공을 단단하게 받쳐야만 하는 뿌리죠."

    "결코 포기하지 못했던 무공에 대한 마음에 대용이는 단 하루도 주먹을 내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그랬던 세월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더해져서 대용이의 사자천권은 어떤 것을 마주해서도 흔들리지 않고 뻗어 나가요."

    그것이 설령 소천마의 주먹을 마주한 상황이라 해도 말이다.

    "하지만 회장님은 아니었어요. 회장님의 주먹에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죠. 그러니까 안 거예요. 회장님이 퇴보했다는 걸."

    "……."

    부정할 수 없었다.

    소천마가 정확하게 보았다.

    사자패권의 시조인 오군성에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리가 없다.

    한데 지금, 그것이 보이지 않으니 오군성은 분명하게 퇴보한 것이다.

    "큭큭큭. 그렇군. 그렇구나."

    다름 아닌 본인의 일이다.

    하물며 화경에 이른 오군성이 그런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틀릴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저,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외면하고 있던 것이었다.

    "멈춰서고 말았다. 제아무리 나아가려 해도, 길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을 보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들이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고.

    족쇄에서 벗어나 초월의 영역을 자유롭게 노닐 것이라고.

    허나 틀렸다.

    현실을 넘어선 그곳은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며 구속이 느슨해져 있기에 오히려 바로 서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똑바로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두려운 일인지.

    경험하지 못한 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오군성은 그 영역에서도 평생을 그랬던 것처럼 나아갔다.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우직할 만큼 똑바로 나아갔던 삶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자천권도 사자패권도, 그 오의인 진영과 진권 또한 그 과정에서 쟁취한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의 한계는 하늘 밖에 도달하는 게 고작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인내심이 그러하듯, 사람의 의지 또한 단숨에 증발하는 것이 아닌 서서히 깎여 나가는 것이다.

    무의 길을 걷는 중에 오군성은 기어코 그 인내가 모두 깎여 나가고 멈춰서게 되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인정하기 싫었다."

    고해성사를 하듯 오군성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멈춰선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로서는 쳐다볼 수밖에 없는, 닿지 못할 하늘 밖의 하늘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는 무인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