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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88화 (588/741)
  • 587화

    오군성 회장이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정보를 다루는 단체에서 공통적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정보였다.

    한국의 언어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마냥, 실제 작자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자신들의 '추론'을 정답인 것처럼 주입하는 경우와 달리 정보 단체는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정보를 분석하여 또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니 이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자군' 오군성이다.

    경계를 넘어선 고수이자 대한민국 재계 서열 3위의 대기업 오성의 절대군주.

    1세대의 적지 않은 나이라지만 경계를 넘어선 그는 오히려 이제서야 전성기가 왔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는데 은퇴라니.

    허나 그런 의문을 억누를 만큼의 근거가 속속 보이고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오성의 경영에서 점차, 조금씩 손을 떼고 있는 부분이다.

    오군성이 오성의 군주라 불리는 건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만이 아니다.

    실제 황제가 그런 것처럼, 오성이란 제국의 모든 최종 결정권이 오군성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도장만 찍는 게 아니라 올라오는 서류의 모든 것을 오군성은 파악하고 있었다.

    한데 그 '최종 결정권'의 일부를 오군성이 자식과 손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작게는 프로젝트를, 크게는 계열사의 최종 권한을 넘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정보 단체가 파악하고 있는 오군성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 이런 변화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정보 단체는 공통적으로 오군성의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아직 몰라. 정보가 너무 적으니까. 다만 그 적은 정보 속에 오군성 회장이 회사의 일을 조금씩 놓고 있다는 게 보이니까 그렇게 추측하고만 있는 거야.

    나지윤마저 그렇게 말할 정도였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본래는 너무나 당연했을 오군성 회장의 바할라 현장 방문이 이토록 특별한 이벤트가 된 것이었다.

    '흐음.'

    도진이 파악하기로 오성 그룹의 계열사 오성 건설이 바할라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착수한 게 1년이 다 되어 간다.

    발표도 하기 전에 계획을 입수하고 준비를 했을 정도였다.

    오군성 회장이 직접 바할라에 방문하여 슈미트라 왕세자와 면담을 나눌 만큼 공을 들였던 사업인데…….

    그 당시 주기적으로 바할라에 방문했던 열의가 무색하게도 이후 오군성은 반 년 넘게 바할라에 방문하지 않았다.

    그러다 오성 하이테크로 발령나고 이제 갓 대리를 단 오대용을 갑자기 여기로 발령을 내 버렸던 것이고.

    '…나, 를 보러 오려는 건가.'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바할라에 방문하려는 오군성 회장의 목적이 자신과 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막연한 추측은 아니었다.

    경계를 넘어선, 화경에 이르른 도진의 직감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틀 뒤.

    -저녁 식사나 같이 하지 않겠는가?

    오군성 회장에게서 직접 걸려온 전화로, 도진은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

    오군성 회장의 시찰로 신도시 건설 현장의 몇몇 곳에 긴장이 감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성의 군주' 오군성 회장이 직접 방문하여 현장을 점검하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철저하게 현장을 확인하였고 곁에서 수행한 오대용마저 저녁을 먹고 침대 위에서 긴 숨을 토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틀에 걸친 점검을 마치고 늦은 저녁.

    오군성은 홀로 최고급 호텔 최상층 레스토랑을 통째로 대절한 자리에서 소천마 김도진을 기다렸다.

    넓고 화려한 공간의 가장 중심에 커다란 테이블이 놓였다.

    그리고 단 한 명, 오군성만이 자리에 앉았으나 종업원들은 일말의 공백조차 느끼지 못했다.

    사자군 오군성.

    그는 이 넓은 공간을 그저 존재함으로써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군성의 존재감만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공간에.

    저벅-

    또 하나의 존재감이 스며들었다.

    평이한 발걸음이다.

    그리고 그저 평이한 존재감이었다.

    허나 그 존재감이 이윽고 일대를 가득 채운다.

    오군성의 존재감을 지운 건 아니었다. 일말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에 들어선 존재, 소천마가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그것은 마치.

    그저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세상'과 같았다.

    "……."

    소천마를 담고 있는 오군성의 눈동자에 파문이 일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회장님."

    "…그렇군."

    웃으며 인사하는 젊은, 손자의 친구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어땠던가.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그리고 손녀를 채 가 버렸을 때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을 때는 또 어땠던가.

    그때도 분명히 대단했었다.

    언젠가는 자신의 턱끝까지 치달을 '호랑이 새끼'라 생각했었고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아니었다.

    '이놈은, 처음부터 용이었어.'

    머지 않아 이미 준비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오군성에게 있어서는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잠시 못 보는 사이마다 믿을 수 없는 성장을 보여 주었던 이 젊은 무인은 이제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조용한 가운데 몇 점의 고기를 삼킨 오군성이 말했다.

    "자네가 보기에는, 내가 어떤가?"

    갑작스럽다.

    그러나 도진은 언제나와 같은 잔잔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달라지셨네요. 좋지 않은 방향으로."

    "그런가?"

    "네."

    "그렇군."

    오군성은 부정적인 평가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선 포크와 나이프를 놓더니 말했다.

    "잠시 산책하지 않겠나?"

    "그러시죠."

    식사는 짧게 끝이 났다.

    그리고 레스토랑을 나선 두 사람은 사막을 걸었다.

    인적이 드문, 제아무리 큰 소리가 나고 내공이 휘몰아쳐도 문제없을 먼 곳까지.

    "이 세상엔 하늘 밖의 하늘을 목표로 하는, 하늘 밖에 사는 이들이 있지. 혹시 알고 있나?"

    오군성이 천외천을 언급했다.

    그러나 도진은 전혀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느 정도는요."

    "그렇군. 설명할 수고를 덜었어."

    도진의 대답에 오군성도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공을 일깨웠다.

    쿠구구궁-!

    사람의 몸 안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패도적인 기의 운용이 발산하는 기세가 일대로 퍼져 나간다.

    "자네와는 꽤 긴 인연이었지만 제대로 손을 섞은 적이 없었지. 오늘 한 번, 그 기회를 가져볼까 하는데. 거절할 텐가?"

    도진이 씨익 웃었다.

    "아뇨. 환영합니다."

    * * * *

    쿠구구구구-

    오군성이 자신의 기세를 온전히 발산했다.

    경계를 넘어선, 화경에 이른 무인의 기세는 기(氣)가 그러하듯 실제가 되어 영향력을 행사한다.

    소위 말하는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농담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패도적인 오군성의 기세는 그러니까 마음 먹고 집중하여 대상에게 발휘하면 호랑이가 덮쳐들어 목을 물어뜯는 정도의 충격을 가할 수 있다.

    허나 그 기세를 마주한 도진은 잔잔하다.

    마치 그것을 바람처럼 흘려 버린다.

    오군성이 물었다.

    "칼은 뽑지 않을 셈인가."

    도진은 옅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회장님과는 주먹 대 주먹으로 겨루어 보고 싶어서요.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아 주세요. 저는 아직, 칼과 주먹에 차이가 있을 만큼 배움이 깊지는 않으니까요."

    "……."

    도진의 말에 오군성의 심상에 파문이 일었다.

    그것은 지극한 깨달음을 담은 말이었으니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고, 경계를 넘은지 오래된 오군성은 그만큼 도진의 말에 담긴 지극한 이치를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소천마 김도진이 아는 바를 제한없이, 무엇이 되었든 펼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치를 행함에 있어 도구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마저 넘어서는 '지극한 이치'가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오군성조차 엿볼 수 없었던 것을, 이 어린 무인은 보았다.

    "…시작하지."

    오군성이 파문을 지우기 위하여 낮게 읊조리고선 진각을 밟았다.

    꾸우웅-!

    모래가 압축되어 단단한 발판이 된다.

    그를 통하여 발생한 힘이 태산과 같은 거력(巨力)이 되어 도진의 정면을 가득 채웠다.

    그저 사람의 주먹일진데.

    거기에 어린 이치와 막대한 기운이 태산이 되어 도진을 덮치는 것이다.

    도진은 그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꽈앙-!

    진각을 밟으며 정면에서 맞부딪쳤다.

    꽈아아아아앙-!!

    수류탄이라도 터진 듯한 폭음과 함께 일대의 모래가 터져 나갔다.

    두 패도적인 기운의 격돌은 정말로 수류탄이라도 터진 듯한 여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오군성의 왼 주먹이 들이닥쳤다.

    쿠웅-!

    진각을 밟지 않았음에도 근육의 움직임과 내공의 힘으로 폭발적인 경력(勁力)을 발생시켜 주먹에 실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치가 더해졌으니 사자천권(獅子穿拳)의 이치다.

    쏘아지는 사자천권의 주먹은 직선이지만 그 어떤 방향에서 이루어지는 방해도 방어도 꿰뚫는다.

    그 어떤 장애물을 앞에 두고도 자신을 믿고 평생을 내뻗어 온 전력을 다한 주먹이 무수히 겹쳐진 것이니까.

    오대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력이 담긴 사자천권.

    그 사자천권을 마주한 도진의 얼굴이.

    '…….'

    미미하게 굳었다.

    도진은 가볍게 몸을 물려 사자천권을 피했다.

    오군성은 그렇게 잡은 기세를 놓치지 않고 한 걸음 더 강하게 내딛었다.

    꽈아앙-!

    이번의 진각에 담긴 내공과 기세는 차원이 다르다.

    오군성의 성명절기.

    그를 사자군이라 불리게 만들었던 사자패권(獅子覇拳)이 포효한다.

    일전의 '테스트' 때와는 다르다.

    도진의 한계를 파악하여 아슬아슬하게 그보다 조금 더 힘을 실었던, 그렇기에 명백하게 힘을 주욱 빼고 내질렀던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꾸우우웅-!!

    마치 공간 자체를 밀어내는 듯한, 그로 인해 공간이 비명을 토해내는 듯한 이 주먹이 바로.

    오군성의 진심을 다한 사자패권이었다.

    그 사자패권을 마주하여 도진은.

    쿠웅-!

    오히려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처음 주먹을 마주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오오오오오오-!!

    도진의 의지에 따라 천마기가 포효한다.

    혈도를 내달리며 덩치를 키우고 또 가속한 천마기는 언젠가 천마 위지혁이 보여 주었던 파천(破天)의 이치를 담고 내뻗는 주먹에 깃든다.

    효아(哮牙).

    폭렬권(爆裂拳).

    꾸우우우우웅-!!

    사자군의 사자패권과 소천마의 효아의 정면 격돌은 소리마저 짓이겼다.

    오군성은 상상을 넘어선 도진의 패권(覇拳)에 이를 악물면서도 또 한 번 전력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고.

    효아.

    폭렬권.

    도진 또한 마치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연달아 효아를 터뜨렸다.

    꾸우우우웅-!

    앞서보다 낮은 격돌음은 서로가 격돌 후 물러나며 여력을 흘려냈기 때문이다.

    충격을 다 흘려내지 못한 오군성이 모래 바닥에 자국을 남기며 물러났다.

    그에 비해 도진은 너무나 부드럽게 뒤로 미끄러졌다.

    격차.

    그것을 느끼고 얼굴이 굳은 오군성을 마주한 도진이 말했다.

    "회장님. 퇴보하셨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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