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4화
"으아아아아악!!"
고통에 앞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가 총을 든 손이 잘린 테러범의 비명을 쥐어짜냈다.
그리고 그 비명에 정신이, 시선이 분산된 순간.
그 짧은 순간으로 충분했다. 인질들을 겨누었던 테러범들을 처리하는 건.
털퍽!
총을 인질들에게 겨누었던 네 명의 테러범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당연히 자의는 아니었으니 두 팔과 두 다리의 힘줄이 잘려 서 있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물론, 총을 겨눌 수도 없게 되었다.
"물러나세요."
"……!!"
조용하지만 영혼에 때려박히는 선명한 말에 지하에서 끌려나왔던 인질들이 다급히 돌벽 뒤로 숨었다.
채찍질을 당하던 이들을 잊지 않고 챙기는 모습에 도진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 인해 대피가 늦어졌지만 상관없다.
도진이 그들의 앞에 서 있으니까.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줄 능력이 도진에겐 있었으니까.
저벅.
그저 내딛는 걸음.
그 걸음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스런 천벌의 접근인 것만 같아 테러범들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리며 총을 갈겨댔다.
꽈과과과과광-!!!
귀를 멎게 만드는 소총의 연사. 하지만.
투둑. 티디딩.
벼락처럼 쏘아지는 무수한 탄두는 결코 소천마를 꿰뚫지 못한다.
옷자락조차 뚫지 못했다.
닿는 순간 허무하리만치 작은, 총성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 허무한 소리를 내며 찌그러진 탄두는 그저 바닥에 나뒹굴 뿐이다.
'뭐야! 도대체 뭐냐고!!'
소천마가 걷는 길의 뒤로 나뒹구는 탄두는 너무 비현실적이고 또 절망적이다.
심장을 으스러뜨리고 짓뭉갤 듯한 공포를 이기기 위해 총을 갈겨대고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절망의 크기를 키우고 있다.
갑옷인가? 영화에서 봤던 말도 안 되는 기술의 철갑을,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여 온몸에 두르고 있는 건가?
"죽-으-라고-!!!"
콰아아앙-!!
핏발이 선 테러범 중 하나가 바주카를 갈겼다.
꼬리를 남기며 쏘아진 로켓은 삽시간에 소천마에게 들이닥쳤고.
슷-
지극히 작은, 그러나 영혼을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가 들리더니.
후두둑.
갈기갈기 찢겨 폭발조차 하지 못하고 흩날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들은 소천마가 휘두른 검의 칼날조차 볼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
저항 의지를 잃은 테러범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것만이 머리에 남아 살기 위하여 도망쳤지만, 소천마는 그 도망을 용납하지 않았다.
도진의 손가락이 도주하는 놈의 발목을 가리켰다.
그리고 '총알'이 쏘아졌다.
퓻-
"아아악!!"
발목이 꿰뚫린 테러범이 나뒹군다.
도진은 그저 테러범들의 발목을 가리킬 뿐이었으니 그 순간 테러범들은 차례대로 발목이 꿰뚫려 나뒹굴었다.
손가락으로 기탄(氣彈)을 쏘아내는 탄지공(彈指功)이었다.
이 시대에는 단 한 명만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유형화된 기탄을 원거리에서 쏘아내는 신공(神功).
그것을 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알려진 이보다 더 강력하게, 심지어 제한없이 쏘아냈다.
퍼퍽!
"아아아아아아악!!"
시선을 끌겠다고 인질을 찾던 놈의 두 눈이 터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곳에 머물고 있던 테러범은 전멸했다.
땅을 기며 필사적으로 도주하려는 인간 아닌 것들의 손목 힘줄을 도진은 단 두 놈을 제외하고 모두 끊어냈다.
그 둘을 차에 던져 넣고서 말했다.
"너희 둘은 이대로 수뇌부에게로 가."
"수, 수뇌부에 말씀이십니까."
"그래."
두 놈 중 하나는 눈을 잃은 놈, 다른 하나는 왼 다리를 꿰뚫린 놈이다.
굳이 살리는 건 테러 조직의 수뇌부에 '권고'를 할 전령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가서, 이대로 전해."
* * * *
"…버, 법과 사회를 버린 너희를 지켜줄 건 그, 그 어디에도 없으니 발악할 수 있는 데까지 하도록. 할 수 있는 최대로 발악하고 그만큼 절망하면 되, 된다."
"……."
'이런 개…….'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자랑스레 그리 떠벌이는 새끼들은 많지만 실제로 완벽하게 그러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궤가 완전히 달랐다.
소천마는 이미 보여 주었다.
그 어떤 여지도 없이, 그들을 사람으로조차 보지 않으며 섬멸하는 모습을.
살리는 건 죽음보다 잔혹하고 무서운 형벌을 내리기 위해서.
너희들도 그렇게 될 거라고, 예외는 없다고, 대화조차 일절 없을 거라는 절대적인 선고였다.
그들의 마지막 한 수였던 포로들마저 남김없이 소천마가 구출해 버렸으니 막다른 길에 몰렸다.
"으, 으으으……."
결국 대가 약한 수뇌 중 한 놈이 공포를 감당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병신 새끼가…….'
이를 악물고 한심한 새끼를 욕하지만 사실은, 그 역시 견디기가 힘들었다.
바로 그때.
"다만 한 가지. 스스로 버린 인권을 되찾을 방법은 없지만 법과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
"은밀히 너희를 돕고 지원한 자를 고발해라. 그것으로 너희는 법과 닿을 수 있으니, 투항하고 아는 것을 모두 고하는 자는 최소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잠시 고요해졌다.
눈을 잃은 놈을 통하여 전해진 소천마의 선고를 이해하기 위해 내려앉은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내 이해한 순간.
"……!"
말로 할 수 없는 혼란스럽고도 무거운 공기가 그들을 휩쓸었다.
* * * *
"……."
천마신교와 정의검가, 그리고 용병들이 머무는 베이스 캠프는 고요했다.
이제 겨우 10일 째.
그러나 용병들이 소천마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경외(敬畏).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한다.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면서도 그들을 얕잡아 보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일말의 불합리함도 겪지 않게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며 느슨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천마(天魔).
그 이름에 왜 하늘(天)과 마(魔)라는 글자가 같이 붙는지를, 소천마를 보면서 깨달았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무력을 잔혹하게 휘두르지만 그저 악하지 않고 천벌을 내리지만 또한 악마적이다.
그들을 지휘하는 소천마는 여전히 테러범들을 '살리고' 있었다.
테러범들은 차라리 죽기 위하여 혀를 깨물려 했으나.
"나는 너희를 죽이지 않을 거다."
소천마는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살린다는 행위가, 보는 이마저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을 줄 수 있다는 걸 그들은 태어나 처음 알았다.
그리고 전쟁은 종막에 접어들었다.
소천마가 선언했다.
투항하고, 내부 고발을 하면 최소한 법의 테두리에서 심판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들 중 다수는 남쪽 나라의 법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겠지만 용병들의 눈으로도 차라리 그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조직을 탈출하여 투항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일부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파악하고 있던 국경 부근의 마을을 테러하려 했으나 그것도 이미 막혔다.
바할라를 포함한 다섯 국가의 연합군이 한시적이지만 완벽하게 국경선을 틀어막은 것이었다.
그쪽으로 가면 진짜 군대의 포격에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영원히 그런 수비 태세를 유지할 수는 없지만 그것보다 독 안에 든 쥐 꼴이 된 테러 조직의 붕괴, 혹은 섬멸이 더 빠르다.
결국.
[소천마. 테러 조직의 '섬멸'로 20일 간의 작전 종료.]
[천마신교. 그 이름을 증명했던 20일 간의 전쟁.]
3주가 되지 않아 남쪽 나라에서 악명을 떨쳤던 테러 조직이 전멸하며 전쟁은 끝이 났다.
-나, 이제 천마신교가 뭔지 좀 알 거 같음.
-나도. 천마가 왜 천마인지 알았음.
-확실히 정파는 아님. 무서움;;;
-근데, 그래서 더 좋기도 함.
-솔직히 천마신교나 소천마 아니었으면 저런 숨 쉬는 것만으로도 해악인 새끼들을 누가 저렇게 깔끔하게 없애겠냐. 난 너무 좋다.
-켕기는 거 없으면 사실 무서울 것도 없지.
그리고 세상은 천마신교가 어떤 곳인지, 소천마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 * * *
세상은 소천마와 천마신교의 '첫 전쟁'으로 떠들썩해졌다.
그 압도적이었던 전쟁만이 아닌, 후폭풍 또한 크게 몰아쳤으니 투항한 테러범들이 자백한 내용이 원인이었다.
정치가, 사업가, 심지어 종교인들까지.
번듯한 신분 뒤에 숨어 테러 조직을 후원하고 도왔던 이들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자신의 표를 위해서. 무기를 팔기 위해서.
어찌 되었든 이득을 위해서.
테러 조직을 후원하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권력과 금력을 틀어쥔 이들이었기에 세계적인 관심 속에서 남쪽 나라들이 크게 흔들렸다.
"무형독의 흔적은 아직 보이지 않아."
"바할라 때 이후로 꼬리를 완전히 감췄을 수 있겠네."
나지윤이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 깔끔한 걸로 볼 때 그랬을 확률이 높아. 특히 바할라가 있으니 이 근처에서 완전히 철수했을 수도 있지."
투항하여 아는 것들을 말해라. 그러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심판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도진의 선언은 여러 의미와 목적을 담고 있었다.
개중 하나는 무형독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알면서 무형독에 협력하는 자들도 있지만 스스로가 무형독에 감염된 줄도 모르고 꼭두각시가 되어 놀아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도진은 테러 조직에 힘을 보태는 자들 사이에 그들이 다수 섞여 있을 거라 판단하고 그리 선언한 것이었는데, 이토록 큰 흔들림 속에서 아쉽게도 잡히는 게 없었다.
허나 성과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이를테면 부패한 자들은 '예비 숙주'였다. 기회가 된다면 무형독이 침투할 수 있는.
그런 자들을 미리 치워둬서 나쁠 게 없는 것이다.
바탕이 새하얄수록 검은 무형독이 침투할 때 잘 보이는 법이니 선수를 쳐 둔 셈이다.
"그럼, 마무리를 지으러 가도록 하죠."
공식적으로 의뢰받은 전쟁은 끝이 났다.
남은 건 그 뒷처리였으니 도진은 나지윤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시간이 되자 오성아와 함께 가 대금 수령을 포함한 절차를 마무리지었다.
의뢰의 규모가 규모였고 의뢰주가 국가였던 만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간단한 말로는 끝나지 않는 여러 절차가 있었으나 오성아가 함께였기에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
바로 밤 비행기를 타고 귀국한 오성아와 위취련 등 천마신교의 일부 교도들과 달리 도진은 며칠 바할라에 머물다 갈 예정이었기에 넓은 숙소의 푹신한 침대에서 잠에 들었고 심상세계에 섰다.
"제법 큰 경험을 했구나."
"예, 스승님."
격렬한 수련 사이의 틈.
도진은 스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관한 고민이나 부담은 없다.
애초에 그것들은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사람이 아니며 존재함으로써 해악밖에 안 될 것들이었으니까.
사람을 죽인 게 아니며 오히려 사람을 위하여 공헌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기에 도진은 도기(道器)를 품은 도사가 아니라 천마신교의 교주가 된 것이다.
그런 교주로서의 나날을 체험했으니 말 그대로 큰 경험이다.
그리고, 무인으로서도 큰 경험을 했다.
"화경에 이르른 무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아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곳에서 화경을 표현하는 경계를 넘어섰다는 말은 그런 부분에서 제법 핵심을 꿰뚫고 있지."
"길이야 각자가 밟은 곳이 곧 길이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겹치는 이치라는 게 있으니 보통은 그렇게 자신을 새롭게 아는 데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예."
스승의 말대로였다.
천마신공의 5성에 도달한 뒤로 도진은 경계를 넘어선 곳에 펼쳐진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집중해 왔다.
그리고 제법, 성과를 얻었으니 이번 전쟁에서 최대로 발휘해 보았다.
위지혁은 자랑스런 제자에게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너는 벌써부터 그것을 알고 걷기 시작하였으니, 여기부터가 바로 천마신공의 6성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