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3화
바할라와 맞닿은 네 곳의 국가 사이에 있는 사막 깊은 곳.
모래 언덕으로 위장한 그 아래에 여러 조직이 합병한 거대 테러 조직의 거점이 있었다.
본래 사이가 좋지 않아 결코 뭉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은 그러나 기댈 곳을 잃고 절체절명으로 몰리는 상황에 결국 손을 맞잡게 된 것이었다.
험악하고 살기 어린 인상의 그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소천마. 이 미친 새끼……."
"우리가 아니라 이 새끼가 더 위험한 새끼 아닌가?"
부러 험악하게 말하며 소천마를 욕하지만 거기에는 부정할 수 없는, 숨길 수도 없는 공포심이 깃들어 있었다.
소천마가 바할라에 와 '전쟁'을 시작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겨우 6일. 그러나 그 6일 사이 벌어진 일은 무시무시했다.
첫 교전은 작은 거점이었다.
이 전쟁은 항모가 동원되고 전투기 편대가 폭격을 가하는 그런 전쟁은 아니었다.
군대와 군대 사이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니니까.
그저 고만고만한 무장 수준을 갖춘 테러 조직과 의뢰를 받은 무림 문파 사이의 전쟁이었다.
그러니까 미사일이 날아다닐 일도 없고 서로 총을 갈겨대다 백병전을 하는, 그런 정도의 규모를 예상했는데.
'괴물 새끼.'
소천마라는 말도 안 되는 괴물놈이 예상을 완전히 엎어 버렸다.
불리할 건 알고 있었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그들보다 월등한 장비를 운용하고 있다는 걸 모를 만큼 멍청해서야 테러로 밥 먹고 살지도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킬로미터 바깥에서 수류탄을 날려서, 그것도 정확히 지휘부에 날려 폭사시키고 들이닥쳐서 초토화시키는 걸 어떻게 예상하느냔 말이다.
다음은 더했다.
과장없이 집채만 한 바위를 날려 지하 거점을 무너뜨린 뒤 포위하여 섬멸했다.
이 또한 2킬로미터 바깥에서 한 '폭격'이었다.
화경의 고수가 전쟁에 나서면 판도가 달라진다는 말은 이미 유명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증된 적이 없었기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 대단하신 화경의 고수가 전쟁에 나섰던 경우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화경의 고수라 해도 사람이니까.
전쟁에서 사람의 목숨은 과장없이 파리의 것과 같은 무게가 되어 버린다.
대가리나 심장에 총 맞으면 죽을 수 있고 그 외 어떤 '사고'로 무인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될지 모른다.
그들에게 있어 그것은 결단코 피해야 할 일이었으니 '화경도 총 맞으면 뒤져'라는 조롱의 말이 완벽히 부정되지 않았다.
한데.
그런 화경의 고수 중 한 명인 소천마의 활약이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며 계산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뿐인가.
소천마는 그 '성정'에마저, 파고들 틈이 없었다.
요 6일.
천마신교를 필두로 한 토벌대는 어디까지나 소모품만을 소모한 채, 극히 일부 용병의 부상을 제외하면 아무런 피해없이 열 개가 넘는 조직을 말 그대로 '섬멸'해 버렸다.
그러니까 하루에만 두 곳의 거점을 쓸어 버린 날이 더 많았을 정도로 파죽지세였으며 그렇게 쓸리고 난 뒤의 거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래.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시체조차도.
이는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인터넷에서조차 논쟁이 있었다.
-소천마가 겉으로만 센 척하지 사실은 존나 착하지 않음?
-..결과만 보면 그런 느낌이 있긴 하지?
-그러니까 어쩌면 의뢰 자체는 성공해도 조금 실패 한 스푼이 첨가될 수도 있을 거 같음.
-그게 뭔 개소리냐.
-그러니까 어쨌든 목숨은 뺏지 않으려고 하다가 조금 실패할 수도 있을 거란 이야기지.
-어, 좀 설득력이 있긴 하네.
-그렇지? 이번 일에는 바할라가 같이 못 가잖아. 그러니까 사실상 '전쟁'을 모르는 인원으로 구성될 텐데 정의검가랑 다른 용병이 보조한다고 해도 사령관인 소천마가 그래서야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테고 뒤가 없는 미친놈들인 테러범들이 뭘 할지 모르니까.
'씨발 개소리였지.'
아니었다.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소천마는 그냥 완전 미친 새끼였다.
악마였고 악몽 그 자체였다.
파악하기로 섬멸된 거점의 1/3이 죽었다.
'어? 그거밖에 안 죽었어?'라고 할 놈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축복이었다.
소천마는 섬멸 작전에서 가장 선두에 서서 테러범들을 '베었다'.
도륙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목숨을 붙여 두고 베었으나 그렇게 베인 놈들은 사지 힘줄이 잘리거나 척추나 목의 신경에 회생 불가한 상처를 입고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 꼴이 되었다.
천마신교의 교도들도 그런 교주를 따라 목숨을 빼앗지 않고 사지를 빼앗으려 노력했다.
그 상태로, '죗값'을 치르도록 하기 위하여 수용소로 보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죽인 놈들은 무덤조차 허락하지 않고 모조리 화장했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발언이다.
"소천마가 생명을 중시하여 살인을 하지는 않으나 비인도적일 정도로 과하게 손을 쓴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기자의 말에 도진은 일말의 웃음기조차 보이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그 사람들은 테러범을 사람으로 보나 보군요. 저랑 다르게."
"예?"
"테러범들은 무고한 사람들의 터전을 불태우고, 폭행하고, 이내 목숨마저 빼앗은 자들입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범죄를 밥먹듯 해 온 것들이죠. 그놈들을, 사람으로 보는 사고방식을 저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인권이란 권리이며 권리에는 의무가 따릅니다.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에게 권리는 있을 수 없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손을 쓰는 건 사람이 아닌 해악이며 해악에게 비인도적이란 말은 붙을 수가 없습니다."
"……."
도진의 앞에 선 기자는, 아니 기자만이 아닌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피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저 말을 들은 것 뿐인데.
그 말만으로 영혼이 압도당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바할라 용병들의 사고방식이 어디에 뿌리를 두었는지를.
도진이 말했다.
"한 가지 더. 그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해악인 자들의 생명을 중시하여 수고를 들여 살리는 게 아닙니다. 죽이는 게 오히려 너무나 자비로운 처벌이니까. 살아서 그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니까 살리는 것 뿐입니다."
"가능하면 모두 살리고 싶었지만, 무고한 희생자를 늘리지 않기 위한 작전 속행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하여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죄에서 도피하는 것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개 미친 새끼. 악마보다 더한 새끼. 또라이 새끼.'
왜 안 죽이고 살리는가.
굳이 살려서 보내는 걸 보면 소천마는 분명히 정신적으로 약점이 있는 놈이다, 라고 예측했던 대가리 굴리던 놈 몇이 그대로 총알에 뇌가 뚫려 뒤졌다.
그런데 그건 흔들리는 조직을 공포심으로 결집하는 수단이 되지 못했으니 수뇌부들까지도 소천마에 대한 공포를 도저히 억누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뇌부는 이르지만 가장 강력한 패 하나를 꺼내들기로 했다.
"…인질로 협상을 걸지."
"……."
그들이라고 해서 모조리 죽이는 건 아니다.
정말로 뒤가 없거나 뇌가 없는 미친 새끼들이나 그러지 어찌되었든 '조직'을 유지하려면 그래서는 안 된다.
일을 할 노예도 필요했고 그들은 함부로 국가가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인질로서도 쓸모가 있는 것이다.
수뇌부는 그 인질을 이용하여 상황을 개선하고자 했다.
소천마가 제아무리 또라이에 미친놈이라도 무고한 시민을 인질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까지 그럴 순 없을 테니까.
"좋아. 그러지."
모두가 합의하였고 한 명이 전화기를 들었다.
평범한 전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용으로 깔아둔 통신용 회선으로만 연결된 연락 수단이다.
한창 잘 나갈 땐 이런 인프라를 구축할 만큼 대단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씨발 왜 안 받는 거야!'
그 생각이 끝날 때까지도 신호만 가는 상황에 화를 내던 그는.
-수뇌부인가?
쿠구궁-!!
조직원 대신 전화를 받은 서늘한 목소리에 심장이 멎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전화 너머임에도 전해지는 영혼을 찢어발길 듯한 위압감이 전화를 받은 이가 소천마임을 알게 했다.
-곧 전령이 갈 거다. 전령의 말을 듣고, 잘 선택하도록.
뚝.
제 할 말만 하고 전화가 끊겼다.
그는 감히 다시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벌벌 떨었고 그가 왜 그러나 질문을 하기도 전에 바깥에 소란이 일었다.
"뭐냐!"
"나, 나, 나가 보셔야……!"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는 병신 놈의 면상을 후려갈김으로써 불안을 애써 억누르며 수뇌부가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
두 눈깔을 잃은 놈이었다.
사타구니에선 지린내가 풍기는데 공포에 완전히 잡아먹힌 듯 벌벌 떠느라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잃은 두 눈깔과 지린내보다 벌벌 떠는 몸에 덕지덕지 붙은 공포가 더욱 보는 사람을 압박하였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소, 소천마. 소천마가……!!"
그리고 놈이 마치 영혼에 새겨진 명령을 수행하듯 지껄이기 시작했다.
* * * *
사막의 은밀한 곳에 테러 조직의 포로 수용소가 있었다.
지상은 일견 사막의 오아시스 근처에 자리잡은 마을처럼 보이지만 그 지하에 '노예'들을 가둬 놓은 더 넓은 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노예들은 노동력만이 가치였으며 그 가치를 상실하는 순간 목숨을 잃는, 가축만도 못한 삶을 강요받았다.
"씨발! 씨발! 씨발!!"
"아아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발!!"
그리고 오늘.
노예, 아니 사람들은 테러범들의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채찍질을 당하고 있었다.
이미 두 명은 숨이 끊기기 직전이었고 또 한 명은 살이 찢긴 자리의 뼈를 더러운 채찍에 맞고 있는.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상황이었다.
사막 한복판.
그 누구의 구원도 바랄 수 없으니 희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그곳에.
쿠우우웅-!!
돌연 '무언가'가 떨어졌다.
"……?"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뭐야'라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운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무엇이든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열기'가 느껴져야 할 거 같은데.
이상하게 피부에 소름이 돋는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한기가 일대를 뒤덮었다.
그리고 곧 두 눈에 들어오는 '떨어진 것'이 소천마임을 깨달은 순간.
…………!!
그들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용이 금실로 수놓인 검은 곤룡포.
소천마의 상징이 된 그 곤룡포는 테러 조직에 있어 사형 선고, 아니 사형 그 이상의 천벌을 상징했다.
뜨거운 사막 위에 서 있음에도 온몸이 얼어붙고 감당할 수 없는 한기에 벌벌 떨린다.
그리고 아득한 공포가 이끌어낸 생존 본능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후순위로 치워 버리고 발악하듯 방아쇠를 당기게 만들었다.
"죽-여-버-려!!!"
꽈과과과과과광-!!
벼락이 쏘아진다.
하나둘이 아닌 수십 개의 총이 고막을 찢어발기는 벼락을 토해냈고.
투둑. 투둑. 투둑.
벼락보다 빠르게 소천마에게 쏘아진 무수한 총탄이, 그 앞 허공에서 허무하게 짓눌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상을 실시간으로 목격한 테러범들의 손가락에서 힘이 풀린다.
저것이 정녕 사람인가.
혹시 이것은 악몽이 아닐까.
이대로 죽어야만 할까.
이미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공포와 그 공포가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생존 본능이 이윽고 '노예'들로 향한다.
"머, 멈춰!"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다 죽여 버릴 거다!!"
총구는 그것이 전혀 통하지 않는 소천마 대신 인질에게로 향했다.
인질과 가까이 있던 한 놈은 뼈밖에 보이지 않는 앙상한 아이의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려 했고.
스윽-
소천마의 손가락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
서늘함에 본능적으로 아래를 내려다 본 테러범의 망막에, 그의 손이 손목이 아닌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현실이 맺혔다.
그리고 모두의 귓가에 소천마의 선고가 떨어진다.
"너희 중 누구도, 이 자리에서 죽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