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화
전쟁은 상상을 넘어서는 지출을 요구한다.
인적 자원은 물론이요 물적 자원에까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아득하리만치 높은 것이다.
이는 무림인이 현대에서 수행하는 한정적인 규모의 전쟁에서도 다르지 않았으니 민간 무림 군사 기업, 그러니까 민간 군사 기업급에 해당하는 문파가 최소 중견은 되어야 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때때로, 사안에 따라서 의뢰한 국가를 통하여 지원을 받기도 하였는데 바로 이번에 천마신교와 정의검가가 수주한 의뢰가 그런 경우였다.
바할라가 주도하여 네 국가가 특별 예산을 할당하여 최고 수준의 지원을 해 주는 것이다.
"휴대할 수 있는 각종 탐지 장비가 모든 분들에게 지급될 것이며 광범위의 탐지 장비를 탑재한 방탄 차량 또한 분대 단위로 지원될 것입니다."
무림인이 수행하는 전쟁에서의 대표적인 탐지 장비는 화약 탐지 장비다.
일정 경지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무림인을 일반인처럼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무공이 충분하게 발전하지 못했던 때에 무공무용론(武功無用論)까지 유행하게 만들었던 것.
총기(銃器)를 탐지하기 위한 장비였다.
일정거리에서 사수(射手)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고 그 행동을 주시할 수 있다면 일류 이상의 무인은 총격을 '보고' 피할 수 있다.
정확히는 총구의 방향과 방아쇠를 당기는 행동을 보고 피하는 거다.
일반인은 불가능하지만 일류 이상의 무림인은 그것이 가능한 피지컬을 갖추었다.
문제는 예상 밖에서의 저격이다.
이는 절정의 무인이라도 당할 만큼 위협적이었으니 총기의 극복은 무림인의 지상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휴대용 화약 탐지 장비다.
초장거리 저격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근거리에서의 기습적인 저격은 대비할 수 있게 해 준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초장거리 저격의 목표가 될 일은 드무니 평상시엔 이 정도로 충분하다.
이번 의뢰는 그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초장거리 저격마저 대비할 수 있는 광범위 탐지 장비가 탑재된 차량이 분대 단위로 지원된다.
그리고.
"개인에게 지급될 총기류입니다."
무림인에게 지급될 권총과 지원자에 한하여 지급될 소총이 있다.
민간을 넘어 국가 단위의 의뢰를 수행하는 무림인이라면, 그러니까 '용병'으로 불리는 무림인은 대부분 군사 수업을 이수한다.
전쟁에서의 필요한 지식은 물론이요 총기까지도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림인이 쓰는 총기는 민간인이 쓰는 총기보다 압도적인 효율과 위협으로써 기능하기 때문이다.
총격은 화경의 고수가 쏘아내는 탄지공(彈指功), 내공으로 쏘아내는 총알에 비견되는 위협으로 비무가 아닌 전쟁에서 절대적인 한 수가 된다.
도진은 담당자가 건넨 잘 정리된 서류를 확인하며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물자 측면에서 테러 조직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은밀한 타 조직의 지원과 약탈에 기대고 있는 테러 조직은 차량의 운용마저 어려운 상황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말했듯, 전쟁은 상상을 넘어서는 지출을 요구한다.
2왕자는 물론이요 무형독의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테러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들은 잔혹한 성격을 가지고 숙련된 조직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한 돈과 물자가 부족했다.
화기(火器)의 유연한 운용이 불가능 했으며 차량을 운용하기 위한 기름의 조달에도 애를 먹고 있다고 지원팀의 정보부가 보고했다.
그에 비해 킬로미터 단위의 탐지가 가능한 차량까지 보유한 천마신교와 정의검가는 이미 반쯤은 이긴 상황에서 의뢰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지원팀 사이에, 예상치 못했던 인연이 하나 끼어 있었으니 오대용이다.
한국에 있어야 할 오대용이 여기에 있게 된 건.
"물자의 운용은 저희 오성 그룹에서 서포트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의 식량이나 피복을 포함한 여러 물자의 운용을 오성에서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으로, 바할라와 인접한 네 나라에서 아무리 그래도 하나 더 안전 장치를 둬야겠다는 합의를 하며 내용이 변경된 것이었다.
오성은 이곳 남쪽 나라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이런 형태로 계약을 체결하게 됐다.
다만 그 계약의 책임자로 오대용이 오게 된 건 천마신교는 물론 계약을 주도한 이들 또한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었다.
간략한 회의가 끝나고, 그러니까 공적인 업무가 끝나고 잠시 사적인 시간이 되었다.
도진이 조금 표정을 풀고 옅게 웃으며 말했다.
"감격적인 남매 상봉인데 포옹이라도 하지 그래요."
"교주님 선 넘네."
"미쳤냐."
격렬한 반응에 도진이 낄낄 웃었다.
의뢰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이 자리엔 총괄부의 오성아도 함께 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인물, 오성아의 동생 오대용이 한 자리에 있게 됐으니 가볍게 농담을 던졌는데 반응이 웃음이 나올 만큼 격렬하다.
회귀하기 전의 나이를 생각하면 무려 스무 살이 넘게 차이나는 동생들을 보게 된 도진과 달리 겨우 몇 살 차이인 오성아와 오대용 남매의 사이는 그토록 '평범'했던 것이다.
낄낄 웃었던 도진이 말했다.
"솔직히, 진짜 의외네. 널 여기서도 볼 줄은 진짜 몰랐는데."
"…할아버지가 나한테 맡기셨거든."
"흐음."
간단한 대답에 그렇지 못한 내용이었다.
바할라를 포함한 이곳에서의 사업은 오성 그룹 전체에서 보아도 상당히 중요하고 커다란 일이다.
오군성 회장이라면 사람을 보내더라도 주기적으로 시찰을 하고 최종 결정은 직접 할 일이었는데.
이렇게 또, 무림대회 때처럼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린 것이다.
설령 그것이 손자인 오대용이라 해도 평범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계약을 제안한 네 나라의 입장에서 오대용을 반기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터이니 더욱 그렇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정말로 은퇴라도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도진은 시간을 확인했다.
약 30분 뒤.
천마신교와 정의검가를 포함하여 이번 의뢰를 수행할 다른 용병 단체들과의 미팅이 있었다.
오성과 계약한 것과 마찬가지로, 천마신교를 견제하기 위한 다른 네 나라의 노력의 일환이었다.
도진은 그리 개의치 않았다.
수행 인원의 증가는 의뢰 수행을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요소였으니까.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했는데.
"아무리 천마신교라도 그렇지. 경험도 없는 어린 소천마를 사령관으로 두라고."
"예우가 너무 지나치잖아. 이건 소꿉놀이가 아니라고."
구를 대로 구른 거친 '낭인(浪人)'들, 그러니까 용병들을 휘어잡아 명령에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거 인정…… 못, 하……."
두웅-
도진은 그것을 해결할 수 있었으니 흔쾌히 계약 내용의 변경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거, 뭐, 야……!'
도진의 존재감이 회의를 위해 마련된 넓은 공간을 지배한다.
짓누르는 것도 위협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봐야 20대 초반의 전쟁을 겪지도 못했을 애송이'라는 반발심을 짓이긴다.
그들 스스로가 도진이라는 존재가 아득한 상위에 군림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도록 만든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이성을 넘어 본능에 때려박는다.
상대가 시비를 걸게 하고 완벽하게 제압함으로써 기강을 잡는다?
번거로운 일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다.
도진은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대신 천마신교 교주로서의 존재감으로 대번에 의뢰를 수행할 용병들을 꺾었다.
"참모 장교님."
"예!"
그리고 그들을 굽어보는 단상 위에서 도진의 시선이 바할라의 참모 장교에게로 향했다.
"브리핑 시작하세요."
"존명!!"
천마신교를 지극히 믿는 교도였던지 충성 대신 존명이라 외치며 그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앞서 사전에 한 브리핑을 의뢰를 수행할 모든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번 더, 완벽하게 숙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 정확히 진행하였다.
"작전의 목표는 간결합니다. 테러 조직의 섬멸입니다."
* * * *
열 손이 한 손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테러 조직의 게릴라 또한 다르지 않았으니 넓은 영토 전체를 언제까지고 전력으로, 모두 지킬 수는 없었다.
하다 못해 국경선이 명확하였다면 방비를 단단히 하여 그들이 진입하기 힘들도록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으니 피해가 더 컸다.
이곳에서 국가의 영향력이란 동심원과 같아서 외부로 퍼져 나갈수록 옅어지고 이내 사라지지만 그렇게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도 마을은 있다.
도진은,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던 마을을 불태우고 약탈하고 살인한 테러 조직 중 한 곳의 거점을 두 눈에 담았다.
압도적인 탐지·탐색 능력을 이용하여 찾아낸, 2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거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8인의 대원을 이끄는 분대장들의 시선이 도진에게로 향했다.
천마신교와 정의검가를 제외한 용병들의 수가 64명이었기에 8명씩 8개의 분대로 나누었고 그중 한 명씩 분대장으로 삼았다.
도진을 사령관으로 인정하였으나 반발심이 남아있는 눈들이다.
함께 온 위취련과 위연서를 필두로 한 천마신교의 교도들은 그 불경한 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나 도진의 뜻에 따라 그저 시립한 채 서 있었다.
도진은 평소와 달리 웃음기가 전혀 없는 얼굴로 말했다.
"포위 후 남김없이 섬멸한다."
"……예."
분대장들은 조금 더 커진 반발심을 담아 대답했다.
너무 평범한 명령이었으니까.
변변찮은 거점이었고 물자조차 부족한 거점이었다.
그에 비해 압도적인 지원을 받으며 인원수조차 두 배는 되는 상황에서 포위하여 섬멸하자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누구든 성공시킬 수 있는 작전이었다.
탐지 범위 바깥에서부터 일제히 방탄 차량을 이용하여 들이닥쳐 포위진을 완성하고 원거리에서 화력 지원, 신나게 두들긴 뒤 진입하여 제압하는 걸로 끝.
그러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명령이었다.
그들을 존재감만으로 찍어 눌렀던 소천마의 발언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용병들의 앞에서.
"……?"
"어?"
도진은 수류탄 두 개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저걸 왜?'
분대장들이 이유 모를 도진의 행동에 시선을 집중했고 개중 한 명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도진은 소리를 낸 분대장을 탓하지 않았다.
그런 목소리로 들킬 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으니까.
찰칵-
"어, 어어어?"
"뭐, 뭐를?!"
이렇게 소란이 커져도 결코 닿지 않을 만큼 2킬로미터는 아주 먼 거리였다.
그 먼 거리에 있는 테러 조직의 거점을 향해, 도진이 수류탄 두 개를 던졌다.
그리고 명령했다.
"지금부터 포위 섬멸을 시작한다."
"존명!!"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크게 외쳤고 뒤를 이어.
꽈아아아아앙-!!
테러 조직의 중요 구역 두 곳이 성대하게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