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82화 (582/741)

581화

바할라의 이름을 알린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산유국.

기름을 수출하는 나라다.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세계 원유 수출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많은 분야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나라였다.

다른 하나는 용병이다.

무림이 현대에 공존하는 만큼 각종 분쟁을 넘어 전쟁의 영역에까지 이르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많은 시대에 무공을 익힌 용병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이 용병 세계에서 바할라 출신은 그 자체만으로 일정 이상의 신용을 받을 만큼 대단한 명성을 떨쳤다.

원리 원칙을 중시한다.

으레 다른 용병들이 보이는 느슨한 태도는 바할라 용병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 실력은 평균을 훨씬 웃도니 고용주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다른 용병들도 바할라 용병이라면 한 수 접어주었으니 그들이 보이는 단호하고도 잔혹한 작전 수행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준은 분명했다.

'인권을 포기한 자'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른 자, 무고한 이를 죽인 자 등.

선을 넘은 이들을 인권을 잃은 자로 규정하고 제거하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가지지 않는다.

인간의 형상을 한 고깃덩이를 제거하는 듯한 모습을 실제로 곁에서 보고 있자면, 제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그들과의 마찰을 꺼리게 된다.

다만 반대로 원리 원칙만 지킨다면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이니 용병 세계에서 절대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바할라가 국제 사회에서 유명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산유국으로서의 지위는 그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모를 수 있는 일이다.

바할라의 용병 또한 마찬가지로 그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생업이 연관되어 있지 않다면 모를 수 있는 '특수 분야'다.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것이 없었으며 국제 사회에서의 활동도 미미했기에 바할라는 아는 사람만 아는 국가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름을 전 세계가 안다.

그들의 가치관과 무공의 근원.

천마신교를 지탱하는 기둥 중 하나, 투마전(鬪魔殿)이 바로 바할라였으며 그 전주가 바할라의 국왕이 될 슈미트라 왕세자였기에.

그리고 그 투마전의 나라가 세계를 좀먹고 있던 무형독과의 전면 전쟁을 선포하고 최선두에 섰기에.

바할라의 위상은 비할 데 없이 높아져 있었다.

한데, 그 바할라를 도발하는 테러 조직이 나타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일반적인 테러 조직이었다면 금방 정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으니 이것은 제법 복잡한 사정이 얽힌 문제였고 바할라와 국경을 마주한 네 개의 국가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게 만들었다.

"……."

슈미트라 왕세자가 직접 출석한 이 자리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이것도 다 이번 테러 조직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다.

땅이 큰 나라는 으레 '흑도(黑道)'에 관한 문제를 앓고 있다.

절대적인 면적이 크거나 혹은 국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토가 넓거나.

그 경우 국가의 영향력이 영토 전체에 미치지 못함으로 인해 흑도 무리가 파고들 틈을 내주고 마는 것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마저 그랬으니 바할라를 포함한, 땅은 넓으나 그 영토를 모두 커버할 수 없는 남쪽 나라들 또한 그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할라는 무형독을 몰아냄으로써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

낭비되고 분열되었던 국력을 한데 모아 들끓던 흑도 무리를, 무형독과 2왕자의 후원을 받아 날뛰던 놈들을 처단했고 영향력을 넓혀 놈들이 횡보하던 영토를 대부분 되찾았다.

이번에 진행하는 거대한 신도시 프로젝트도 그렇게 되찾은 영토 위에서 시행된다.

문제는.

몰아낸 흑도 무리이자 테러 조직들이 힘을 합쳐 게릴라 전술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것도 네 개의 국가와 맞닿은 국경선을 넘나들면서 말이다.

'국내'의 일이면 거칠 것 없이 무력을 동원하여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국경선을 넘나들며 게릴라 전술을 펼치는 놈들을 처단하는 건 여러가지 이유로 어려운 일이었다.

슈미트라 왕세자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확인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바할라의 힘이 국경선의 근처에서 행사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소."

"맞소."

그들은 바할라가 테러를 빌미로 이득을 취하려 한다 생각했다.

마냥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인 게, 이 국경선이라는 게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로 맞닿은 나라들인 만큼 실측을 하고 합의를 하여 국경선을 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바할라만이 아닌 인접한 네 나라 또한 흑도로 인해 영토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국경선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러 버린 거다.

이런 상황에서 바할라가 테러 조직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그 공백에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면 나중에 국경선을 명확하게 정할 때 불리해질 것이 자명했고 그들은 마찬가지로 테러 조직에 피해를 입고 있으면서도 당장은 어리석은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슈미트라는 그들을 이해했다.

그래서, 대안을 내놓았다.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걱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니, 중재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중재안?"

"어떤?"

"무림에 의뢰를 하겠습니다."

"으음……."

간단하지만 명쾌한 해법이었다.

무림에 의뢰를, 그것도 다섯 나라가 공동으로 한다면 대리인을 통하여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되니까.

우려했던 부분이 모두 사라진다.

"바할라가 집중적으로 노려지고 있으니 저희가 의뢰비를 더 부담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하지요."

이 또한 좋았다.

기실, 바할라와 달리 네 나라는 국고의 사정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으니까.

체면과 명분을 챙기면서 부담을 더 하겠다는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동의하오."

"그래서, 어느 문파에 의뢰할 것이오?"

긍정적인 분위기에 슈미트라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선 이렇게 말했다.

"천마신교(天魔神敎)."

* * * *

[속보! 바할라의 테러 단체를 소탕하기 위해 소천마가 직접 출국!]

오후에 갑자기 뜬 속보는 대번에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고 그 상세한 내용이 일간 하오문에 게시되면서 핫이슈에 등극했다.

-엌ㅋㅋㅋㅋㅋㅋ 바할라에 앙심품고 나대던 테러 조직 다 뒤지는 각? ㅋㅋㅋㅋ

-천마신교 건드렸으니 멸망이지 뭐 ㅋㅋㅋ

어느 정도는.

어차피 다 커버하지 못할 영역에 자리잡은 흑도 조직이 너무 커진 데다 음지에서의 로비가 대단하여 묵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바할라도 마찬가지여서 특히 무형독에 휘둘리던 2왕자파에 로비를 하던 조직이 절대다수였다.

한데 그 2왕자가 무형독에 살해당한 뒤 그들은 끈을 잃게 되었고 은밀하게 힘을 실어주던 무형독 또한 손절을 함으로써 많은 조직이 말 그대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리석게도 테러 조직, 무장 강도가 되고 만 것이다.

-바할라 주변이 사실 그렇거든. 그쪽은 중앙 정부 힘이 강하지 않아서 외곽까지 영향이 미치질 못하니까 필연적으로 흑도 조직의 힘이 강할 수밖에 없음.

-근데 그중에 바할라 쪽 조직이 갈 데가 없어진 거임. 내가 볼 때 주변 조직에 무력 시위로 어필하는 게 아닐까 싶음. 스카우트 하라는 거지.

-근데 왜 바할라는 군대 동원 안함? 걍 국경지대에 군대 배치하면 끝 아님?

-그게 그렇지가 않음. 이건 그쪽 정세를 좀 알아야 되는데…….

아는 걸 설명할 수 있어 신난 댓글러 한 명 덕분에 바할라와 인접 국가 사이의 국경선과 관련한 사정이 상세하게 설명된다.

-아, 그렇구나. 국가가 나서기엔 애매한 상황이고 그래서 무림 문파인 천마신교가 의뢰를 받고 나서는 거구나.

-ㅇㅇ 다섯 국가가 공동으로 의뢰하는 형태임. 이러면 문제가 없지.

-근데. 사실 천마신교는 바할라랑 한몸 아닌가?

-사실상 그렇긴 한데 실제 천마신교와 바할라는 엄밀히 말하면 별개니까. 천마신교가 바할라라는 나라를 밑에 두는 구조는 아니잖아? 게다가 천마신교에만 맡긴 것도 아님.

-그러면?

-정의검가도 같이 감.

-정의검가도?

-ㅇㅇ

-정의검가도 천마신교랑 친하자너?

-하지만 별개의 세계 무림에서 인지도 있는 문파이기도 하지. 정의검가는 이름값 때문에라도 일을 공정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음.

-그렇구나.

-난 근데 그런 거보다 천마신교가 과연 어떻게 의뢰를 수행할지가 더 궁금함.

-?

-솔직히 천마신교가 이런 세계 무림에서의 전쟁 단위 의뢰를 수행하는 건 처음이잖아. 이런 의뢰는 성질도 완전히 다르고 마음가짐도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음. 그러니까 궁금하고 기대 됨. 어떤 모습일지.

-듣고 보니 그렇네.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음 ㅋㅋㅋ

-이번 의뢰를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따라 세계 무림에 천마신교의 이미지가 정해질 거임.

문파로서의 천마신교는 일전 세계 무림대회에서 대문파임을 증명했다.

그러나 현재의 무림이 있는 곳은 현대 사회이니 그 현대 사회에서의 천마신교 또한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의뢰가 그 증명이 될 것이었다.

수많은 관심과 이야기 속에서 천마신교는 정의검가의 무인들과 함께 대절한 전용기를 타고 바할라로 향했다.

그리고 바할라의 수도와 인접한 공항에서, 그들을 기다린 이들은 천마신교가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스윽-

가장 먼저 땅을 밟는 건 소천마, 김도진이다.

금실로 수놓은 용이 자연스레 일렁이는 곤룡포를 걸친 소천마는 지극히 밀도 높은 걸음으로 공항을 걸었다.

두웅-

마치 정신을 뒤흔드는 것 같은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꿀꺽."

지켜보는 이들의 호흡이 무의식적으로 짓눌린다.

위협하지 않았다.

자세가 크지도 않았다.

그들을 적대하지 않았음에도, 적대하는 순간 죽음을 대번에 떠올리게 만드는 경이적인 존재감을 본능의 영역에서 느낀다.

제삼자로서 그저 지켜볼 뿐인데도 이렇다니.

이런 소천마를 적대하게 될 테러 조직의 입장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소천마를 뒤따르는 천마신교의 무인들.

그들이 무고한 이들을 살해하고 약탈한 '인권을 잃은 자들'을 이 세상에서 제거하기 위해 왔음을.

그것을 결코 망설이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 * * *

천마신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온 정의검가의 무인들은 수도의 왕궁으로 가는 대신 바로 작전 구역의 베이스 캠프로 향했다.

필요한 절차는 이미 출발하기 전 마쳐 두었으니 즉시 의뢰를 수행하기 위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베이스 캠프는 바할라의 신도시 건설 예정 구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국경선을 넘나드는 테러 조직을 방어하기엔 그리 좋지 않은 곳이었으나 애초에 그 부분은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천마신교, 그리고 정의검가가 이곳에 온 것은 테러 조직을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닌.

테러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서였으니까.

도진은 이미 나지윤을 통하여 보고 들었다.

테러 조직에 의해 자행된 폭행, 강도, 살인 등의 참상을.

그러니까 느긋하게, 자비를 베풀며 일을 진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베이스 캠프에 도착 즉시 의뢰 수행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차갑게 내려앉았던 도진의 온도를 조금 올려주는 친구를 만났으니.

"여기서 또 보네."

"그러게 말이야."

옅게 웃으며 대답하는 건 제법 더러워진 하얀 셔츠의 소매를 걷은 양복 차림이 꽤나 어울리는 남자.

오대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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