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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81화 (581/741)
  • 580화

    시간을 조금 돌려 도진이 상아탑으로 향하기 전의 미국.

    아름답게 꾸며진 해변의 넓은 사유지가 있었다.

    어느 부호의 소유로 알려졌으며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바깥의 시선이 차단되는 이곳의 별장에.

    "제법 모였군."

    아홉이나 되는 '화경의 고수'가 모였다.

    만약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올린다면 대번에 합성, 조작이란 말이 나올 것이었다.

    경계를 넘어선 무림인, 화경의 고수는 그 자체로 세계 무림의 역사에 새겨질 만큼 특별했으며 특별하다는 것은 희소하다는 뜻이다.

    세계의 대문파 화산에서도 화경은 단 한 명, 화산제일검 리암 드가모뿐이었으며 무당에도 한 명뿐이다.

    그런 화경의 고수가 무려 아홉 명.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개중 네 명이 화산제일검이나 무당제일검과 달리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었으며.

    '…아직도 따라잡지 못했나.'

    리암 드가모가 자신의 실력을 한탄하게 만드는, 더욱 윗줄에 있는 고수들이라는 것이었다.

    알려진 이들보다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 더욱 고수인 집단.

    또한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전부가 아닌 집단.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 집단의 이름은 하늘 밖의 하늘.

    천외천(天外天)이었다.

    "유지은과 접촉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말에 누군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아이라면 자격이 충분하지."

    "우리와 잘 어울리는 아이였지."

    반대없이, 대번에 결론이 났다.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된 일이었으며 모두가 동의한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리암 드가모 또한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자신이 건의하였던 김도진과의 접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나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가 '속세'와 달리 이곳 천외천에서는 말석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천외천에서 김도진과의 접촉을 위한 밑작업에 들어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암 드가모. 자네도 같이 가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불만없이 뜻에 따랐고 한국으로 향했다.

    자신, 화산제일검과 선배인 무당제일검이 함께 움직이는 일이었으나 소요는 없었다.

    요는 너무 잘 알려져 있었기에 사소한 것이 가려진다는 맹점이다.

    화산제일검과 무당제일검은 세상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무림인이지만 그렇기에 '하늘 위의 존재'이며 적당한 이유로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운신의 여유가 있다.

    여기에 다른 이들이 언론에서 떠벌이지만 않으면 조용한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게 가려지진 않으니 천외천 나름의 백업도 있었고.

    그렇게 은밀히 바깥으로 나온 속세의 둘과 함께 한 건 리암 드가모를 천외천으로 이끌었던 선배였다.

    그에게 하늘 밖의 하늘을 알려주었던 고수.

    이를 악물고 노렸했지만 아직도 격차를 좁히지 못한 하늘 밖의 고수가 그였다.

    셋이 함께 접촉하여 직접 본 유지은은, 조금 다르긴 했으나 예상했던 범주 내의 인간이었다.

    리암 드가모가 보기에도 지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10년, 아니 솔직히 말해 빠르면 5년 내에 화경에 오를 것 같았다.

    …그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높은 곳을 본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재능이 자연스레 '하늘 밖'을 보게 만들고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것은 조금만 달리 보면 저주였다.

    하늘 아래가 아득해져 잘 보이지 않고 이해조차 하기 어렵게 만든다.

    반대로 그런 '천재'를 이해하지 못한 시궁창의 땅을 기는 것들은 천재를 시기하고 해하려 들기까지 한다.

    리암 드가모도 이미 겪은 일이었다.

    재능이 없는 스스로를 탓하는 대신 재능이 있는 리암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에 발목과 재능이란 날개가 묶여 허비했던 시간이 얼마였던가.

    만약 극복하지 못했다면 자신 또한 시궁창에 처박혔을 거란 상상을 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그들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다.

    유지은 또한 그런 삶을 살았기에 천외천에 걸맞는 인간이라 예상되었다.

    근래 들어 시궁창을 가까이하며 그들을 흉내내는 노력을 보이고 있으나 천외천이 접근하면 금방 그것을 멀리하게 될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결국 맞지 않는 옷이며 생리적으로 살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

    범재는 아득한 천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동경마저 넘어선 재능은 경외를 지나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억누르며, 무인으로서의 향상심마저 외면한다고?

    가능할 리가 없다.

    무인이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었을 때의 희열은 마약조차 댈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높은 경지로 향할수록 그것은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결코 약해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약에 절대로 전다 해도, 막혔던 벽을 넘어설 수만 있다면 대번에 끊어 버릴 수 있는 것이 진짜 무인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유지은은 '하늘 밖'에 있어야만 할 사람이며 재능이 없다 해도, 시궁창에 산다 해도 무인인 놈들은 자신과 너무나 다른 유지은을 배척할 수밖에 없다.

    높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유지은이 그들과의 비무를 거절하지 않았고 계속 이곳을 찾을 때마다 그것은 더욱 높아졌다.

    이윽고 리암 드가모를 상대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을 확인했을 때엔 모두가 확신했다.

    유지은이 천외천에 들 것이라고.

    '…….'

    자신을 넘어선 재능이 개화할 거라는 생각에 리암 드가모는 유지은의 재능을 '배척'했지만 그런 스스로를 부정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손을 내밀었을 때.

    "죄송해요. 저는 그곳으로 가지 않을래요."

    유지은은, 믿을 수 없게도 그 손을 거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 * * *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요."

    무당제일검이 말했다.

    리암 드가모 또한 애써 부정한 자신의 감정과 별개로 동의했다.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는 재능이었고 이쪽으로 올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을 거절하다니.

    그렇다면 그 이유는…….

    "소천마에게 그 이유가 있겠지."

    그렇다.

    소천마다.

    그것 말고는 이쪽 세계의 인간인 유지은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리암 드가모가 자신의 감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소천마에 관한 일에 비중을 더 두어야겠군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노인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돌아가도록 하지."

    * * * *

    유지은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천마신교로 향했다.

    그 걸음에는 일말의 아쉬움조차 없었으니 천외천의 제안이, 유지은에게는 최소한의 가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유지은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타고난 재능조차 '평범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유지은이 타인을 상대로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약 한 달의 비무 내내, 자신의 재능을 숨겼다는 것을.

    그저 다른 이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있다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조금 더 먼 곳'은 유지은에게 있어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반드시 도달할 곳에 불과했다.

    추월이 정해져 있었다.

    전혀 특별하지 않았고 다르지 않았다.

    비무는 그 추월을 조금 더 앞당기는 의미가 있었으나 그 속도를 보여서는 안 됐다.

    리암 드가모의 시선을 떠올린다.

    그녀에게 있어선 너무나 당연하고 특별하지 않았던, 아주 조금 드러낸 발전.

    그 발전에 대한 시선은 그녀의 재능을 보던 '평범한 시선'과 똑같았다.

    배척.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하늘 밖의 하늘은 유지은에게 있어 아무런 가치가 없다.

    "후배!"

    "네, 선배."

    "비무하자!"

    지금 이렇게, 자신의 세계에 색채가 깃들도록 해 준 '꽃'에 비할 수 없었다.

    카앙-!

    마음껏 내달린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단 한 명.

    도진의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무시무시한,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원하지 않더라도 주변을 밀어내고 마는 폭력적인 재능을 마음껏 해방한다.

    카앙-!

    "많이 느셨네요?"

    허나 그 폭력을 웃으며 받아쳐 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좁히고선 대견하다며 칭찬해 버린다.

    그러면 유지은은 오기가 생겨 더 강하게 재능을 채찍질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도 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단 한 명.

    김도진은 그렇게 내달려도 붙잡혀 주지 않으니까.

    추격하는 자신을 오히려 기꺼워해 주니까.

    그리고 모든 재능을 다 쏟아내고 편하게 대자로 주욱 뻗어서는 생각한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불리하다고 했는데…….'

    비할 데 없는 재능을 다 동원하여 아무리 고민해도.

    이 불리함을 뒤집는 건 힘들 것 같았다.

    * * * *

    유지은도 천외천도, 심지어 도진도 모를 것이었다.

    소천마 김도진이 유지은의 삶을 완전하게 바꾸었다는 것을.

    고독에 매몰되어 버린 냉검후 유지은이 너무나 미미한 온기에 천외천의 손을 잡고 말았던 전생의 일을.

    차라리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였으나 거기에 기대야만 했던 것이 냉검후 유지은의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고독한 삶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내 냉검후 유지은이 무엇을 위하여 검을 휘두르게 되었을지.

    하나 다행이라면, 그 미래가 오기 전 도진이 회귀하였으며 유지은의 세상에 색을 입히는 꽃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다.

    * * * *

    일상이 이어졌다.

    상아탑에서 돌아온 뒤로 평범한 나날의 계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될 수 없음을 도진은 알고 있었다.

    -천외천이라구요.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날 전서린과 단 둘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린다.

    '천외천.'

    세상에 알려진 화경의 고수 일부와 전혀 알려지지 않은 화경의 고수들의 모임.

    본래 너무 강한 말은 어울리지 않는 이가 사용하면 반비례하여 사용자를 우습게 만드는 법이다.

    때문에 그것이 어울리는 이들은 특별하다.

    하늘 밖의 하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이 얼마나 속해 있는지도 모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나지 않은 조직.

    -그들의 경지는 경계를 넘어선 그 순간을 출발점으로 보며 출발점이 아득할 정도의 고수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속세를 떠나 하늘 밖의 하늘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들의 모임. 그것이 천외천이며 그렇기에 속세에 자신들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섣불리 그들을 언급하거나 존재를 알리려 하면 제거당한다.

    -여기에 도달하는 데만 해도 아주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기원을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아주 오래 전부터 그들은 무공에 매진하였으며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하늘 밖의 하늘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무인에게 접촉한다고 합니다. 그러하니.

    '나에게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겠지.'

    전서린이 소천마에게 접근한 '이유 중 하나'였다.

    도진은 일상을 살며 전서린이 말한 천외천의 접근을 기다리기로 했다.

    "특별한 건 아직 없어. 다만 배경석이 삼촌과 연락을 자주한다는 것 정도?"

    "그래."

    배경석의 삼촌은 몇 년 전 초절정에 오른 고수였다.

    다만 그 외엔 전혀, 일절 특별한 부분이 보이지 않는 '평범한 무림인'이라 아직은 주시 단계다.

    그리고 며칠 뒤.

    도진은 또 한 번 비행기를 타게 되었으니 다름 아닌 투마전, 바할라의 일 때문이었다.

    [속보! 바할라의 테러 단체를 소탕하기 위해 소천마가 직접 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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