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73화 (573/741)

572화

도진은 생각했다.

어떻게 쳐야 할까.

펀치 머신을 부수는 건 정말로 아무런 일이 아니었다.

도진에겐 너무나 사소한 일이었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지가 않다.

유진이와 호진이, 그리고 릴리와 윌리엄이 뒤에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일권(一拳)'으로 끝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꽝-!

도진은 강하게 한 발, 진각을 내딛은 것이었고.

"……어?"

-어어?;;;;;;

지켜보던 이들이 두 눈을 크게 뜬 것이었다.

심지어 나름 배포와 배짱이 두둑한 인물인 부스의 주인마저도.

찰나였다.

진각을 내딛음과 동시에 발생한 커다란 힘이 허리와 어깨, 팔로 이어지며 회전에 의한 증폭을 거치고 주먹에 이르러 한 점에 집중되어 펀치 머신을 치기까지.

그리고 그 찰나에 수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떠올린 것은 '대참사'였다.

소천마(小天魔)다.

일반적으로 펀치 머신이라는 건 전력을 다해 후려치는 것인데 그런 전력을 다해 후려치는 행위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천마가 한다고?

그건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라 일자로 연결된 부스를 모조리 쓸어 버리는, 차라리 '파괴 광선'일 것이었다.

그리고 찰나가 끝을 고하고.

퍼억-!

스르르르…….

둔중한 소리와 함께 펀치 머신에 매달려 있던 샌드백이 가루가 되어 바닥에 소복이 쌓였다.

"어?"

"뭐, 뭐지?"

이해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지켜보던 이들의 시선이 도진의 주먹 아래, 내용물은 물론이요 겉을 감쌌던 특수 재질의 질긴 가죽마저 가루가 돼 곱게 쌓인 얕은 둔덕을 응시한다.

부숴진 건 그것뿐이었다.

마치 그들이 상상했던 모든 파괴력이 샌드백에 집중된 듯 완전하게 가루가 되어 쌓인 샌드백.

그리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주인이 하하하 웃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이건 내공을 사용하지 않으신 거네요."

도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내공을 사용하면 대참사였을 테니까요."

"무슨 소리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임. 누가 설명 좀 해주셈;;;

도진이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던 이들이 채팅창과 현실을 가리지 않고 아우성을 쳤고 부스의 주인이 직접 나서서 설명을 해 주었다.

"이 펀치 머신의 샌드백을 만드는 데 쓰이는 건 자극대응형질변화금속 뭐시기, 보통 젤리라 불리는 충전 소재입니다."

통칭 젤리.

무림 업계에 널리 쓰이는 금속으로 평소엔 모래 알갱이 형태인데 이게 '특정 자극'을 받으면 젤리처럼 변해 합쳐진다.

자연스레 충격에 지극히 강해지며 파손을 방지하니 A-3까지의 무림인을 상대로 하는 펀치 머신의 샌드백에 쓰일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특정 자극이 다름 아닌 내공이었다.

"보시면 젤리가 되지 않고 이렇게 입자가 고운 모래처럼 되어 있죠. 이건 소천마께서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펀치를 쓰신 겁니다. 심지어…… 가죽도 모래로 만드셨네요."

-허미 ㅁㅊ 그럼 뭐냐. 저게 내공을 안 쓰고 순수하게 육체 능력으로 한 거라고?

-저거 곰도 찢기 힘들다는 가죽이었던 거 같은데?

-아니 미친 ㅋㅋㅋㅋㅋㅋ

-찢는 게 아니라 아예 가루로 만들었는데?..

-저게 왜 됨? 내공 안썼다매?

-몰?루 진짜 몰?루;;;

웅성임이 커진다.

소란이지만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소천마에 대한 감탄이었고 그랬기에 동생들과 릴리, 윌리엄의 어깨가 올라간다.

"오빠! 어떻게 하신 거예요?"

릴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유진이와 호진이를 포함하여 무림에 뜻을 둔 동생은 없었으나 개중에 릴리는 관심만큼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음, 그래. 가르쳐 줄까?"

"네!"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에 도진의 눈이 흘긋 샌드백을 스쳤다.

그리고 젊은 주인이 그 시선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필요하시다면 하나 더 사용하셔도 됩니다! 아니, 사용해 주세요!"

도진이 스윽 웃었다.

눈치가 빠르다.

그리고 이득을 놓치지 않는 행동력까지.

도진은 호의와 이득을 바라는 감정이 섞인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기로 했다.

"그럼 감사히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여, 여기서?"

사람들이 놀랐다.

사소한 것이라 해도 무공이라 하면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법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천마가 여기서 '무공 강의'를 시작하려 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대번에 휴대폰을 꺼내들어 촬영하기 시작했는데 그것마저 말리지 않음으로써 허락을 해 준 도진이 다른 펀치 머신 앞에 섰다.

"자, 우선은 기본적인 주먹이야."

쿵!

진각을 밟는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라 강력한 힘이 몸에 흐르고 그것을 허리와 어깨, 팔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증폭.

퍽-!

내지른 주먹을 통하여 분출한다.

말 그대로 기본적인 발경(發勁)의 이치가 담긴 주먹이다.

무림인이라 불리는 이라면 누구나 구사할 수 있는 수법.

"우선은 이걸 천자결이라고 하자."

"천자결이요?"

"응."

뚫을 천(穿)자를 써서 천자결(穿字訣)이다.

"주먹을 통해서 발산되는 힘은 대상을 꿰뚫는 형태잖아? 그러니까 천자결이라고 하자는 거야."

보통 그런 식으로 이름 붙이는 건 힘의 흐름, 더 범위를 좁히자면 내공의 결을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지만 지금은 파고들 필요가 없는 일이기에 도진은 간단히 설명하고 넘어갔다.

"샌드백 가운데가 눌려 들어갔지? 원래는 꿰뚫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저런 형태가 된 거야."

"아, 그렇네요."

"그걸 이렇게 바꾼 거야."

도진이 다시 한 번 자세를 잡는다.

일반인만이 아닌 어느새 모여든 제법 무공에 자신있는 이들마저 숨쉬는 것마저 조심하며 시선을 집중했다.

쿵!

진각은 앞서와 다르지 않다.

이어지는,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내뻗어진 경을 실은 주먹 또한 앞서와 같았다.

일부 눈이 좋은 이들은 그 동작의 짐작조차 아득한 완성도에 입을 벌렸고.

"……!"

몰입하였기에 마지막 순간 동작이 달라진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퍽-!

"오."

-어.

-다르네?

도진이 앞서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짚어주었기에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이들도 지금의 주먹이 아까와 다르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주먹에 맞은 샌드백이 아까보다 훨씬 덜 파였다.

대신 파인 범위가 훨씬 넓었으며 거의 완벽한 원을 그렸다.

도진은 모범생의 태도로 자신의 주먹을 집중하여 지켜본 릴리에게 웃어주며 말했다.

"힘을 균등하게 퍼뜨리는 거야. 마지막 순간까지 팔의 회전을 조금 미뤄두었다가 타격점에서 열쇠가 찰칵, 하는 것처럼 동작을 완성하면서 힘의 결을 바꿔서 뚫는 대신 퍼뜨리는 거지."

"그러니까 이건 파자결(波字訣)이라 할 수 있지. 알 것 같아?"

"음…… 네. 원리는요."

"똑똑하네. 직접 해볼래?"

"으음. 그건 바로는 어려울 거 같아요."

"도와줄 테니까 해 봐. 이런 건 직접 해보는 게 빠르거든."

"네."

"좋아. 자세 잡아 봐."

릴리가 도진의 말에 펀치 머신 앞에 서서 주먹을 내지르기 위한 자세를 잡는다.

스윽-

그리고 도진이 바로 그 뒤에 붙어서 세밀하게 자세를 조정해 주었다.

"응. 잘 배웠네. 자세는 합격점이야."

"……."

릴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깨에 올려진 손.

순수하게 자세를 교정해주는, 그러나 단단하면서도 자상한 손이 릴리의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그리고 곁에서 느껴지는 낯설면서도 두근거리게 만드는 향기와 숨결까지.

쿵!

"오, 좋아."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강하게 내딛는 진각을 도진이 칭찬해 준다.

"응, 그래. 여기. 여기가 중요해. 보통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올바른 자세로 주먹을 내뻗게 되지. 여길 의식해서 기세를 죽이지 않으면서도 폭발을 늦추고 쿵, 철컥. 어때?"

"으응……. 어려운 거 같아요."

팔을 감싸는 커다란 손에 더 의식해 버렸다…….

릴리는 모범생답지 않은 태도라 생각했지만 바로 이어서 이번은 불가항력이라 스스로를 변호하며 혹여 도진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질문을 던졌다.

"이, 이거. 얼마나 연습하면 오빠처럼 할 수 있어요?"

도진이 자상하게 웃으며 답해준다.

"일단 얼마나 단련을 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한데, 순수하게 몸의 힘만으로 해내는 거나 내공을 접목해서 하는 거나 비슷하게 걸리지 않을까 싶어."

"어? 정말요?"

릴리는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소천마를 아는 이들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ㅋㅋㅋㅋ 소천마 몸 봤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음 ㅋㅋㅋ

-ㄹㅇㅋㅋㅋ 저 몸 만들 세월이면 내공을 반갑자는 쌓을듯 ㅋㅋㅋ

보편적으로 내공의 운용에 관한 수련이 육체 단련보다 훨씬 어렵다고 하지만 그것도 소천마의 몸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원리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으니까 반복 숙달을 통해서 누구든,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거야. 어디까지나 한 번 한 번을 정성을 다해서 고민하면서 내질러야 하기는 하는데……."

여기서 슬쩍 한 번 고민을 한 도진이 말했다.

"한 오만 번 정도만 하면 감이 잡히지 않을까?"

"?"

"??"

-..................................???

* * * *

[소천마가 펀치 머신 가루로 만드는 영상]

[소천마가 편치 머신 가루로 만드는 법 강의해주는 영상]

두 영상의 조회수는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기세로 치솟았고 인터넷을 휩쓸었다.

-소천마가 펀치 머신을 친다고?

-소천마가 펀치 머신을 가루로 만들었다는 제목을 시발 어떻게 클릭 안하냐 치트키 존나 쓰네;;

펀치 머신을 소천마가 쳤다는 것만으로도 치트키인데 심지어 그 수법을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영상까지 세트로 나왔으니 세계적으로 핫이슈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으니.

-미쳤다. 나 설래서 잠 못잠.

-후작 영애에게 밀착해서 자상하게 주먹질을 가르쳐주는 소천마.avi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릴리의 자세를 교정하고 가르쳐주는 모습 그 자체에 소위 말하는 '덕통사고'를 당한 무공 자체엔 관심이 없는 이들.

-그러니까 저걸 5만번 정도만 연습하면 소천마처럼 할 수 있다는 거지?

-한 번 한 번에 진심을 다해서 내지르면서 단련은 별도임 ㅋㅋㅋ

-5만번은 저기 릴리 후작 영애 기준 아님? 우리는 10만번 해야 할듯.

-10만번이라니 너 원래 좀 치는 애냐?

그리고 누구나 연습하면 소천마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 집중한 이들이다.

여기서 심화하여 진지하게 이어지는 토론도 있었는데.

-이거 어떻게 보면 비기(秘技) 아님? 이걸 이렇게 쉽게 알려준다고? 이상한데?

-그러게;; 진짜 되는 거 맞음?;;

-놀랍게도 진짜 됨. 사실 원리 자체는 비기라고 할 것까지도 없음. 초절정 정도 되면 연습 좀만 하면 가능한 일임.

-아니 시발아 초절정 '정도'라니 ㅋㅋㅋㅋㅋㅋㅋ

-? 천마신교 기준으로 하면 '정도' 맞음.

-..그렇네?

-파워인플레 십ㅈ라;;;

소천마가 도대체 왜 이렇게 친절하게, 심지어 촬영마저 허용하였나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래서, 정답은?"

그 화제에 대해 서류를 건네며 묻는 나지윤에게 도진이 스윽 웃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실제로 하는 사람은 드무니까."

간단한 이야기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하루 세 끼 건강식을 적당량 먹으며 열심히 운동하면 좋은 몸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알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말로 하는, 그것도 꾸준하게 하는 사람은 드문 법이다.

그러니까 말해주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오만 번이 아니라 십만 번, 백만 번을 하여 미래에 권왕(拳王)이 탄생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도진은 오히려 박수를 쳐 줄 것이었다.

나지윤이 도진과 비슷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저번 존 스미스와 얽혀 있던 뒷골목 상인들의 리스트야. 잔챙이들까지 다 정리해 뒀어."

"그래. 고마워."

존 스미스와 얽혀 있던 뒷골목 상인들.

장기밀매와 마약 등등을 취급했던 범죄자들이다.

잔챙이라면 잔챙이지만, 그 수많은 잔챙이 안에 무형독이 침투해 있을 확률이 얼마든지 있었기에 은밀히 파악하여 리스트로 만들었다.

나지윤이 가고 홀로 남은 도진이 리스트를 훑었다.

그리고.

스으으…….

옅게 웃고 있던 도진의 얼굴에 평소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차가운 온도의 서리가 내렸다.

[배경석]

한국인의 이름이다.

몇 명이나 더 있었으니 한국인이라는 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은.

'사장.'

그 이름이, 도진의 전생에 일했던 공장의 대표와 같은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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