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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72화 (572/741)
  • 571화

    5년만에 돌아온 세계 무림대회도 종반에 접어들었다.

    본래 수많은 기삿거리와 여러 이슈를 낳곤 했던 세계 비무대회는 올해 특히나 많은 관심을 받았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으니 천마신교의 존재가 그렇게 만들었다.

    자연스레, 세계 무림대회의 중심은 천마신교가 되었으며 가장 크게 이득을 본 것도 천마신교라는 평이 주류였다.

    가장 먼저 말할 수 있는 건 암묵적이었던 천마신교가 대문파라는 부분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거다.

    천마신교를 견제하던 몇몇 대문파.

    그 대문파들을 상상의 영역에 있던 '허공답보'를 보여주며 소천마가 물러나게 만들었으니 과연 홀로 정파를 상대할 수 있다 평가받던 천마신교의 명성을 허구에서 사실로 가져온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특기해야 할 만한 것이라면 '마교(魔敎)'에 대한 이미지를 씻어냈다는 부분이다.

    객관적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도진은 물론이요 도진의 주변은 천마신교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천마신교는 '마교'이며 마교에는 부정적인 인식이 짙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천마신교를 마교라 생각하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부분이 구진청과의 일로 아주 많이 해소되었다.

    -말로만 정파인 척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천마신교가 더 낫지.

    -막가파인 줄 알았는데 그날 이야기 들어보니까 전혀 아니더라. 오히려 저게 그 중요하다는 도(道) 아닌가?

    대문파로 인정받았으며 그 성향이 결코 악(惡)이 아니라는 신뢰를 얻었다.

    이 두가지를 갖춤으로써 천마신교는 진정한 무림의 한 축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 것이다.

    그 천마신교를 구성하는 이들에 대한 인식도 더할 나위 없다.

    정점에 있는 소천마 김도진.

    -그런데 진짜 김도진은 얼마나 센 거임? 의천검가 발라버린 것만 봐도 걍 천하제일인 아님?

    -에바라고 하고 싶은데 그 말이 쉽게 안 나오는 게 얼탱이 없는 부분;;

    -ㄹㅇㅋㅋ 아 ㅋㅋ 천마군림보에 허공답보까지 보여줬자너.

    -말 그대로 그냥 '천마' 같음. 정마대전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전력 볼 일이 있긴 할까?

    도진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런 정도로까지 뻗어 있었다.

    나이는 이미 의미가 없었고 천마로서 과연 그 전력이 어느 정도나 될까가 장작이 될 만큼.

    그 아래 독마전의 위취련이나 바할라의 왕세자인 슈미트라에 관해서도 의심 대신 얼마나 강할까에 관한 의문만이 있었다.

    천마신교의 막내들만 해도 상승 무공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성민혁이 투지를 보여 주며 세계의 후기지수들 사이에서 8강에 올랐고 성지인은 아예 압도적으로 우승을 함으로써 그 수준을 증명했다.

    서소담은 어떤가.

    어른들을 기다리느라 아직 암산서가의 가주 대리로 남아 있으나 그들이 천마신교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안다.

    그런 서소담의 경지가, 무려 초절정이었다.

    일반부 비무대회의 결승에서 초절정에 이른 실력을 서소담은 전서린을 상대로 유감없이 발휘하며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 저 나이에 초절정?

    -소천마가 화경인데 초절정이 뭐가 신기함?

    -아니싯팔 그렇게 들으니 그렇긴 한데 이게 맞음?

    -점심나가서먹을거같애. 초절정이 이런 식으로 쉽게 언급된다고?

    -아니 ㅋㅋㅋ 미친 새끼들아 초절정이면 중견 문파 장로급이에요 ㅋㅋㅋㅋ

    -천마신교 진짜 미쳤네 ㅋㅋㅋ 아니 무림 혼자 다 해먹음?

    -이것이.. 파워인플레란 것인가...

    소담은 비봉이라 불리긴 했으나 무언가 확실한 걸 보여준 건 없다는 평가를 단번에 뒤집고 자신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온 건 역시 새로운 별호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뭐라고 해야 되지?

    -폭선녀?

    -우웁씹 존나 구리네;

    "폭선녀래."

    "절대 안 돼."

    장난스레 댓글을 읽어주니 소담이 드물게도 진지한 얼굴로 거부했고 도진이 푸하하 웃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게 별호가 될 리는 없다.

    대꾸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센스없는 댓글이었기에 답글도 하나밖에 없었고 말이다.

    뭐, 그런 느낌으로.

    천마신교는 이번 세계 무림대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문파였고 또 한 번 그것을 보여주는 일이 있었으니.

    "오빠!"

    "안녕하세요."

    "어서 와, 릴리. 윌리엄."

    웨일스 후작가에서 천마신교를 찾아 서울 대연무장에 방문한 것이었다.

    확장한 사업으로 바쁜 웨일스 후작 본인은 오지 못했으나 후작 부인이 아들과 딸을 데리고 왔으니 그녀와 부쩍 큰 남매를 도진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조금 못 본 사이에 정말 많이 컸네."

    "엣헴. 이젠 숙녀거든요?"

    "그러게. 이제는 에스코트를 해 줘야겠는걸?"

    "헤헤."

    농담이 아니라 릴리는 정말 아가씨라 불러야 할 정도로, 유진이 못지 않게 몰라볼 정도로 부쩍 컸다.

    하긴 유진이와 동갑인 릴리는 서양인이기도 했으며 무공까지 익히고 있으니 이 시기에 '폭풍 성장'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핑크색을 베이스로 하여 장식과 패턴으로 특별함을 더한 외출용 드레스를 입은 아름답고 기품이 어리기 시작한 모습은 이 현대에서도 절로 '후작 영애'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곁에 선 윌리엄 또한 나이보다 성숙한 외모의 미청년이 되었다.

    성숙한 외모와 달리 나이에 걸맞는 표정과 분위기가 지켜보던 소녀들의 심장을 폭격한다.

    자신을 잘 따르는 남매와 인사를 나누고 도진이 후작 부인, 정여원과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눴다.

    한국인이지만 갈색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지닌 그녀는 본래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오늘 보니 혈색이 좋은 것이 거의 다 회복이 된 듯 보였다.

    "아이들이 하도 성화라 외가에 인사만 드리고 바로 이렇게 오게 됐네요."

    "그러셨군요."

    "저는 다시 외가에 돌아가 볼까 하는데, 아이들을 맡겨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맡겨주신다면 여기 레이디를 빈틈없이 에스코트하도록 하겠습니다."

    장난스레 말하니 릴리가 조금은 볼이 붉어진 채 웃었고 정여원도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후작 부인이 떠나고 도진은 유진이와 호진이에게 연락을 넣어 함께 무림대회의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돌아다니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 자체가, 천마신교의 교주 소천마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와.. 웨일스 후작가 자제들이 저렇게 소천마를 잘 따른다고?;;

    -릴리 에디나 웨일스하면 사교계의 얼음공주 아니었음?

    -아니 얼음공주까진 아닌데 눈에 안 차면 대화도 제대로 안해줌;;

    -?구라 아님? 저거 보면 구라 같은데 ㅋㅋㅋ

    활짝 웃으며 도진과 팔짱을 끼고 걷는 릴리의 모습이 '사교계의 얼음공주'에 관한 소문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지만.

    -눈에 안차면=소천마는 눈에 참

    -아.

    -아.

    -바로 그거였넼ㅋㅋㅋㅋㅋㅋ

    -아 ㅋㅋㅋ 소천마를 기준으로 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ㅋㅋㅋㅋㅋ

    -아니 눈 너무 높은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

    웨일스 후작은 영국의 명문가이며 정계와 재계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연히 그 후계자가 될 릴리와 윌리엄은 사교계의 중심이었고 혹여 외출할 때는 엄중한 신변 보호가 뒤따랐다.

    한데 그런 릴리와 윌리엄의 안전을 후작 부인이 소천마에게 부탁하고 남매는 소천마를 잘 따르니 평화로운 그 광경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릴리는 동갑인 유진이와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고 조금 무뚝뚝해진 호진이와 내성적인 윌리엄은 누나들에게 이끌려 이것저것을 체험한다.

    덤으로 짐꾼 역할도 하면서.

    "공부해야 되는데……."

    "너 그러다 오타쿠된다."

    "오타쿠는 그런 데 쓰는 단어 아니야."

    도진은 그런 동생들을 곁에서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며 함께 했고.

    "아! 저거 해 보고 싶어요!"

    릴리가 눈을 반짝이며 가리킨 펀치 머신을 내세운 부스에 들르게 되었다.

    펀치 머신.

    오락실이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펀치력을 측정하는 기계.

    허나 이곳 무림대회 부스에 놓인 물건은 조금 디자인이 달랐다.

    충격을 분산할 수 있도록 아랫 부분이 넓게, 그러나 단단히 지면과 맞닿아 있었으며 그 위에 샌드백을 고정한 디자인이다.

    1차적으로 충격 흡수재로 가득 찬 샌드백이 충격을 흡수하여 퍼뜨리고 다 소화하지 못한 건 샌드백 안에 깊이 박혀 있는 특수한 재질의 지지대를 통하여 아래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어서옵쇼! 귀한 분들이 오셨군요."

    지금까지는 소천마와 웨일스 후작가의 이름에 버벅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부스를 운영하는 제법 젊은 남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던지 웃으며 넉살 좋게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나, 저거 따고 싶어요!"

    환영하는 주인의 뒤로 릴리가 손을 뻗었는데 거기엔 곰 인형이 있었다.

    흔히 놀이동산에 가면 사격 등의 경품으로 준비된 커다란, 그 외에는 특색없는 인형들과는 좀 달랐으니 양손으로 트로피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형의 디자인도 제법 괜찮았는데 특히나 인형이 들고 있는 '엄지척' 모양의 트로피가 릴리의 마음에 쏙 들었던 듯 했다.

    "900점을 넘기면 저기 백금 트로피 인형을 드립니다. 도금이지만요."

    참가비가 1회 5000원인 작은 부스에서 경품에 사용된 트로피가 진짜 백금일 리는 없다.

    도금도 그럴싸한 코팅이었지만, 그걸 다 알면서도 릴리는 트로피를 든 곰 인형을 갖고 싶어 했고 주인의 설명을 들었다.

    "참가는 A-3 이하만 가능하고 기회는 단 한 번이니 신중하게 하셔야 합니다."

    "네!"

    A-3는 그러니까 일류의 경지다.

    내공을 운용함으로써 운동 능력을 높이고 기세에 물리력을 실을 수 있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절정에 이르면 자유자재로 내공을 물리력으로 치환하여 행사할 수 있으니 여기서부턴 본격적으로 초인의 영역이다.

    당연히 절정 이상의 무인을 대상으로 하는 펀치 머신은 놀이에 사용될 물건이 아니었으니 A-3의 제한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룰이었다.

    덤으로, 사실 이곳은 무림인보단 무공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부스였으니 900점이 나오는 건 지극히 드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웨일스 후작가가 무가(武家)는 아니었기에 릴리는 A-3의 조건을 충족하였고 상품을 타기 위해 직접 나섰다.

    구두를 운동화로 갈아 신고 숄을 윌리엄에게 맡긴 뒤 펀치 머신 앞에서 주먹을 꾸욱 쥔다.

    '흐음.'

    자세가 나쁘지 않다.

    진각을 통하여 발생한 힘을 허리에서 팔까지 회전으로 증폭하여 전달, 주먹에서 폭발시킨다.

    퍼어억-!!

    그러나 안타깝게도 900점은 일류의 무인이 정말로, 제대로, 인생의 한 발을 갈겨야 나올 영역이었기에 릴리는 730점에 그치고 말았다.

    "우우……."

    한 번 더 도전해 보았으나 716점.

    릴리는 볼을 부풀리며 뿌우, 도진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음. 내가 하는 건 반칙인데……."

    도진이 웃으며 그 불만이자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그리고 부스의 주인이 말했다.

    "가끔씩은 반칙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네?"

    "소천마께서 저희 펀치 머신을 쳐 주신다면 그것 또한 영광 아니겠습니까. 한 번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오."

    "오오……."

    몰려들었던 구경꾼들이 도진보다 앞서 웅성거리며 눈을 반짝인다.

    무려 소천마의 펀치 머신 타격이라니.

    -아 ㅋㅋ 이건 변비 10일차라도 신호 무시하고 지켜볼 만하다 ㅋㅋㅋ

    -교통사고 당했어도 이건 보고 실려가야 됨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도진도 스윽 웃었다.

    주인장의 의도가 보였다.

    도진이 '적당히' 쳐서 900점을 넘기는 것보다 아예 부숴주길 원한다.

    그날로 펀치 머신의 수명은 다하겠지만 그것은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그는 제법 크게, 프랜차이즈로 장사를 하는 사람이고 상품이 펀치 머신 등이었다.

    그러니까 '소천마가 호쾌하게 부순 펀치 머신'은 그 자체로 엄청난 광고가 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광고를 하고 싶은데 한 번 쳐 주시지 않겠습니까, 였고 도진은 그 제안을 기분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진이와 호진이. 그리고 릴리와 윌리엄 앞에서 한 번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흐음. 그럼 우리 릴리 아가씨를 위해서 한 번 힘 좀 써볼까?"

    "네!"

    기대 어린 시선을 등 뒤에 두고 도진이 펀치 머신 앞에 섰다.

    그리고 소천마의 주먹이, 펀치 머신을 향해 장전되었다.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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