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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71화 (571/741)
  • 570화

    사자군(獅子君) 오군성.

    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인물이었다.

    심지어 대통령을 포함하더라도 말이다.

    무림에서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 그 이름을 새긴 경계를 넘어선 무림 르네상스 시대 1세대의 고수요 재계에서는 대한민국 서열 5위, 아니 얼마 전 발표에서 두 계단 뛰어 3위로 올라선 재계 서열 3위의 대기업 오성의 창업자이자 회장이었으니까.

    그런 오군성과 도진은 제법 인연이 깊었다.

    오대용과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내기를 하기도 했으며 오성과 동등한 계약 관계로 지내기도 했다.

    그뿐인가.

    아예 오성아에 이르러선 '손녀를 채간 도둑놈'이다.

    뭐, 오군성이 손녀 바보는 전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렇게 보면 도진과 오군성의 사이가 보통이 아니긴 하지만…… 정작 그 관계의 깊이가 깊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한 다리 건너는 형태로 엮인 것이지 직접적으로 강하게 엮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진은 오군성의 의도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오군성 회장님이 직접 너한테 여기로 가라고 하셨다고?"

    "어."

    "왜?"

    모를 땐 일단 물어보는 게 좋다.

    도진의 물음에 오대용은 생각을 정리하는 얼굴로 말했다.

    "사실은 요즘 할아버지께서 몇몇 업무를 완전히 맡기기 시작하셨어."

    "흐음."

    이건 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이야기였다.

    사자군 오군성은 절대 군주였다.

    그룹의 모든 것을 완전히 꿰뚫고 있으며 업무를 능력있는 이에게 맡기긴 해도 결코 손에서 놓지는 않았던 그야말로 초인.

    가능하기만 했다면 모든 일을 전부 다 직접 했을 사람이다.

    한데 그런 사람이 업무를 완전히 맡기기 시작했다고?

    "아버지에게도, 어머니에게도, 형이랑 누나에게도 조금씩 말이야. 그리고 나한테도 이렇게 무림대회 쪽의 일이 넘어온 거지."

    슬슬 정말로 후계자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인 걸까.

    스스로 떠올린 생각을 도진은 대번에 부정했다.

    이제 70이 가까운 나이가 된 오군성이고 나이가 제법 먹은 외견을 하고 있지만 그건 오군성이 무림 르네상스 초기에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부터 고생을 하여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게 됐지만 오히려 50대 이후 경계를 넘어서면서 사실상 인생의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그런 시기에 있는 오군성이 후계를 생각한다고?

    불치병이라도 앓고 있는 게 아닌 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다.

    "그리고 요즘 할아버지의 출장이 잦으셔. 뭘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신경을 쓰시는 거 같아."

    "그래, 그렇구나."

    단서가 제법 나오긴 했는데 그것을 엮어 올바른 답을 도출해내기엔 힘들었다.

    오군성은 본래 인재 욕심이 있었고 도진에게 관심을 두었다.

    그러니까 여러 번 엮이긴 했지만 이제와서 또 그런 의도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오성아의 일로 손을 섞은 날 이후, 그리고 이제 경계를 넘어선 고수가 된 도진을 상대로라면 오군성은 '인재 욕심'보다는 '무인으로서의 호승심'을 느낄 사람일 테니까.

    결국 도진은 피식 웃었다.

    "뭐,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긴 하네. 밥이나 같이 먹자."

    "좋지. 소담이도 같이 가나?"

    "아니. 안타깝게도 우리끼리 가야 할 거 같네, 지금은."

    "아, 비무 때문에?"

    "어."

    * * * *

    대문파의 후기지수들이 포함된 비무대회의 본선.

    청년부는 성지인의 우승으로 끝이 났고 이제 일반부의 결승이 남았다.

    그리고 일반부의 결승 대진은.

    -비무대회 결승 라인업 실화냐? 비봉 vs 적련화 가슴이 웅장해진다..

    -아 ㅋㅋㅋ 치킨 배달 예상 시간 120분 실화냐 미친 ㅋㅋㅋㅋ

    -90분이 설정 최대 아님?

    -따로 문자옴 ㅋㅋ 최소 두 시간 기다릴 거 아니면 취소하래.

    -엌ㅋㅋㅋㅋㅋ

    -나는 그럴 줄 알고 에어프라이어 돌리면 되는 거 사놨지.

    무려 비봉 서소담과 적련화 전서린으로 결정이 났다.

    본래 일반부의 참가자 중에 비봉 서소담이 없었으니 이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었는데, 선효문의 구진청이 기권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도진의 말에 큰 고뇌에 짓눌리던 구진청은 하루를 통째로 두문불출하다 불쑥 찾아와 물었다.

    -소천마 님. 제가 국대만을 벌하는 건 잘못된 일인 걸까요?

    어려운 문제에 도진은 차근차근 말했다.

    -만약 그게 당시의 일이었다면, 설령 시간이 지났다 해도 국대만 님이 개심하지 않았다면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렇네요. 저는 아쉬운 일이라고 하고 싶네요.

    -어째서입니까?

    -살아 있어 세상의 여러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종자라면 죽어 없어지는 게 이로운 일일 겁니다. 가해자를 위하는 인권 운운하는 소리는 구진청 님도 곱게 들리지 않는 사람이시겠죠.

    -……예.

    당사자도 아니면서 제멋대로 가해자를 두둔하고 용서하려 드는 역겨운 자들.

    도진과 구진청은 그 부분에 있어 공감할 수 있었고 그것이 구진청이 도진의 말을 흘려듣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과거의 국대만 님은 그런 부류에 같이 묶인다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국대만 님은 여러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는 게 아니라 반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는 분이 되셨으니까요.

    구진청이 무언가 잡힐 듯 말 듯한 얼굴이 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 아니라 이로운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것이 위선이 아니니까.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선을 넘지는 않았으니까.

    -저는 구진청 님이 지금의 국대만 님을 보고 과거의 국대만 님을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삼자인 저의 의견이고 당사자의 의견과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겠죠. 이 부분은, 구진청 님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셔서 스스로 결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 대화 후 구진청은 8강을 앞두고 비무대회를 기권하였다.

    그로 인해 갑작스레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이 자리를 도의상 우리가 메꾸겠다고 도진이 말했고.

    "내가 대신 나갈게!"

    "고마워."

    이런저런 절차와 이야기를 거쳐 비봉 서소담이 암산서가의 가주 대리 자격으로 자리를 메꾸게 된 것이다.

    나이로만 따지면 도진이 '땜빵'으로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소천마가 스물에서 서른 다섯 사이의 무인들이 경쟁하는 비무대회에 참여하는 건 유치원 태권도 경기에 격투기 챔피언이 참가하는 것보다 더한 일이었으니 이렇게 됐다.

    -와! 비봉!

    -이건 좀 기대되는데 ㅋㅋㅋ

    기실 비봉 서소담은 후기지수로 큰 주목을 받았으나 그 이후 이렇다 할 '임팩트'를 남기진 못했다.

    그랬던 것이 5년만에 돌아온 세계 비무대회에서 대문파의 후기지수들을 상대로 자신을 증명하게 됐으니 사람들이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소담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대문파의 후기지수들을 꺾고 화제의 신진 고수 적련화와 결승에서 마주섰다.

    '강해.'

    무대 위에서 전서린을 마주한 소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껏 전서린이 보여준 그 대단한 모습들이 사실은 빙산의 일각이란 걸.

    그녀는 보여준 것보다 보여주지 않은 것이 더 많은 높은 경지의 무인이었다.

    당장 1년 전의 자신이었다면 한 수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만큼의.

    꾸욱-

    하지만 지금의 소담은 아니었다.

    과거 관성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때와 달리.

    도진의 곁에 서기 위해 스스로가 원하여, 원하는 것을 붙잡기 위하여 달려왔고 소중한 이의 마음도 받았다.

    두근-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시작!' 심판을 맡은 무인이 소리 높여 비무의 시작을 외쳤다.

    두근두근-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주고 싶다.

    소담은 그런 마음으로 크게 뛰는 심장을 다스리며, 심장보다 더 크게 뛰는 심상을 담아 내공을 일으켰다.

    우르릉-!

    진천공(震天功).

    하늘을 떨쳐 울리기 위한 기원이 깃든 무공이 소담의 몸을 휘돌고 내뻗은 유려한 검의 궤적에 거력(巨力)이 더해졌다.

    꽈아앙-!!

    눈 깜짝할 사이에 소담과 전서린이 격돌하고 폭음이 터졌다.

    와아아아아-!!

    한 박자 늦게 함성이 뒤따라 터지고 두 사람이 마치 춤을 추듯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연속해서 격돌한다.

    꽈과과과과광-!!

    마치 선녀가 둘이 무대 위에 노니는 듯한 광경이었으나 그 유려한 궤적이 짧은 순간에 몇 번이고 스칠 때마다 굉음이 터져 나와 비현실적이다.

    진천공은 패도(覇道)의 이치가 깃든 무공이었다.

    그 강렬한 마음을 실체화하여 하늘을 뒤흔들 수 있도록 익힌 이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천마신교 교도들의 수많은 염원과 세월이 쌓이며 발전해 온 무공이 단순히 그에 그칠 리는 없으니 수많은 이치가 깃든 초식이 있고 기존에 익힌 무공이 있다면 그것과도 충돌하지 않고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여백'도 두었다.

    그래서 진천공을 익힌 소담은 특유의 선녀와 같은 움직임에 진천공의 패력(覇力)을 더할 수 있게 됐다.

    과거 도진과의 숭무고 입학 시험에서 보여 주었던 '선로(仙路)'.

    내공이 깃든 기세는 수많은 가상의 검로를 그리고 그것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진 이에게 위력이 배가되는 환검(幻劍)이다.

    그 환검에 실체가 깃들었다.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이기에 환검이었는데, 이제 모든 가능성이 실재가 되어 상대를 덮친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기에 무공이요 신비가 깃든 진무(眞武)인 것이다.

    웬만한 이는 그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압도되어 움직일 수조차 없다.

    허나 그에 맞서는 전서린 또한 신비가 깃든 무공을 구사하는 초절정 이상의 고수였다.

    무용(舞龍).

    용이 춤을 추듯 신비로운 궤적을 그리는 검은 그러나 동시에 용의 움직임이기에 그 모든 궤적에 거력(巨力)이 깃든다.

    그러니까 두 아름다운 궤적이 겹치는 순간에는 어마어마한 폭음이 터지며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기세가 퍼지는 것이다.

    꽈과과과광-!!

    -와..

    -와..

    -와..

    온라인 중계 채널의 채팅이 느려지고 현장 또한 관객들이 집중하여 침묵한다.

    그리고 도진은 그 비무를 흐뭇한 가운데 객관적으로 읽고 있었다.

    이대로는 소담이 이길 것이다.

    일견 대등해 보이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소담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진천공이 더해진 소담의 무공이 전서린의 무용공에게 우세를 점한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승기가 기울 것이었다.

    허나 도진은 소담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더 깊은 곳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무용공이 끝이 아니잖아요.'

    무공을 일절 쓰지 않고 꼭꼭 감추고 있었기에 도진은 첫 만남에서 전서린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무공을 사용하기만 한다면.

    틈이 있기만 하다면 도진은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서린은 진신 무공을 숨기고 있었다.

    무용공이 그녀의 끝이 아니었던 거다.

    흔히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디서나 맞는 말은 아니다.

    실력이 있을수록 더 좋은 장비를 잘 쓸 수 있는 것이고 더 대단한 결과를 낼 수 있다.

    무용공을 쓰는 지금은 전서린이 소담에게 밀리지만, 진신 무공을 드러내면 상황은 대번에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도진은 전서린이 판을 뒤집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보인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고.

    "졌습니다."

    "우승, 서소담!"

    전서린은 진신 무공을 드러내는 대신 깨끗하게 패배를 선언하였다.

    '흐음.'

    그리고 도진은 그런 그녀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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