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황룡무상신공(黃龍無上神功).
도진이 스승들이 준비한 특훈에서 보았던 무공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고대 무림 시대 황실의 공주가 사용했던 신공.
바로 그 황실 무공의 흔적이 하오문의 전서린에게서 보이고 있었으니 결코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황룡무상신공은 아니야.'
온전한 황룡무상신공은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어디까지나 그 흔적이 보인 것이지 전서린이 구사하는 무공은 결코 황룡무상신공에 댈 수준이 아니었다.
그 무공으로 화산파의 3대 제자, 20대 후반의 그 나라 무림 상위 10%에는 너끈히 들어갈 경지의 무인을 압도하고 있지만 반절 이상은 순수하게 무인으로서의 격차 때문이다.
허나 그렇다 해도 사안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는다.
무려 고대 무림 시대에서 지금까지다.
그 시대가 정확히 언제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할 만큼의 '단절'이 사이에 놓여 있었으니 온전한 무공이 전해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 않겠는가.
그 강대했던, 고대 무림에서 그 어떤 세력도 대지 못할 천마신교마저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기적이 겹쳐 도진이 위지혁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누구도 천마신교를 실존했다 말하지 못한 채 허구로 남았을 것이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소림사, 청성파, 화산파, 무당파 또한 어디까지나 그 편린을 이었을 뿐이고 불완전한 것을 천재들이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세대에 걸쳐 복원하거나 개량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러니까 전서린이 구사하는 무공에서 보이는 황룡무상신공의 편린은 크다.
어마어마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무공의 전수가 완벽하지 못하여 쇠퇴하고 또 쇠퇴하고 그 역사마저 잊힌 결과가 저것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런 도진의 생각을 읽고 있는 위지혁이 말했다.
-저 아이가 익힌 것은 황실 무고의 무공이다.
-황실 무고라고 하시면.
-그래. 무림에서 실전된, 전설로만 남은 무공들마저 잠들어 있다 여겨지던 무고다.
-허나 저건 그런 수준의 무공은 아니다. 무용공(舞龍功)이라 이름 붙은 무공으로 탄탄하고 깊이가 있으나 상승 무공은 아니지.
-스승님께선 황실의 무고에도 들어가 보셨던 겁니까?
도진이 물었다.
전서린이 구사하는 무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어디에 있던 것인지까지 알고 있다.
그것은 즉 위지혁이 황실의 무고에 들어가 봤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
황실과 천마신교는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었을 텐데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황실 서고에 천마가 들어갔었던 것인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위지혁은 공기 반의 웃음을 흘리며 아니라고 답해 주었다.
-무용공은 황룡무상신공의 탄생에 참고가 된 무공이다. 때문에 황룡무상신공에 입문하기 전 황족이 기초를 다지기 위해 익히는 무공이 되었지. 취아에게 들어서 알게 된 것이고 황실의 무고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만약 거기에 들어갔으면 전쟁이 났을 거다, 라고.
위지혁은 장난스레 말했다.
-그랬군요.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의문이 해소되었다.
허나 여전히 몇 가지 의문은 남는다.
어찌되었든 황실의 무공이다. 그런 무공이 어째서 하오문 문주 후보인, 숭무지부주 전서린에게서 펼쳐지고 있는가.
그리고 '왜' 천마신교에 접근하였는가.
전서린은 아름다운 외모에 사람을 압도하는 기품마저 어려 있다.
중요한 건 그 아름다운 외모가 이질적이라는 부분이다.
한국인이라기보단 동양인이고 그러면서도 서구적인 면이 있다.
동양인 같긴 한데 국적이 모호했던 외모를 가졌던 무형독의 몇몇이 떠오르게 한다.
다만 도진의 감이 그녀가 무형독은 아닐 거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니까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다.
화산파가 프랑스의 뷔뜨-쇼몽구에 있고 장문인이 푸른 눈에 금발인 것처럼 황실의 무공 또한 일부가 우연히 하오문에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뭐, 지금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지.'
도진은 전서린이 화산파 3대 제자를 이기고 결승 진출을 확정짓는 것과 동시에 고민을 차곡차곡 접어 구석으로 밀어 두었다.
길을 모를 때엔, 잃어 버렸을 때엔 제자리에 있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했던가.
단서가 부족한 상황에서 추론이 비대해지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가 있다.
지금은 이 정도로 하고, 길을 찾는 건 그것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에게 맡기면 된다.
오성아나 한유아, 나지윤 같은 인재에게 말이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어르신."
"예. 또 뵙겠습니다."
* * * *
현대의 무림은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꾸준히 우상향을 하고 있지만 그 그늘에 양극화가 대두되고 있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무림 르네상스 이후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지금도 꾸준히 평균 수준이 높아지는 중이다.
허나 '꾸준히 나아간다'는 것은 꾸준히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의 도태를 가져온다.
반대로 평균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이들 또한 있으니 크나큰 격차를 만들고 그것이 양극화를 낳는 것이다.
중소문파의 무인들이 대문파의 무인들과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배경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예외'가 되는, 그러면서도 하오문 출신의 아름다운 신비 미녀 고수 전서린의 등장에 사람들은 열광했던 것이다.
그리고 천마신교의 성민혁에도 열광해 주었다.
"허억. 허억."
"……."
성민혁은 본선의 8강에서 졌다.
무당파의 4대 제자, 동갑의 무인에게 진 것이다.
허나 패배한 성민혁이 우뚝 서서 등으로 숨을 몰아쉬면서도 무너지지 않은 것과 달리 무당파의 제자는 완전히 질려서, 심지어 공포감을 내비치면서 검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승패가 반대로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와.....
-솔직히 조금 울었다.
-이게 엑소시아 후보생이자 천마신교의 막내인가..
학교 폭력의 피해자에서 바할라 황실 직속 엑소시아 후보생으로.
성민혁은 그 성공에 질투하던 이들마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투지를 보여 주었다.
성민혁이 본격적으로 무공에 입문한 건 채 3년도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무당파의 4대 제자는 무당파에 입문하여 무공을 배운 세월이 10년을 넘었으니 그 격차는 제아무리 성민혁이 투마전의 수련법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하였어도 메꾸기 힘들었던 것이다.
성민혁에게 재능이 있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무당파의 제자에게도 재능이 있었으니 더더욱.
허나 성민혁은 그 격차를 투지로, 우직함으로 메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무공에서 앞섰음에도 기세에서 밀린 무당파 4대 제자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고서야 승리를 내주었다.
무당파의 제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괴물, 같은, 새끼…….'
솔직히 얕보았다.
천마신교라 해도 상승 무공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놈 따위는 다섯 수도 쓰기 전에 압도하여 승리하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했는데.
그 어떤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 아니 반 걸음, 몇 밀리라도 거리를 좁히기 위해 접근하는 모습에 그는 이겼음에도 마음이 꺾이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 성민혁의 목에 검을 대지 못했다면 그의 패배였을 것이다.
결국 무당파의 제자는 심리적인 문제로 4강에서 패배하였고 결승 무대에는 청성파의 제자와 성지인이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성지인 승!"
성지인이 압도적으로 이겼다.
청성파의 제자는 결승에 오르기에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세계에도 이름을 날린 후기지수였지만.
"……."
그가 무대 위에 널브러져 넋이 나가 멍한 얼굴이 될 만큼, 성지인은 다른 차원에 있었다.
성민혁과 달리 성지인은 제법 오래 격룡신공을 익혔으니까.
용마, 광룡군의 신공을 익혔고 육체적으로도 기틀이 잡혀 있었다.
그것을 도진이 개화시켜 주었다.
그녀의 육체는 천마기를 제외하면 무엇에도 밀리지 않을 광포한 격룡기를 운용할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그 비대한 몸이 이제는 언뜻 가녀려 보이는 몸에 압축되었고 심지어 피부 밑으로는 호신강기의 전단계라 할 수 있는 호신기(護身氣)가 상시 흐르고 있다.
그저 격룡기가 흐르는 것만으로도 청년부에 있기엔 반칙 수준의 압도적인 방어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청성파의 제자가 그 어떤 수법을 쓰든 성지인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고 반면 성지인의 한 수 한 수는 청성파의 무인을 사정없이 뒤흔들었으니 공수양면에서 싸움이 성립조차 하지 않았다.
나름 천재라 불리며 실패없는 삶을 살았던 청성파의 제자가 마음까지 꺾여 널브러진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 뭐지?
-이거 그냥 불도저랑 사마귀 싸움 아니냐?
-ㅋㅋㅋ와 ㅋㅋㅋ 용봉이 저렇게나 셌냐?
-솔직히 성민혁 보고 천마신교도 사람이구나 싶었는데 아니었읍니다..
-성민혁은 천마신교의 마지막 양심이었구나...
-사람이자 양심=세계 무림대회 청년부 본선 8강 ㅅㅂ ㅋㅋㅋ
-아니 사람 자격 허들 왤케 높냐 ㅋㅋㅋㅋ
조금만 더 지나면 성민혁도 불도저가 될 텐데.
도진은 인터넷의 댓글에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어쨌든.
무림대회 청년부에서 성민혁은 8강에 이름을 올렸고 성지인이 우승을 차지하며 천마신교의 이름을 드높였다.
그리고 다음날.
"오랜만이네."
"그러게."
"잘 지냈어?"
도진은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 두 사람을 만났으니 오대용과 주정아였다.
* * * *
정장을 빼입은 오대용은 제법 태가 난다.
그 곁에서 마찬가지로 정장을 차려입은 주정아 또한 환하게 웃고 있으니 두 사람이 합쳐져 더 밝은 빛을 내는 것 같다.
간식과 음료를 앞에 두고 마주앉았다.
"여기서 다 보네."
"그러게 말야."
오성의 중심에서 살기로 결심한 오대용이다.
형과 누나들의 견제도 그렇고 후발 주자이다 보니 평범한 이라면 며칠도 안 돼 도망칠 정도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빡빡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1차 협력사 성운의 후계자인 주정아 또한 든든한 오대용의 지지자로서 함께 바빴고 말이다.
허나 그런 배경은 오대용이 이곳에 나타난 걸 도진이 특별하게 여긴 이유가 아니었다.
5년만에 열린 세계의 무림대회에 무림 업계에서도 잘 나가는 오성은 당연히 광고를 내고 부스도 냈다.
여기에 오대용이 업무차 방문하는 건 논리적으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오대용이 이곳에 나타난 걸 특별하다고 할 이유는, 오대용이 도진을 만나는 걸 조심해왔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 하고 싶으니까.
오대용이 공식적으로, 그리고 대중에 김도진과 만나는 걸 보여주는 건 그 자체로 민감한 이슈가 된다.
천마신교가, 그리고 소천마가 오성의 후계자로 오대용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으니까.
때문에 오대용은 도진과 꾸준히 자주 연락을 하면서도 공식적인 만남은 자제해 왔는데 오늘 이렇게 무림대회에 나타난 것이다.
"무슨 일 있었어? 청첩장을 주러 왔다거나?"
"아이, 임마."
"뭐야. 내가 부끄러워?"
"그, 그럴 리가 없잖아."
"야. 그럴 땐 사랑한다고 해 줘야지."
"닥쳐!"
도진이 낄낄낄 웃었다.
쩔쩔매며 결국 주정아에게 '너 밖에 없어'라고 속삭이는 건 과연 웃지 않을 수 없는 흐뭇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청첩장 아니면 정말로 그냥 업무?"
도진의 물음에 오대용이 조금 표정을 바꾼다.
그리고 말했다.
"업무. 그런데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할아버지께서 가라고 하셔서 온 거야."
"…흐음."
그것은 과연 오대용이 진지함이 섞인 얼굴로 할 만한 이야기였다.
오대용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사자군(獅子君) 오군성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