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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69화 (569/741)

568화

구진청과 국대만의 사건이 있었던 날 이후.

서울 대연무장의 중소기업 부스 구역에서 거짓말처럼 호포문을 욕하던 목소리와 시선이 사라졌다.

마치 증발한 것처럼.

"조용하네요."

"그러게."

여림이 중얼거렸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생각하는 건 이렇게 된 이유다.

김도진이 구진청의 앞을 막아서고 호포문을 두둔했기 때문에?

아니다.

그런 이유뿐이었다면 오히려 반발하는 이들이 더 많았을 거다.

당장 여러가지 이슈로 들끓고 있는 여론이 호포문에 관한 일로도 시끄러웠을 거다.

그러니까 이건.

"그때 말씀해 주신 거, 진짜일 줄은 몰랐어요."

여림이 말하는 건 명품 카페 거리 패밀리에 속해 있는 남자가 이야기해 주었던 소문이다.

호포문을 욕하는 여론이 자연스레 형성된 게 아니라 어떤 세력의 공작이라는.

여림의 말에 남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진짜일 줄은 나도 몰랐지."

정말로 얼떨떨한 얼굴이다.

사실, 아직 명확하게 판명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은 지켜봤거든요.

-호포문을 욕하는 사람들 중에 같은 레퍼토리로, 선동을 하는 '꾼'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호포문에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그 원한을 퍼뜨리려 하는 걸 수도 있겠고 아니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일하는 걸지도 모르죠.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알게 된 이상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진청이 너무나 무거운 고뇌로 고개와 어깨를 떨구고 퇴장하기 전.

김도진은 그런 말을 했고 몇몇 이들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천마 김도진의 말이었으니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건수를 잡은 기자와 너튜버들이 나섰다.

그들의 취재에 호포문의 구역에 사는 주민들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여 호포문을 비호하여 주었다.

-우리들은 호포문 원망 안 해. 무형독이 나쁜 놈들이지 호포문이 잘못한 게 아니잖아.

-이 동네 살면서 호포문에 도움 한 번 안 받은 사람이 없을 거야. 한 번쯤 우리가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구약정 그 친구가 사실 정말 많이 잘못한 게 맞아. 그런데 사람이란 게 그렇잖아. 사과하면 마음 약해지지. 그것도 매일매일 꾸벅꾸벅 고개 숙이고 뭐 하나라도 잘못한 거 갚겠다고 뛰어다니는데, 그러면 마음 약해질 수밖에 없잖아? 지금은 뭐. 용서해줄까 싶어.

부스에서의 여론과는 반대였다.

그렇게나 죽도록 호포문을 욕하고 원망하는 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정작 호포문과 가까운 사람들의 의견은 그랬던 거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그렇게나 안 좋은 시선들 속에서도 호포문의 부스에는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게 '물타기'가 맞았다는 거다.

공식 발표만 나지 않았다 뿐이지 사람들의 의견은 하나로 모였고 그 물타기를 '방관'하고 또 동조했던 이들이 모인 자리는 불편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크흠……."

단순히 여론이 안 좋게 흘러 불편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큰 손해를 입는 건 아닐까 두려워하는 기색마저 보인다.

이유는 이때가 되어서야 알게 된 정보 하나 때문이었다.

"…호포문으로 인해 무림 독감에 걸리거나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는 상당한 보상이 빠짐없이 지급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보고였다.

나라에서 지급한 게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여 모인 금액이 분배된 것이었다.

호포문을 지지하는 이들이 그들에 대한 비난 여론에 힘을 보태고자 추진한 일.

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금액이 상상 이상으로 컸다는 부분이었고 상상 이상의 금액이 되도록 막대한 금액을 기부한 이가 있었다는 거다.

"금(金) 노인이 연관되어 있었다니……."

금 노인.

일반인은 거의 모르는 이름이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나 문파에 큰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뒷세계에 더 가까운 인물이요 거물이었으니까.

대한민국에서 돈 좀 만진다 하는 이들 중 금 노인을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없었는데 바로 그가, 호포문을 위하여 돈을 내놓았다.

-호포문에는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는 말을 하면서.

모인 이들 중 제법 높은 위치의 무인이 심기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이런 중요한 정보도 파악하지 못하고 일을 벌였단 말입니까?"

"…죄송합니다."

고개를 푸욱 숙이는 건 관자놀이가 불룩한, 강한 양기(陽氣)를 지닌 무인이었다.

본래는 서울 대연무장에서 어깨에 힘을 주고 있었어야 할 가문.

이 자리에서도 강한 발언권을 가졌어야 할 인물을 파견했을 대문파이자 대기업을 보유한 가문.

그러나 지금은 내부의 후계 경쟁과 외부의 주가 하락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어 무림대회에는 체면치레할 정도의 적당한 인물을 보낸 태양권가(太陽權家) 소속의 무인이다.

태양권가.

김도진 때문에 장남이자 후계자였던 권민국이 개망신을 당하고 숭무고를 자퇴, 폐관수련에 들었으며 후계자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기 위해 준비했던 태양금속의 주가까지 대폭락하면서 내외로 개판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숨통 좀 틔워 보려고 부렸던 수작이 무림 독감으로 인해 흔들 구멍이 생긴 호포문의 사업을 노려 본 것이었는데 또 그게 악수(惡手)가 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연줄을 댔던 다른 문파들은 물론이요 세계 무림에서 메이저한 화산파 등에게도 안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말았다.

'김도진…….'

태양권가의 무인은 이를 벅벅 갈았지만 어쩌겠는가.

김도진은 이미 세계의 대문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 자신도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보여주는 천마신교의 수장 소천마가 되어 버렸다.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는데 한낱 학생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세계 무림의 거물들마저 압도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태양권가의 무인은 그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고 천마신교를 견제하고자 모였던 이들도 한숨을 내쉬었다.

"…꼬리가 잡히진 않겠지요?"

"무, 물론입니다. 저희임을 알 수 없게끔 잘 작업해 놓았으니 이 부분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확신하다 몸통이 잡히는 자들을 무수히 봐 왔습니다. 경계하시길."

"예. 명심하겠습니다."

천마신교의 정보력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태양권가의 무인은 정말로 이 부분만큼은 자신할 수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는데 다른 곳도 아닌 태양권가가 한 일이다.

아예 비대면으로 추적이 불가능한 형태로 착수금을 전달했고 일을 진행했으니 날고 기어도 꼬리 이상을 잡는 건 불가능하도록 했다.

심증으로야 태양권가를 의심할 수 있겠지만 물증이 존재하지 않으니 확신할 만하다.

"이번 일은 실패로군요. 이미 그르친 것을 계속 붙잡고 있어봤자 손해만 볼 터. 천마신교에 관한 건은, 새로 판을 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예. 그러도록 하지요."

무당파의 일부, 화산파의 일부, 그리고 청성파의 일부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뗐다.

사실 그들 정도 되면 천마신교가 거슬리기는 해도 단단한 반석 위에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을 거대한 성을 구축한 만큼, 그리고 천마신교가 어쨌든 한국에 근거지를 둔 만큼 '외국'의 일에 미련없이 손을 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이 실패를 인정하고 흩어질 무렵, 도진은 놀랍게도 '금 노인'과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금 노인의 물음에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정보 단체가 일을 좀 잘하거든요."

"속이게 돼서 미안합니다."

"아뇨. 처음부터 속인 적이 없으신데 사과하실 이유가 없죠."

고개를 젓는 도진의 말에 금 노인은, 노신사는 뒷세계의 거물이라는 신분을 전혀 떠올릴 수 없게 만드는 미소를 지었다.

"뭐, 솔직히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어르신이 하오문의 큰어른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으니까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무림 독감은 무형독이 일으킨 바이러스 테러였으며 구약정과 관계된, 밀접하게 연관되는 이는 모두 경계를 해야만 했다.

여기서 다른 이들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노신사 또한 세이전은 철저하게 확인하였고 그 과정에서 노신사가 뒷세계의 거물인 금 노인이었으며 하오문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기실 태양권가를 포함한 난다 긴다하는 문파들이 노신사의 기부를 알지 못했던 것도 하오문의 힘이었다.

그런 부분까지 알게 되고서 조금 더 '개인적인' 부분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들이, 호포문주 님께 제법 신세를 졌었지요."

금 노인은 이미 20년 전에도 '금 대인(大人)'으로 불리는 거물이었다.

허나 제아무리 금 대인이라도 자식 농사만큼은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꽤나 속을 썩였는데 늦게 본 자식이라 오냐오냐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것을 인연이 닿은 호포문의 문주 정경태 덕분에 사업을 맡길 만큼은 교정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이다.

금 노인의 뒤를 잇기 위해 사업을 배우던 아들은 그 성격을 완전히 고치진 못했고 지극히 위험한 '뒷세계의 대부업'에서 실수를 하여,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였습니다. 내가 덕을 쌓지 못해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크게 후회를 한 건. 하지만 그러고도 욕심을 다 버리지 못해 사업을 접지도 못했지요."

이미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도진이 노신사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에도 구약정의 행패에 그저 죄송하다 말하는 모습에서 어떤 어긋남을 느꼈기 때문이다.

도진의 눈에 비치는 노인은 그런 식으로 '아둔할 정도로 착한 성정'이 결코 아니었기에.

그 어긋남의 원인이 여기에 있었던 거다.

내가 '나쁜 일'을 했고 그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

속죄해야 한다, 덕을 쌓아야 한다 같은 그런 치유되지 못하고 비틀린 마음의 흉터.

"그러다 보니, 하오문과도 관계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대부업에는 당연히 일손이 필요했다.

금 노인은 그 일손으로 하오문을 택했다.

당시만 해도 무림인들 사이의 수준차가 이렇게까지 극명하진 않았으니, 그리고 하오문이기에 취할 수 있는 수단들이 있었으니 좋은 공생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단순히 그렇게 필요에 따라 손을 잡았던 관계.

하지만 금 노인이 심경의 변화와 함께 하오문의 정말로 불행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게 되면서, 금 노인은 하오문의 큰어른으로 관계가 변한 것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사회의 바닥에 위치한 더러운 곳에 떨어진 이들.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돈만이 아닌 마음이 오고가게 되면서 하오문의 핵심에 있던 이들이 금 노인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전서린이 있었다.

"아직은 어렸을 때의 전 지부주였습니다."

따듯하게 웃는 얼굴로 말하는 금 노인의 시선은 비무대 위 전서린에게 향해 있었다.

"그 나이에 지기엔 너무 큰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게 눈에 보였지요. 그게 딱해서, 마음이 좀 더 가고 말았습니다."

도진의 시선이 금 노인을 따라 전서린에게로 향한다.

비무대회 본선에서 대문파의 후기지수를 상대하는 전서린은 한복 대신 움직이기 편한 무복을 입었다.

허나 딱 거기까지.

여전히 여유가 있어 본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오문 출신의 전서린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격렬히 토론하고 있었으니 하오문 출신의 무인이 이렇게나 엄청난 관심을 받는 건 또 처음이었다.

만약 그녀가 저 나이에 초절정 이상이라는 게 알려지면 아예 난리가 날 테지만…….

-어떠냐, 제자야.

드물게도 위지혁이 평가를 묻는다.

도진이 답했다.

-…비밀이 많은 아가씨네요.

제자의 대답에 위지혁이 껄껄 웃었다.

-그래, 그렇구나.

가볍게 말했지만 사실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것이.

'…황룡무상신공?'

도진의 신안(神眼)은, 전서린의 무공에서 황룡무상신공의 흔적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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