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화
도교(道敎)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해서 사실 모든 제자가 그것을 믿는 건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 예와 식을 따르고 도사로 행동하지만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믿는 제자들로만 문파가 구성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절대 비밀이지만 화산제일검으로서 문파를 대표하는 리암 드가모 또한 도교를 믿지 않는 제자였다.
다만 화산파의 제자로 대부분의 세월을 살았기에 그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만큼은 박식했는데.
쿵! 쿵! 쿵!
거세게 뛰는 심장과 함께 반쯤은 마비된 듯한 머리가 그 도교의 신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두 눈을 마주한 김도진의 기세가, 그것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신들 또한 똑같은 죄인이 아닌가.
그 선언이 마치 김도진이 도교의 신들을 대신하여 내리는 목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조용하지만 심장을 서늘하게 찌르는 듯한 선언은 그렇기에 도진을 마주하여 섰던 이들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얼음층을 더욱 두텁게 만드는 도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국대만 님의 잘못은, 방관입니다."
"불행했던 청소년기 방황하다 일진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들과 친해졌죠."
"친구가 된 일진들의 행동 다수가 잘못되었던 걸 국대만 님은 알고 있었지만 방관했습니다. 그 방관에는, 구진청 님에 대한 잘못도 포함되어 있었던 거죠."
잘못을 알면서도 지적조차 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러니까 국대만의 잘못은 방관이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잘못이라면."
도진의 시선은 다시 한 번 개입했던 '정파의 무인들'을 꿰뚫는다.
"마찬가지로 잘못을 방관하고 있는 당신들 또한 똑같은 죄인이 아닙니까?"
"무, 무슨……!"
억지로 얼어붙은 입을 떼어 항변하려 하지만 시리게 몰아치는 도진의 말이 다시 한 번 그들을 휩쓸었다.
"학교 폭력이 만연한 시대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며 막을 능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그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을 지켜주지 않고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않습니까."
"……."
입을 뻐끔거린다.
그러나 성대가 얼어붙은 듯 그들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억지라고 생각했다.
한데 억지가 아니라고 스스로 더 깊은 곳에서 인정하고 말았다.
이럴 때엔 궤변으로라도 반론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되지가 않았다.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 많아 그런 식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는 이성적인 생각 이전에, 도진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본능부터가 억눌려 있었다.
그러니까 입을 떼지 못한 그들을 대신하여 도진과 함께 사건의 중심에 있던 구진청이 다시 나서서 말했다.
"…저새끼가 가해자가 맞다면, 어째서 저를 막으신 겁니까?"
도진의 시선이 구진청에게로 옮겨갔다.
리암 드가모를 필두로 했던 이들을 마주했던 때와 달리 도진의 눈에서는 한기가 사라져 있었다.
오히려 옅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구진청 님 또한,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
구진청이 두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는, 인정할 수 없는, 상상도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도진이 잔잔하지만 머리에 새겨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구진청 님이 처음으로 복수를 했던 건 나름 이름 있는 기업에 처음부터 대리로 입사하여 버릇을 못 고치고 횡포를 부리던 인간이었죠."
그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였으며 어떤 짓을 했는지 '선효문의 후기지수' 신분으로 폭로하였고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던 그와 1:1 대결, 철저하게 때려눕히고 몰락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는 과거를 속이고 착한 아빠이자 자영업자로 한 번 화제가 됐던 인간이었죠. 앞서의 일로 유명해진 구진청 님은 그 사람의 과거를 폭로하고 역시나 때려눕힘으로써 그가 죗값을 치르도록 했습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비슷했다.
구진청은 인간 쓰레기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불합리한 상황을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바로잡았다.
"하지만."
도진은 여전히 옅게 웃는 얼굴이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이 정말로 순수하게 피해자의 복수가 될 수 있었나요, 구진청 님."
"……."
이상하게도 구진청은 대번에 네, 라고 답할 수가 없었다.
"가해자가 대리로 있던 회사는 그 사람을 해고하였지만 이미지가 훼손되어 큰 손해를 입었고 무고한 직원들이 제법 정리해고를 당해야 했습니다."
"가해자였으나 어쨌든 가장이었던 이의 가정은 파탄이 났고 아이도 비뚤어졌죠."
"……."
그리고 도진은 뒤로 시선을 향했다.
본능적으로 그 시선을 따라간 구진청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떨렸다.
"국대만 님은 호포문에서 개심하여 꾸준히 지역 사회에 봉사하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호포문 내에서도 소중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무형독에 이용당한, 그러나 피해자가 될 수 없는 입장에서 수많은 비난에 힘겨운 구약정 님을 꾸준히 다독여 주기도 하셨죠."
그런 국대만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호포문 제자들은 피가 배어나도록 주먹을 꽉 쥐고 있으면서도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호포문은 그렇더군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제자들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그것을 반성하며 죗값을 치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용서란 건 피해자에게 받아야 하는 것이지 스스로가, 혹은 타인이 용서해선 안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쥐면서도 국대만을 감싸지 않았다.
그들은 제삼자이니까.
국대만을 용서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구진청 님. 구진청 님의 불행했던 순간을 방관했다는 죄를 국대만 님은 스스로 용서하지 않고 묵묵히 감수하려 했던 겁니다."
구진청이 고개를 떨궜다.
도진의 말은 계속됐다.
"…천마신교의 교도가 필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천마신교는 인간을 돌보지 않는 하늘을 대신하여 인간을 돌보기 위해 힘을 행사한다."
"그렇기에 힘을 행사하는 천마신교도는 그 무엇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신중하게 힘을 행사해야만 한다."
"잘못된 힘을 행사하면 천마신교는 천마신교가 아니라 마교라 불리는 집단이 될 겁니다. 천마신교가 스스로를 마교라 자칭하는 건 결코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경계이기도 한 겁니다."
"내가 대리로 있는 그놈을 때려잡으면 회사는 어떻게 되지? 손해를 입는 건 아닐까? 착한 아빠 흉내내는 그 역겨운 놈을 어떻게 해야 아이가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충격을 받더라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가게가 잘 되던데 물건을 대는 사람들이 손해를 입어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닐까. 나로 인해, 수없이 많은 것들이 잘못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이어지는 도진의 말이 충격 속에서도 구진청의 어깨를 차곡차곡, 무겁게 짓눌렀다.
복수라는 게, 이렇게나 무시무시하게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일이었던가.
소천마는. 이 모든 걸 생각하며 움직였던 건가.
나는, 모르는 사이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어려운 일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데, 그게 옳지 않은 일과 겹치지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다만 구진청 님. 저를 존경한다고 말해 준, 저와 닮은 면이 많은 구진청 님은 어렵지만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국대만 님에 대해서도 한 번 깊이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구진청의 새하얗게 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던 주먹이 펴졌다.
* * * *
구진청의 일은, 어마어마하게 타오르는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무엇이 옳은가.
지금은 정답이던 것이 다음 순간 오답이 되고 여기서는 정답이었던 것이 다른 곳에선 오답이 되기에 명확한 정답이 나올 수 없는, 끝없는 '화두'였다.
다만 모두가 깊게 그것을 논하는 건 아니었으니 가볍게 소비되는 글에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주로 나왔다.
-확실한 건 천마신교가 옳고 정파 새끼들이 틀렸다는ㄱ ㅓ지 ㅋㅋㅋ
-ㄹㅇㅋㅋ 소천마가 뭐라 하니까 전부다 아닥하고 한 마디도 반론을 못함 ㅋㅋ
-학폭 피해자로서 존나 공감가더라. 그 씨발놈들은 아무것도 못해주면서 엣헴거리기만 함. 어쩔 수 없는 건 알겠는데, 그러면 씨발 아가리라도 털지 말든가.
-와, 든이랑 던 구분할 줄 아는 인간 존나 오랜만에 보네. 너 똑똑하구나?
-칭찬하지마라 부끄러우니까.
-까칠한데 귀엽네.
천마신교가 옳고 '정파'는 틀렸다.
본래 그들이 의도했던 건 천마신교가 옳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킨 뒤 이번의 갈등에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천마신교와 김도진에게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는 장면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천마신교는 궁구하고 또 궁구하여 최선(最善)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남겼고 '마교(魔敎)'라는 단어에 깃들어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마저 지워 버렸다.
그에 비해 정파는 허울 뿐인 위선자 집단이라는 나쁜 이미지가 씌워져 버리고 말았으니 어마어마한 손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한 마디 반론조차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림으로써 명예에 큰 오점이 남고 만 화산제일검 리암 드가모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화경에 오르면서 격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사람이 개미로 보일 정도였지. 내가 한 번 발을 구르기만 해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그런데 그게 오만이라는 걸 알아 버렸어. 김도진. 소천마 그놈이 그걸 강제로 알게 해 버렸지. 잘났다고 날뛰어 봐야 천지 아래 날뛰는 인간일 뿐이었던 거야. 그놈은, 그걸 알고 있었고 그걸 아는 더 높은 곳에 있었어."
"그래. 그건 화경을 넘어 현경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는 거야."
현경(玄境)은 이 현대에선 아직 비현실, 무협 소설의 영역에서 나오지 못한 단어였다.
화경(化境)을 넘어선 경지.
현대 무림에서 비현실의 영역에 도달했다 칭송받는 이들에게도 아직 보이지 않는 아득히 먼 곳.
리암 드가모는 김도진이 그 영역을 알고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단순히 기세를 발산할 뿐인 리암 드가모와 달리 김도진은 자연 그 자체에 자신의 의지를 깃들일 수 있었고 그것이 팔다리를 추하게 퍼덕이는 자신을 김도진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심상을 그리게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리암 드가모가 지극히 뛰어난 무인이었기에 그릴 수 있었던 심상이었다.
그것들을 솔직하게 중얼거리는 리암 드가모를, 건너편에 선 이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동양인으로 보인다.
강렬한 기세에 비해 인상이 흐릿하여 잘 기억에 남지 않는 신비한 인물이었는데, 그 이상으로 경악스러운 건 그가 리암 드가모와 같은.
그러니까 경계를 넘어선 고수라는 것이었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 시대에서 경계를 넘어선 고수란 건 지구 전체가 그 이름을 영원히 기록하고 남길 만큼의 존재였다.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당장 대문파인 화산파의 최고 고수가 리암 드가모일 만큼 그 이름을 자연스레 떨치게 된다.
한데 그는.
이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화경의 고수'였다.
그리고 리암 드가모보다 명백히 높은 경지에 있었다.
그가 리암 드가모의 말에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입을 열었다.
"…접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로군. 자네는."
반쯤 넋을 놓고 중얼거리던 리암 드가모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와 접촉하지 않을 거라면 우리, '천외천(天外天)'은 존재할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까지 주장한다면, 한 번 모일 필요가 있겠군."
그리고 그는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