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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66화 (566/741)

565화

호포문(虎咆門)은 유서 깊은 지역의 중견문파다.

단순히 규모만 중견인 게 아니라 지역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문파였었다.

호포문의 초기. 그 시대 으레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아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계도하였고 그들을 지역 사회에 공헌하는 훌륭한 어른으로 키워냈다.

그렇게 훌륭한 어른이 된 호포문의 제자들이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순환을 만들었다.

틀이 갖추어지고 문파로서 기능하게 된 호포문은 사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면서 중견문파로 거듭났는데, 그 사업 방식이 바쁜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들을 맡아주는 탁아소(託兒所) 역할까지 하는 무공 교실이었다.

30년 전만 해도 무공 교실이라는 건 제법 엄격하면서도 무공만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호포문이 여기에 탁아소로서의 역할을 더한 새로운 형태의 무공 교실을 열었다.

무공만 가르쳐 주고 아이를 돌려보내는 게 아니라 인성 교육은 물론이요 단체 소풍 등의 사회성과 여러가지 긍정적인 경험과 추억 또한 쌓을 수 있는 형태로 긴 시간 아이들을 맡아준 것이다.

호포문의 무공 교실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대한민국의 무공 교실이 모조리 호포문을 벤치마킹하게 만들었다.

세계에서 보기 드문 한국만의 무공 교실은 그러니까 호포문이 원조라는 말이다.

중요한 건 이게 단순히 사업적인 성공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의 굳건한 지지까지 호포문에 보내게 만들었다는 부분이다.

부모만큼이나, 어쩌면 부모 이상으로 사부님과 오래 아이들은 지내게 된다.

그 사부님은 아이들에게 잘 대해주었고 혹여 학교나 동네에서 괴롭히는 아이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것을 해결해 주기까지 했다.

호포문의 제자들 중에는 '주먹 좀 쓰다 입문한' 제자들이 있었기에 단순히 윽박지르거나 혼내는 것 이상의 문제 해결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있어 호포문은 그저 단순한 무공 교실이 아니었고 부모들 또한 호포문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

그 어느 곳도 대체할 수 없는 문파로서 호포문은 지역 사회의 지지로 치안 유지 계약 또한 10년 넘게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뻔뻔한 새끼들."

"낯짝도 두껍지."

"그래도 저 새끼들 이번 계약은 갱신 못 할 거 같지 않냐?"

"그렇겠지. 여론도 나쁜데. 철밥통들 그래도 여론은 좀 신경 쓰잖아."

호포문에 대한 주변의 분위기가 올해는 조금, 달라졌다.

호의적인 이들보다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더 많다.

섭음술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들으라는 듯 욕을 하고 노려본다.

그런 분위기가, 이번 무림대회에 참여한 학생들이 눈치를 보게 만들었다.

"…어쩐지 좀, 무섭네요."

소곤거리듯 말하는 건 이번 무림대회에 자원봉사를 통하여 그룹을 홍보하기 위해 온 신인 걸그룹의 멤버다.

갈색으로 물들인 단발 머리에 시원시원한 기럭지와는 대비되는 겁먹은 토끼 같은 분위기의 그녀는 다름 아닌 여림이었다.

유진이가 오디션에 참가했을 때 그녀를 욕하더니 이윽고 시비까지 걸다 호된 꼴을 당했던.

여림은 결국 걸그룹 데뷔에 성공했다.

목표했던 대형 기획사가 아닌 중소 기획사였으나 하나의 그룹을 성공시킨 경험과 실력이 있는 곳이었고 그녀의 그룹은 아직은 무명이지만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 나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여림의 인기 지분이 높았는데, 소위 말하는 '잘 나갈 거 같은' 외견과 달리 묘하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반전 매력을 어필했기 때문이다.

…그게 오디션이 있었던 날 자신을 참교육 했던 정체불명의 남학생이 소천마라는 걸 알게 된 것 때문이라는 게 좀 뭐한 부분이지만 말이다.

남학생이 소천마, 당시엔 잠룡이었지만 어쨌든 정체를 알게 된 뒤로는 양아치짓도 딱 끊었고 피해자들에게 무릎 꿇고 필사적으로 사과하여 용서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허나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여림은 소속사에도 털어놓지 못하고 끙끙 앓다 결국 천마신교에 연락을 넣어 그날 일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다고 했다.

소천마가 직접 연락을 했을 땐 심장이 떨어질 뻔 했지만.

-반성하고 있으면 좋은 일을 해. 나쁜 일 안 하면 벌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그 말을 듣고 봉사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고 이제는 악몽도 꾸지 않게 되었다.

뭐, 그런 바뀐 삶을 살고 있는 여림의 중얼거림을 받은 건 제법 허세 섞인 태도의 남자다.

"우리 일 아닌데 무서울 게 뭐 있겠어."

괜찮은 페이스에 돈이 꽤 있어 보이는 스타일의 그는 부자 학교인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남자로 숭무동 명품 카페 거리의 무리 중 한 명이다.

공교롭게도 이쪽도 '성지인 자신감 뿜뿜 작전'으로 도진과 얽힌 적이 있다.

그 말고도 비슷한 또래가 여럿 있었으니 근방의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다.

애초에 다들 인근의 학교에 다녔고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안면이 있던 사이였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저번 일로 호포문이 좀 덤터기를 쓰게 됐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안경을 낀 다른 남학생이 말했고 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약정을 안 내친 이상 호포문이 감당할 일이니까."

무림 독감은 수많은 이들과 문파에 피해를 끼쳤다.

무림 독감에 걸렸던 무림인은 금전적인 피해도 피해고 그것을 앓음으로써 퇴보하고 만 몸을 다시 만들기 위해 몇 배로 더 고생해야 했다.

문파는 더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그것이 무형독의 바이러스 테러이고 무형독이 나쁘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전파했고 심지어 '인간 쓰레기'였던 구약정에게도 원망의 화살이 향하는 건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스레 구약정을 안고 가기로 한 호포문에도 원망은 전염되었고 이토록 날선 시선과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뭐, 호포문이 알아서 할 일이지."

허나 그것은 결국 남의 일.

그들은 관심을 껐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천마신교와 의선약가에서 발표한 연구 자료로 옮겨갔다.

"기사 보고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나도. 천마신교 진짜 미친 거 아니냐?"

"그러게. 그걸 공개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솔직히, 아직 미성년자라는 입장까지 빌려서 그들은 내공 거부 체질을 극복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연구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렇잖은가.

내공 거부 체질을 타고난 환자는 소수이며 그들과는 먼 이야기니까.

호포문의 일과 마찬가지였다.

허나 내공 흡수 효율을 올리는 방향으로의 체질 개선에는 눈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지금 세상은 온통 그 이야기로 들썩이는 중이었고 무림대회도 다르지 않았다.

-와.. 와.. 진짜 이걸 그냥 공개해 버리네;

-약속 지키려면 그냥 내공 거부 체질에 관한 연구만 공개해도 됐을 텐데..

-이거 독점 연구했으면 그냥 돈방석 아님?

-거의 탈모치료제 수준임;;;

-탈모치료제 하니까 빡오네 미친시바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파 : 세상을 위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아 ㅋㅋㅋㅋㅋ 아 ㅋㅋㅋㅋ 아아아앜ㅋㅋㅋㅋㅋㅋ

-줄서서 서류 받아가는 거 보고 진짜 배까고 뒤집어졌음 나 ㅋㅋㅋㅋ

예상했던 '정파와 마교의 싸움'은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마교의 세상을 위한 '너무나 좋은 일'이 있었을 뿐이었고 사람들은 그 일에 열광했다.

당장 세상에 적용할 수 있는 성과가 나온 건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히, 머지 않아 그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천마신교와 의선약가는 성과를 완전히 공개하고 누구나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그저 악용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특허만을 보유한 게 전부였다.

물론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그것마저 트집잡는 이들이 있긴 했으나.

-의선 약지후가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지금 그거 못 믿는 거임?

-이새끼 흑도분탕종자 아님?

무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한 명인 의선 약지후가 다른 의도가 없음을 책임지고 공언하였기에 그저 분탕종자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런 시기였기에 본래라면 기사가 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만큼 심상치 않은 호포문을 중심으로 한 중소문파 부스의 기류에도 관련 기사나 게시글은 더 큰 이슈에 묻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현상이 없는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외부의 이슈는 결국 외부의 이슈다.

내부의 이슈는 별개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덩치를 키워 나가면, 결국 외부까지 뻗어나가 또 다른 외부의 이슈가 된다.

"아아악!"

"범죄자 새끼가."

기폭의 발단은 소매치기범이었다.

간도 크게 무림대회에서 소매치기를 하던 범인이 선효문의 구진청에게 걸렸다.

구진청은 나름 유명한 무림인이었는데, 학창 시절 심한 왕따를 당하다 무공으로 그것을 극복한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성격이 바뀐 게 아니라 그렇게 익힌 무공으로 잘 먹고 잘 살던 일진들을 이렇게나 시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참교육했고 그 사례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 구진청이, '악당'을 증오하는 구진청이 범행이 들켰음에도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높이다 이윽고 무기를 꺼내든 소매치기범을 '참교육'하고 있었으니 누구 하나 시원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나.

"아아아아악!!"

이내 사람들이 조금은 걱정을 할 정도로 '폭력'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문제가 되었다.

어느 정도는, 그래 어느 정도는 속 시원하게 패 버리는 게 오히려 좋았다.

범죄자 새끼가 적반하장에 칼까지 꺼내 들었으니 정의구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게 상황을 다 지켜본 이들조차 폭력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정도가 되었으니 누군가는 말려야만 했다.

그런데 하필. 하필 나선 것이.

"그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호포문의 제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그는.

"뭐야. 끼리끼리라고 범죄자를 감싸는 거야? 범죄자 새끼야."

"어?"

"뭐야. 무슨 소리야?"

갑작스런 이야기에 주변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호포문의 제자는 입을 열지 않았다.

폭력의 열기가 깃든 얼굴로 구진청이 입꼬리를 올렸다.

"왜 모르는 척 존댓말이야. 그런다고 내가 모르는 척 어이구 학창 시절 일진 새끼들이랑 어울려 다니던 양아치 새끼님이 왜 존댓말이세요, 라고 말을 안 할 거 같아?"

호포문의 제자는, 선효문의 오악검(惡惡劍) 구진청과 동문이었으며 그가 다녔던 학교의 일진이었다.

* * * *

빠각!

"덤벼 봐! 그때처럼 자신있게 주먹질 해 보라고 이 개새끼야!"

뻐어어억-!!

구진청이 포효하듯 외치며 호포문의 제자를 두들겨 팬다.

호포문의 제자가 어떻게든 방어하기 위해 손발을 놀리지만 실력차가 너무 많이 났다.

"마,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지켜보던 여림이 조심스레 말했지만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명분이 확실하잖아. 저건 못 말리지."

"선효문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아니다 싶으면 저 사람들이 말리겠지."

"제삼자가 나서는 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구진청이 소리치는 것을 토대로 하면 호포문의 제자는 학창 시절 일진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가 어울려 다니던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복수할 정당한 권리가 있는 인물이 구진청이었다.

호포문의 제자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고 구진청은 그때의 설욕을 하겠다며 주먹을 뻗은 상황.

누군가의 말대로 제삼자가 나서기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개입한 이가 있었으니.

터억-

"소, 천마……님?"

구진청의 내뻗은 주먹을 감싸며 막아낸 소천마 김도진이었다.

주먹이 막힌 구진청은 눈을 크게 뜨며, 마치 배신당한 듯한 얼굴로 '왜?'라고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경꾼들 중 일부가.

히죽-

이를 드러내며 만족스레, 몰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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