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64화 (564/741)

563화

소담과 성지인, 그리고 성민혁이 그 장소에 나타난 건 절반쯤 우연이었다.

간식거리가 필요해졌고 소담이 자처하여 막내인 성민혁과 성지인을 데리고 사오겠다 말했다.

그리고 소담은 적련화 전서린을 한 번 직접 봐 두고 싶다는 생각으로 겸사겸사 하오문의 부스로 향한 것이다.

도진이야 그런 부분에 있어 아무런 생각이 없겠지만 소담으로선 아무래도 '하오문의 신비 미녀'가 접근한 것이 신경쓰일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렇게 하오문의 부스에 도착하고 보니 공교롭게도 좋지 않은 일이 벌어져 있었고.

-옳은 것이 확실한 일이라면, 행동하는 걸 망설이지 않아도 돼.

도진의 말을 떠올리며 개입한 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무림대회 중 벌어지는 길거리 싸움은 방문객이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무림인들간의 싸움을 경험할 수 있는 이벤트다.

안 그래도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무려 천마신교와 외국 중견문파 후기지수 사이의 싸움이었으니 대번에 퍼져 나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천마신교의 후기지수 용봉(龍鳳) 성지인과 브라질의 중견문파 금련문(金鍊門)의 후기지수 대니얼의 싸움.

결과는 성지인의 압도적인 승리였고 천마신교의 명성을 드높였다.

-아니 3수컷 실화냐? ㅋㅋㅋ

3수(手) 컷.

그러니까 단 세 번의 동작만으로 상대를 패배시켰다는 거다.

대니얼의 강력한 횡베기를 받아치는 것으로 한 번.

이어지는 발차기를 내리찍는 것으로 두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세가 무너져 기울어진 대니얼의 턱을 무릎으로 찍어 버리는 결정타가 세 번째였다.

시간으로는 3초도 되지 않는 그 압도적인 결과는 무림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한국의 미성년이 브라질의 현역을 이렇게까지 압도한다고?

-이게 현실이라고? 난 믿기지 않아.

온실 속의 화초.

현역과 원로의 수준은 세계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지만 미성년 무인들에 대한 평가는 박하기 짝이 없는 '평화롭고 안전한' 한국이었고 당사자인 한국 또한 그를 부정하지 못하는 게 현대의 무림이었다.

한데 그런 한국의 소녀 무림인이, 나라의 특성상 실전 능력이 수준 높기로 유명한 브라질의 현역 무림인을 압도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소속은 천마신교였다.

-천마신교는 어린 소녀의 수준마저 이렇게 대단한 건가?

-천마신교가 대단한 건 소설 속만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는 사건이네.

'중견'이라고 해서 대니얼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브라질의 무림은 조금 특이해서 대문파가 휘하에 중견문파 여럿을 두는 구조였는데 대문파 아래 들어가는 것도 웬만한 수준으론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 웬만한 수준 이상의 중견문파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후기지수로 이곳에 온 것이 대니얼인 것이다.

-그런데.

-?

-성민혁과 성지인은 천마신교 안에서 막내라고 하지 않았나? 당장 그들 둘을 이끌던 게 비봉 서소담이었잖아. 그럼 서소담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그렇네. 제길. 근성없는 놈 때문에 그걸 확인할 기회를 놓쳤네.

싸움은 성지인과 대니얼의 한 판으로 끝이 나 버렸다.

대니얼과 함께 있던, 대니얼과 자주 어울려 다니는 무인은 싸움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뭐 그놈이 싸운다고 해도 성민혁이 성지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면 결국 비봉이 나설 일은 없었겠지만 말야.

서소담의 실력을 볼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가 깨어나면,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해.

-…전달하도록 하지.

예상치 못한 성지인의 실력에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난 그를 사람들은 겁쟁이라고 조롱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가, 그들이 싸운 이유에 관해 논했다.

-그래서, 왜 싸운 거야?

-대니얼이 소천마를 함부로 말한 게 원인이었어.

-소천마를 함부로 말했다고?

-월간 하오문에 올라온 영상을 누가 번역해줬어. 대니얼이 '김도진이 시켰냐'고 발언했고 대번에 천마신교의 세 사람이 정색한 거야.

-Oh, 무서운 걸. 교주님을 함부로 말하면 저렇게 턱주가리가 박살나는 건가.

-LOL.

누가 잘못했는지는 명백했다.

싸움에서도 대니얼은 졌다.

이야기가 퍼져 나간 가운데 그 뒤에 있어야 할 일 또한 명백했다.

사과.

대니얼은 명분에서도 싸움에서도 졌으니 자신의 실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를 해야만 했다.

한데.

[천마신교. 축제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건 아닌가.]

묘한 기사가 올라왔다.

-이게 몬 개소리지?

제목의 어그로는 대단해서 대번에 수많은 이들이 기사를 클릭했고 그 내용을 보았다.

[천마신교가 악당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가벼운 분노만큼은 언급하고 싶다. 개막식에서도 오늘의 사건에서도. 그들은 너무 쉽게 분노하고 축제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건 아닐까.]

-혹시나해서 들어왔으나 역시나 개소리였읍니다.

-이 기레기 새끼 지금 뭐함? ㅋㅋㅋ

-혹시 고도의 팬이 아닐까? 이렇게 해서 천마신교를 돋보이게 해 주는 거지.

-말도 안 되는 거 같은데 너무 개소리를 써놔서 설득력이 생기는 거 같네 ㅋㅋㅋ

반응은 말할 것도 없이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다만 일부만큼은 확실히 천마신교가 너무 공격적이다, 어울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고 그런 논조의 기사나 글이 불쑥불쑥 보이게 됐다.

도진은 소담과 성민혁, 성지인에게 말해 주었다.

"잘했어. 그리고 고마워."

"……응!"

"네!"

분명히 옳다고 판단되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말라고 했다.

세 사람은 도진의 말에 따라 옳은 일을 행했으니 다음은 도진의 몫이었다.

의견을 듣기 위해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도진은 말했다.

"소설에나 나올 삼류 위선자 정파를 보는 기분이네요."

"…예?"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올바른 일이죠. 그리고 이 시대의 커다란 문파들은 대부분 정파를 표방하잖아요? 그렇다면 올바른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으니까요."

이 시대에 정사마(正邪魔)의 구분은 희미하다.

간단한 이유인데, 규모가 큰 문파는 너무나 당연하게 '정파(正派)'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협지에서처럼 사마외도(邪魔外道)가 대놓고 당당하게 설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 시대의 무림은 정파가 대부분을 채우고 있었고 범죄자들 정도나 사마외도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잘못을 알았으면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과를 받아주죠. 어렵지 않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어렵지 않고 아름다운 일을 하지 않으려고 미루고, 걱정하고, 상황을 더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가죠. 그걸 지금 금련문의 제자가 하고 있네요."

"뭐, 젊은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성숙해지는 거죠. 하지만 그런 경험을 했을, 문파의 어른들은 달라야 합니다. 그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젊은 제자들을 이끌어줘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 정파로서의 태도를 보여주지 못할 거라면."

도진이 씨익 웃었다.

"정파 흉내내는 삼류에 불과한 거죠. 간판 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도진의 그 강력한 발언은 금련문을 무공보다 강하게 압박했다.

발언 수위가 높기는 했으나 부정할 수 없는 바른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간판, 현판이 가루가 된 의천검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잘못해놓고 뻗대는 거 진짜 역겹긴 하지 ㅋㅋㅋㅋ

-그러고보면 금련문 쟤들 지들한테 나쁜말 하는 건 절대 안참는 새끼들로 유명하지 않았나?

-맞음 ㅋㅋㅋ 누가 욕했다고 찾아가서 바로 비무 신청한 게 너튜브에 버젓이 올라와 있음.

-솔직히 소천마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체면 차린다고 엣헴 했으면 실망했을 텐데 여윽시 빠꾸 없네 ㅋㅋㅋ

-그래서 싫음?

-너무 좋죠 쉬바.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수위 높은 사이다를 결코 꺼리지 않는다.

여론은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치달았고 결국.

"실언을 하였습니다. 소천마께 사과드립니다."

대니얼이 직접 문파의 어른과 함께 천마신교의 부스로 찾아와 도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불만을 억지로 꾹꾹 눌러담고 있는 게 보인다.

도진은 스윽 웃었다.

"진심을 담아 일찍 사과했으면 완벽했을 텐데. 그래도 늦게나마 사과하셨으니 없었던 일로 해 드리겠습니다."

파르르…….

장로는 눈썹을 떨었고 대니얼은 손을 떨었다.

허나 명분은 완벽하게 천마신교에 있었으니 꾹꾹 참고 물러갈 수밖에 없었고 지켜보던 이들이 그 모습에 시원해 했다.

그렇게 금련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방문자가 찾아왔으니.

"감사드립니다, 소천마."

사람들에게 불리길 적련화, 알려지지 않은 신분으로는 숭무지부주 전서린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한 선물들을 들고 찾아온 전서린을 도진은 부스 안으로 들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차단되는 자리에서 전서린은.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이번 일을 천마신교가 하오문의 제안을 받아들인, 그러니까 정식으로 문파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으로 읽은 것이다.

실제로 사건은 '천마신교가 하오문을 도와주었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

도진이 그 감사를 굳이 밀어내지 않으며 말했다.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이실 필요는 없어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날에도, 도진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허나 전서린은 그것이 거절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도진이 말하고자 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것은 곧 하오문이 옳은 일을 한다면 얼마든지 천마신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고개 속인 전서린의 눈동자 속에서, 희미하던 어떤 빛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 * * *

무림의 명숙들이 모여 미래를 논하는 자리는 그 전체가 비공개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비록 한 번이긴 하지만 방송을 통하여, 그리고 현장을 찾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많은 문파의 대표들이 한데 모여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날이 있었다.

물론 완전히 생방송은 아니어서 이미 대부분이 논의된 사안을 세세하게 다듬는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로 진행하였으니 기실 정해진 사안들을 발표하는 자리에 가까웠다.

비밀이랄 것도 없는 공공연한 부분.

그 공개 회담이, 이번만큼은 엄청난 관심을 모았으니 다름 아닌 천마신교에 관해서도 논할 거라는 '오피셜'이 떴기 때문이다.

-와, 박터지게 싸우는 거 볼 수 있는 거임?

-다 보는 자리에서 논쟁하다 싸울 리가;;

-그건 모르는 거임 ㅋㅋㅋ 빡돌면 주먹 나갈 수 있는 거지 ㅋㅋㅋ

-ㄹㅇㅋㅋㅋ 천마신교는 참지 않자너 ㅋㅋㅋ

-진짜 싸우면 레전드 찍을 텐데 난 소천마 믿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정파'가 칼을 갈고 '마교'를 공격할 거라는 걸.

다만 그 칼이 날붙이가 아닌 혀라는 게 특별했으며 혀로 싸우다 날붙이를 들지도 모른다는 게 또 특별한 부분이었다.

이미 개막식과 금련문의 일이 있지 않았던가.

수많은 이들이 정파와 마교의 '돌발 이벤트'를 기대하며 공개 회담에 모여들었다.

도진은 오성아와 함께 참석했고 제법 많은 이들의 적대감을 숨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적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정의검가, 의선약가 등 천마신교에 호의적인 세력도 적지 않다.

그리고 천마신교 못지 않게 불편한 시선을 모으는 이들.

전서린을 포함한 하오문이 자리에 앉음으로써 중소문파까지 모두 모였다.

"…시작하겠습니다."

회담이 선언되었고 도진은 스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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