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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57화 (557/741)
  • 556화

    모든 결과에 원인이 있듯 모든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

    유지은이 '가출했다'며 여기서 지내고 싶다 말했을 때 도진은 그 원인을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정의검가는 무가(武家)이며 그 구성원들 대부분은 무(武)에 인생을 건 무림인들이다.

    당연히, 세상의 판단 기준에는 무공과 그에 대한 재능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으니 유지은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가족이자 구성원이었음에도 밀어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다.

    따라잡기는커녕,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무가치로 만들어 버리는 폭력적인 재능은 재능의 소유자가 어떤 인간이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든 배척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으니까.

    그것이 도진의 전생에서 유지은이 희대의 재능을 가지고 무림 최고의 여검수(女劍手)에게만 허락된 검후(劍后)의 별호를 인정받았음에도 정의검가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이번 생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도진을 만나면서 유지은의 '재능의 저주'를 피할 수 있었고 무공만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변할 수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기에, 혈연(血緣)으로 이어져 있었기에 정의검가 안에도 녹아들어 함께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화책의 끝에서처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모든 것이 해결된 채 지속되는 게 아니었다.

    모든 것은 연속적이고 또 그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변한다.

    유지은의 재능은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또 한 번 폭발적인 성장을 재촉하고 있었으니 봉합해 두었던, 곁에 있는 이들을 절망으로 밀어넣는 압도적인 재능에 의한 위화감이 다시 고개를 들게 만들려 했다.

    간단한 해결책은 알고 있었다.

    그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숨기고 감추면 된다.

    하지만 그건 유지은 스스로를 희생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위화감이 들지 않는, 천재이지만 정의검가의 구성원으로서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그것은 도진을 목표로 하여 달리고픈 스스로의 향상심과 성취욕을 억누르는 것이었으니까.

    유지은은 이제서야 알게 된 가슴이 저릴 듯한 성취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정의검가 안에서 함께 웃는 생활을 유지하고 싶었고 그 욕심을 억누르지 않고 싶었다.

    그러니까 '가출'한 것이다.

    그녀의 목표, 꽃이 되어 준 김도진.

    김도진이라면 그녀의 재능에 짓눌리지 않으며 꺾이지도 않는다.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그녀의 재능이 얼마나 난폭하든 김도진은 오히려 웃으며 앞서 달려나가 준다.

    그녀가 마음 놓고 전력으로 달릴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유지은은.

    "귀여우시네요, 선배."

    이토록 여유를 보이며 그녀에게 귀엽다 말하는 후배가.

    평생 자신의 꽃이 되어 주었으면하고 바라고 마는 것이다.

    * * * *

    -갑작스럽게 이렇게 되어서 미안해요. 그래도, 우리 딸을 예쁘게 보고 잘 부탁해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제가 큰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요."

    정의검가의 안주인께서 연락해 왔다.

    그러니까 유지은의 어머니다.

    부모님이니까.

    딸이 어떤 마음으로 '가출'을 요청했는지 꿰뚫어 보고 이렇게 잘 부탁한다고 전화를 해 온 것이다.

    도진은 딸을 걱정하는 감정을 가득 담아 잘 부탁한다는 그 말에 안심할 수 있도록 대답을 돌려 주었다.

    거짓말이 아니었기에 진심이 담겼고 그녀는 연신 고맙다고 한 뒤에야 통화를 끊었다.

    -제법 동기 부여가 되나 보구나, 제자야.

    -하하. 네.

    유지은은 비할 데 없는 재능의 소유자다.

    그야말로 폭력적인,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절망할 만큼의.

    그래서 도진은 유지은과의 대련이 좋았다.

    과거였다면.

    애초에 접점도 없었겠지만 마찬가지로 절망하진 않았을 거다.

    허나 그것은 처음부터 포기하고 패배했기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이미 꺾였기에 부러질 일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아니다.

    '해야 한다'가 아닌 '한다'.

    그저 나아갈 뿐인 도진에게 있어 유지은은 나태라는 감정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페이스 메이커다.

    그녀가 뒤에서 추격하는 건, 그래서 좋은 일이었다.

    "놀러 가자!"

    저녁.

    일과가 끝나고 여유 시간에 유지은이 활달하게 여기저기 다니며 멤버를 모아 외쳤다.

    도진과 소담, 상미, 약리지, 성지인이 함께 하게 됐고 그날은 영화를 보았다.

    거주구 내에 마련된 영화관 중 한 곳에 그들만이 앉았다.

    "전세내고 영화보는 거 같네요."

    "음, 사실은 영화관 안 가봐서 전세낸 게 어떤 느낌인지는 잘 모르겠어."

    "…사실은 저도요."

    안타깝게도 문화 생활을 즐겨 본 멤버가 없었기에 도진의 말에 아무도 공감해 주지 못했다.

    뭐 그건 그것대로 공감대가 형성됐으니 나쁘지 않았다.

    "보드 게임방도 있다면서? 가 보자!"

    천마전의 거주구에는 여가를 향유할 수 있는 온갖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개중에는 보드 게임방도 있었다.

    멤버는 어제와 같았다.

    "그런데 리지야."

    "네, 선배."

    "안 바빠?"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당직하고 온 거라 괜찮아요."

    "아, 그래……."

    수련의 과정에 있고 심지어 의선약가 소속인 약리지는 감히 대학원생 못지 않은 빡빡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이렇게 자주 얼굴을 비추고 있었으니 이 또한 그녀가 무림인이었던 덕분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무림인이기에 조금 더 시간을 쓸 수 있고 조금 더 힘을 쓸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의사들의 평균 무공 경지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가 있었지.'

    뭐 어디든 그렇지 않겠냐만, 의료 업계도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도진은 둘러앉아 보드 게임을 함께 하는 상황에 감탄했다.

    "기적이네."

    "응? 뭐가요?"

    "이렇게 보드 게임 같이 하는 거. 그거 알아? 보드 게임은 아싸에게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세계란 말이야."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긴 하네요."

    "너 같은 인싸는 모를 거야. 그렇죠, 지은 선배?"

    "…후배랑 공감대가 형성됐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뭐, 그런 느낌으로.

    유지은은 물론이요 도진과 그 주변의 멤버들까지.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이치'를 쌓아가는 사이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고 있었다.

    * * * *

    [천마신교, 무서운 상승세.]

    [대한민국에서 가장 웅장한 거점에 걸맞는 기세를 보여주는 천마신교.]

    본단의 완성과 함께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천마신교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무림에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신생 문파가 엄청난 고수를 보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가 그렇듯 무림 또한 그런 고수만으로는 '대기업'이나 '대문파'로 인정받기 힘든 법이니 여러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천마신교는 본단의 완공과 동시에 그 모든 조건들을 충족해 버렸다.

    본단의 규모야 말할 것도 없다.

    중심에 있는 천마전만으로도 대한민국에서 첫 손가락을 다투며 세계에서도 수위에 드는 규모다.

    신생 문파가 그런 본단을 지었으니 빛좋은 개살구라는 질투 섞인 소리도 나왔으나 그것도 채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영국의 명문 귀족인 웨일스 후작가와 제휴를 맺었고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넘버원으로 인정받은 명성공방에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첫손에 꼽히는 덴젤 공방까지 지점을 내고 함께 한다.

    현재 대한민국 엔터 업계에서 가장 기세가 좋은 바른 엔터는 아예 소천마 김도진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정의검가는 혈맹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그리고 그런 위세를 떠받치는 충분한 수의 교도들이 있다.

    몇 번이고 명성을 떨쳤던 독마전과 이미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바할라의 무인들에 심지어 바할라의 국왕까지도 천마신교의 구성원이지 않은가.

    더 열거할 것도 없이, 잠룡이 승천하며 본모습을 드러낸 천마신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문파'였다.

    다만.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모두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건 아니었다.

    -김도진 시기하고 깎아내리려는 애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ㅋㅋ

    -?대한민국에 그런 인간이 남아 있음?

    -관현 그룹, 의천검가 etc 존나 많지 ㅋㅋ 이 갈고 있는 애들.

    -근데 걔들 이미 다 김도진한테 싹 뒤졌자너...

    -뭐 한국은 그렇지 ㅋㅋ 근데 범위를 세계로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짐.

    -아, 그렇네.

    튀어나온 못은 필연적으로 시기를 받게 마련이다.

    한국에서야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기보단 타인을 시기하는 데 특화된 소인배들이 대부분 쓸려 나갔지만 누군가의 말대로 외국은 이야기가 달랐다.

    도대체 뭔데 이렇게 난리인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고 마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감정만이 아닌 계산을 통한 이익을 위하여 천마신교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으니 대표적으로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이름을 이은 문파들이다.

    소위 '마교(魔敎)'라 불리는 집단의 부활은 그 반대편으로 인식되는 구파일방이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굳이 그들이 나서서 판을 벌릴 것도 없이,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벤트가 성큼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무림대회였다.

    무림대회(武林大會).

    평소엔 1년에 한 번씩 중소문파들이 모이는 이벤트지만 5년에 한 번은 거기에 대문파까지 참여하는, 그 이름에 걸맞는 진짜 '무림대회'가 열리니 올해가 바로 그 5년째다.

    무공을 업으로, 인생으로 삼은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필연적으로 무림대회는 단순히 대소사를 논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힘 대결을 부른다.

    공식적인 비무는 물론이요 비공식적인, 혹은 '사고'에 의한 대결까지도 말이다.

    다른 문파도 아니고 김도진의 천마신교가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 무림대회가 바로 그런 시기의 무림대회이니 폭발적인 관심은 필연적이었다.

    -님들 그거 앎? ㅋㅋㅋ

    -?

    -비무대회 표 이미 매진됐음 엌ㅋㅋㅋㅋ

    -입장권도 이미 매진이야 미친놈아

    -미친놈? 나 암표 팔려고 왔는데 님한텐 안 팜.

    -ㅈㅅ

    -아니 시발 세상이 말세인가 암표 팔러 온 놈이 당당하네 ㅋㅋㅋ

    -그래서 안 사실?

    -얼만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미친놈들ㅋㅋㅋㅋ

    공교롭게도 이번 무림대회가 한국에서 열릴 차례였기에 벌써부터 표를 구하느라 난리가 났고 이런 관심은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런 시기이기에, 명성을 원하는 누군가가 결국 '입을 털고' 말았던 것이다.

    -화산파 공식 입장 떴다!!!!!!!!!!!!!!!!!!!!!!!!!

    -? 화산파?

    시대가 시대인 만큼 대문파 또한 공식적인 소통 창구를 가지는 법이고 그 구성원들 중 유명한 이들은 개인 SNS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건 치료하지 못한 중2병에 의한 멘트나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멘트의 관리 또한 한다는 것인데…….

    [천마신교? 규모가 크다 해서 사기꾼이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

    -오.

    화산파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1대 제자의 SNS에 올라온 멘트는, 그래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화산파 피셜'로 온갖 곳에 퍼져 나간 것이었다.

    무림대회를 일주일 남기고 벌어진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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