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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55화 (555/741)

554화

"존앤집스 공방은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어."

나지윤이 도진에게 존앤집스 공방에 관한 정보를 말한다.

"그래, 그렇게 됐구나."

그 정보에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 그리고 정보를 말하는 나지윤의 주위로는 거대한 모니터가 통유리처럼 벽 대신 주변을 채우고 있었다.

천마전 내 세이전을 위해 마련된 구역, 개중에서도 나지윤의 작업실이다.

은밀히 마련된 '진짜 세이전'이 있다 해도 그 외 대외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공식적인 세이전의 공간도 필요했으니 이곳이 바로 그 공식적인 세이전주 나지윤의 작업실인 것이다.

여러가지 이야기에 도움이 될 사진, 영상, 텍스트 자료들이 주변의 모니터에 표시되는 가운데 나지윤이 정보를 풀어냈다.

"레너 집스는 해왔던 대로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했고 운영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뀌게 될 거야."

이야기를 들으며 도진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단 세 번 마주했던 레너 집스라는 인간을 되짚어 보았다.

레너 집스.

존앤집스를 대표하는 두 명장 중 한 명.

그러나 활발히 활동하던 존 스미스와는 대조적으로 레너 집스는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모습을 비추지 않았으니 히키코모리, 그러니까 방구석 폐인의 이미지가 강했다.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홀로 공방에서 작품에 골몰하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으로 알려져 있었다.

허나 그런 이미지와 달리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밖으로 나온 레너 집스는 단정하고 단단한 몸에 카메라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준비한 말을 흔들림없이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최소 A-1이라고 했지? 레너 집스."

나지윤의 물음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레너 집스는 경지를 철저하게 감추고 있었다.

도진의 신안(神眼)은 경계를 넘어서며 더 높은 영역에 이르렀지만 A-1, 초절정을 넘어선 무인이 작정하고 경지를 숨기는 것까지 완벽하게 파악할 정도는 아니었다.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깃들어 있는 이치까지야 숨길 수 없지만 그 외 모든 것을 철저하게 감추던 레너 집스였기에 도진은 그의 경지가 초절정 이상이라는 것만 확신할 수 있었다.

"꼬투리 잡아서 한 번 실력을 봤으면 좋았겠지만……."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더라도.

일부만이라도 드러낸다면 도진은 많은 것을 신안으로 꿰뚫어 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레너 집스는 철저하게 조사와 공식적인 발표에서만 자리를 드러냈고 도진은 개중 세 번, 그것도 존 스미스를 생포한 소천마라는 특별한 위치였기에 레너 집스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게 전부였다.

"레너 집스가 무형독에 감염됐는지, 혹은 무형독 그 자체인지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숨어 있는 놈들이 쉽게 움직이진 못 할 거야."

존앤집스 공방은 존 스미스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 버렸다.

공방의 이름부터가 존앤집스에서 레너 공방으로 바뀌었고 존 스미스가 연관되어 있던 부서는 모조리 다른 곳과 통폐합을 할 정도였다.

여기서 레너 집스가 유일한 대표로 전면에 나설 법 했으나 그는 계속 장인으로만 남기로 했으니 전문 경영인 체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더욱 강력한 조치까지도 받아들였으니.

"3개월에 한 번. 외부 감사 기구에서 존앤집스, 레너 공방을 감사할 거야."

무형독 대책 본부, LA 주정부에 무림맹 등 여러 집단에서 선출된 이들로 구성된 외부 감사 기구가 3개월에 한 번씩 레너 공방을 감사한다는 내용에 동의했다는 말이다.

"파격적이네."

"그렇지."

특기할 만한 부분은 그 외부 감사 기구에 금화 미국 지부에 소속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엌ㅋㅋㅋ 금화 직원들이 저기에 포함 돼 있다고?

-ㅋㅋㅋㅋ 이 존나 갈고 있을 텐데 존앤집스 잣된 거 아니냐? ㅋㅋㅋ

근래의 일로 무형독이라면 이를 갈고 있을 금화의 인력이 포함된 외부 기구의 감사를 받아들였으니 확실히 섣부른 짓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어디까지나 그 외부 감사 기구가 일절 무형독에 감염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뭐, 달라질 건 없지만."

"그렇지. 앞으로도 수고해 줘."

결국은 정보 싸움이다.

도진은 세이전의 전주인 나지윤에게 그 부분을 일임했고 나지윤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우리 교주님은 이것 말고도 할 일이 많으니까 말야."

언제나처럼 멋지게 미소짓는 얼굴인데 오늘은 어째 조금 짓궂은 면이 보인다.

* * * *

나지윤과의 이야기를 마친 도진은 천마전 저층의 거주구로 향했다.

그중에서도 게스트, 손님들을 위한 구역 중 한곳에 오늘부터 당분간 머물게 된 손님이 있었으니.

"후배!"

정의검가가 배출한 희대의 천재, 소검후(小劍后) 유지은이다.

폭신해 보이는 오버핏 후드티에 청바지라는 편한 차림이 자취하는 대학생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있다.

이제 겨우 몇 시간이 지났는데 말이다.

불과 몇 시간 전.

유지은이 소담과 상미를 뒤흔드는 폭탄 발언을 날렸으니 '가출을 했는데 여기서 지내면 안 되냐'는 내용이었다.

"가, 가출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선배님."

당황을 추스르기도 전에 소담과 유지은이 물었고 유지은은 사슴 같은 눈망울로 말했다.

"응. 집에서 나오기로 했어! 그래서 나 어디 갈 곳이 없는데, 나 같이 가녀린 소녀가 아무데서나 지내다가 해코지 당하면 어떡해. 그러니까 부동산 부자인 후배가 방 하나만 빌려 주면 안 돼?"

"……."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를 내용이었다.

허나 도진은 순식간에 평소의 모습을 되찾고선 물었다.

"선배."

"응?"

"부모님께 가출에 대한 허락은 받으셨나요?"

"응. 받았어."

"?"

"……??"

소담과 상미가 순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리구 월세도 낼 수 있어!"

"아뇨. 선배한테 야박하게 월세를 받을 순 없죠. 그동안 도움 받은 것도 많으니까요."

허나 대화는 멈추지 않았으니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부모님께 허락도 받으셨다니 성아 누나한테 말해서 방 하나 준비해 둘게요."

"오! 땡큐!"

그리하여 소담과 상미가 '가출인데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다는 게 뭔 소린가'에 대한 이해를 마치기도 전에 유지은은 게스트룸에 머물게 된 손님 1호가 된 것이었다.

"짐은 차에 실어뒀으니까 바로 옮기면 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지은에게 방 하나 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오성아의 지시에 따라 총괄부에서 바로 일처리가 되었고 유지은은 주차장에 싣고 왔던 짐을 들고 올라와 배정된 방에 풀었다.

투룸에 거실, 주방은 물론이요 채광까지 우수한 풀옵션 방, 아니 그야말로 아파트에 유지은은 활짝 웃었다.

"와! 정말 자취하게 된 것 같아! 두근거리네."

그러면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인터넷과 와이파이 세팅이었다.

"서버랑 연결해 둬야 편하거든."

"서버요?"

"응. 웬만한 자료는 다 서버에 넣어놨으니까 이렇게 연결해두면 어디서든 자료 이용하기 편하잖아."

"……."

소담과 상미는 유지은의 말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선배, 벌써부터 컴퓨터 고수가 다 되셨네요."

유일하게 대략적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도진의 말에 유지은이 씨익 웃었다.

"책 같은 거 일일이 들고 다니기 불편하니까. 공부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

틀……에 박히지 않고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 유지은의 모습이었다.

하긴 유지은은 아직 스물한 살 신세대였으니.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뭐, 얼마나 머무실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사하셨으니 집들이라도 할까요?"

"응! 나 그런 거 해 보고 싶었어!"

"네. 그럼 시간 맞춰서 저녁 파티 한 번 하죠."

"좋아!"

평소보다 들뜬 모습의 유지은이 제법 귀엽다.

도진은 바로 단체 톡방에 공지를 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올라왔다.

-참석할게요.

-참석하겠습니다.

우서진과 클로에, 성민혁, 성지인, 약리지, 여기에 이 자리에 있는 소담과 상미까지 제법 대인원이 되었다.

"준비 꽤 많이 해야겠는데요?"

거실 공간이 상당히 넓어 모이는 건 문제가 없었지만 집들이 파티라는 건 그 외에도 준비해야 할 게 많은 이벤트다.

그러나 유지은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얼굴이었으니.

"괜찮아. 나 요리도 많이 연습했어. 잘 해."

"오……."

과연 희대의 재능 보유자.

못하는 게 없었다.

"시간 꽤 있으니까 지금부터 장보고 음식 만들고 치킨이랑 피자, 떡볶이 같은 거 배달까지 시키면 충분하지 않을까?"

"응, 그렇네요. 좀 도와줄까요?"

"응! 나 같이 장 보는 것도 해 보고 싶었어."

"그래요, 그럼. 도와줄게요."

"나, 나도 같이 갈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유지은과 도진, 소담과 상미가 함께 집들이 준비를 하게 됐다.

크게 어려울 건 없었다.

도진의 슈킨팍시를 함께 타고 대형 마트에 가 장을 보고 함께 요리를 했다.

유지은은 생각 이상으로 요리를 잘 했고 도진과 소담, 상미의 손재주가 부족할 리 없었으니 아무런 문제 없이 훌륭한 요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여기에 배달까지.

"여보세요. 여기 천마신교 본단인데요."

-……네? 어디요?

앱으로 주문하려니 주소와 관련한 문제가 있어 전화를 이용하는 사소한 이벤트를 거쳐 배달 음식도 완비.

"안녕하세요."

"응응! 어서 와!"

즐거운 분위기에서 둘러앉아 집들이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 이제 이웃사촌이네."

"아, 그렇네요."

유지은의 말에 성지인이 듣고 보니 그렇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전의 저층은 천마신교 교도들을 위한 거주구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넉넉한 넓은 주차장에 1인 가구부터 대가족까지 고려한 여러 형태의 거주 구역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곳에 상미와 성지인이 이사를 해 머물고 있으며 도진네 가족도 이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이들이 살게 될 예정이었다.

'…나도 자취한다고 할까?'

몰래 소담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졸업을 하며 기숙사에서 방을 뺐고 암산서가의 본가에서 지내는 중인데 상미도 그렇고 이제는 유지은까지 이곳에 살게 됐으니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슬쩍 시선을 주변으로 향하니 마찬가지로 분위기를 살피는 다른 시선과 몇 번이고 마주친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 영화관도 있고 볼링장도 있고 놀 수 있는 거 많다면서?"

"네. 사람이 항상 수련만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직원 복지는 중요한 거니까요."

"응응, 그렇지! 그럼 내일 같이 하지 않을래?"

"오, 재밌을 거 같아요. 나는 찬성!"

유지은의 제안에 알콜로 텐션이 올라간 약리지가 동의하고 도진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소담과 상미도 참가를 결정했다.

"좋아! 그러면 내일 다 같이 놀자."

그런 약속을 하면서 파티는 늦지 않은 밤에 끝을 고했다.

월초이자 연초.

아무래도 바쁜 시기이고 멤버들의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맘놓고 밤새 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리가 마무리되고 도진은 집무실에서 오늘 해결해야 할 업무를 처리해 나갔다.

그저 휙휙, 종이 위 글자들이 스쳐가는 것 같지만 그것이 정독을 하며 숙지하는 속도였다.

나지윤과 오성아가 작성한 비할 데 없이 깔끔한 서류에 도진의 능력.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정이 넘어서야 웬만큼 정리가 되었으니 평범한 이라면 단 하루만으로도 마음이 꺾일 만큼의 양이다.

일을 끝낸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략 한 시간, 연신극기공의 수련을 하고 짧게 취침을 하면서 심상세계에서의 수련과 동시에 육체를 쉬게 하면 내일이 시작된다.

그것이 근래 도진의 하루 일과였는데…….

"선배. 착한 아이는 이렇게 늦은 시간에 몰래 찾아오면 안 됩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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