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54화 (554/741)

553화

생각하고 있던 단어가 단어였기 때문에.

김서우는 움찔 놀라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눈길을 한 번 주는 순간 끝없이 빠져드는 신묘한 매력을 지닌 그녀는 서소담이다.

김서우에게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니 기실 김서우가 아내 서정원과 함께 몰래 며느릿감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첫 번째 소녀가 바로 서소담이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네, 어서와요."

이번에는 굳이 무얼하러 왔는지 묻지 않았다.

사실 소담의 경우엔 얼굴을 보는 것이 워낙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런 김서우의 기색을 읽은 유지은과 소담 사이에 김서우는 모를 눈짓이 오고갔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버님."

꾸벅 인사를 하고 유지은과 소담이 떠나갔다.

사실 지금 김서우는 근무중이었으고 여기서 계속 머무는 건 폐가 될 일이었으니 인사만 드리고 떠난 것이다.

그렇게 떠나는 유지은과 서소담의 등에서 시선을 떼며, 김서우는 몰래 미소지었다.

한유아에 유지은, 서소담.

여기에 심지어 오성아까지.

본래 김서우와는 인연이 없을 '하늘 위를 노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아득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들만이 아니다.

이웃이 된, 그리고 여기에 지부를 세우기 위해 함께 땀을 흘리고 있는 명장 우벽진과 그 손자인 우서진 또한 그렇다.

우벽진은 세계에 손꼽히는 명장이라는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작업복을 입고선 아들을 찾아와 이거 함께 만들지 않겠냐고 제안하곤 했다.

그리고 아들이 자리를 비울 때면 자신을 찾아와 맥주캔을 부딪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서진은 김서우를 만나면 항상 붙임성 있게 인사를 건넸고 호진이를 챙겨주곤 했다.

문월동에 살던 시절 도진이 도와주었던 상미도 빙봉이라 불리며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음에도 집에 들러 가사를 돕는 날이 많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황룡이라 불리는 벽태웅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다.

"감독님."

"그래요, 태웅 씨."

"이 공정에서 조금 의문나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리러 왔습니다."

"네. 같이 가보도록 하죠."

벽태웅은 이곳 현장에서 특히나 사랑받고 인정받는 '막내'였다.

이제 고3의 나이이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일했으며 누구에게도 무례하지 않고 모르는 게 있으면 정중하게 묻고 배웠다.

벽태웅의 아래 함께 일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으니 사랑받고 인정받는 게 당연했다.

그런 벽태웅이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준 덕분에 김서우 또한 '소천마의 아버지'라는 특수한 입장이었음에도 현장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물론 벽태웅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김서우 본인이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낮은 자세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엔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그러게. 낙하산인가 했는데."

"이쪽에서만 20년 넘게 밑바닥부터 일하셨다네."

"어쩐지."

해야 할 일만 하는 걸로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김서우는 더 많이 일했고 더 많이 배려하였으며 그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해야 할 것을 다 하고 무언가를 '더' 한다는 건 두 배 이상의 품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매일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는 김서우였기에 그들은 김서우를 '감독'으로 인정하고 따랐다.

물론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서우는 단 한 시도, 단 한 번도 허투루하지 않았으니 해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한유아에 오성아, 우벽진 등의 인물을 대하는 것부터가.

유지은이나 서소담 등의 명성이 자자한 무림인을 부드럽게 대하는 것 또한.

인간 김서우에게는 버겁고 힘든 일인 것이다.

누구 한 명 대단하지 않은 이가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소천마의 아버지.

그러나 본래 인간 김서우는 '소천마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감당하기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으니까.

허나 김서우는 그것을 감당해내고 있었다.

도진이 그러했듯, 김서우에게 그것은 '해야 한다'가 아닌 '한다'로 결론나는 일이었기에.

평범한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아버지가 되었다.

그 이름으로 살아온 것이 20년째였으니 버겁고 힘들다 해도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것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것이었다.

"아버지."

"그래, 도진아."

무뚝뚝하고 표현조차 거의 하지 않지만.

김서우는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 최선과 사람들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결실을 앞두고 있었다.

* * * *

일상이 계속된다.

그 일상 중 어느 날.

도진은 산책이 끝난 뒤 액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녹아내린 솜이를 쓰다듬으며 나지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실종 사건에 관한 상세 조사에 투입될 인력이 대대적으로 배치될 거야."

"통과됐나 보네."

"응."

세계적으로 실종 처리되는 인간의 수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많다.

개중에 무형독이 관여한 부분이 상당할 것이니 조사가 필요할 거라는 도진의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세계적인 제약회사, 그 외에 '인체(人體)'가 필요한 돈과 힘 있는 집단들이 탈이 나지 않는 이들을 납치한다는 음모론은 제쳐두더라도,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또아리를 틀고 인간을 납치하는 흑도 집단은 적지 않았다.

상당한 힘과 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그들과의 충돌이 부담되기에 실종자에 관한 조사를 꺼리는 나라가 많았던 거다.

허나 도진이 보여준 영상이 그 태도를 바꾸어 놓았으니 무형독에게 실종된 이들을 괴물로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마법 같은 사술(邪術)'이 있다는 걸 알려주었던 덕분이다.

"광범위하게 장기 밀매를 포함한 커넥션에도 조사가 들어갈 거야. 이것도 분명히 타격이 되겠지."

"응."

설령 그 좀비, 강시를 만드는 연구가 아니더라도.

인체는 잔혹하지만 큰 돈이 된다.

이번 조치로 무형독은 그렇게 인체를 팔아 돈을 버는 짓거리에도 타격이 갈 것이다.

"그럼, 뭔가 잡히는 게 있으면 알려줄게."

"그래. 고마워."

* * * *

일상이 쌓이고 흐르는 사이 어느새 겨울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계절을 착각한 성질 급한 꽃망울이 피어 봄을 생각하게 하는 때.

"완공……이구나."

천마신교의 본단이, 완공을 알렸다.

* * * *

실내와 실외를 아우르는 거대한 연무장이 있는가 하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듯한 공방(工房) 시설도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시선이 가는 건 우뚝 솟아 하늘을 향하여 뻗은 거대한 빌딩이다.

대략 50층 아파트 높이의 건물.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것이 단순히 높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일 건물임에도 웬만한 아파트 단지 못지 않은 '넓이'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특별한 외관이 눈을 사로잡는다.

지상에서부터 1/5 가량은 아름답지만 평범한 건물의 외관이다.

그러나 그 바로 위에, 신전을 연상케 하는 기둥이 떠받치는 '정원'이 펼쳐지는 것이다.

땅이 아닌 건물 위에. 그러나 건물 위라는 걸 믿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분수와 정원이 넓게 펼쳐진다.

그런 정원 위에 하늘 대신 또 건물이 올라가고 일부 외부와 뚫려 있는 구역이 사이사이 배치되어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 또 그 기술에 걸맞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갔을지 상상조차 쉬이 가지 않는다.

보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세상에 다시 없을 마천루(摩天樓).

그 마천루가 천마신교의 중심에 자리한, 교주전(敎主殿)을 품은 '천마전(天魔殿)'이었다.

'천마전이라…….'

만장일치로 통과된 이름을 가지게 된 건물을 응시하며 도진은 속으로 읊조렸다.

처음엔 좀 어색하고 그랬는데, 모두가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이니 도진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계속 되뇌이다 보니 그게 어느새 이름이 되어 있는 느낌이다.

-껄껄. 내가 교주이던 시절의 천마전 못지 않구나.

그리고 스승 위지혁이 연신 껄껄 웃으며 흡족해 하였기에 도진 또한 전염된 듯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도 제한은 없었다지만 일정 비율 이상의 '녹지(綠地)'를 갖춰야 한다는 제한만큼은 무조건 지켜야 했다.

그 제한을 이런 식으로 건물 내에 거대한 자연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해결하다니, 과연 이 부분은 감탄이 나온다.

이 정도나 되는 규모에 이 정도나 되는 특별한 외관은 당연히 세간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와 ㅋㅋㅋ 저 정도면 건물 안에 숲 있는 꼴 아니냐?

-ㄷㄷㄷ 천마신교의 공중정원...ㄷㄷㄷㄷ

-와 ㅋㅋ 공중정원이러니까 전나 멋있는 거 같음.

-근데 저러면 어디서 미사일 날아오면 위험한 거 아님?

-..그건 소림사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건 그렇네?

-미친놈아 ㅋㅋㅋㅋ

"멋지네."

"네, 그렇네요."

유지은의 짧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감상평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특별한 외관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특별함과 웅장함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결실을 맺은 것이라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기에 도진은 미소짓는 것이다.

수많은 교도들이 머물 수 있도록 숙소가 포함되어 있었고 총괄부와 세이전 등이 업무를 볼 수 있는 구역에 영화관, 수영장 등의 온갖 편의 시설도 품고 있다.

꼭대기의,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헬리포트 같은 건 아예 기본이었다.

그리고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규모와 시설을 자랑하는 연무장에 세계에서 첫 번째로 꼽히는 명장인 우벽진이 있는 명성공방의 지부, 프랑스를 대표하는 덴젤 공방의 지부 등등.

세간에는 소위 '대문파(大門派)'의 조건이라는 게 있다.

규모와 내실을 만족하는 건물을 갖출 것.

그 건물을 채울 수 있는 훌륭한 문도들이 있을 것.

그 문도들을 무장시킬 이름과 규모가 있는 공방과 제휴하여 공방의 지부를 품고 있을 것.

천마신교는 따지고 보면 신생(新生)임에도 이 조건을 그 어떤 문파보다 훌륭하게 충족하고 있었다.

완공에 맞추어 준비를 해 두었기에 이사는 하루만에 완료되었다.

도진이 교주로서 테이프를 끊었고 준공식에 파티까지 끝났으니 이제 이곳이, 아버지를 포함하여 모두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이곳이 오늘부터 천마신교의 본단으로 기능한다.

"벌써부터 사람들이 많네."

"네. 할 일이 많으니까요."

천마신교는 본단의 규모에 걸맞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착착 준비해왔고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천마신교와 인천항을 직통으로 이어주는 도로다.

웨일스 후작가부터 시작하여 얼마 전 좋은 조건에 계약을 체결한 빌리 플로이드의 회사까지.

한국에 그치지 않고 외국에까지 천마신교의 활동 범위가 뻗어 나간다.

한유아와 오성아가 함께 하는 총괄부는 이렇게 첫날부터 천마신교에 활기가 깃들 수 있도록 일을 조율해 왔다.

중소 문파에게 돌아가는 치안 유지 계약을, 천마신교는 다음 시기에 갱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대단하네. 우리 정의검가도 분발해야겠어."

"하하. 정의검가는 이미 해외에서 더 유명하잖아요."

"그래두 말야. 사람이 욕심을 가져야지!"

"선배가 욕심이라고 하니 대견함에 제가 다 뿌듯하네요."

"씨이, 내가 나이 더 많거든?"

"그래요, 그래요. 우리 선배 귀엽다."

누나로서의 매력을 어필하고 싶어하는 유지은이었으나 언제나 그렇듯 쉽지 않았다.

유지은은 불만으로 오리 입술이 되었으나 이내 회심의 한 수를 꺼내들며 예쁘게 웃었다.

"후배."

"네, 선배."

"그러고 보니 여기 숙소도 있잖아."

"네. 주차장도 있고 아래층은 거의 아파트죠."

"나중을 대비해서 일부러 크게 지은 거지?"

"네."

"그럼 나, 가출한 동안 여기서 지내도 돼?"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