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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53화 (553/741)
  • 552화

    일요일.

    도진네 가족이 다 모여 아침식사를 함께했다.

    도진네 가족은 따로 약속하지 않았으나 일요일 오전만큼은 함께 모여 밥을 먹기 위해 노력했다.

    김서우도 서정원도 바빴고 장녀인 김유진까지도 아이돌이란 꿈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느라 바빴다.

    도진이야 말할 것도 없이 바빴으니 막내 호진이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서로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한 식사를 함께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여기에 도진이 근래 레서 밀리나, 더 나아가 무형독의 일로 미국에서 머물렀기에 다섯 명, 아니 여섯의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다 모이니까 좋네."

    "네, 어머니."

    서정원의 말에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도진은 전생에서 너무 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붙잡은 지금은 늦지 않았으니 거기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여전히, 아니 더 솜씨가 좋아진 서정원이 메인이 되어 준비하고 도진이 유진이와 함께 거들었다.

    아버지는 호진이와 함께 세팅 담당.

    그리고 솜이는 꼬리를 흔들며 귀여움을 담당했다.

    가족이 다 함께 연호신공의 수련을 하고 솜이는 도진과의 '산책' 후였기에 두 배는 더 맛있게 밥이 들어갔다.

    도진이 서정원,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어머니."

    "응?"

    "여전히 면허 딸 생각은 없으세요?"

    "음…… 요즘은 좀 고민하고 있어. 아무래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네."

    서정원은 면허가 없었다.

    그러니까 운전, 차 같은 게 그리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했는데 요즘엔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콜택시를 불러 이동했다.

    여기서 한 가지 도진이 고마운 건 퇴근이 늦었을 때 항상 서태주가 어머니를 모셔다 주었다는 것이었다.

    TJ 푸드, 이제는 TJ 그룹이라 해야 할 만큼 크게 확장 중인 서태주네 회사는 그런 시기인 만큼 핵심 멤버가 된 서정원 또한 많은 일을 도맡아야 했는데 자연스레 야근이 일상이 되었고 그런 이유로 늦게 퇴근하는 서정원을 서태주가 항상 모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본래 운전을 꺼렸던 서정원도 면허와 차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도 이제 운전은 아주 쉽게 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럴까?"

    "그럼요. 어머니도 어엿한 무림인인데요."

    "호호. 무림인이라니 좀 어색하긴 하네."

    서정원은 웃었지만 도진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연호신공의 효용 중 하나는 '점진적인 환골탈태'다.

    그러니까 무병장수는 물론이요 무(武)에 최적화된 육체로 연공하는 자를 느리지만 분명하게 진화시킨다.

    여기에 연호신공에 포함된 호신 무공을 구사한다면 어설픈 뒷골목 무림인들은 몇이 덤비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좋은 차 알아볼테니까요."

    "그래. 고마워, 아들."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다.

    그런 마음을 비치는 걸 싫어할 부모는 없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도진이기에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걸 꺼리지 않았다.

    "유진이 너는 어때."

    시선을 돌려 도진이 이번엔 유진이의 근황을 물었다.

    유진이는 요새 부쩍 성장했다. 요즘 말로 폭풍성장.

    아직 설날이 지나지 않아 열넷인데 메이크업을 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다.

    그런 유진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

    짧은 말이지만 안에 담긴 감정이 그것으로 충분함을 알려준다.

    유진이는 바른 엔터 연습생 1호다.

    그리고 안티체리와 레드슈의 뒤를 이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바른 엔터의 전문가들이 노력한 결과 번듯한 연습생 제도가 만들어지면서 가능성이 보이는 연습생을 여럿 두게 되었다.

    유진이는 거기에 섞여 제법 잘 하고 있는 걸 도진은 보고 들어서 알고 있었다.

    소천마인 도진은 동시에 바른 엔터의 대표로서 회사의 일을 꿰고 있었으니까.

    "잘 먹었습니다."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

    "괜찮아. 엄마가 할 테니까 둬."

    "반론은 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소천마입니다."

    "아니 얘가 여기서 무슨."

    서정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풋 웃었고 도진은 무흔잠영의 이치대로 걸음을 옮겨 어느새 함께 정리한 그릇들을 식기세척기 안에 넣고 있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뒷정리까지 끝나고 도진은 호진이와 나란히 앉았다.

    가족에 형, 누나까지 바빴지만 호진이는 외롭지 않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막내가 외롭지 않기를 바랐고 그 바람을 포기해야 할 만큼 지금의 삶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래,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될 삶을 살고 있다.

    유진이와는 사춘기가 와 데면데면한 편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우서진의 말대로 그게 평범한 연년생 남매였다.

    겉으로는 데면데면하지만 여전히 사이가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불안할 일도 없었다.

    여기에 솜이가 호진이를 신경써 시크한 태도지만 붙어다녀 주었다.

    그리고 도진이, 틈나는 대로 막내를 챙겼다.

    "호진이 너도 어느새 6학년이네."

    "응."

    "래미와는 연락하고 지내?"

    래미는 넷비전의 대표인 크리스토프 뒤몽의 아들로 여름 방학 심화 특강에서 호진이가 만나 친구가 된 아이다.

    다만 서로 사는 나라가 다르다 보니 직접 얼굴을 보긴 힘들었다.

    "응. 영상 통화도 꾸준히 하고 있어."

    "그래. 영어도 많이 늘었겠네."

    "래미도 한국어가 많이 늘었어."

    "그랬구나."

    막내 호진이는 제법 무뚝뚝한 남자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됐다.

    나이에 비해 훨씬 어린 모습을 보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얘도 아버지 닮아 가네.'

    스윽 웃음이 나오는 도진이었다.

    "중학교는 어디로 가고 싶어?"

    웃으며 묻는 건 호진이의 장래 희망이다.

    무림학교로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하고 싶은 게 있는지.

    요즘은 장래와 관련된 특화 중학교가 대세였기에 어느 중학교로 가고 싶은 지 묻는 것이 장래 희망을 묻는 것과 같았다.

    도진의 물음에 호진이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있었던 듯 망설임없이 말했다.

    "심화중학교 가고 싶어."

    심화중학교.

    특정 학교 이름이 아니라 공부 그 자체의 심화 과정을 배우는 중학교를 뜻한다.

    그러니까 호진이는 순수하게 공부를 더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우리 막내는 똑똑하니까."

    알고 있었다.

    전생에도 호진이는 공부를 좋아했다. 특히나 수학을.

    교과서의 문제를 몇 번이고 풀었고 낡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인터넷에서 문제를 찾아 또 풀곤 했다.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아 장학금을 타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돈을 벌기 위해 미래를 포기했었다.

    이번 생에선, 호진이가 그런 미래를 택하는 일은 없다.

    "지금은 수학자가 되고 싶어. 미래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

    수학자. 쓸모없이 숫자 놀음이나 한다고 비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모르는 소리다.

    수학 또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뜬구름 잡는 진리에 그치지 않고 문명의 발전을 가져오는 학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도진은 호진이가 하고 싶은 걸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우리 막내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고마워, 형."

    "그래, 막내야."

    툭 던지듯 말하고 눈을 피하는 호진이의 귓가가 붉다.

    이 막내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귀여울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이 씨익 웃고선 호진이의 머리를 휘휘 휘저었다.

    "머, 머리 망가져, 형."

    "그러면 피해 보려무나, 막내야."

    "아잇!"

    소천마는, 귀여운 막내를 귀여워해 주기 위해 천마신공을 발휘하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 * * *

    월요일.

    도진의 아버지 김서우는 오늘도 현장에 나와 있었다.

    신생 건설 업체 대표이자 현장 감독 중 한 명으로 천마신교 본단의 공사 현장을 감독하고 있는 것이다.

    의천검가의 수작에 대항하기 위하여 사표를 낸 뒤로 붕 떠 있던 그를, 아들이 이렇게 현장을 관리하고 감독해 달라고 밀어 넣어 버렸다.

    '…….'

    솔직히,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이 일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허무함에 번아웃이 왔을 것이다.

    사업이 망하고 극한까지 내몰렸었다.

    도망치고 싶었고 다 내팽개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그가 한 집안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대단하다고 했지만 그건 그가 대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래야만 했기 때문에.

    그래서 태산을 떠받치는 듯한 중압감에도 그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선택지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 태산의 무게가 사라져 버렸다.

    놀랍게도.

    그 무게를 김서우는 온전히 감당하고 이내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스스로 악착같이 버티면서도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고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대비 따윈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심지어 갑작스럽게 끝이 찾아와 버렸다.

    퇴직금을 받음으로써 예상보다 빠르게 빚을 다 갚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빚을 다 갚고도 제법 남은 금액이 통장에 플러스로 찍힌 것을 봤을 때.

    김서우는 아무도 모르게 침대 위에 풀썩, 멍하니 누운 채 얼마간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물먹은 솜처럼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 김서우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이자 아버지 김서우는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고 그것을 해낸 뒤 인간 김서우는 하얗게 색을 잃고 만 것이다.

    빠져나간 색을 채울 것이 필요했다.

    그 색을, 아들 도진이 불쑥 가져왔으니 이번 일이었다.

    김서우의 꿈은 번듯한 건설 회사의 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버거운 무게를 감당하느라 바빴던 사이, 어느새 너무 잘 커버린 고마운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꿈을 알고서는 이 자리를 불쑥 맡겨 버린 것이다.

    아직은 인맥으로 데려온 몇 명이 전부인 소규모. 회사라고 하기도 민망한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더 좋다.

    본래 김서우는 승부욕이 강하고 바닥부터 시작하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김서우는 더 의욕적이었고, 의욕적인 김서우에게 다가와 꾸벅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안녕하세요, 아버님."

    "아. 안녕하세요, 한유아 우부주(右府主)님."

    "아이. 그냥 유아야, 라고 불러 주세요."

    햇살 아래 빛나는 금발보다 더 눈부신 눈앞의 미녀는 그 유명한 한유아다.

    그래, 금화의 영애.

    평범한 이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하늘 위를 노니는 봉황.

    하지만 지금은 아들의 '오른팔'이라 여겨지고 있으니 정말로, 세상은 모를 일이다.

    김서우는 연륜이 묻어나는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었다.

    "공적인 자리니까요. 사적인 자리에서는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휴, 역시 아버님이시네요."

    한유아는 천마신교 총괄부 중 우부의 부주로서 시찰을 나온 것이다.

    딱딱한 감독이 아니라 불편한 게 없는지, 혹은 다른 고충은 없는지 듣기 위하여 오는 것이라는 걸 이제 다들 잘 알기에 불편한 분위기는 없고 오히려 환영하는 사람들뿐이다.

    "그럼 또 뵐게요, 아버님."

    "네, 수고해 주세요. 우부주님."

    꾸벅 고개를 숙이고 한유아가 떠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듯 얼마가지 않아 또 한 명, 대단한 손님이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네. 어서와요."

    활기차게 인사하며 다가오는 건 비할 데 없는 날카로움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닌 희대의 보검(寶劍)을 연상케하는 기세를 품은 무인.

    유지은이었다.

    "도진이를 만나러 온 건가요?"

    "네! 오늘도 대련해 주기로 했거든요."

    "그래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기대감이 잔뜩 어린 얼굴을 하고 있으니 또 아버지로서 미소짓지 않을 수 없다.

    희대의 천재.

    누구도 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

    하지만 그렇게나 대단한 그녀조차 아들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김서우는 이런 생각까지 하고 마는 것이다.

    '며느리는 누가…….'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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