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화
독기(毒氣).
쉽게 설명하자면 기에 독이 섞여 유형화된 것이다.
그러니까 검기의 독 버전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을 구현한 존 스미스는 그의 말대로 독인으로서 경계를 넘어선 무인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것이 진짜라면, 말이다.
"평생을 대장장이로 살더니 그 나이에 진로 변경을 했나 봐?"
스윽 웃으며 묻는 도진의 태도에 존 스미스가 일그러진 얼굴로 답했다.
"여유 부리는 것도 그게 마지막이다!"
일갈하며 쇄도하는 존 스미스의 속도는 과연 세간에 알려진 경지 이상이었다.
여기에 밟고 있는 보법 또한 평소 알려진 그의 것과는 확연히 달라 기괴한 곡선을 그리며 시야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슈각-!
그리고 손에서 뻗은 독기는 그렇기에 문자 그대로 손의 연장이 되어 검으로는 보일 수 없는 궤도로 도진의 갈비뼈를 쑤시려 했다.
도진은 그 독기를.
슷-
"……!"
검기가 어린 백설로 가볍게 잘라 버렸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존 스미스가 두 눈을 크게 뜨며 급격히 방향을 틀어 몸을 날렸고.
"……."
도진은 그 움직임을 너무나 정확하게 읽으며, 존 스미스와 눈을 맞춘 채 스윽 웃었다.
털퍽!
잘린 독기가 형체를 잃고 진흙처럼 바닥에 퍼진다.
"왜. 독기가 너무 쉽게 잘리니까 놀랐어?"
"…어떻, 게."
똑같은 '기의 유형화'였다.
한쪽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해도 기운의 반발이 먼저여야 했고 그 반발력이 발생하는 동안만큼은 틈이 있어야 했다.
한데 아니었다.
존 스미스가 뽑아낸 독기는 도진의 검기에 허무하리만치 쉽게 잘리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니가 만들어낸 게 모양만 흉내낸 저급한 것이었기 때문이지."
"……."
"기의 유형화는 이 시대에 신비의 유형화라고 불리지. 말 그대로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는 행위."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나 분명히 실재하고 단련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기(氣)다.
그리고 이 세상을 뒤바꾼 신비의 근원.
그것을 모든 이가 볼 수 있도록, 만질 수 있도록 유형화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에서 현실의 경계를 넘어섰음을 증명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에 신비를 드러내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깨달음이 필요했으며 이치를 궁구하고 또 궁구하여야만 했다.
"하지만 존 스미스. 넌 아니야. 그 영역에 이르지 못했지."
"그러니까 그렇게, 추악한 방법으로 그 흉내를 내고 있는 거잖아?"
"……."
도진의 신안(神眼)이 존 스미스와 그 밑에 반쯤 부서진 문양을 꿰뚫는다.
그 눈을 통하여 아까 폭발하여 비산한 시독귀의 살점과 피, 그리고 독이 문양을 흐르는 기운에 흡수되어 존 스미스에게 이어지는 것이 분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존 스미스는 독인(毒人)이었으나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밀도 높은 외부의 독을 사술(邪術)로 뭉치고 자신의 기로 얼기설기 엮은 것을 독기인 척 했을 뿐이었던 거다.
"추하네, 존 스미스. 역겹고.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웠어?"
"원숭이 새끼가아아아아아아아!!!"
현 위치를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도진에게 존 스미스가 시뻘개진 눈으로 분노를 폭발시키며 덤벼들었다.
"캬아아아아-!!"
존 스미스의 분노에 그 지배 하에 있던 시독귀 무리도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가세했다.
도진은 신안으로 그 모든 움직임을 읽고 선을 그렸다.
무흔잠영.
모든 움직임이 선으로 그려지는 가운데 경계를 넘은 도진은 한 차원 더 높은 영역, '면'으로 그것을 이해했다.
여기에 시간이 더해짐으로써.
스슷-
도진의 선과 교차하는 시독귀들이 깔끔하게 백설에 베여 폭발했다.
꽈과과광!
썩은 피와 살점, 뼛조각이 비산하는 중에 도진은 이미 존 스미스의 앞에 쇄도해 있었다.
까득-!
진법의 백업을 받고 있음에도 확연히 느껴지는 격차에 존 스미스는 이를 악물며 다시 뽑아낸 독기를 휘둘렀고, 이번에도 베였다.
히죽-
그러나 존 스미스는 그걸 노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으니.
퍼퍽-!
잘린 독기가 그 형체를 잃고 풍선이 터지듯 터지며 도진을 덮쳤기 때문이다.
도진은 존 스미스가 무얼 더 시도하기 전에 다시 거리를 벌렸으나 터진 독기를 일부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모습에 존 스미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맞았구나! 맞았어!"
코나 입을 통하여 들어가진 않았다.
그러나 피부에 닿는 것만으로도,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독은 스며들었고 도진의 피부 위로 검보랏빛 중독의 증거가 극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꽤 세네?"
"괜찮은 척 해 봐야 통하지 않는다. 그건 아주 지독한 놈이니까.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점점 더 독해져 너를 썩어 문드러지게 할 것이다."
"흐음. 그렇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소전주."
"……!!"
갑자기 도진이 시선을 향하는 쪽으로 존 스미스가 크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위연서가 본래는 없던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으니 주유소 내부에서 챙겨 온 여러가지 자료들이었다.
'이, 이런……!'
존 스미스가 낭패와 경악으로 또 한 번 얼굴이 일그러졌다.
함께 들어왔던 위연서와 그 뚱뚱한 놈에 관해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가 단순히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김도진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으로 둘을 덮어 그가 다른 이들을 잊게 만든 것이었다.
운해이몰진 안에서의 감각의 확장이 완벽하지 않았기에 당하고 만 뒤통수였다.
그리고 그의 정신이 온전히 김도진에게 집중되고 둘을 잊은 사이, 위연서는 은밀히 주유소 안과 지하를 뒤적여 자료를 챙기고 남자는 남겨둔 것이다.
중요한 것들은 이미 말소하고 옮겼다지만 설마 이곳에 도달하는 놈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남은 것들이 있어 문제가 되었다.
그런 자료가 든 가방을 들고서 위연서가 말했다.
"이토록 조잡하고 하찮은 독으로 소지존께 해를 끼치겠다니. 소지존의 행사가 아니었다면 제가 직접 저 하찮은 것에게 독이 무엇인지 자비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뿌드득!
철저한 무시에 존 스미스가 이를 갈았다.
저 아름다운 면상을 독으로 짓이기고 싶은 충동이 들끓었다.
"그래. 네놈들은…… 결코 살려 보내선 안 되겠구나."
콰아아아아-!!
존 스미스의 주변 기가 요동쳤다.
근처에 있던 시독귀들의 부패했던 육체가 무너지며 피와 살점이 흘렀고 깃들어 있던 독과 기운만이 반파된 문양을 따라 흘러 존 스미스에게 흡수됐다.
-…혈괴술(血傀術)을 더욱 괴이하게 개량한 술법으로 보이는구나.
술법에 정통한 장호의 말을 들으며 도진은 존 스미스를 지켜보았다.
눈의 흰자위가 검붉게 물들고 독기를 줄기줄기 흘리는 존 스미스는 이미 인간보다 괴물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그렇게 인간으로서의 형상을 포기한 대가로 존 스미스에게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깃들었으며 한 번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즉사할 만큼 지독한 독기를 흩뿌릴 수 있게 되었다.
존 스미스의 기괴한 검붉은 색 가운데 검은 동공이 도진을 노린다.
"네놈들은 결코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
"네놈을 뒤따라 온 쥐새끼들은 이미 숨을 헐떡이고 있지! 끊임없이 앞을 막아서는 좀비들에게 결국 온 몸이 뜯어먹혀 죽을 것이다!"
"네놈 또한 같은 운명이다! 저년과 함께 산 채로 뜯어먹히며 골수까지 독으로 절여져서야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콰아아아아-!!
일대를 둘러싼 안개가 태풍이라도 만난듯 요동친다.
존 스미스는 일대를 호령하는 미증유의 기운이 어린 자신의 육체에 환희했다.
캬아아아아!!
그리고 자신의 명령에 따라 밀려드는, 자신이 오랜 시간을 들여 갖춘 시독귀의 집결에 또 희열했다.
그 모든 것이 어리디 어린, 그러나 그가 질투를 느끼게 만들었던 존재를 당당히 내려다보게 해 주었다.
"네놈 따위 갑자기 이름을 얻은 애송이가, 나의 위업을 마주할 수 있겠느냐?"
파아아앗-!
앞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밀도의 독기가 길게 뻗어나가 도진을 겨눈다.
'조잡하다고? 하찮다고? 건방진!'
나는 회에서도 인정받은 절대자다.
감히 바닥을 기는 '가짜' 따위에게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될 절대자란 말이다!
그렇게 자부하는 존 스미스를 마주하여, 도진의 기세가 일변했다.
두웅-!
"……?!"
"위업이라……."
드드드드……!
두렵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존 스미스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뒷걸음치고 말았다.
"사람을 죽이고, 또 사람을 짓밟고 쌓은 이딴 걸 위업이라고 한다면."
쿠우웅-!
"컥!"
숨이 막혔다.
"내가. 철저하게 때려부숴 줄게."
콰아아아앙-!!
두려움에 짓눌린 존 스미스가 때려박히듯 무릎을 꿇었다.
"……!!!"
세상이 바뀌었다.
존 스미스를 중심으로 흐르던 것들이.
모든 흐름이 그 방향을 바꾸어 도진을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마치 온 세상이 적이 된 듯, 공기마저 무게를 가지고 짓누르는 듯한 상황에 부들부들 떨며 저항하는 존 스미스는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진법의 핵으로서 감각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기에, 평소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을 광범위하게 인지할 수 있기에 알았다.
세상 모든 것이 지금, 도진의 지배하에 있음을.
미증유라 여겼던 것이 실제로는 자신의 작디작은 그릇을 채우는 데 그치는 하찮은 실개천에 불과함을.
존 스미스는 그저 얕은 물길을 만들어 자연의 흐름을 바꾼 것에 기생할 뿐이었다.
하지만 놈은 아니었다.
자연의 흐름 그 자체가.
지금 놈의 의지하에 놓여 있다.
놈에게 스며들었던 독의 기운은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고 거대한 진을 구성하던 기운마저 놈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운해이몰진을 유지하기 위해 구축한 모든 것들이, 그가 여태껏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무위(無爲)로 돌아간다.
'이런 게,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경계를 넘어선 고수이기에 가능한 이적이라고?
아니.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회'에는 이미 경계를 넘어선지 오래된 괴물놈들이 있었다.
그놈들조차 이런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랬는데!
"이 괴물은 뭐란 말이냐!!"
존 스미스가 발작하듯 외치며 기운을 터뜨렸다.
빠드득!
허나 그것은 분출되지 못하고 '세상'에 짓눌렸으며 존 스미스는 꿇은 무릎을, 처박은 대가리를 드는 걸 허락받지 못했다.
키, 키에에엑!!
그가 지배하는 시독귀들 또한 모조리 무릎 꿇었고.
꽈드득!
대가리를 처박았으며.
퍼펑!
이윽고 폭발하여 형체를 잃었다.
천마군림(天魔君臨).
소천마가 군림한 이 자리에서 더러운 것들은 그 존재를 허락받을 수 없었다.
"사술. 사술! 사술이다!"
도진은 외치는 존 스미스를 비웃었다. 비웃어 주었다.
"진짜 사술을 쓰는 놈이 그렇게 말하니까 웃기긴 하네."
시대에 뒤떨어지고 못난 인간이 딱 할 법한 말, 사술.
물론 존 스미스도 정말로 사술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도피하느라 스스로에게 외치는 것일 뿐.
허나 그런다고 해서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가 정말로 사술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천마군림보는 본래 천마가 의전용(儀典用)으로 쓰던 무공이었다.
위지혁은 천마군림보에 대해 그렇게 말했었다.
교주의, 하늘을 대신하는 힘과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걸음.
그렇기에 실전용이 아니라 필요한 때에 위엄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되던 것이 '천마군림보'란 이름으로 널리 퍼진 것이었다.
허나 그것은 위지혁이 새로 정립하기 전의 천마신공에 해당하는 말이었고 지금 도진이 익힌 천마신공은 달랐으니, 위지혁이 오랜 세월 궁구하여 더 높은 차원에 이른 천마신공은 천마군림을 통하여 세상과 이어진 도진의 의지 그 자체가 구현되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기를 운용하고 발출하여 원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세상과 이어졌기에, 도진의 의지가 세상의 기운을 통하여 존 스미스를 무릎 꿇게 만든 것이다.
"진짜, 진짜 천마였단 말인가.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었다고? 정말로?"
결국 현실을 외면하는 데 실패한 존 스미스가 넋이 나가 중얼거린다.
대가리마저 처박은 존 스미스의 앞에 선 도진이 백설을 들었다.
그리고 백설이.
"벌을 받도록. 존 스미스."
존 스미스가 쌓아 온 더럽고 역겨운 탑을 베었다.
"카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