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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48화 (548/741)

547화

'진법의 핵'은 계산 외의 사태에 크게 놀라야 했다.

운해이몰진을 채우는 안개의 효용은 진법 안에 삼켜진 자의 감각과 시야를 어지럽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조건을 만족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감각의 강화 효과를 부여하는 기능도 있는 것이다.

정확히는 진과 공명하는 내공을 쌓음으로써 그 흐름에 감각을 동화하는 방식이다.

특히나 진법의 운용에 있어 중심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면 하늘 위에서 진법을 내려다 보는 신과 같은 기분마저 만끽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한계는 있어서 여러 장치를 했음에도 실제로 구석구석 들여다 보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고 말 그대로 높은 곳에서 대략적인 윤곽을 살피는 정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목표였던 김도진의, 소천마란 건방진 별호로 불리는 놈의 능력은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경계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그래봐야 얼마 되지 않은 놈이었다.

경계를 넘어섰다는 것은 상식을 넘어섰다는 것이며 본래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주어지지 않았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렇기에 아직 어설플 것이었고 그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익숙할 리가 없다.

괜히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말이 유명한 게 아니니 익숙해지는 데만 해도 몇 년이 걸린다고 했다.

은밀하게 기능하고 있던 진법의 힘으로 소리도 기척도 없이 들이박은 트럭의 충격을 어떻게든 해소한다 쳐도 피해가 있을 거라 계산했는데.

'이 안에서까지 기척을 감출 수 있다고?'

커다란 소리도 없이 트럭을 날려 버리더니 이 안개 안에서 오히려 감각이 강화된 운귀대의 무장한 무인들을 농락하고 상처 하나 없는 듯 움직였다.

그리고선 당당하게 생로(生路)를 찾아 움직이니 말 그대로 계산 외의 능력이었다.

이놈은 도대체 어디까지 규격 외의 인간이란 말인가.

그는 경악했다.

그러나 계획이 다 어그러진 건 아니었으니 겨우 트럭 한 대로 올 리가 없으니 은밀하게 뒤따르는 것들이 있을 거라 계산했고 놈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넓게 펼쳐진 운해이몰진은 그렇게 은밀히 움직이던 쥐새끼들을 잡아먹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엔 예상했던 대로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빌리 플로이드를 포함한 놈들의 능력은 예상치보다는 훨씬 높았으나 계산 외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

놈들은 진법에 완전히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상시로 내공을 운용하면서 상대가 지극히 까다로운 시독귀에 의해 지속적인 소모를 강요당했다.

이대로 두기만 해도 서서히 절망하다 이윽고 시독귀에 뜯어먹혀 죽을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회가 원했던 김도진에 대한 징치는 완수되는 것이다.

놈이 소중히 여기는 것의 목숨을 앗아간다. 처참하게.

그리고 여기서 다시 김도진이다.

'…괴물 같은 놈.'

안개에 의한 방해가 전혀 통하지 않는 듯, 생로를 아무렇지 않게 찾아 움직이는 모습에서 단순히 경지가 높은 것만이 아니라 진법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시독귀 또한 발걸음을 지체시키지 못했다.

서벅.

가볍게 한 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을 노려 시독귀가 덤벼들었다.

다른 개체보다 훨씬 민첩한 시독귀는 일견 김도진의 중심이 옮겨가는 틈을 잘 찌른 듯 보였으나.

투웅-

꽈과광!!

다음 순간 김도진의 살랑이는 듯한 손짓에 쏘아진 포탄처럼 멀리 날아가 폭발했다.

허리를 뒤틂으로써 자연스럽게 경력(勁力)을 일으키고 그것을 손으로 쏘아낸 것이다.

말이야 간단하지 오랜 세월 고련한 초절정 고수라도 이렇게 자연스럽고 강력한 경력의 발출을 찰나에 최소한의 동작으로 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었다.

그걸 김도진은 저 새파란 나이에, 애송이라 불릴 나이에 무인이라면 대번에 홀릴 정도의 완성도로 뿌리니 가슴이 불탈 듯한 질투가 치솟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죽이고 싶다'고.

그는 그것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로를 찾아 거침없이 움직이던 놈은 지금 같은 장소를 몇 번이나 맴돌고 있었다.

길을 찾지 못하고 막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이 운해이몰진에는.

'생로가 없다.'

본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법이란 자연의 흐름에 인위적인 물길을 만들어 바라는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었고 그것이 흐름인 만큼 고이지 않고 흐르도록 해야 한다는 절대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진법에는 생로(生路)와 사로(死路)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운해이몰진은 생로를 없애는 데 성공했으니 그 생로를 사로와 겹쳐 버린 것이었다.

'클라인의 병이라고 했었나.'

그는 쇠를 두드리는 이이자 무인이었기에 먹물쟁이들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4차원의 영역이 어쩌고 저쩌고하는 이야기는 그냥 흘려들었다.

대신 한 가지는 확실히 이해했으니 이곳에 있는 이상 김도진을 만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저 안전하게 이곳에서.

'김도진. 네놈이 말라죽는 꼴을 내가 지켜봐 주도록 하지.'

김도진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하면 됐다.

진법이 깨진다는 가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건 '회'의 인간이 여럿 모여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불가능한 일에 끙끙거릴 만큼 그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꽈앙-!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며 출몰하는 좀비, 시독귀를 손쉽게 터뜨리는 김도진을 보면서 그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래, 분명히 대단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놈은 애송이였다.

그 나이에 쌓을 수 있는 내공에는 한계가 있으며 경계를 넘어섰다 해도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인 이상 체력과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그 경지가 높은 만큼 정신력이 소모될수록 파탄이 드러날 것이고 체력과 내공의 소모도 격심해진다.

그렇게 될 때까지 투입할 시독귀는 얼마든지 있었다.

아까울 것도 없다.

지금 투입되는 시독귀는 어디까지나 데이터를 얻기 위해 준비된 '실패작'들이었으니까.

진을 부수려고 날뛴다면 더더욱 좋다.

그것은 자살에 다름없는 행위다.

'죽여도 된다고 했지.'

회에서는 김도진의 생사를 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저놈을 쳐죽이자.

쳐죽이고, 시체는 내가 갖자.

저걸 이용한다면 더욱 훌륭한 시독귀가 나올 것이다.

그는 꿈에 부풀었고.

"……뭐?"

정말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은, 믿을 수 없는 현상에 경악했다.

'지, 진법을?'

같은 자리를 맴돌던 김도진이 새로운 곳을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이 진법 내에 존재하지 않던, 존재할 수 없는 길이요 흐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김도진이 인위적인 자연지기의 흐름에 있는 미세한 '틈'을 이용하여 본래는 없던 생로를 만들어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찰나에 만들어진 생로는.

"여어, 존 스미스. 다시 봐서 반가워?"

진법의 핵으로서 존재하고 있던, 존 스미스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 * * *

존 스미스는 인사에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도진은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니 결코 일어날 리 없다 생각했던 일이 일어남으로써 멍청해진 존 스미스의 표정을 보는 게 제법 기분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존 스미스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도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 스미스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엮은 물길은 완벽할 수 없었고 당연히 틈이 있었던 것이다.

생로와 사로를 겹침으로써 존 스미스가 있는 중심부에 이를 수 없도록 조작한 부분은 장호마저 감탄할 정도이긴 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의 파탄이 발생했고 굳이 진법을 깰 것도 없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 준 틈이 되었다.

그렇게 도달한 중심부, 본래 주유소가 있던 곳의 광경은 심약한 이라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구토를 하고 눈을 질끈 감을 만큼 끔찍했다.

존 스미스를 중심으로 하여 바닥에 그어진 곡선이 꼬이고 또 꼬여 기괴한 문양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흑마법을 발동하기 위한 마법진이 그러할까 싶다.

그리고 그 문양을 중심으로 하여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린 듯 눈에서 지성의 빛이 꺼져 버린 것들이 널브러져 있다.

도진은 이들이 이곳에서 인간의 장기를 가공하던 자들이라는 걸 알아보았다.

-…이미 뇌가 반쯤 녹아 버렸구나.

도진의 눈을 통하여 그들의 상태를 확인한 위지혁이 말했다.

-광범위한 규모임에도 진법과 시독귀의 운용이 정교했던 건 이들을 썼기 때문이로구나.

여기에 장호의 설명이 더해졌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넓고 정교한 진법의 운용을, 이곳에서 일하던 마약에 절어 있던 놈들의 뇌를 이용하여 진행했다는 거다.

마약에 절대로 절은 놈들의 이지를 제압하여 강제로 진법의 운용을 위한 '연산 도구'로 삼았으니 한 번 쓰고 버릴 CPU 취급이다.

어차피 살인멸구, 죽여서 입을 막으려 했을 테니 참…… 좋은 수법이었다.

그렇게 도진이 주변을 확인하는 사이 충격을 해소한 존 스미스가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과연. 애를 먹을 만한 놈이었구나. 김도진."

"그때도 인간이 덜 된 못난 놈이긴 했는데 이제는 구제불능이 되었네? 존 스미스."

"여유가 넘치는구나. 애송이가."

일그러진 얼굴로 존 스미스가 답한다.

가벼운 도발에 화가 난 게 아니라 이미 잔뜩 화가 나 있었던 거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넘칠 수밖에 없지. 너 따위가 날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자만하지 마라. 노란 원숭이 새끼……!"

이를 부득 갈며 존 스미스가 도진을 노려본다.

그리고 사방에서 좀비들, 수십이 넘는 시독귀가 흐느적거리며 안개를 뚫고 나타나 도진을 포위했다.

"크허어어어……."

이미 적지 않은 수를 처리했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놈들이 이 안에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걸로는 도진을 어찌할 수 없었다.

슥-

도진이 백설의 손잡이를 쥐었다.

"……!"

스각-

다음 순간 중간 과정이 생략된 듯 백설은 뽑혀 있었고 새하얀 궤적이 공간을 갈랐다.

"허억, 허억."

존 스미스는 바닥을 굴러 흙먼지를 뒤집어 쓴 몰골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온 힘을 다해 피하지 못했다면, 두 동강이 나 죽었을 발검(拔劍)이었다.

퍼어엉!

발검술로 가속된 백설은 검기(劍氣)를 쏘아냈고 두 조각난 시독귀들이 폭발했다.

거기에 휘말린, 진의 운용에 뇌를 이용당하고 있던 마약쟁이 하나가 넝마가 되었고 문양 또한 반파되었다.

"자, 이제 우리 존 스미스는 어떻게 할까나?"

도진의 조롱에 존 스미스가 이를 부득 악물었다.

일부러 격차를 인식시키고 여유를 보이는 모습에 살기(殺氣)가 들끓어 분출하지 않고선 참을 수 없었다.

훅-!

그런 존 스미스의 눈앞에 도진이 나타나 백설을 휘둘렀다.

새하얀 검신에 서린 눈부신 검기는 이번에야말로 존 스미스를 가를 것 같았다.

"어림도 없다!!"

꽈아아앙-!

그러나 존 스미스의 일갈과 함께 그의 손에서 돋아난 시커먼 '검기'가 도진의 검을 막아냈다.

아니, 그것은 검기가 아니었다.

격돌의 순간 쇄도한 것보다 빠르게 물러난 도진이 그것의 이름을 말했다.

"독기(毒氣)……?"

존 스미스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그래. 이것이 바로 경계를 넘어선 독인(毒人)의 증명. 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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