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46화 (546/741)
  • 545화

    치이이…….

    도로를 벗어난 모래 들판에 불길한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른다.

    달리고 있는 트럭의 운전석을 또 다른 트럭이 옆에서 액셀을 최대한 밟은 채 들이박았으니 그 형태가 어떨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허나 현장의 모습은 철저하게 어둠에 가려져 있어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무장한 이들 수십이 유령처럼 나타나 포위하듯 자리를 잡았다.

    뚝. 뚝.

    액체가 틈으로 스며나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연기 소리에 섞여 퍼진다.

    그것이 기름 등의 차에서 나온 액체인지 혹은 완전히 짓이겨진 사람이었던 것인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시각만이 아닌 다른 감각 또한 있었고 진하게 퍼지는 피냄새로 액체에 피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소대의 지휘를 맡은 남자는 그러나 방심하지 않았다.

    운전수는 어차피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문제는 테러를 감행한 트럭이 아닌 테러의 대상이었던 트럭에 타고 있을 놈들이었다.

    예상대로라면 분명히 기준 이상의 고수가 타고 있을 것이었고 그 정도나 되는 고수는 이런 상황임에도 탈출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는 초인이었다.

    탈출했다면 감각에 걸리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테니 놈은 분명히 구겨진 저 트럭 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웅-!

    "……!!"

    가슴을 파내듯 서늘하고도 묵직한 소리와 함께 습격했던 트럭이 그들을 향해 쏘아졌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동요하지 않는 훈련을 받았으나 트럭이 물리 법칙을 무시하고 날아드는 광경에는 두 눈을 크게 뜨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야……!'

    본능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 생각이 단어로서 채 성립하기도 전에 트럭이 포위진을 구성하던 일부를 덮쳤다.

    꽝!

    비명은 없었다.

    그들이 받은 고도의 훈련 때문이 아니라, 비명을 지를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이 그들을 구겨 버렸기 때문이다.

    트럭을 움직이던 힘이 고스란히 거기에 부딪친 이들에게 옮겨갔고 그들은 타자가 전력으로 휘두른 방망이에 맞은 공처럼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굉음이 연속해서 터졌다.

    꽈과과과과광!!

    놀람은 잠시, 쏘아진 트럭에 휩쓸리지 않은 이들이 지체없이 소지하고 있던 소총을 갈긴 것이다.

    소음기를 달았으나 그것으로 다 억누를 수 없는 소리가 미친듯이 터져 나왔고 안 그래도 박살이 났던 트럭의 운전석에는 수많은 총격이 쏟아졌다.

    휘오오오오…….

    탄창 하나가 완전히 소모되고 거짓말처럼 침묵이 내린다.

    침묵은 어느새 일대를 완전히 채운 안개에 섞여 주변을 내리눌렀고.

    슷-

    다음 순간 뚫린 포위망을 복구했던 이들 중 한 명의 두 팔이 의지와 상관없이 늘어졌다.

    털퍽!

    그리고 실 끊어진 인형처럼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았으니 쇄골과 발목이 동시에 분쇄된 것이었다.

    "끄윽!"

    뒤늦게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때에는 이미 추가로 두 명이 더 같은 꼴이 되어 있었다.

    포위망을 구성했던 이들의 눈에 이른 공포와 충격이 일렁였다.

    '이게 무슨……!'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이 있는 이곳, '특수한 안개' 속에서 그들은 절대고수 못지 않은 감각을 가지게 된다.

    안개가 그들의 확장된 감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에 그들의 시야 또한 가리지 않는다.

    반대로 안개 속에 갇힌 이는 특수한 안개로 인해 감각이 어그러지고 시야 또한 극단적으로 좁아진단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끅."

    털퍽!

    한 명, 한 명. 확실하면서도 빠르게.

    트럭을 포위했던 부대의 구성원이 무력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흉은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감각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저 공포스러웠다.

    이해할 수 없었고 실체도 보이지 않는 위협을 대함에 있어 공포 이외에 어떤 감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쏴라!!"

    때문에 누군가가 외친 순간 그들은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었다.

    털퍽!

    꽈과과과광!!

    또 한 명이 쓰러진 순간 일대에 화망(火網)이 펼쳐졌다.

    귀신이 아닌 인간이라면, 인간인 이상 일대를 뒤덮은 총알 세례는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끅."

    "컥."

    그러나 아군의 희생을 감수한 발악 또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쓰러진 건 아군뿐이었고 흉수는 찾을 수 없었다.

    이윽고.

    털퍽.

    트럭을 포위했던 이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사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전멸했다.

    그리고 무언가 이질적인, 마치 사신의 낫이 가질 법한 서늘한 기운이 한 번 몸을 훑자 그들은 몸의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

    그렇게 습격한 이들을 모두 처리한 도진이 느긋한 걸음으로 트럭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나오도록 해."

    "망극하나이다, 소지존."

    운전석에서 위연서가 감격한 얼굴로 도진의 손을 지극정성을 다하여 조심스레 잡고 내렸다.

    "당신도."

    "으, 으으……."

    이어서 두 사람을 싣고 달리던 트럭을 운전했던 비대한 남성 또한 벌벌 떨며 트럭에서 내려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중요한 건 도진만이 아닌 위연서는 물론이요 비대한 남성마저도 다친 부위가 보이지 않았으니 도진과 트럭에 설치돼 있던 공간 덕분이었다.

    그들의 트럭을 습격했던 또 다른 트럭은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전기차라는 건 이유가 되지 않으니 애초에 80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려오는데 어떻게 소리가 나지 않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도진은 그 소리없는 습격을 퍼뜨려 놓은 감각으로 미리 감지하였고 대비를 하여 충격을 흘려내는 데 성공했다.

    경계를 넘어섰다는 건, 그리고 도진이 발을 들인 신공(神功)의 영역에서의 이치는 그것마저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진은 미리 들었던 대로 트럭의 뒷공간에 마련된 작은 대피 공간에 운전수를 우겨 넣고 그 다음 위연서까지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때문에 아무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고 도진은 우선 습격자들을 모두 무력화하고 침기까지 주입하여 자살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여, 여기는 저승입니까?"

    힘이 풀려 네발로 기던 뚱뚱한 남자가 물었다.

    그는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얼굴이었는데, 이해하지 못할 모습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레서 밀리나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주역 중 한 명, 그러니까 머리 좋고 어떤 상황에서도 너스레 떨기를 멈추지 않는 공대생과 같은 캐릭터였다면 '순간 원심분리기에 들어간 시료가 된 줄 알았어'라고 했을 상황이었다.

    비록 대부분의 충격을 도진이 모아 흩었다지만 그러고 남은 지극히 미미한 충격과 충돌 당시의 굉음, 뒤흔들리는 차체만으로도 일반인의 혼을 빼놓기엔 넘칠 정도였던 것이다.

    여기에 총알 세례가 이어졌고 겨우 살아서 밖으로 나왔다 싶었더니.

    스으으으으…….

    평범하게 어둠이 내렸던, 몇 번이고 오갔던 모래 벌판에 달빛마저 사라지고 어둠과 섞여 진한 안개가 흐르고 있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야를 차단하는 안개가 최소한의 시야를 제공하는, 상식을 벗어난 공간이 되었으니 살았던 건 착각이고 죽어서 저승에 발을 들인 건 아닌가 생각할 법도 했다.

    "인심해도 좋아요. 여기는 분명한 이승이니까."

    도진은 힘이 담긴 말로 그의 나간 넋을 붙잡아 주며 주위를 신안(神眼)으로 짚었다.

    -환영미로진보다 복잡한 진법이군요.

    환영미로진(幻影迷路陣).

    바할라에서 무형독과 대립하며 보았던 진법이다.

    안개가 짙게 끼어 주변을 식별하지 못하고 헤매게 만든다는 부분에서는 닮았으나 지금 일대를 뒤덮은 진법은 그것보다 넓고 강력했다.

    단순히 시야를 제한하고 착시 수준으로 감각에 개입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적극적으로 감각을 강력하게 혼란시킨다.

    감각이 민감할수록 오히려 이 안에서는 약화되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이 안개는.

    [통신 범위 이탈]

    통신마저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다.

    -현대의 기술마저 고려한 진이로구나.

    -예.

    휴대폰이 먹통이 되었다.

    심지어 온갖 전자 기기가 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니 위지혁의 말대로 이 진은 '무협의 진법'에 현대의 EMP, 전자기 펄스와 비슷한 효과를 담아 버린 거다.

    지금 바닥에 널브러져 무력화 되어 있는 자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있음에도 열감지 등이 가능한 전자 장비는 일절 보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더더욱, 이 진은 엄청난 범위를 뒤덮고 있으며 그 안에 흐르는 자연의 기를 이용했기에 설령 경계를 넘어선 고수라 해도 영향에서 벗어나거나 부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허허. 이 시대에 이런 수준의 진이라니. 정말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설령 위지혁이 살던 시대의 고수라 해도, 말이다.

    본래 진법이 위험한 건 그것이 자연의 기를 이용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그 흐름을 바꾸는 데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진법을 만드는 것이 물길을 만들어 흐름을 바꾸는 것이라면 진법을 깨는 건 물의 흐름 그 자체를 정면에서 뒤바꾸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진법을 상대하는 자는 개인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상대해야 하니 일개 인간의 몸으로 상대하기엔 그 힘이 버거운 것이다.

    그런 이유로 진법을 상대할 땐 흐름에 순응하면서 생로(生路),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가장 좋고 진법을 힘으로 부수는 건 방법이 없을 때 택하는 최악의 수다.

    한데 이 진은 도진의 감각으로도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 만큼 거대했다.

    이 진을 형성하며 흐르고 있는 자연의 기운을 내공으로 환산하자면.

    -설령 5갑자가 넘는 내공을 지니고 있다 하여도 깰 수 없겠구나.

    이 현대에선 이론으로나 존재하는 수치였다.

    상식적으로 볼 때 진법의 생로를 찾거나 그럴 수 없다면 진을 이루고 있는 요소를 찾아 부수는 것 외에 방법은 없어 보였다.

    -우리 제자가 아니라면 화경이라 해도 무덤이 되었겠구나.

    …그리고 도진은, 그런 상식을 벗어난 소천마(小天魔)이자 사신(死神)의 제자였다.

    도진의 신안은 무흔잠영의 이치에 따라 진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즉 생로를 찾는 것은 물론이요 깊숙이 숨겨진 진을 구성하는 요소들마저도 너무나 쉽게 찾아 파훼하는 게 가능했다.

    더더욱.

    도진은 진을 정면에서 부수는 것마저 가능했으니 경계를 넘어선 영역에 도달하여 신공, 천마군림(天魔君臨)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법은 인위적으로, 도구의 힘을 빌려 자연지기의 흐름을 조율하여 원하는 현상을 일으키는 수법이다.

    그리고 도진의 천마군림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연지기를 의지하에 두는 수법이다.

    얕디얕은 물길을 이용하여 흐름을 이끄는 것에 불과한 진법의 흐름을 도진은 스스로의 의지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제 어쩌실 겁니까?"

    뚱뚱한 남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도진은 평상시와 같은 잔잔한 기세로 말했다.

    "생로를, 찾아가야죠."

    도진은 진을 부수지 않기로 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러면 얻는 게 적어지니까.

    이것은 도진을 위해 준비된 함정이요 그를 위해 많은 자원이 동원되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을 부숴 버리면 상상도 못한 사태에 그들은 크게 놀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챙길 수 있는 걸 최대한 챙기고 내뺄지도 모른다.

    하물며 진을 부술 수 있다는, 언제고 한 번은 상대에게 치명적인 한 수가 될 패를 중요하지 않은 순간에 소모하게 된다.

    그건 손해다.

    필승의 패를 숨기고 상대의 판에 올라가 줌으로써 상대가 더 큰 금액을 베팅하게 만들고.

    '최대한 벗겨 먹어야지.'

    도진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도진은 위연서, 그리고 뚱뚱한 남자와 함께 안개로 자욱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흐어어어……."

    "호오."

    "저, 저게 뭐야……."

    제법 놀라운 상대의 패 하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