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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45화 (545/741)
  • 544화

    LA의 바다를 인접한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공방이 자리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존앤집스 공방이다.

    여러가지를 고려하여 LA의 해안가에 자리잡은 존앤집스의 본사는 우뚝 솟아 있는 일대의 랜드마크였으며 꼭대기의 공동대표실에서 보는 해안은 그야말로 선택받은 이만이 만끽할 수 있는 절경이었다.

    허나 그 절경을 만끽하고 있는 선택받은 이들 중 한 명, 존 스미스의 표정은 구겨져 있었다.

    "…나는 내가 지금 화를 낼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잔뜩 얼굴을 찌푸린 그의 시선은 조금 떨어진 위치에 선 중년 남자에게로 향해 있었다.

    존 스미스가 그렇듯 거구에 겉보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그는 대외 활동을 워낙 하지 않아 신비로운 이미지까지 가지고 있는 존앤집스의 두 대표 중 한 명, 레너 집스였다.

    레너 집스는 자신을 노려보는 존 스미스의 시선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네. 자네는 이 상황에 대해 충분히 화를 낼 자격이 있어."

    레너 집스의 인정에도 존 스미스의 표정은 더욱 구겨질 뿐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그리 천하태평인가? 나 혼자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진심으로 행동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레너 집스가 좀 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진짜 고수는 돈과 시간만으론 아무리 투자해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존, 자네는 돈과 시간만으론 얻을 수 없는 고수이며 명성과 부를 동시에 쥐고 있는 지배자이지."

    "그런 자네를 우리가 진심으로 대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번지르르한 말은 집어치우지. '회'의 참석 자격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이제 나는 믿을 수 없어."

    "……."

    그것은,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회(會).

    지극히 일부의 지배자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무형독 그 너머에 있는 진체(眞體)를 뜻하는 단어가 존 스미스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존 스미스의 말대로라면 레너 집스는.

    존 스미스를 축출하기 위해 손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던 레너 집스는 이미 회의 일원이었다.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나왔으나 레너 집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존 스미스의 화를 평온하게 받아주던 표정 그대로, 말했다.

    "그러도록 하지."

    "…뭐?"

    "자네는 충분히 우리가 믿고 신뢰할 수 있을 만큼의 행동을 보여 주었어. 회의 가입을 내가 직접 추진하도록 하지."

    "……!!"

    방금까지의 화를 다 잊고 존 스미스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

    회.

    그것은 '하늘 밖에 있는 진짜 무림'이다.

    무지몽매한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존재를 알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그리고 존 스미스는 그 하늘 밖 진짜 무림의 진체를 이미 일부 맛보았고 다시는 땅을 기는 인간으로 사는 걸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곳에, 원하던 그곳에 드디어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존 스미스의 머리를 일순 마비시킬 정도의 쾌락을 선사했다.

    그런 존 스미스를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담으며 레너 집스가 말했다.

    "다음의 회의부터 자네가 참석할 수 있도록 건의하지.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도록, 자네에게 한 가지 회의 일을 맡기려 하는데 받아들이겠나?"

    '다음'은 몇 번이고 나온 단어였기에 다시 표정이 일그러지려던 존 스미스가 뒤에 나온 말에 물었다.

    "무엇이지?"

    "김도진. 우리와 대립하며 큰 피해를 입힌 그를 징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해졌다. 이에 따라 이번 일을 통하여 징벌을 내리기로 하였는데 그 일을 자네가 맡아보면 어떨까 싶군."

    "……."

    "놈들이 알아챈 '그곳'에는 자네도 알다시피 운해이몰진(雲海泥沒陣)이 준비되어 있다."

    "그 말은?"

    "그래. 자네의 수고로 완성된 운귀대(雲鬼隊)가 파견될 거다. 그 지휘를 자네에게 맡긴다면, 자네의 믿음을 살 수 있지 않겠나?"

    레너 집스가 물었다.

    그리고 존 스미스의 입이 귀신과 같은 곡선을 그렸다.

    "…성의가 느껴지는 제안이로군."

    * * * *

    "무언가 단서를 쥐고 있는 거 같은데, 설명해 줄 수 있는 건가?"

    존 스미스의 뒤를 캐볼까 한다.

    그 말을 하는 빌리 플로이드의 얼굴에서 믿을 만한 패를 쥐고 있다는 걸 읽어낸 도진이 물었다.

    빌리 플로이드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바로 말하지 않고 레서 밀리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곱게 자란 사람이 듣기엔 좀 어려운 말이 될 거야. 괜찮은가?"

    레서 밀리나는 빌리 플로이드의 말에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의 일이니까요."

    "…좋아. 그럼 설명하지."

    빌리 플로이드는 한 번 더 묻지 않고 자신이 아는 정보를 풀어놓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어."

    유쾌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런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삶이었다.

    그들은 할렘가 출신이었고 부모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말이 농담조차 되지 않는 곳에서 살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이 깊고 어두운 할렘가 안에서 마약 운반 등의 심부름을 했던 건, 죄를 묻는 쪽이 오히려 죄를 짓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일이었다.

    "뭐, 지금은 손 털고 깨끗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 반성회를 하자는 건 아니고, 그렇게 살다 보니 양지로 나온 지금도 최소한의 끈은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어디에도 '착한 사람'은 있다.

    그가 사는 곳이, 사는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착한 사람은 있는 법이었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던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는 인연을 끊지 않았던 것이다.

    기실 빌리 플로이드의 회사가 할렘가의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며 내놓는 기부금의 이유도 그들이었다.

    "존 스미스가 열었던 파티에 마약을 공급한 이들이 같은 동네의 장사꾼이었어. 입이 가벼운 아저씨들은 아니지만…… 그것도 술에는 둥둥 뜨는 법이지."

    레서 밀리나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빌리 플로이드가 그녀의 시선을 의식해 말했다.

    "마약 파티 자체는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존 스미스가 참석하는 파티가 그렇게 쉽게 꼬리를 잡힐 리가 없잖아?"

    "…네."

    "하지만 다른 데서 꼬리를 잡을 수 있었지."

    "다른 곳……!"

    "그래. 이 아저씨들은 기본적으로 물건 배달꾼이잖아? 그러다 보니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루를 돌아가는 길에 배달하기도 한단 말이야. 자루의 안에 있는 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사람이었고."

    "……."

    그들은 마약을 운반하고 돌아가는 길에 웃돈을 받고 가끔씩 '자루'를 운반했다고 했다.

    내용물은 확인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기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무엇이 들었을지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 자루는 마약과 함께 어느 주유소에 배달됐어. 그리고 거기서 아저씨들은 마약에 취한 놈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었던 거야."

    "이번에 들어온 건 여배우라 그런가 하는 맛이 있단 말이야, 라고."

    레서 밀리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케, 케이트? 케이트가 거기서……."

    빌리 플로이드는 그런 레서 밀리나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들이 말하는 건 시체야."

    "……아?"

    "거기서는 장기를 가공하고 포장해서 판매해. 그리고 그들은, 맛이 가 버린 그들은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장기를 다 떼고 남은 껍데기를 방부 처리해서 인형으로 쓴다는 이야기지."

    "……우웁!"

    그래도 어느 정도는 돌려 말한 걸 뒤늦게 이해한 레서 밀리나가 입을 막은 채 화장실로 뛰어갔다.

    …차라리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나았을 이야기였다.

    차마 말로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모두는 잠시 침묵했다.

    빌리 플로이드가 침묵을 깨고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거기서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케이트를 찾자는 거군."

    "맞아. 그리고 그 외에도 무언가, 분명히 단서가 될 장부 같은 게 있겠지. 그거라면 존 스미스라도 때려눕힐 수 있을 거야."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기실, 바할라의 정보부가 더해진 천마신교의 세이전이 나섰음에도 케이트가 문자에서 말한 '존 스미스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을 수 있는 무기'를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문자의 내용은 허구고 문자 자체가 본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는 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끔찍하지만, 그들의 작업장에 죽어서도 편치 못한 케이트를 찾을 수 있다면.

    그녀의 육신을 구원할 수 있었고 존 스미스에게 천벌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아. 한 번 해 보자."

    "가능한,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하니 바로 조율해 보도록 하지."

    "그래."

    * * * *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와 저녁을 함께 한 다음날 자정이 가까운 시각.

    도진은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빌리 플로이드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자정이 넘어 귀가하였으나 잠들지 않고 레서 밀리나까지 함께 모인 자리에서 나지윤과 영상 통화를 이용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빌리 플로이드의 말대로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으니 지체하지 않고 검토 후 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오케이."

    해가 뜨기도 전에 결론을 냈고 빌리 플로이드가 움직였다.

    그리고 지금.

    도진은 위연서와 함께 빌리 플로이드, 그리고 빌리가 데려온 비대하게 살이 찐 남성을 마주하고 있었다.

    "거기로 물건을 보낼 사람이야."

    "…잘 부탁해."

    예의 작업장으로는 비정기적으로 마약을 실은 트럭이 배달을 갔다.

    맛이 간 작업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한 마약이다.

    이번에 거기에 도진과 위연서가 함께 가게 됐다.

    도진은 무흔잠영의 이치에 따라 평범한 남성으로 분위기가 일변해 있었고 위연서 또한 마스크에 후드까지 눌러써 얼굴을 감췄다.

    위연서는 공식이 아닌 비공식으로 함께 왔고 그동안의 일정에서 얼굴을 비추지 않았기에 이곳에 온 것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멤버였다.

    이렇게 둘이 배달부와 함께 가고 나머지는 신호하면 들이닥칠 본대다.

    배달부는 도진과 위연서의 정체는 몰랐으나 '위험한 것'을 배달한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긴장한 얼굴이었다.

    평범한 마약상인 그는 빌리에게 큰돈을 받고 위험을 감수하기로 했고 돈값을 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부우웅-

    트럭이 움직였다.

    목적지는 오직 쭉 뻗은 도로뿐인 길을 따라가다 보면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는 주유소다.

    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길을 가다 보이는 그런 주유소.

    불친절하고 가격도 비싸다는 소문이 퍼져 뜨내기를 제외하고선 가지 않는 곳.

    그러나 그렇기에, 뒤가 구린 일을 은밀하게 벌이기에 최적이었다.

    하물며 트럭 같은 차량이 들려도 무엇 하나 이상할 게 없다.

    두 시간은 걸릴 거리였기에 달리는 중에 도진은 생각을 정리했다.

    나지윤이 말했었다.

    -함정일 수도 있어.

    -그래?

    -응. 이상한 이야기지만, 무형독은 가끔 가다 전자 기기에 미숙해야 나올 틈을 보이곤 해.

    -큰 시야에서의 미끼일 확률이 높다고 했지?

    분명한 미스이지만 사고의 빈틈을 찌르기에 의식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그렇기에 미끼일 확률이 높은 틈이었다.

    -그동안은 긴가민가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어.

    -오케이. 조심할게.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주유소는 존 스미스의 치명적인 약점과 연관되어 있다.

    설령 오늘의 움직임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다 해도 유사시를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을 터.

    도진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자정을 넘어 시커먼 세상에 트럭만이 덩그러니 남은 듯한 곳에서.

    "……!"

    길이 아닌 곳을 달려온 거대한 트럭이.

    꽈아아아아아아앙-!!

    도진과 위연서가 타고 있던 트럭을 포탄처럼 들이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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