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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44화 (544/741)
  • 543화

    "인정할게. 너는 최고야!"

    카톤은 시원스레 도진을 인정했다.

    자신있게 나서서 참패하고 바닥에까지 나뒹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뒤끝없이 도진을 인정하고 엄지를 치켜세웠던 것이다.

    "와우!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대단한데! 카톤은 힘으로는 블랙 레오파드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카톤만이 아닌 지켜보던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 모두가 그랬다.

    도진을 둘러싸고 어떻게 그 정도나 되는 힘을 낼 수 있는 거냐, 정말로 감탄했다는 등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 덕분에 처음에 약간 삐끗했던 도진 일행과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는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어울려 운동할 수 있었고 저녁 약속을 잡았다.

    "약속했으니 저녁을 쏴야겠지! 준비해 둘 테니까 꼭 와 줘!"

    "그래, 늦지 않게 갈게."

    카톤은 대결 중 말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했다.

    그것도 그냥 저녁을 쏘는 게 아니라 베벌리 힐스에서도 유명한 클럽 하나를 전세내는 플렉스를 보여 주었다.

    그렇게 저녁 약속을 잡고 헬스장을 나와 레서 밀리나의 다음 스케줄로 향했으니 예의 드라마의 시즌2 제작을 위한 미팅이었다.

    혹시 모를 유출 등에 관한 문제로 미팅이 진행중인 공간에는 경호원이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이 부분은 문 바로 바깥에 도진이 대기함으로써 커버했다.

    그리고 미팅 후 자투리 시간에 연예인들을 전문으로 경호하는 이들에게 물었다.

    "회의장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면 경호에 공백이 생기는데 어떻게들 해결하시나요?"

    소천마의 명성은 미국에서도 통했던지 그들은 친절한 얼굴로 설명해 주었다.

    "그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전에 해당 장소와 함께 있게 될 인물에 대한 조사를 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이는 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죠."

    "그렇군요."

    "뭐, 애초에 미팅 중에 연예인을 살해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 말대로였다.

    이 또한 기인지우.

    가는 곳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명탐정의 탈을 쓴 사신이 돌아다니지 않고서야 드라마 제작을 위한 미팅 중에 살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리고 특약 사항으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경호팀의 책임이 없다는 걸 명확하게 기입한다고 했다.

    "오늘 스케줄은 여기서 끝이군요."

    "네! 이 뒤로는 자유시간이에요."

    레서 밀리나의 오늘 공식 스케줄은 미팅으로 끝이었다.

    인기 연예인이라고 해서 매일매일 잠도 못 잘 만큼 바쁘지는 않다.

    특히 레서 밀리나는 미성년자인데다 지금이 휴지기였으니 아무래도 더 여유가 있었다.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 좀 쉬기로 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휴대폰을 보던 레서 밀리나가 웃으며 자신이 보고 있던 화면을 도진에게 보여 주었다.

    "헬스장에서의 일이 벌써 화제가 됐네요."

    "하하. 그런가요?"

    "네! 하긴,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죠."

    레서 밀리나의 휴대폰에 띄워진 사이트는 '일간 하오문'이었다.

    그래. 무협지에 흔히 등장하는, 숭무고의 축제 때마다 치킨을 팔던 이들의 문파인 그 하오문이다.

    일간 하오문은 이슈를 취합하여 게시물로 작성, 업로드하는 사이트로 일간 신문의 웹사이트 버전이라 설명할 수 있다.

    웬만한 나라의 언어는 다 지원하였으며 나라마다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류해 두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포함한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게시물을 업로드하였고 댓글 기능까지 있었기에 그야말로 대단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이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사이트에 도진과 카톤이 대결을 했던 일이 업로드 됐고 베스트 1위를 차지할 만큼 화제가 되어 있었다.

    -아니 ㅋㅋ 저게 말이 되냐?

    -아 물리 엔진 일 안하냐고!!

    -물리 엔진 : "몰?루"

    겉으로만 보면 아예 말이 안 되는 대결이었다.

    유치원생과 격투기 선수만큼이나 체급에서 차이가 나는데 힘싸움이 어떻게 성립하느냔 말이다.

    한데 그게 성립했다. 성립하는 걸 넘어 결과가 정반대였다.

    -아 ㅋㅋ 조작도 이렇게 하면 욕먹겠다 ㅋㅋㅋㅋ

    -그런데 조작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ㅋㅋㅋ

    -진지하게 말하자면 숭무고에서도 외공으로 유명한 학생들이 싸그리 김도진한테 압살당했었음;; 김도진 이거 보는 거랑 실제 힘이 완전히 다름;;

    -ㅇㅇ 아는 사람들은 앎. 김도진이 사실은 힘 존나 세다는 거;

    -저 정도면 내장형 근육 보유자라고 봐야지.

    -내장형 근육이 뭥미?

    -그것도 모름? 애니 안봄?

    -그걸 왜 봐 씹덕아;;;

    -아니 이런 것도 모르면서 뭐가 그리 당당함? 공부좀 하셈;; 아니면 핑프임?

    -아니, 아;; 아 십;;;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십덕역전세계냐 ㅋㅋㅋ

    레서 밀리나가 메시지로 보내준 주소를 통해 글을 확인한 도진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하오문이 사이트를 잘 만들었네.'

    시야가 넓어지다 보니 도진은 글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보고 생각한다.

    일간 하오문은 단순한 이슈 사이트가 아니다.

    처음엔 그들이 직접 글을 올렸지만 이제는 이용자들이 올리는 글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가 '정보'가 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세상의 수많은 이슈이자 정보가 빠르고 정확하게 하오문으로 모이는 것이다.

    그들이 발로 뛰지 않음에도, 보상을 주지 않음에도 수많은 일반인들이 하오문의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다.

    심지어 그 눈과 귀 중에는 베벌리 힐스의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이조차 있었다는 거다.

    모자이크를 했으나 충분히 구도를 통하여 촬영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 그에 대한 정보를 나지윤에게 보내 주기로 하면서 도진은 사이트를 껐다.

    도진이 호위를 하는 동안 머물기로 한 부모님의 저택에서 레서 밀리나는 정말로 편하게 쉬었다.

    그리고 도진이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 그러니까 빌리의 친구 중 한 명인 카톤과의 저녁 약속에 갈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꾸미기 위하여 샵으로 향했다.

    그녀 또한 그 약속에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레서만 꾸미지 말고 기왕 여기 온 거 지은 선배랑 소담이 너도 꾸미고 가자."

    "오, 그럴까?"

    "나, 나도?"

    "응. 우리 소담이는 꾸미면 반칙이긴 하지만 까짓거 반칙 한 번 하지 뭐."

    "에, 에헤헤……."

    "아! 물론 선배도 꾸미면 반칙인데 둘이 같이 반칙하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와, 빠르네. 후배."

    "제가 좀 빠르죠."

    유지은의 불만이 나오기도 전에 신속하게 처리한 도진에 의해 소담과 유지은도 한껏 세팅을 하고 가게 됐다.

    외국과 한국의 화장법 등이 달랐으나 한국인을 위한 메이크업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마디 더 얹자면, 소담과 유지은은 지금 교대를 하였기에 자유 시간이어서 근무 태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껏 꾸미고 나니 정말로 감탄이 나오는 여성진이 갖추어졌다.

    레서 밀리나도 여배우로서의 아우라가 있었지만 소담과 유지은도 그에 밀리지 않는, 도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훨씬 앞서는 아우라를 뽐냈다.

    "와우! 뭐야. 친구, 여신들을 데려왔잖아."

    먼저 와 전세를 낸 클럽에서 기다리고 있던 빌리 플로이드를 포함한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가 그들을 열광하며 맞이해 주었다.

    "카톤! 돈 썼다고 징징거리더니 그 말 철회해라!"

    "그래! 이런 여신들을 볼 수 있다면 나도 얼마든지 클럽 전세낼 수 있다고!"

    그들이 워낙 열렬하게 맞이해 주었기에 한껏 기분 좋게 클럽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출장 뷔페가 내놓은 맛있는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술판이 아니라 우선 배부터 채우며 예열했고 그 뒤에 술과 음악을 즐기며 신나게 놀았다.

    본래 내성적인 집돌이였던 도진은 어깨를 들썩이며 그 분위기를 만끽했다.

    '괜찮네.'

    사실, 빌리 플로이드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도진과 잘 맞는 타입은 아니었다.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는 더더욱 그러했으니 그들 대부분이 할렘가에서 '여러가지 심부름'을 하며 자랐다.

    그러니까 그들은 신사적이고 예의 바른 이들이 아니라 거칠고 또 기분파였다.

    만남의 형태가 나빴다면 도진은 그들을 빌런으로 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빌리 플로이드가 중심이 된 무리의 그들은 빌리의 호의에 전염되어 도진 일행을 친절하게 대했고 결코 선을 넘지 않았으니 도진도 기분 좋게 그들의 호의를 받았다.

    기분파라는 건 나쁜 방향으로 가면 한없이 나빠지겠지만, 또 좋은 방향으로 가면 굳이 그 방향을 틀거나 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진은 그들과 어울려 함께 밥을 먹었고 농담을 주고 받았으며 술 대신 콜라로 건배를 했다.

    그렇게 신나게 먹고 마시고 놀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졌다.

    시간으로는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할 만한 때였지만 3시간이 넘게 놀았으니 조금 소강 상태인 분위기가 되었다.

    그 분위기에서, 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서 나에게 할 이야기가 뭐야?"

    빌리 플로이드의 눈꼬리가 아주 조금 움찔했다.

    그리고 답했다.

    "역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대놓고 신호를 주는데 모를 수가 없지."

    이 자리는 처음부터 의도된 자리였다.

    그래. 빌리 플로이드의 블랙 레오파드 패밀리는 도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카톤이 '일부러' 시비를 걸었고 그 대가로 이 자리를 마련하도록 계획했다.

    그 의도에 존 스미스가 섞여 있을 거라는 걸 도진은 짐작할 수 있었고 그랬기에 굳이 레서 밀리나를 포함하여 여기에 참석한 것이었다.

    애초에 호위의 역할을 생각하면, 그 외 여러가지 면에서도 레서 밀리나를 굳이 식사를 대접받기 위해 여기 데리고 오는 건 이유 없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배도 채웠고 즐길 만큼 즐겼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시간이었다.

    여전히 음악이 흐른다.

    그러나 그 음악을 겉돌게 만드는 고요함이 도진과 빌리 플로이드를 중심으로 하여 퍼져 나갔고 소담과 유지은, 레서 밀리나가 다가와 앉았다.

    빌리 플로이드는 술을 한 모금 마시고선 전혀 취하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보아하니 다들 짐작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러면 말하기가 편하겠어. 그래, 맞아. 나는 존 스미스와 관련해서 할 말이 있어서 이 자리를 만든 거야."

    "미리 말하는데 나는 존 스미스가 무얼 하는지, 레서가 무엇 때문에 거기에 휘말렸는지 자세히는 몰라."

    "다만 한 가지. 나는 존 스미스를 싫어하고 가능하면 한 방 먹여주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여기저기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들은 것들이 여럿 있었어. 그중 하나가, 존 스미스가 케이트를 살해하고 묻었다는 거지."

    "……!!"

    레서 밀리나의 눈이 커진다.

    도진의 일행 또한 조금 더 집중한 얼굴이 되었다.

    "존 스미스가 케이트를 살해하고 시체를 은닉했다고?"

    도진의 물음에 빌리는 확신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존 스미스는 케이트를 포함한 약쟁이들을 은밀히 불러 파티를 열었고…… 거기서 케이트를 살해하고 시체를 빼돌렸어."

    "직접 본 건 아니겠지?"

    "그래. 직접 본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확신에 가까운 정황 증거가 있는 거지. 그래서 제안하고 싶어."

    빌리의 눈이 도진의 일행을 한 명 한 명 응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진과 눈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한 번, 존 스미스의 뒤를 캐볼까 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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