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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40화 (540/741)
  • 539화

    레서 밀리나.

    전생에서는 전혀 접점이 없던 인물이었다.

    연예인과 접점이 있을 수 없는 삶을 살았고 TV 너머로 스쳐본 것조차 머릿속에 담아두지 않았으니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인연이 생겼으니 그녀가 정글 게임 첫 에피소드의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넷비전과 손을 잡으면서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외국의 스타들을 섭외한 것이다.

    그래서 바른 엔터 대표로서 어느 정도 정보를 숙지하고 있었고 오늘의 만남으로 더 상세해졌다.

    그녀는 한 마디로 하이틴 스타였다.

    하이틴 장르의 미드, 그러니까 미국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여 오히려 주연보다 돋보이면서 이름을 알렸고 시즌을 거듭하며 이내 주연으로 올라섰다.

    지금의 그녀는 주목받는 신예이면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무림인으로 치면 봉(鳳)의 별호가 붙는 후기지수 급의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기할 만한 부분은 그런 그녀가 한국의 방송에도 제법 얼굴을 비췄다는 점이다.

    지금이 아닌 전생에서.

    미국의 하이틴 스타가 굳이 한국을 찾을 이유는 없었을 텐데 그녀는 '굳이' 한국에서의 활동을 병행했다.

    이 부분은 위지혁과 장호를 통해 들었다.

    -그 연예 프로그램 있지 않느냐. 거기서도 봤고 몇몇 예능에도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전생의 도진이 관심을 두지 않고 단편적인 부분만 봐서 기억하지 못한 부분을 위지혁과 장호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덕분에 획득한 정보다.

    일반적으로는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넘어가면 그만인 일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하다.

    '무언가 이유가 있어 한국에 온 거였다면?'

    이번의 경우에야 넷비전이 공을 들인 정글 게임에 참여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었고 홍보차 한국에 방문하는 것 또한 어색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생에서는, 잘 나가는 미국의 신예 하이틴 스타가 굳이 한국까지 올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가 온 것 같았다.

    도진으로 인해 시작된 나비 효과의 규모가 제법 커졌다지만 이 부분까지 완전히 달라지진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내일.

    도진은 한 번 그 이유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붙잡음으로써.

    * * * *

    학교를 졸업하고 가용 시간이 크게 늘어난 도진은 요즘 6시간이나 수면에 쓰고 있었다.

    고수이면서 사회적으로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평균 수면 시간이 낮잠을 포함해도 아슬아슬하게 4시간을 채우는 데에 비교하면 아주 긴 시간이다.

    물론 게으름은 아니었으니 심상세계에서의 수련 시간을 늘린 게 이유였다.

    "너는 드디어 신공(神功)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위지혁은 그렇게 말했다.

    신공의 세계.

    그것은 비유하자면 2차원에 살던 존재가 3차원으로 넘어온, 말 그대로 한 차원 도약한 것에 댈 수 있을 만큼 세계가 달랐다.

    '재능이 없는' 도진은 더 노력해야 했고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가기 위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련 시간을 늘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깨달음을 기상하여 연신극기공과 함께 더 가혹한 수련으로 육체에 새겼고 회복을 위해 더 긴 수면을 취하는 생활의 반복이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오냐. 좀 쉬엄쉬엄하거라, 제자야."

    "하하. 알겠습니다."

    오늘의 심상 수련을 마친 도진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눈을 감았고 곧 사라졌다.

    위지혁은 제자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허허 웃었다.

    "내 살다살다 제자한테 쉬엄쉬엄하라는 소리도 다 해 보는구나.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형님과 제가 좀 오래 살긴 했지요."

    두 스승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도진이 현실에서의 눈을 뜨고 외출을 준비했다.

    연신극기공으로 가볍게(?) 몸을 풀면서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암산서가의 본가.

    그러니까 소담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졸업 후 도진의 근래 일과에는 암산서가의 본가로 소담을 만나는 시간이 고정되어 있었다.

    "도진아."

    "잘 잤어?"

    "응."

    대문 앞 그림처럼 서서 도진을 기다리는 소담과 인사하고 안에 들어선다.

    인사를 나누고 바로 연무장으로 향하면 그곳에는 암산서가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이들이 무복을 갖춰입고 기다리고 있다.

    "그럼, 오늘의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예!"

    우렁차게 인사하는 그들에게 도진은 진천공을 가르쳤다.

    신공(神功)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진천공은 그렇기에 누군가의 가르침없이는 습득하기가 지난(至難)했다.

    윤상미의 경우처럼 몽련(夢練)의 술(術)을 쓰는 게 아니고서야 먼저 길을 간 스승의 이끎이 필요했고 도진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실한 이들이었기에 '아주 조금' 육체 단련을 하면서 깨달음을 몸에 새길 수 있도록 지도한다.

    한 시간을 그렇게 가르쳐주면 감동한 그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온몸으로 땀을 눈물 대신 흘리고 도진은 거기서 유일하게 예외인 소담과 개인적인 시간을 30분 가량 가지는 것으로 암산서가에서의 일과는 마무리된다.

    "내일 보자."

    "응. 내일 봐."

    역시나 대문 앞에서 그림처럼 서서 배웅하는 소담과 헤어져 다음 장소로 향한다.

    다음 목적지는 천마신교 본단 공사 현장이다.

    밑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중인데 터의 중앙으로 거대한 건물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것이 특히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완성되면 50층 아파트 정도 높이라고 했지.'

    현대의 건축은 자연을 벗삼아야만 한다.

    내공의 근원이 자연의 푸르름이기에.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건 절대적인 의무가 되었다.

    이에 따라 천마신교 또한 터가 된 산이 사유지가 되었지만 마음대로 훼손할 수 없었고 이에 따라 제시된 대안이 '빌딩'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높이가 50층 아파트 정도였으니 산의 높이까지 고려하면 손꼽히는 높이의 건물이 될 예정이다.

    서울에서의 높이 제한 규제가 철폐되었다고는 하나 이 정도나 되는 공사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 제법 많은 수고가 들었다.

    이 부분에 해박한 총괄부의 오성아와 한유아는 배를 부여잡고 속이 쓰려 했는데.

    "아니, 이렇게나 낭비를……."

    "인맥의 부족을 절감하게 되네."

    …라고 했었다.

    뭐, 확실히 그랬다.

    이런 일은 어쩔 수 없이 인맥에 따라 코스트를 줄일 수 있었는데 천마신교와 바할라는 한국에서 그런 인맥을 단단히 구축하지 못했으니까.

    금화의 한유성이 훼방을 놓지 않은 게 다행이었고 그나마 우벽진을 포함하여 인맥의 인맥이라도 활용할 수 있었던 게 성과였다.

    다만 슈미트라는 의견이 달랐으니.

    "조금 더 주니까 다 해결이 되다니, 한국은 편하군요."

    돈을 복사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그러했다.

    도진은 그렇게 허가가 난 공사 현장의 중심을 올려다 보았다.

    이 거대한 '빌딩' 안에는 주차장은 물론이요 헬기 착륙장에 수영장과 정원도 들어갈 예정이다.

    그래, 정원이 들어간다.

    약 30층까지는 평범한 빌딩이지만 그 위는 디자인이 확 달라진다.

    리을, 그러니까 'ㄹ' 모양으로 외부를 다 덮지 않고 중간중간 안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짓는다.

    첨단 공법에 첨단 과학까지 더하여 몇 개의 기둥을 세워 하중을 지탱하는 형태가 되는데 그렇게 드러난 곳에 정원과 수영장 등이 들어가는 것이다.

    무려 30층 이상의 높이에서.

    도진은 그렇게 완성되는 빌딩의 조감도를 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지? 자네도 과하지 않지만 특이한 걸 좋아하니까."

    "네. 마음에 쏙 드네요."

    고층 빌딩을 그런 식으로 쌓아 올리고 내부를 드러나게 하며 중간에 정원을 넣다니.

    외견은 물론이요 특이함까지도 도진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진의 취향을 저격한 빌딩의 공사에는 우벽진만이 아닌 김서우도 참여하고 있었다.

    의천검가가 도진에 의해 현판을 잃고 반쯤 몰락했지만 김서우는 사표를 회수하지 않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하여 나온 퇴직금으로 김서우는 빚을 완전히 청산했다.

    예정보다 빠르게 빚을 갚은 것이다.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드디어 내려놓은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도진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

    "그래, 도진아."

    "이번 공사, 도와주세요."

    "내가?"

    "네. 우리집인데 믿을 만한 사람이 봐 주면 좋잖아요. 그리고 아버지보다 믿을 만한 사람은 없을 테구요."

    "…그래. 그렇구나."

    아들이라는 관계를 이용하여 도진은 아버지에게 거절할 수 없는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김서우는 번아웃에 빠질 틈도 없이 급하게 회사를 차리고 이번 공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여기에 벽태웅의 문파가 김서우를 많이 도왔다.

    벽태웅이 목표로 하는 업계의 기술과 노하우를 김서우가 아낌없이 전수해 주는 중이었다.

    그리고…… 화온이다.

    한유아가 총괄부를 맡으면서 민지서와 함께 온 화온의 인재들은 자연스럽게 천마신교의 사무 부분에서 재능을 발휘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천마신교의 개파 후 오성아가 과로사하지 않을 수 있었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다.

    본래 큰일을 진행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이 그 일을 함께 해 줄 인재를 구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도진은 오성아와 한유아에 화온의 인재들을 시의적절하게 얻었으니 큰 행운이라 할 만했다.

    '오케이.'

    도진은 치안 유지 업무 또한 문제없음을 확인하고서 다음 장소로 향했다.

    다음 장소는 평소의 일과에는 포함되지 않던 곳이었으니 바른 엔터테인먼트 본사였다.

    대표 자리에 앉아 있지만 실무를 온전히 김성덕을 포함한 전문가들에게 맡겼기에 매일같이 찾진 않는 곳이다.

    다만 업무만큼은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오늘의 촬영을 마친 레서 밀리나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성 매니저와 함께 있는 레서 밀리나는 평소처럼, 연예인처럼 빛나고 있다.

    그러나 그 눈 안에 맹수에게 쫓기는 듯한 공포가 숨겨져 있었으니 도진의 눈은 숨겨진 공포를 꿰뚫어 보았다.

    "오늘 스케줄은 다 끝나셨나 보네요."

    "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이곳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렇군요. 아, 혹시 괜찮다면 스케줄 관련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아주 조금, 도진의 제안을 반기는 감정이 연기자의 가면을 뚫고 드러났다.

    그리고 그녀는 매니저와 함께 도진의 대표이사 집무실에 들어섰다.

    각자의 앞에 차가 놓이고 도진은 레서 밀리나와 매니저의 눈을 한 번씩 본 뒤 말했다.

    "여기 매니저 분은 믿을 수 있는 분인가 보네요."

    "……! 아, 네. 맞아요. 제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예고도 없이 본론에 들어가자 레서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메시지의 내용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요?"

    도와 달라. 그리고 할 말이 있다는 메시지.

    그에 대해 레서가 빠르게 말했다.

    "무서운 사람들이 저를 노리고 있어요."

    "처음엔 누군가가 몰래 제 물건을 뒤진 흔적이었어요. 심지어 조금 지나니 저의 집에도 침입한 흔적이 있었어요. 악성팬이라 해도 두려운 일이죠. 한데 아무래도, 단순 악성팬이 아닌 것 같아요."

    "악성팬이 아니라면요?"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나온 이름은,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 유지은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름이었다.

    "존 스미스. 그 사람이 저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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