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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39화 (539/741)
  • 538화

    그 이야기.

    유지은이 말하는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짐작가는 게 딱히 없었기에 도진이 물었다.

    "무슨 이야기요?"

    "응, 내가 이번에 미국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말야."

    "네."

    "존앤집스 공동 대표 중에 존 스미스 관련해서 안 좋은 소문이 돌고 있더라."

    "존 스미스요?"

    "응."

    생각지 못했던, 예상 외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존 스미스.

    본래 세계 1위였으나 우벽진에 의해 세계 2위가 되어 버린 공방, 존앤집스의 두 명의 공동 대표 중 한 명.

    호주 출신의 미국인인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에 성격도 좋지 않아 빌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참교육을 해 줄 용의가 있는 인물로 도진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연예인들을 별장에 불러서 마약 파티를 벌이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돈으로 입막음 했다는 카더라 통신이 돌고 있었어."

    "흐음. 의외네요."

    "응. 그렇지."

    돈 많고 유명한 이들에게 추문, 안 좋은 이야기가 따라붙는 건 흔한 일이었지만 그것도 존 스미스 정도의 거물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대의 '공방'은 무림에 필수불가결한 것이었으며 명장쯤 되면 현대의 과학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신비'를 만들어내는 이로서 존중받았고 대체 불가의 인적 자원으로 국가 차원에서의 대접을 받는다.

    이런 시대에 존 스미스는 명장이자 여전히 규모로는 세계 1위 공방인 존앤집스의 두 대표 중 한 명.

    하찮은 찌라시가 도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물이란 소리다.

    그런 인물의 찌라시가 돈다는 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전의 조짐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레너 집스가 존 스미스를 축출하려고 공을 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었어."

    이런 음모론이 어느 정도는 설득력을 가질 정도로.

    '레너 집스.'

    존 스미스, 그리고 존앤집스가 내세운 후기지수였던 빌리 플로이드와 대립했던 세계 장인 박람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는 존앤집스의 공동 대표이지만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할 만큼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아 관련한 이야기도 적었다.

    존 스미스와의 사이가 나쁜지 좋은지조차 모를 만큼.

    "관심을 가져볼 만한 사항인 거 같네요."

    존앤집스는 타국의, 미국의 공방이지만 퀄리티로 그들을 누르고 세계 1위로 인정받은 공방이 천마신교와 함께 하는 만큼 업계의 거물에 관해서는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다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지윤이라면 이미 이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도진이었다.

    그렇게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유지은의 앞에 놓였던 팥빙수가 바닥을 보였다.

    도진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또 하나의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있으실 거죠?"

    "응. TV 나오는 거 안 싫어해, 나."

    TV.

    그러니까 방송 스케줄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웅성웅성-

    외곽에 앉은 두 사람의 눈을 포함한 감각을 창문 너머의 웅성거림이 채운다.

    가운데 무언가를 두고 사람들의 무리가 따라 움직이며 일어나는 웅성거림이다.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도진은 이미 알고 있었고 유지은 또한 알았다.

    이내 인파가 갈라지며 안의 모습이 드러난다.

    "대표님!"

    유리 너머로 도진을 그렇게 부르며 붕붕 손을 흔드는 건 그룹의 큰언니, 그러나 작은 체구의 설현주였다.

    그 옆으로 수많은 관심과 분위기에도 특유의 거북이를 닮은 느릿함이 흔들리지 않는 셋째 은미소, 그리고 시크한 냉미녀의 외모를 타고났으나 그룹 내 먹이사슬 최하위에 있는 막내 설하은까지.

    안티체리의 세 사람이 카메라를 대동한 채 유리 너머에 있었다.

    심지어 중단발에 고양이상 미녀인 레드슈의 리더 박소진까지 함께였으니 이토록 인파가 몰리는 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와 미친."

    "아니 갑자기? 안티체리가? 레드슈까지?"

    주변의 웅성거림이 심해진다.

    크게 놀라 섭음술을 잊은 이들마저 있을 정도였다.

    방송의 소재로 연예인이 갑자기 나타나는 '게릴라 데이트' 같은 콘텐츠가 있다는데 그걸 여기서, 그것도 소천마를 안티체리와 레드슈가 만나러 오는 걸 실제로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이돌들은 일견 편안한 차림으로 보이지만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그러나 미모가 돋보이도록 더더욱 신경쓴 모습이었기에 그야말로 빛이 난다.

    그런 아이돌들이 촬영팀과 함께 다른 사람도 아닌 소천마이자 바른 엔터의 대표를 만나러 왔으니 말 그대로 대박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 모든 게 정말로 게릴라, 진짜 돌발 사건은 아니었으니 오히려 예고된 일이었다.

    프라이버시가 특히 중시되는 사회다.

    촬영, 방송이라는 이름으로 방종이 용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때문에 누군가를 촬영할 일이 있다면 공고를 하고 그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초상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같은 선상에서 도진 또한 오늘의 만남에 대해 이미 들었었다.

    오늘의 만남, 방송의 컨셉은 정글 게임 촬영을 마치고 귀국한 바른 엔터 아이들들이 대표인 도진을 찾아와 갑작스러움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때문에 이 촬영은 미리 고지된 것이었고 이 만남의 장소가 된 카페 또한 협의를 마쳤다.

    그럼에도 평범하게 손님이 있는 건 카페에 미리 공지를 모두 볼 수 있게 붙여 두었기 때문이다.

    -방송 촬영 예정입니다. 촬영에 동의하시는 분에 한하여 영업합니다.

    라고.

    그러니까 손님들 또한 무언가 방송이 있을 거란 건 알았지만 그 방송의 출연자가 무려 소천마에 유지은, 안티체리와 레드슈라는 것에는 알면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거다.

    뭐 유지은의 경우엔 오늘 도진에게서 촬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석에서 함께 해도 되겠냐 묻고 허락을 받아냈으니 반쯤은 리얼 게릴라이긴 했다.

    곧 아이돌들이 촬영팀과 함께 카페 안에 들어섰다.

    "우리말고 손님이 있으셨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소검후님!"

    과연 아이돌이라고 해야 할지, 안티체리의 세 사람과 소진은 카메라 앞에서 높은 친화력에 자연스러움까지 더해 합석하며 유지은과 인사를 나누었다.

    유지은 또한 능숙하게 인사를 받으며 이야기를 나눴으니 이쪽은 사회성과 사교성에 관한 기술을 그 재능으로 숙지하고 발휘하는 것이다.

    "소검후라면 미국 쪽에서 유명한 별호인데. 역시 미국물 먹은 티가 나네요."

    "히히. 그렇지?"

    설현주가 도진의 말에 자랑스럽게 어깨를 세우며 말했다.

    소검후(小劍后).

    여성 중 가장 검을 잘 쓰는 이에게만 허락되는 칭호인 검후.

    그 검후의 이름을 이어받을 차세대 검후로 인정받는 이에게 붙는 칭호가 소검후였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적어 아직 검봉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 유지은은 그러나 활발히 활동하는 외국에서는 벌써부터 소검후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외곽에 자리를 만들어 두었기에 따로 큰 작업을 할 것 없이 촬영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도진의 시선은 촬영팀 사이의 가녀린 체구를 가진, 후드의 모자를 써 모습을 가린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저 분은 깜짝 손님인가요?"

    "아. 그렇게 재미없게 깜짝 손님 밝히기 있기, 없기?"

    "어허. 요즘 시대에 그렇게 인위적인 방송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가?"

    "네, 그렇죠."

    "응. 그럼 소개할게."

    도진이 대번에 숨겨두었던 몰래 온 손님을 밝혀 버리고 설현주가 일어나 그 손님을 데려왔다.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걸 저렇게 스무th하게 설득당해 버린다고?

    -역시 아빠 매니저 앞에서 한없이 뇌가 청순해져 버리는 설이모..

    그 사이 생방송과 함께 열린 채팅창은 시청자들로 인해 한껏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와."

    -머리카락 진짜 신기하다.

    깜짝 손님이 다가와 얼굴을 가렸던 모자를 벗자 카페는 물론 채팅창에서도 감탄이 나왔다.

    그 감탄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모자를 벗어 드러난 그녀의 외모는 신비했다.

    뚜렷하면서도 동양과 구분되는 서양의 이목구비에 풍성한 애쉬블론드의 머리카락이 그 신비함의 원천이다.

    갈색 눈동자가 도진을 담고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하세요. 레서 밀리나입니다."

    어색하지만 또박또박한 한국어를 예쁜 목소리로 말한다.

    그 인사에 도진이 웃으며 영어로 답해 주었다.

    "네, 반갑습니다. 레서 밀리나. 환영합니다."

    "오오……."

    "영어 왜 이렇게 잘 하냐."

    어렵지 않은 영어였으나 그 자연스러움이 보통이 아닌 수준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니 숭무고 전교 1등이었지. 김도진이.

    -무공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세상 혼자 사네.

    -근데 레서 밀리나면 요새 제일 잘 나가는 신인 아님?

    -맞음.. 김도진 십.. 아니 부럽다.

    -십에서 한 글자만 더 쳤어도 고로시각이었는데 ㄲㅂ..

    -이색히가?

    지방방송이 계속되는 가운데 설현주가 말했다.

    "이번에 정글 게임 같이 찍으면서 친해졌어!"

    "그랬군요."

    "응! 그래서 한국으로 초대했고 며칠 같이 놀러 다닐 거야!"

    "경비는 법카로 처리할 거고 말이죠?"

    "칫. 이래서 눈치 빠른 대표는 꺼려진단 말이야."

    -엌ㅋㅋㅋㅋㅋㅋ

    -표정ㅋㅋㅋㅋ

    짐짓 삐뚤어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설현주는 과연 프로였다.

    예능에서 오래 살아남을 인재다.

    "어렵게 한국에 오셨는데 한도 신경쓰지 말고 맛있는 거 많이 먹어요."

    "와! 진짜?"

    "네. 다들 고생했으니까요."

    "사랑해요, 대표님!"

    "얼마만큼요?"

    "법카 한도만큼요!"

    -앜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설현주는 예능해야 됨ㅋㅋㅋㅋ

    설현주가 분위기를 띄워준 덕분에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좋은 분위기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안티체리와 레드슈가 정글 게임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레서 밀리나를 자연스럽게 화제의 중심에 두었고 유지은 또한 능숙하게 섞여들었다.

    이 방송의 목적이 정글 게임의 홍보이면서 동시에 예고편이자 비하인드였는데 그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그 자체로 충분히 콘텐츠가 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래서, 밀리나도 숙소에서 같이 지내는 건가요?"

    "응. 우리 숙소 호텔 못지 않잖아."

    "그건 그렇죠. 잘 나가니까."

    "응. 잘 나가니까!"

    -자연스런 웃음 포인트 무엇? ㅋㅋㅋ

    -잘 나가는 건 맞지..

    "오케이. 그러면 오늘은 제가 함께 바래다 드리도록 하죠."

    "어? 진짜?!"

    "네, 진짜요."

    설현주가 진짜로 놀란 얼굴이 되었다.

    이건 정말로 일정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될 건 없었기에, 오히려 좋았기에 대번에 결정이 되었고 도진이 그녀들을 숙소까지 바래다 주게 되었다.

    유지은도 같이.

    "와! 소천마와 소검후의 호위라니! 이건 톱스타도 못 받아본 영광일 거예요."

    레서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도진이 유지은과 함께 자신이 타고 온 슈킨팍시를 몰고 대열에 합류했다.

    흉흉한 세상도 아니고 치안이 훌륭한 서울 한복판에서 문제는 당연히 발생하지 않았고 통편집될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 숙소에 도착했다.

    "고생했어요. 푹 쉬어요."

    "응! 내일 봐!"

    "고마워."

    카메라도 꺼졌고 안티체리의 세 사람과 박소진이 숙소 앞에서 인사했다.

    우우웅-

    꾸벅, 레서 밀리나도 고개를 숙인 뒤 그녀들과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그럼 선배. 선배도 바래다 드릴게요."

    "응응. 나도 호위해 줘."

    "하하. 그래요."

    이어서 유지은까지 바래다 준 뒤에야 도진은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흐음."

    근거리 무선 파일 공유 기능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전송된 레서 밀리나의 메시지에 눈을 빛냈다.

    - - - -

    도와주세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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