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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35화 (535/741)

534화

언제나처럼 함께 등교길을 걷는, 곁에서 걷고 있는 소담의 고운 옆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묻어나고 있다.

도진은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아주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기말고사.

이벤트이긴 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그러니까 일상의 범주에 있는 것이었다.

보편적으로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것이었으니까.

설령 숭무고라 해도 그렇기에 이벤트이면서 학생으로서 겪는 일상의 범주에 있는 것이 기말고사다.

하지만 소담에게 있어, 그리고 도진에게 있어서도 이번 기말고사만큼은 특별한 이벤트라 할 수 있었으니 이게 학생으로서 맞이하는 마지막 기말고사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이지만 대학의 시스템을 채용한 숭무고였기에.

이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는 것으로 도진과 소담의 고등학생으로서의 생활은 끝을 고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소년기(少年期)의 끝.

이제는 일상이 된, 당연하게 함께하여 걷고 있는 이 벚꽃이 다 진 벚꽃길을 등교길로 걷는 것도 끝을 고하여야만 한다.

내년, 앙상한 벚꽃나무의 벚꽃이 다시 만개하는 봄을 학생으로서 맞이할 수 없다.

도진과 비슷한 감상이 소담의 보석보다 예쁜 눈동자에서도 묻어난다.

"신기하네."

"뭐가?"

도진의 조용한 말에 소담의 시선이 도진에게로 향한다.

도진은 봄에 만개한 벚꽃보다 화사한, 그러나 요란하지 않은 소담을 마주하며 웃었다.

"벌써 졸업할 때가 된 게."

"……응. 그렇네."

"너랑 이렇게, 함께 걷는 게 당연한 것이 된 게 다시 생각해도 신기해."

"나는…… 고마워."

소담은 말을 고르다 그렇게 말했다.

"나도 고마워."

즉시 돌아온 도진의 감사에 소담의 하얀 볼이 조금 발갛게 물들었다.

스윽-

둘의 어깨가 평소보다 가까워졌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함께 걸었다.

* * * *

기말고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소담의 걱정과 고민, 그 외의 여러가지가 섞인 감정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학생으로서의 끝은 멈추지 않고 다가왔다.

도진은 서태주를 만났다.

"거기는 어때?"

거기란 숭무영재고의 집행부다.

서태주는 태평양 같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나쁘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숭무고의 학생이 아니게 된 의천검가의 이문강이 수작을 부렸던 일로 서태주는 좋은 일을 하고도 가벼운 징계를 받았던 일이 있었다.

크게 논란이 되었으나 명분 자체는 반박할 수 없었던 일.

서태주는 그 일을 긍정적인 양분이 되도록 받아들였고 더 나은 방향으로 숭무영재고의 집행부를 이끌었다.

부장 자리를 물려주었던 후배를 포함한 다음 대의 집행부가 자신없이 독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실, 도진을 포함한 후기지수가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서태주 또한 '후기지수'였다.

그것도 개천에서 난 용.

숭무영재고는 본래 숭무고 이상으로 일진들의 횡포가 심한 환경에 있었다.

여러가지 결격 사유로 숭무고에 입학하지 못한 명문가의 아이들과 여러가지 장학 제도로 숭무영재고에 입학할 수 있었던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이 섞인 곳이었기에.

그 학생들이 한곳에 모임으로써 발생하는 온갖 불합리가 가득했다.

바로 그런 불합리로 가득한 학교를 바꾼 것이 개천에서 난 용 서태주였던 것이다.

도진이 말했던 '리빙 레전드'란 말이 과언이 아닌 업적을 달성한 게 서태주였으니 후기지수로 인정받아 승룡(昇龍)이란 별호를 얻은 것도 과분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숭무영재고의 집행부장이 된 서태주를 중심으로 하여 집행부가 서태주에게 과하게 의존했던 것도.

당시 명분이었던 '집행부장조차 아니었던 서태주가 월권 행위를 했다'는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서태주는 그것을 인정하고 떠나기 전, 자신이 없어도 집행부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 성과를 거둔 서태주가 도진에게 묻는다.

"너희는 어때?"

도진은 스윽 웃었다.

"글쎄. 지켜봐야 알겠지만…… 잘 할 거라 믿어."

숭무고의 집행부는, '잠룡 패밀리'로 불리던 집행부는 도진의 졸업과 함께 다음 대에게 넘어갈 예정이다.

숭무고는 전통적으로 3학년이 되면서 학교와 멀어진다.

한유아와 도진이 특이 케이스였기에 올해까지 도진이 집행부장을 맡았지만 내년부터는 그 전통에 따라 도진만이 아닌, 3학년이 될 2학년까지도 집행부에서 손을 뗄 것이다.

학교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자연스레 숭무고의 집행부에는 큰 공백이 생길 예정이고, 그 공백이 어떻게 메워질지에 관해서 도진은 개입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문득 '인싸' 남사현에게 인재를 추천받아 볼까도 싶었지만 그러기보단 남게 될 성민혁과 성지인을 온전히 믿기로 했다.

둘에게는 그것이 더 크고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성 남매가 고생이 많겠네."

서태주의 말에 도진이 피식 웃었다.

"걔들한테는 남매라고 하지 마. 진짜 친 남매처럼 그건 싫어하더라."

"하하. 그래?"

"어."

공교롭게도 성민혁과 성지인은 성이 같다.

때문에 동갑임에도 남매 아니냐는 말이 나오곤 했는데 동글동글한 성격의 두 사람임에도 그 말만큼은 거부하는 얼굴이 되었다.

"뭐 그래서, 너희는 파티 해?"

도진의 물음에 서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없이 그냥 갈 수 없잖아? 너희도 그렇지?"

"응."

모두 모여 파티를 하기로 했다.

사실 남사현을 제외하고선 앞으로도 가까이서 계속 볼 사이다 보니 파티의 의미가 조금 희미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졸업 파티이니까.

특별한 파티였다.

"그럼 수고."

"그래."

서태주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왔다.

부쩍, 졸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슬금슬금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불안하지는 않다.

전생과는 달랐으니까.

도진은 생각했다.

전생에서는…… 어땠더라.

사고로 인해 자퇴를 하고 방에 처박혔다 보니 '졸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초등학교 졸업은 어려서 그랬던 걸까 무얼 몰라서 그랬던 걸까 의미가 희미하기만 했다.

중학교는…… 졸업에 의미를 둘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도진에게는 차라리 '방구석 강제 졸업'이 그토록 무섭고도 가혹했기에 강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이 뿌듯하다.

후회없이 밀도 높은 삶을 살았기에 더 넓게 펼쳐질 세계로 나아가는 게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기대가 된다.

도진은 웃으며 일과를 마치고 집행부를 나왔고 자연스레 소담과 함께 걷게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기숙사로 함께 돌아가는 길이 되었을 것이다.

금요일이니까 기숙사를 나와 인사를 하고 헤어져 서로의 본가로 가는 날.

하지만 오늘은 평소대로 되지 않았다.

"소담아."

"응?"

도진의 부름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소담이 눈을 맞추었다.

도진이 그 눈을 마주하여 웃으며 말했다.

"놀러 갈래?"

"아, 응?"

* * * *

번화가.

숭무고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펼쳐지는 화려한 거리가 있다.

숭무고를 포함하여 명문 무림학교가 분포한 만큼 번화가는 화려했고 수많은 놀거리들로 가득했다.

선남선녀, 후기지수, 거기에 가끔 카메라를 포함한 방송국의 사람들과 연예인까지 출몰하는 이곳에 오늘 더욱 특별한 두 사람이 시선을 끌었다.

"……."

흘긋.

조용한 가운데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건 은은하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볼수록 더욱 사람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진 비봉(秘鳳) 서소담이다.

숭무고의 무복을 걸친 그녀는 그것이 마치 선녀의 날개옷처럼 보이게 만드는, 평소 이상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한껏 꾸민 모습도 모습이지만 미소짓고 있는 얼굴과 그에 영향을 받은 듯 주변마저 아름답게 만드는 분위기가 눈길을 한 번 주는 것만으로도 대번에 홀려 버릴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옆에 선 것이.

꿀꺽.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긴장하게 만드는 소천마(小天魔) 김도진이었다.

본래, 후기지수의 별호는 20대 초반까지만 허용이 된다.

그러니까 용봉(龍鳳)의 별호는 그 목적과 의미에 따라 후기지수로서 있을 수 있는 동안만 불린다는 말이다.

그때까지 후기지수로서의 별호를 대신할 수 있는 '명성'을 쌓지 못하면 화려했던 시절에 대비되는 초라한, 별호없는 무인이 되고 만다는 거다.

가혹하지만 그것이 천재로서 기대받는 이가 짊어져야 할 무게이기도 했다.

그 무게에 짓눌린 이는 결코 적지 않으니 후기지수로서의 명성이 화려할수록 무게 또한 느는 법인데.

김도진은 오히려 후기지수로서의 별호가 '프롤로그'였던 것마냥 엄청난 무인이 되고 말았으니 잠룡이 승천하여 천마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명성을 가진 도진은 오늘, 무흔잠영의 이치에 따라 자신을 감추지 않았다.

평소 자신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도진이었다.

도진은 '관종'이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을 필요로 하는 성격이기도 했기에.

일상에 녹아든 무흔잠영의 수련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시선을 피하기 위함도 있었던 거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함께 놀러 온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이라고 하나 소담이 홀로 걷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드러낸 것이다.

도진과 소담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흘려냈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이 거리를 좁혀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어디, 갈 거야?"

소담이 아주 약간 발갛게 된 얼굴로 묻는다.

도진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음, 동전 노래방. 한 번 가보지 않을래?"

"동전 노래방?"

"어."

어떤 곳인지는 소담도 알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 본 적…… 있어?"

소담의 물음에 도진이 당당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한 번도 가 본 적 없어. 그러니까 오늘 한 번, 가보지 않을래?"

도진의 물음에 소담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 * * *

동전 노래방은 두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깨끗하고 훨씬 시설이 좋았다.

다만 생각보다는 좁아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으니 식당보다도 거리가 가까웠다.

지폐를 바꾸어 동전을 챙겼다.

제법 많은 동전을 테이블 사이에 둔다.

"그러고 보면, 동전 만지는 거 정말 오랜만이네."

도진의 말에 소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게."

"근데 이거, 사실은 동전이 필요가 없었네."

"그러게……."

직접 와 보니 말만 동전 노래방이지 천 원짜리 한 장씩 넣는 게 더 편했다.

"뭐 부를까?"

"그, 글쎄. 나 아는 노래가 잘 없어서……."

소담이 볼을 붉히며 말했다.

조금, 부끄러웠다.

도진이 그런 소담의 모습에 하하 웃었다.

"사실은 나도 그래. 그리고…… 불러 본 적도 없네."

전생을 포함하면 적지 않은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마이크를 들고 불러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동전 노래방 또한 정말로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어색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와서 둘이서 침묵하고 있을 순 없는 거니까.

도진이 휴대폰을 들었다.

"남자랑 여자가 같이 불러야 하는 노래가 있거든. 같이 부르지 않을래?"

"어, 같이?"

"응. 같이. 한 번 불러 보고 싶었어."

좋아하던 노래 중에 남녀가 같이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집에서 혼자 흥얼거린 적이 있었는데, 함께 부를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 그런데 노래 모르는데……."

"그러니까 같이 지금 듣고 해 보자."

두 사람은 무림인이다. 그것도 경지에 오른.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듣기 좋게 부를 수 있을 것이었다.

소담은 도진의 제안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고 도진이 검색하여 휴대폰에서 노래를 재생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뭐냐. 노래방 와서 노래를 틀고 있네."

"그러게. 찐따인가?"

킥킥거리면서 말하는 건 굳이 들으라고 조롱하는 말은 아니었다.

안 보이는 데서는 대통령 욕도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그저 누군지 모를 이에 대한 그들만의 가벼운 말.

하물며 혹여 들릴까 소리까지 죽였다.

도진은 굳이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어폰 끼고 같이 들을까?"

"응."

소담도 가볍게 흘려 보냈다.

노래를 한 번 다 듣고,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눌렀다.

흘러나오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남자의 파트는 도진이, 여자의 파트는 소담이.

소담은 도진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생각했고 도진은 소담의 목소리가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뭔데 잘 부르냐 쟤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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