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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34화 (534/741)

533화

중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심각해지던 무림 독감 유행은 그것이 무형독의 바이러스 테러라는 것이 알려지고 조치에 들어가면서 급속히 잦아들었다.

자연스런 유행이 아닌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던 유행인 만큼 근원지를 제거함으로써 기세가 죽은 것이다.

환자들은 경증의 경우 기존의 약으로 대처가 되기 시작했고 중증 환자는 약리지의 헌신적인 치료로 완치자가 늘고 있었으니 곧 유행이 종식되었음을 선언할 수 있을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림 독감'의 종식이지 원인이 되는 무형독의 위협이 아니었다.

그에 관한 미래를 대비하여 모인 자리에서 나지윤이 발언했다.

"확보한 자료를 통해서 단순 연구 결과만이 아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어요. 그것을 기반으로 추론한 내용입니다."

무형독이 삭제했다 믿었던 자료.

그것은 단순한 자료에서 그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그들이 그리는 그림을 추론하고 약점을 찌를 수 있는 '독'이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건 만인에 대한 거리두기를 통하여 만들어지는 공백입니다."

"만인에 대한 거리두기."

한유아가 읊조렸고 나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염병이란 건 필연적으로 서로가 거리를 두게 만들죠. 현대 사회의 키워드 중 하나는 밀도입니다. 그 밀도를 인위적으로, 하지만 구성원들이 자진하여 낮추게 만드는 겁니다."

언뜻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대번에 핵심을 파악했다.

그리고 도진은, 전생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유행의 초기.

꼭 필요한 사회 활동은 어쩔 수 없었으나 그 외의 술집, 음식점, 놀이 시설에서 사람들은 2주가 넘게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때 도진은 생애 처음으로 사람이 없는 거리를 경험했다.

두 번째도 그러했으니 역사에 남은 세 번째 '대유행'은 말할 것도 없다.

그때엔 아예, 도시의 도로에 차가 사라졌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다.

"그 공백을 무형독은 어떤 형태로는, 상식 이상의 범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네."

도진은 당시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심각한 상황을 가정한다면 백신을 꼽을 수 있습니다."

"백신이라면?"

"그들이 의도적으로 백신을 만들 경우입니다."

총괄부에 모인 이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천재인 그들은 단번에 몇 단계나 뛰어넘어 나지윤이 떠올린 가능성에 이른 것이다.

"이번의 경우처럼, 백신 또한 유행이 심각해질 경우 긴급 승인 조치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본래 백신은 최소 몇 년에 거쳐 동물부터 시작하여 겨우 사람에 대한 임상이 이루어진다.

거기서 문제가 없음이 긴 시간을 들여 밝혀져야 비로소 백신으로 인정받고 판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현실에 맞춰 건너뛰게 된다면.

몇 년 후.

혹은 더 길게 보아 몇십 년 후라 해도.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아니. 적나라하게 말해 그들이 의도한 형태의 부작용이.

"그로 인해 회사가 망하더라도 상관없죠. 무형독에게 있어 그런 회사는 버림패로 쓸 수 있는 수단일 테니까요."

무서운 이야기다.

말 그대로 그 규모가 세계적이다.

한유아가 읊조렸다.

"이러면…… 정말로 세계를 뒤집으려는 것 같네."

솔직히 압도당할 것 같았다.

소위 말하는 '세계 정복'이란 게 천박한 농담인 시대다.

단순히 허황됐다는 이야기만이 아니다.

'굳이' 세계 정복을 노려야 할 이유가 없는 시대이지 않은가.

이 시대의 풍요는 어찌되었든 개인으로선 이룩할 수 없는 것이며 자발적으로 '부족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도록 장려함으로써 더 효율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똑똑할수록 잘 안다.

더욱, 이 시대의 평등이 허울이라는 것 또한 조금만 생각해보면 다 아는 일이다.

가진 게 많을수록 왕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시대.

그런 면에서 비춰 볼 때 무형독이 세계를 뒤집어야 할 이유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은 결핍된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반대로 더 많이 가진 자들의 모임이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이런 무시무시한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던 거다.

"…큰 성과네."

그래서 도진은 말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나지윤이 말했다.

"응. 무형독의 본질에 관해서 다시 고민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어."

무형독은 그저 단순히 더 큰 이득을 음지에서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더 크고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다른 목적을 가진 단체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결론내지 않고 더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두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금화는 어때?"

도진의 물음에 나지윤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꽤 아파하고 있어."

이번 일로 얻어맞은 건 무형독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무림 독감을 유행시키기 위한 '기지'로 쓰였던 바이오로직스 제3 공장의 주인인 금화 또한 크게 얻어맞았다.

이미지 자체는…… 그렇게까지 나빠지지 않았다.

-금화라도 무형독을 완벽히 틀어막기는 힘든 게 사실이지.

-ㅇㅇ 왕실도 털린 곳이 있는데 금화 같이 큰 곳의 공장 하나까지 완벽하게 관리하라는 건 좀 빡센 이야기인 게 맞다.

세계적으로 깊이 침투해 있던 무형독이 어마어마한 충격을 주었던 게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왕가에 침투하기도 했고 국력이 약한 개발도상국의 경우엔 심지어 국회마저 잠식당해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무형독의 무시무시함이 이 정도였다.

여기에 바이오로직스 제3 공장은 우수 생산 표창까지 받았던 직원들의 일터. 다른 곳보다 더 잘 돌아가던 공장이었고 그 안에서 '일부 우수 직원'들이 은밀하게 다른 목적으로 '일부 장소'를 사용하는 것을 잡아내는 게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금화는 '절대성'을 잃었다.

-반대로 말하면 금화라고 해도 결국은 기업일 뿐이라는 거지.

-어떻게 몸 속이 털리는데 그걸 모르냐 ㅋㅋ

이로 인한 이미지 훼손은 너무나 큰 손실이었으니 금화는 어떻게든 그것을 메꾸기 위하여 큰 돈을 쾌척하였고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당분간 우리에게 헛짓거리 할 여력은 없을 거야."

금화 바이오로직스를 통하여 의선약가의 격리 병동에 수작을 부려 일부 환자를 중증으로 심화시켰다는 게 드러났다.

당연한 말이지만 금화가 한 게 아니라 거기에서 암약하던 무형독의 짓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금화가 완벽한 피해자로 인식될 수는 없으니 이에 관해서도 금화는 진땀을 빼며 어떻게든 비난과 처벌, 외부의 개입을 피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아무리 부회장인 한유성이라 해도 한유아를 해코지할 여유는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한유성이 대범한 인간이라 한유아에게 보복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는다.

숭무고 입학 초기 너무나 높은 곳에 있던 한유성.

그런 한유성을 도진은 어느새 마주보는 걸 넘어 추월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 위치에서 다시 마주했던 한유성은 높은 곳에 군림하고 있으나 소인배라는 걸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혹여 한유아를 해코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할 것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경계를 늦출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잡히는 건 없어?"

"아직은."

혼란한 상황에서 금화와 무형독 사이에 '더 큰 연줄'이 없는가를 살피고 있다.

항상 그랬듯 생포된 무형독의 주구들, 공민관을 필두로 한 놈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자백제를 포함한 '비인간적인 심문'에도 말이다.

따로 입수한 자료까지 더하여 천마신교가 독자적으로 조사한 바로도 지금까지는 무형독이 일방적으로 은밀히 금화에 침투하여 일을 벌인 것 이상의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한유성의 됨됨이가 그러했기에.

그가 무형독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좀 더 깊게 하게 되었다.

"아니면 좋겠지만……."

"조금 부자연스럽게 깔끔한 부분이 있어서 더 파 보려고 해."

"그래. 부탁할게."

이번은 이렇게 지나가겠지만 도진은 금화와, 한유성과 언젠가는 부딪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충돌에서 도진이 피하거나 힘을 빼는 일은 결코 없다.

* * * *

무림 독감의 유행이 잦아들면서 사회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숭무고 또한 2주의 휴교를 끝내고 수업이 재개 되었는데, 에타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왜.. 왜 기말 고사 시즌임?

-뭐지? 개꿀잼 몰카인가? 분명히 2학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됐던 거 같은데?

-???? ????

중간고사가 끝난 게 엊그제 같았는데 기말고사 시즌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재들의 학교이기에 더욱 치열한 숭무고.

엘리트일수록 집안에서의 의무 또한 소홀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삶은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분기당 한 번 노력을 증명해야 하는 시험은 막중한 이벤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벤트가 체감상 연달아 들이닥쳤으니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을 외면하듯 남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번에도 잠룡, 아니 소천마가 1등을 할까?

-이번에도 1등하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임.

-3년 내내 1등은 몇 명 없었지?

-내가 알기론 네 명 정도? 금군 한유성 선배 포함임.

-와 미친. 그게 네 명이나 있었다고?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거냐 ㅋㅋㅋ

-한 명은 너도 잘 알잖아. 유지은 선배.

-ㅁㅊ 바로 이해됨.

숭무고 내에서 수석을 유지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천재들 간의 차이는 종이 한 장.

그 종이 한 장은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속도를 늦추는 순간 말 그대로 종이 한 장이 되어 추월당한다.

때문에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인데 가끔 천재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천재가 등장하여 3년 내내 학년 수석을 놓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니 금군 한유성, 검봉 유지은이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명, 유지은에 이어 2년 연속.

3년 수석을 놓치지 않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의 위업을 목전에 둔 이가 있었으니 소천마 김도진이다.

평소라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약간의 불안이 있었으니…….

-그 선배 약봉이랑 같이 겁나 바빴는데 이번은 힘들지 않을까?

-실기야 뭐..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필기는 공부할 여유가 전혀 없었을 테니까.

-실기 넘사벽에 이론 점수 부족으로 수석은 안 될지도 모름.

바로 휴교의 이유였던 무림 독감의 유행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공부할 시간이 전혀 없었을 거라는 추론이 강한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관해 호기심이 강했던 같은 수업을 듣는 후배 중 한 명이 물었다.

"선배님."

"그래. 강현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도진에게 후배, 강현은 감격한 얼굴이 되었다.

"다른 게 아니라, 공부가 잘 되고 있으신가 해서요."

사람들의 관심을 업고 조심스레 묻는 후배에게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랑 똑같지."

"아, 그. 어려운 부분은 없으신가요? 요즘 엄청 바쁘셨을 텐데."

"괜찮아. 평소에 예습이랑 복습을 하니까 특별히 시간 만들 필요는 없었거든."

"…아, 그. 네……."

감격으로 가득하던 강현의 얼굴이 짜게 식었다.

예습과 복습.

당연하지만 어쩐지 친해지기 힘든 단어.

그 단어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의 입에서도 나오고 말았다.

* * * *

정말로 도진은 기말고사 준비가 어렵지 않았다.

'평소대로'였으니까.

해야 할 일이 늘었다고 해서 평소 하던 일을 할 수 있는데 캔슬하는 건 도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던 약리지와의 치료를 함께 하면서도 예습과 복습을 놓지 않았으니 이제와서 허둥거릴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도진은 걱정이 없었는데…….

"소담아?"

"아, 응."

곁에 함께 하는 소담의 얼굴에서 걱정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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