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32화 (532/741)
  • 531화

    "……."

    "……."

    중년인과 공민관은 극도의 긴장이 주는 스트레스에 찰나 몸이 굳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야말로 찰나에 그쳤으니 평소의 혹독한 수련과 마인드 컨트롤 덕분이었다.

    챙-!

    중년인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았고 자연스럽게 공민관의 몸이 가려졌다.

    "어떻게 여기에 들어올 수 있었지?"

    이곳은 그러니까, '안가(安家)'다.

    그들 무형독의 활동 요원들을 위해 마련된 비밀 거점.

    당연히 철저한 보안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으며 인력에 의한 경계에도 빈틈이 없었다.

    설령 경계를 넘어선 고수라 해도 아무런 조짐 없이는 침입할 수 없을 만큼.

    그런 곳에 그야말로 땅에서 솟은 것처럼…….

    "……!"

    "오, 알아낸 거야? 똑똑하네?"

    도진은 슬쩍 눈이 커진 중년인의 얼굴에 머릿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피식 웃었다.

    "…공민관의, 뒤를 밟았다고?"

    "……!"

    중년인의 뒤에 감춰진 공민관의 얼굴에도 놀람이 어린다.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이곳의 유일한 빈틈.

    학원에서 이어지는 비밀 통로를 달리는 공민관의 뒤를, 김도진은 은밀하게 따라붙어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왜 굳이 여기로 왔을까. 무형독의 똘마니는."

    도진이 한껏 여유 있는 얼굴로 말한다.

    그에 지금껏 뒤에 숨어 있던 공민관이 평소의 표정을 버리고 날카롭게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이미 늦었어. 너는 유인당한 거다."

    "그래. 여기는 더미고 그 외 끄나풀들, 그리고 자료를 다 지웠다는 거지?"

    "……!!"

    "……!!"

    두 사람의 눈이 다시 한 번 부릅떠졌다.

    그걸 알고 있다는 건, 이미 손을 써 두었을 가능성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야.'

    그러나 공민관은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무얼 의도했든 중년인이 그의 앞을 가렸던 찰나의 순간 시행한 소각 작업은 성공했다.

    "허세 부려봐야 통하지 않는다. 자료 소각 명령은 완벽하게 작동했어. 네놈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거다."

    그가 굳이 이곳 안가에 온 것은 그런 이유였다.

    꼬리를 잡힐 만한, 지금껏 벌여 온 일에 대한 자료를 소각하기 위해서.

    동시에 그가 인지하지 못할 추적을 유인하기 위해서.

    공민관은 그 두 가지를 다 달성했다는 생각으로 조금 여유를 되찾았다.

    도진은 그런 공민관에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뭐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그런 건 감안하고 있었거든?"

    "뭐라."

    "니놈 새끼들 꼬리 자르고 도망가는 실력이야 워낙 잘 알고 있어서 말야. 포기할 건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어."

    "……."

    "하지만, 잡을 건 잡아야지?"

    그러면서 보란 듯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건 도진이 말했다.

    "금화 바이오로직스, 덮치세요."

    "……!!"

    중년인과 공민관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말았다.

    * * * *

    "……."

    하늘을 찌를듯 찬란하게 솟은 금화 본사의 부사장실.

    한유성은 한껏 심기 불편한 얼굴로 '응징'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유성. 너랑 호적 메이트인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됐고! 네 대답 같은 건 들을 생각 없으니까 이만 갈게.

    부르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화가 끓어 오른다.

    동생.

    아니, 가축.

    부산물은 물론이요 이윽고 그 전체를 유용하게 쓰려 했던 가축 따위가 반항을 하고 굴욕을 안겨주고 탈주해 버렸다.

    도저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금화의 황태자로서, 그리고 특별히 선택받은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조차 없는 굴욕이었다.

    그러니까 굴욕을 씻어야만 했다.

    더욱 화가 나는 부분이지만 섣불리, 당장 손을 쓰기는 힘들었다.

    한유아 따위가 혼자라면 괜찮지만 그놈의 천마신교에 합류해 버렸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돼 있었고 그것이 조금 느슨해지더라도 무언가 일이 생기면 다시 폭발적인 관심이 자석에 철가루 붙듯 붙고 말 것이다.

    신중하게, 그와 일절 연관되지 않도록 정밀하게 계획을 짜야만 했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금화의 지배자가 될 몸이었으며 그보다 더 위대한 '회(會)'의 일원이었으니까.

    가축 따위가 감히 반항하고 우리를 탈출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조만간 알게 해 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부, 부회장님!"

    그의 평정을 깨는 소음이 있었다.

    스으으-

    날카로운 시선이 급히 안에 들어선 이에게로 향했고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지."

    한유성이 시선을 떼고서야 겨우 그는 잊었던 숨을 쉴 수 있었으며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고 싶다는 본능을 필사적으로 억누른 채 말했다.

    "바, 바이오로직스 3공장이 무림 전담 타격대에 압수 수색당하고 있습니다!"

    "……?"

    카리스마 넘치던 한유성의 얼굴이 순간 멍청해지고 말았다.

    * * * *

    금화 바이오로직스.

    금화의 계열사로 제약, 바이오 산업 기업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초대형 글로업 기업으로 그만큼 엄청난 면적을 자랑했는데 그중 3공장이 아닌 밤중에 엄청난 소란에 휩쓸렸다.

    "무림 전담 타격대입니다! 협력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공을 담아 쩌렁쩌렁 소리치는 건 무림 전담 타격대 서울지부의 대장 유상균이다.

    그 뒤로 서울지부의 타격대원을 다 끌고 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대원들이 기민하게 움직여 3공장을 포위했다.

    그리고 빈 곳을, 천마신교의 무인들이 커버했다.

    "뭐, 뭐야?"

    "무, 무슨 일이야?"

    다른 곳도 아닌 금화에 고용된 보안 요원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들에게 유상균이 나서서 설명했다.

    "이곳에 무형독의 주구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필히 체포하여야 하니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무, 무형독이요?"

    "극악한 놈들이니 무슨 짓을 할 지 모릅니다. 갑작스럽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예."

    그렇게 설명을 마친 유상균은 독마전, 그리고 투마전의 무인들과 함께 종횡무진 제 3공장을 휩쓸며 의심되는 자들을 체포했다.

    마치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귀신같이 무형독만을 골라 잡아냈는데 나지윤의 정보에 더하여 위연서의 눈이 그들을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다.

    그리하여 서른한 명이 꼼짝없이 제압되어 바닥에 처박힌 때가 되었을 때.

    "이게 무슨 일입니까?"

    금군 한유성이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뒤늦게 나타났다.

    금화 부회장의 등장.

    평범한 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했겠지만 유상균은 당당하게 그를 마주하여 목례하고선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이곳에 이번 전염병의 원인이 된 무형독의 범죄자들이 위장하여 숨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 체포 작전을 진행하였습니다."

    유상균의 말에 한유성이 속으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우리가 퍼뜨린 걸 알았다고?'

    "전염병의 원인이요?"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정보를 얻기 위해 묻는다.

    유상균은 눈앞에 수뇌부가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답했다.

    "예. 이번 전염병이 무형독의 바이러스 테러라는 게 극비리에 밝혀졌고 연관된 자들이 이곳에 숨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 즉시 체포 작전을 벌인 것입니다."

    "워낙 극비리에, 촉각을 다투는 작전이었다 보니 먼저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거기에 무형독이 얽혀 있으니 혹여 부회장님께 불필요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한유성은 우선 고개를 저었다.

    휘휘 고개를 젓는 행동을 따라 머릿속마저 뒤섞이는 듯하다.

    '이 무슨 미친…….'

    금군 한유성.

    금화의 부회장이자 차기 회장.

    그리고 '회'에서도 일좌(一座)를 맡고 있는 이로서 웬만한 일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 거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이번 일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무림 독감.

    그것은 회에서 무형독을 이용하여 진행하는 거대한, 회의 기준으로도 거대한 계획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무림 독감은 자연 발생한 바이러스로 남아야 했다.

    무형독의 계획이라는 게 알려져서는 결코 안 될.

    이게 밝혀진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사고인데 심지어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위해 이용되었던 제 3공장과 무형독 소속의 요원들마저 체포당하고 말았다.

    '이, 이, 말도 안 되는……!!'

    이번 것은 좀, 많이 아팠다.

    * * * *

    "……."

    중년인과 공민관은 뒤늦게 표정을 수습했다.

    공민관이 정보를 얻기 위해 물었다.

    "어떻게, 안 거지?"

    "글쎄? 그런데 이번 건 꽤 많이 아팠나 봐. 표정이 좋지가 않네?"

    "……."

    실책이었다.

    설마 활동 거점이, 금화 바이오로직스가 들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공민관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최악은 피했다.

    관련 자료를 다 파기하였으니 꼬리는 잡혔을지언정 몸통에는 결코 닿지 못할 것이었으니까.

    여기에 손해를 메꾸기 위하여 공민관은 하나의 '실험'을 감행했다.

    스슥-

    "……."

    돌연 김도진이 미미하게 휘청였다.

    경계를 넘어선 고수에겐 결코 있을 수 없는, 지극히 미미하다지만 균형이 잠시 무너졌던 순간을 공민관은 놓치지 않았고 희열이 묻어났다.

    '먹힌다!'

    "…독(毒), 인가 보네."

    공민관이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독이다."

    정확히는, 이번에 퍼뜨린 바이러스를 통하여 추구하던 성과였다.

    일반적인 독은 한계가 있다.

    단순히 죽이거나 사용하는 거야 간단하지만 그것만으론 어쩔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하기 위하여 공민관, 그가 속한 가문이 추구한 것.

    바이러스.

    이거라면 설령 절대고수라 해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연구하였고 대규모로 실험한 것이 '무림 독감'의 정체였다.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단 한 번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퍼져 나갔고 고수라 해도 무력하게 앓았다.

    '독'이라고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소천마라 불리는 경계를 넘어선 고수조차 중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조차 이것을 그저 독이라 생각했다.

    공민관은 소리쳐 미친듯이 웃고 싶은 기쁨을 억눌렀다.

    오로지 이 연구에 평생을 바쳐 무(武)로는 보잘 것 없는 내가!

    경계를 넘어선 고수를 중독시켰다!

    다 감추지 못한 희열을 보이는 공민관의 모습에 도진이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래서 날 이렇게 만들고 도망쳐 보겠다고?"

    "왜. 못 할 것 같나?"

    처처척!

    그의 말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무인들이 도진의 주변을 포위한다.

    놀랍게도, 평균 수준이 절정인 무인이 스무 명이었다.

    말도 안 되는 전력.

    무림 독감의 중증을 앓는 상태가 된 도진에게는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도진은 피식 웃었다.

    "너, 지금 너무 기뻐서 좀 멍청해졌나 보다?"

    "…뭐라?"

    "왜 내가 혼자 왔을 거라 생각해?"

    "……!!"

    꽈과과과광-!!

    폭음과 함께 벽이 터져 나간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주변을 완전히 포위한 백여 명의 무인들이었다.

    * * * *

    중년인과 공민관, 그리고 무형독의 무인들은 저항했으나 절반 이상이 생포당했다.

    천마신교의 소담을 포함한 바이오로직스로 가지 않은 독마전의 무인들과 정의검가의 무인들이 활약했고 성치 않은 몸으로도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 준 도진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무형독의 주구들을 생포한 뒤에야 도진은 소담과 약리지의 부축을 받아 의선약가의 격리실로 이송되었다.

    구급차에 탈 때까지는 물론이요 개인 병실로 이동하는 순간까지도 도진은 부축을 받을지언정 자신의 두 발로 걸었다.

    뚜벅, 뚜벅.

    당당한 걸음으로 도진이 개인격리실에 들어선다.

    털컹.

    그리고 개인 격리실의 문이 닫히고 외부의 시선이 차단된 순간.

    "오케이."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바이러스로 인한 열이 거짓말처럼 증발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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