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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30화 (530/741)

529화

-식약처, 무림 독감 치료법에 조건부 임상 승인!

식약처 직원의 실수로 소문이 커진 의선약가가 내놓은 치료법과 그 승인 여부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기에 결과는 신속하게 퍼져 나갔다.

긴급 승인이 아닌 조건부 임상 승인.

그것은 자원자에 한하여 치료법을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승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이야기였다.

-ㅇㅇ 정석적이네.

-그렇지. 이게 제일 안전하긴 하지.

사람들은 너무나 뻔하면서도 정석적인 처리에 여러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자원자도,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언뜻 의선약가의 치료법이니 자원자가 밀려들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기 치료의 경우, 논란이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백신과 달리 기 치료의 승인이 빠른 건 그것이 과학이 아닌 무림, 내공의 영역이기에.

그러니까 과학과 달리 검증의 부분에서 명확하지가 못했다.

기 치료의 검증은 치료 후 한방과 양방에 정통하면서 정밀하게 타인의 몸에서 기의 운용을 할 수 있는 전문 검증사들의 인증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과학적인 검증은 못하지만 그들이 타인의 몸을 내공으로 확인하여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는 형태란 말이다.

일단 그 과정을 통한 인증은 믿을 수 있다.

설명은 못해도 신뢰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문제는, 그것이 성공이 아닌 '실패'일 때였다.

치료가 잘못되어 인간의 육체라는 시스템이 망가질 확률은 백신만이 아닌 기 치료에도 얼마든지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백신의 경우가 그렇듯 임상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엔 절차를 어기지 않은 한 책임이 면제된다.

계악에 따라, 그리고 계약서의 조항에 없더라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게 보통이지만 불과 5년 전.

인도에서 그 도의적인 책임을 외면하여 끔찍한 죽음을 맞았던 환자의 사례가 크게 보도되었기에 사람들은 검증되지 않은 기 치료에 민감했다.

다른 곳도 아닌 의선약가이니 그 부분에 관한 걱정이야 덜 수 있겠지만 시술자가 유일하게 약리지라는 게 알려지면서 다른 부분에서의 걱정이 커진다.

생명이 달린 일.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후기지수라 해도 아직 스물조차 되지 못한 수련의 과정에 있는 약리지가 검증되지 않은 기 치료를 한다고 하니 망설여지는 게 당연했다.

하물며 죽을 병도 아닌 그저 독감이다.

유언비어와 그로 인한 과한 공포감을 제외하고 보면 건강한 사람이라면 며칠 앓다 털고 일어날 수 있었고 중증을 앓더라도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통하여 나을 수 있는 병.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은 드문 것이 현실이었다.

때문에 자원자를 모집하고서 이틀이 지난 지금.

자원자는 두 사람에 그쳤으니 노신사와 구약정이었다.

"문제를 크게 만든 제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환자실에 격리된 구약정은 초췌한 얼굴로, 그러나 눈빛만큼은 아직 선명한 얼굴로 그렇게 자원하였다.

"내가, 꼭 낫게 해 줄게요!"

그런 구약정에게 약리지는 주먹을 불끈 쥐며 약속했다.

그리고, 노신사.

"할아버지."

중환자실에 머문지 일주일을 훌쩍 넘은 노신사는 원기가 크게 상해 있었다.

원기(元氣)란 진원지기(眞元之氣), 무협지에서 흔히 말하는 선천지기(先天之氣)이니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구약정이 먼저 자원했으나 노신사의 치료를 우선한 건 그런 이유였다.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화가 깨지며 선천지기의 소모가 진행되는 것이 인간이다.

노신사의 경우 그렇게 선천지기가 소모되는 중에 그것을 가속하는 중병(重病)을 앓고 있으니 시급히 치료를 해야만 했다.

구약정이 더 비난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로 인해 노신사가 잘못되었다는 원죄를 더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약리지가 스스로 바랐던 것들을 다 이루기 위해서.

노신사를 치료해야만 했다.

"나도 학생의 이름을 잘 알고 있을 만큼 학생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학생은 성공할 거예요."

꾸욱-

노신사의 격려에 도진의 손을 잡은 약리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기필코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그로 인한 부담감이 손을 통하여 느껴진다.

스윽-

도진이 약리지의 등을 다른 손으로 받쳐 주었다.

그렇게 아주 조금 부족했던 약리지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결심을 지지해 주며 말한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야. 겁먹지 않아도 돼.

-선배.

-괜찮아. 그럴 리 없겠지만 만에 하나 아주 조금, 부족한 부분이 생긴다면 내가 도와줄 거니까. 너에 대한 믿음이 아주 조금 부족하다면 나를 믿어도 돼. 그걸로 채울 수 있을 거야.

-……응. 그럴게요!

도진의 말에 약리지의 눈에 결심의 빛이 어린다.

그래. 걱정할 필요 없다.

약리지가 중증 환자를 치료한 자료는 없지만, 사실 그 치료 경험이 이미 몇 번이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지금, 약리지의 손을 단단히 잡아주고 등을 지지해 주는 선배가 스스로 중증 환자가 됨으로써 그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중증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퍼지게 한 뒤 그것을 약리지가 치료하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임상이라고 해도 니가 실패하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니까. 괜찮아. 나는 이 정도로 어찌될 만큼 약하지 않으니까. 나는 천마, 잖아?

중증 바이러스가 다 퍼진 상태에서도 선배는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보는 이가 일말의 걱정조차 하지 않을 수 있는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고 약리지가 치료할 수 있도록 심상의 합일조차 유지해냈다.

당시의 경험이, 그때 약리지를 채웠던 감정이 불안으로 인한 흔들림을 모두 지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치료, 시작할게요."

* * * *

-속보! 약봉 약리지, 중증 환자를 완벽하게 치료해냈다!

-식약처, 약봉 약리지의 무림 독감 치료법 긴급 승인!

-의선의 딸, 새로운 신화를 썼다!

약리지는 훌륭하게 노신사와 구약정의 치료를 성공해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검증사들 일곱 명이 최첨단의 장비까지 동원하여 검증했고 단 하나의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로써 식약처는 단 두 사람의 사례였으나 긴급 승인을 결정했고 그 소식에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들썩였다.

-와 ㅁㅊ 스물도 안 된 사람 기 치료가 승인된 적이 있었나?

-없었지 ㅋㅋㅋ 기 치료가 조스도 아니고 ㅋㅋ

-이거 진짜 대 미친거임 ㅋㅋ 기 치료란 건 인체만이 아니라 혈도와 기에 대한 엄청난 이해를 바탕으로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야 가능할까 말까한 건데 그걸 이제 열여덟인 애가 해낸 거임. 만으로 하면 심지어 열일곱이다.

-와.. 의선만 해도 진짜 넘사벽 언터쳐블인데 딸까지 이제 ㄷㄷ... 이 정도면 지구 원탑 아니냐?

-주접이라고 하고 싶은데 시벌 지금만큼은 못하겠다 ㅋㅋㅋㅋ...

그리고 TV에서는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낸 약리지에 대한 기자 회견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 최소한으로 꾸미던 약리지가 제대로 꾸미고 하얀 가운을 걸친 모습은 사람들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대단했다.

심지어 액정 너머에서도 말이다.

-..약리지 가운 저거 사실은 천사 날개로 만든 거 아니냐?

-의선 딸이니까 선녀옷이겠지.

-그럼 저거 훔치면 약리지랑 결혼할 수 있음?

-미친 놈들이 ㅋㅋㅋㅋㅋ

-훔치려는 순간 천마한테 걸려서 무릎 연골을 갈리지 않을까?

약리지의 곁에는 소천마 김도진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유는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소천마, 선배께서 도와주신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에요. 그러니까 저 혼자만이 아닌 선배와 함께 나누어야 할 공입니다.

약리지는 아직 기 치료를 완벽하게 할 정도의 내공을 보유하지 못했다.

그 부분을 소천마가 도와주었다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도진이 함께 해야만 하는 이유로 100% 진실은 아니었지만 거짓도 아니었다.

-중증 환자였던 몸으로 치료법을 깨달은 때의 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그에 관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자 회견은 정석적이었으며 약리지와 의선약가, 그리고 소천마의 명성이 치솟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약리지는 이 기자 회견을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이자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이번의 불행한 유행의 잘못을 이웃에게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악의가 아닌, 순수하게 불행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의도치 않게 전파자가 된 분들이 또 다른 이유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환자분들을 치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감사합니다."

"네. 인사 받을게요. 그러니까 더 감사하지 않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또! 또!"

치료를 받고 경증 환자실로 자리를 옮긴 구약정은 약리지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몸을 치료해 준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환경마저 치료해 주려 한 약리지의 노력을 알았기 때문이다.

약리지의 인터뷰는 그녀가 바라던 대로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 주었다.

맹목적으로, 불안과 불만을 삭이기 위하여 '선량한 전파자'를 욕하던 풍조가 옅어진 것이다.

동시에 그녀와도 연관이 있던 노신사와 구약정의 이야기 또한 뒤가 전해지면서 구약정을 욕하는 이도 줄었다.

속죄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았던 전파자가 되었던 이야기.

그리고 증세가 호전된 노신사의 침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죄하는 구약정과 그를 용서하는 노신사의 모습이 공개됨으로써 여론은 호전되었다.

물론, 모든 이가 그렇게 구약정을 다르게 보게 된 것은 아니었다.

허나 이렇게 흐름이 긍정적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약리지가 미소지을 수 있는 성과였으며 이후 구약정이 하기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는 흐를 것이었다.

* * * *

긴급 승인 이후 정식으로 중증 환자를 우선하여 치료가 시행되었다.

국내에서 그치지 않고 해외에서도 예약을 받아 환자가 방문하도록 했는데 유일한 시술자인 약리지가 해외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그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게 더 나은 일이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게 어려운 환경에 있는 환자들의 경우 바할라에서 비행기 등을 포함한 경비까지 지원해 주었다.

그렇게 약리지는 하루에 3명까지 환자를 받았는데, 기 치료의 특성상 그 이상은 집중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로 인한 문제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으니 치료가 시급한 중증 환자가 물밀듯 밀려들 만큼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유독 심했던 것이지 국가 평균 위험한 중증 환자는 많아봐야 열 명을 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경증 환자의 경우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며칠 고생하는 것으로 나을 수 있었다.

달라진 부분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전생과 비슷하게 무림 독감은 한 때의 유행으로 전염성도 대단하지는 않아 광범위하게 번지지 않았다.

덕분에 많은 국가에서의 무림 독감은 안정세에 접어들었고 한국도 치료법의 긴급 승인으로 슬슬 잦아들게 되었다.

약리지는 매일 치료를 하느라 저녁이 되면 파김치가 되었으나 뿌듯한 얼굴이었고 그만큼 약봉의 명성이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덩달아 약리지를 돕는 소천마와 환자들을 지원해 준 바할라에 대한 명성도 높아졌고 말이다.

그리하여 무림 독감이 슬슬 끝나갈 것처럼 보이던 때에.

"슬슬, 시작해 보려 해."

"응."

도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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