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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29화 (529/741)
  • 528화

    치료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식약처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의선약가의 저명한 이들이 그것을 만들어 내었고 또 실력 있고 경험이 많은 이들을 중심으로 시술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무어라 첨언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었다.

    한데 그 너무나 당연한 것이 뒤집어졌다.

    그러니까.

    "이 치료법은 여기, 약리지만이 시술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약지청이 직접 함으로써 말이다.

    회의에 나온 식약처 사람들의 시선이 모조리 약리지에게로 향했고 그 시선에 당황이 묻어나고 있었다.

    갑자기 이 자리의 중심이 된 약리지는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으나 그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미 다 이야기가 되었고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 * * *

    "제가…… 치료를 해야 한다구요?"

    "응. 니가 해야만 해."

    그날 찾아온 도진이 말한, 약리지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이었다.

    약리지가 치료를 하는 것.

    만화 같은 이야기지만 따져보면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이 그러했다.

    도진이 약리지를 치료한 방법은 확실한 치료법이었다.

    스스로의 몸으로 확인했고 약리지를 치료함으로써 증명까지 하였다.

    다만 그것이 '완벽한 치료법'은 될 수 없었으니 현실적인 문제를 여럿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선 약지후와의 대화에서 이미 논한 것들.

    우선 최소한 약리지 정도로 단련한 무림인이거나 그에 준하는 정신력을 갖춘 이들만을 대상으로 치료를 시도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100%가 아니라 시도할 수 있다는 거다.

    도진이 제아무리 소천마라 해도 타인의 몸에 지극히 정밀한 내공 운용을 하는 방식의 치료를 아무렇지 않게 계속할 수는 없었다.

    치료받는 이가 고통에, 혹은 다른 여러가지 요소로 변수를 일으켰을 때의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런 위험을 안은 시도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제도적인 문제.

    도진이 의사가 아니기에 애초에 시술 자체를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두 가지의 문제 때문에 약리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한데 그 문제를 모조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니 도진이 아닌 약리지가 치료를 하는 것이다.

    "너는 비록 수습이라 해도 자격을 갖추고 있잖아."

    그 말대로 약리지는 수습이라 해도 의선약가 직계로서 정식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부분을 걸고 넘어질 수야 있겠지만 그것은 제도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될 수 없었고 그마저도 의선약가의 직계이자 약봉이라는 명성으로 커버가 된다.

    그러니까 제도적인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

    다른 문제는.

    "하지만 저는 선배처럼은 할 수 없잖아요."

    약리지가 도진과 같은 방법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응. 너 혼자라면, 그렇지. 하지만 내가 함께 한다면 할 수 있을 거야."

    그것도 도진이 함께 한다면 가능했다.

    아니, 더 나은 방법을 쓸 수 있었다.

    도진의 치료법이 가지는 문제는 천마기를 운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다.

    지극히 파괴적인 천마기는 바이러스를 사멸시키지만 그렇기에 또한 그 육체마저 파괴하고 만다.

    도진은 연신극기공이라는 희대의 신공으로 단련하였고 또 그 깨달음으로 천마기와 자신을 나누지 않기에 문제가 없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폭탄을 터뜨리는 것과 같은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천마기의 위험성을 제거하거나.

    "리지 너의 내공으로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거야."

    천마기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리지의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가 더 커졌다.

    "제가, 요?"

    "응. 니가 하는 거야."

    혼자서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심상의 합일을 통한다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나는 의학적인 지식이 없어. 그러니까 사실상 주변을 다 휩쓰는 식으로 바이러스를 제거해야만 했지."

    그래서 혈도를 포함하여 장기까지도 보호한 뒤에 천마기를 운용하는 식으로 치료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너는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잖아. 바이러스만을 구분해서, 내공을 운용해서 제거가 가능할 거야."

    도진과 심상이 합일된 상태에서 약리지는 바이러스를 분명하게 인지하는 경험을 하였다.

    그러니까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약리지는 도진과 달리 바이러스만을 제거하는 '핀셋 치료'가 가능할 것이었고 그럴 수 있다면 치료에 천마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즉.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심상의 합일이란 거, 아무하고나 하기는 싫거든. 그러니까 가능하면 리지 니가 해 줬으면 좋겠는데. 한 번, 영웅이 되어 보지 않을래?"

    도진의 물음에 리지가 결심이 담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게요!"

    * * * *

    그리하여.

    도진은 리지와 약지후, 약지청이 함께 한 자리에서 방침을 정하였고 즉시 실행했다.

    성과가 필요했기에 지원자를 약리지가 도진의 도움을 받아 치료했다.

    지원자는 다름 아닌 벽태웅이 문주로 있는 포부문의 문도였다.

    조서강과 또 한 명. 보육원의 아이들.

    "이렇게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조금 더 당당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도진은 조서강의 그 지원 동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마약 사건에 아이들이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진보다 더 진하게 느끼고 있을 벽태웅이 그렇기에 한유아가 대표로 있던 화온에서의 배움을 계획보다 일찍 끝내고 포부문을 개파한 것이고 말이다.

    이번의 일은 아이들이 품고 있던 부채감을 스스로, 당당하게 탕감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다.

    무림 독감에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을 구해줄 치료법이 한시라도 빨리 승인받을 수 있도록 공헌한 일이 되었다고 도진이 칭찬해 줄 것이었으니까.

    그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약리지가 치료에 성공해야 했지만.

    "잘했어, 리지야."

    "네! 선배!"

    약리지는 도진의 신뢰를 배신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 부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땀에 젖어 머리카락이 붙은 얼굴로 미소 짓는 모습이 평소보다 눈부셨던 약리지는 경증이라 해도 두 아이를 훌륭하게 치료해냈다.

    그 성과를 포함하여 의선약가는 식약처에 긴급 승인을 신청했고.

    '이건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인데…….'

    자리가 마련되는 불과 이틀 사이에 이야기가 퍼져 나가 식약처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대로 약지후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도진이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식약처 직원의 실수였지만 그렇다 해서 '아, 이건 우리 때문인데 기분 나빠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할 만큼 이 자리에 앉은 식약처 사람들의 인격이 훌륭하지 못했다.

    신안(神眼)에 삐딱한 그들의 심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결국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다.

    인격적으로 완성된 훌륭한 사람은 결코 흔할 수 없다.

    그것이 그렇게 흔했다면 선(善)이란 것이 그토록 귀하게 취급되지 않았을 거다.

    또한 그렇기에, 오늘 나온 이들 중 가장 권한이 큰 무림 독감 관리대책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중년인의 호의적인 태도가 특히나 눈에 띈다.

    '팬이라더니…….'

    오늘의 일에 대비해서 나지윤에게 자료를 부탁했었고 세이전주로서 나지윤은 훌륭히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었다.

    그리고 그 정보 안에 특이한 게 하나 있었으니 이 자리의 중심인 관리대책본부장이 도진의 팬이라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너랑 소담이 커플링을 지지하는 팬이더라.'

    …라고 했다.

    뭔가 기분이 묘하기는 했는데 자리가 이렇게 되고 보니 복잡하긴 하지만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자신과 곁에 앉은 약리지를 동시에 시야에 담고 있는 그의 눈동자 너머로 또 묘한 감정선이 읽히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본부장이 말했다.

    "…치료법은, 기 치료로군요."

    약지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기 치료.

    본격적으로 '기(氣)'라는 것이 알려지고 연구되기 전에는 미신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되던 치료 방식이었다.

    흔히 한방을 비하하는 '한무당'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 정도의.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기 치료는 양방 못지 않게 인정받는 치료 방식이었으며 도진이 약리지를 치료한 것 또한 넓은 범주에서는 분명히 기 치료라 할 수 있었다.

    "기 치료. 예. 이거라면 기준이 낮아지지요."

    중요한 건, 이 기 치료라는 것이 본부장의 말 대로 승인에 있어 백신보다 기준이 낮다는 거다.

    백신 개발의 경우 최소 10년을 잡아야 한다는 게 과장이 아닐 정도로 무엇보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싸움'이었다.

    이에 반해 기 치료 방식의 경우 그 기간이 훨씬 단축되니 지금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한 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그 이유를 한 마디로 하자면 기 치료가 과학이 아닌 '무림의 영역'이기에 그렇다.

    "경증의 경우 두 사람의 환자가 완치되었군요."

    자료를 검토하며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중증의 경우엔…… 약리지 씨 스스로가 사례가 되었군요."

    도진과 약리지, 그리고 의선약가는 약리지가 중증에 고생하던 중 도진의 도움을 받아 기 치료의 방식으로 치료를 성공했다는 쪽으로 입을 맞추었다.

    -조금, 걸리는 부분이 없지는 않네요.

    -응, 그렇지. 그 부분은 내가 다 끌어안을 테니까 리지 너는 착한 아이로 있도록 해.

    100% 정정당당한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순수한 정도(正道)만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가장 좋지만, 가장 좋은 게 언제나 가장 좋은 정답이 되지는 않으니까.

    그러니까 도진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차선을 택했다.

    택하는 건 천마신교의 도진이다.

    약리지는 정도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남을 수 있도록 도진이 손을 붙잡고 이끄는 식으로.

    본부장은 자료를 검토하며 연신 고개를 주억였다.

    의선약가 측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그는 그렇게 신중하게 자료를 검토하였고.

    "음."

    이내 측근들과 이야기 후 결론을 내렸다.

    "긴급이라고 해도 즉시 승인을 내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선약가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예. 중증의 경우 약리지 씨 이외의 사례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우선은 중증 환자 중 지원자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문제없이 성공 사례가 계속 발생한다면, 그때 긴급 승인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보, 본부장님?!"

    예상치 못했던 결정에 식약처 측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의선약가 또한 이렇게 흔쾌히, 긍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약간 당황하고 말았다.

    본부장은 그런 반응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패 사례가 나오거나 부정적인 이슈가 있을 경우엔 승인할 수 없으니 그 부분은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본부장은 도진과 약리지를 흘긋 보고선 회의를 정리해 버렸다.

    회의가 끝나고 도진은 스윽 웃었다.

    "흐음. 이건 예상치 못했던 즐거운 오산이라고 해야 할까요."

    도진의 말에 약지청도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군요. 이렇게 수월하게 결론이 나올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예상치 못했던 '사고' 때문에 꽤나 감정 싸움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최고책임자가 너무나 호의적으로 결론을 내 주었다.

    덕분에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즉시 지원자를 모집할 수 있게 되었고.

    "할아버지."

    "너무 부담가지지 말아줬으면 해요. 학생은 분명히 성공할 테니까."

    약리지는 노신사의 곁에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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