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6화
도진이 하려는 것은 천마기를 운용함으로써 가능해지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의 효과를 약리지의 몸에 적용하는 것이다.
천마기는 몸 안의 해로운 것, 이물질을 모조리 분쇄해 버리는 공능을 가지고 있다.
천마기의 그 비할 데 없이 무시무시한 파괴적인 본질에서 파생된 공능으로, 깨달음을 얻어 천마심공의 5성에 이른 지금 도진은 단순한 운용을 넘어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그 효과를 조절할 수도 있게 되었다.
여기에 또 하나 더.
단순히 온몸의 말단까지 내공을 운용하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를 우주로 인식하고 그것을 오롯이 인지하는 데에까지 이른 도진은 그로써 바이러스마저 인식하고 천마기를 운용하여 제거하는 것까지 가능해졌다.
도진은 이것을 약리지의 몸에서도 성공시키려 하는 것이다.
천마기가 여의(如意)의 경지, 마음먹은 대로 운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고 인간의 육체를 우주로 정의하고 오롯이 인지할 수 있게 된 지금 그와 같은 운용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우선 만독불침의 공능을 가능케 하는 천마기의 그 파괴적인 본질이다.
평범한 이는, 아니 초월적인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 해도 천마기를 감당해낼 수는 없었다.
대항을 하면 하였지 자신의 안에 풀어놓을 수는 말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천마의 제자가 되는 것부터가 목숨을 거는 일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연신극기공이라는 희대의 신공으로도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게 한계이진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자신의 몸이 아닌 타인의 몸 속 바이러스를 인지하는 것 또한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렇기에 도진은 약리지의 몸에서 천마기를 운용하기에 앞서 순수한 자연지기로 그녀의 몸을 채운 것이었다.
약리지가 느꼈던 차가운, 그러나 열에 펄펄 끓고 있어 시원하게 느꼈던 그것이 순수한 자연지기다.
자연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을 만큼 밀도 높은 자연지기가 약리지의 몸을 가득 채웠기에 그녀의 통증이 가라앉았고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포옹과 같은 안정감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도진은 그렇게 약리지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 자연지기에 집중했다.
'아…….'
그리고 약리지는 평생에 다시 없을 경험을 하게 됐다.
미지의, 무한한 세계가 펼쳐졌다.
그것은 그녀의 심상(心像)에 펼쳐진 세계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어 낯설었으며 미지였기에 생소함이 공포가 되는 세계였다.
스윽-
하지만 그녀는 그 낯섦과 생소함이 무섭지 않았다.
그녀의 바로 곁에,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해 주는 선배가 있었으니까.
짧은 생이었으나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경험.
그리고 처음임에도 황홀하기만 한 '오롯이 연결된' 감각이 그녀를 환희로 채워 주었다.
'나'를 분명히 느끼고 있음에도 오롯이 연결된 감각을 통하여 선배를 구분없이 인지할 수 있었다.
세계 그 자체가 몇 배나 넓어진 감각.
그리고 그것은 도진도 마찬가지였다.
약리지와 세계를 도진이 스스로 매개가 됨으로써 연결했다.
그럼으로써 도진 또한 약리지와 연결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우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으나 타인마저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지금 도진에게 평범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일.
하지만 이렇게 천마군림의 이치를 응용하여 세계와 자신을 잇고, 자신을 매개로 하여 타인까지 연결함으로써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것은 멀지 않은 과거, 무형독의 주술사를 상대할 때 한유아와의 경험을 통하여 확인한 것이다.
합일(合一)의 이치.
당시 도진은 부족한 경지로 검기를 구사하기 위해 한유아의 혈도까지 이용하여 천마기를 운용, 동시에 독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도 한유아와 자연을 이었고 천마기를 그녀의 혈도로 보내어 독을 불살랐었다.
다만 이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으니 단순히 독을 몰아내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더 세밀하게, 바이러스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엔 그저 독만을 몰아내면 됐기에 천마기를 그녀의 영역에서 최대한 억제하여 운용함으로써 최대한 혈도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엔 더 나아가야 한다.
추상적인 단계를 넘어 지극히 작은 단위까지 천마기를 약리지의 몸 안에서 운용해야 했고 그렇기에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요구했다.
그래서 도진은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풀어냈다.
스스로를 매개로 하여 순수한 자연지기로 약리지를 가득 채우고 그 자연지기가 약리지를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코팅을 하듯 혈도부터 시작하여 주요 장기까지 천마기가 휩쓸 곳들을 보호한 것이다.
이 현대에선 상상조차 하지 못할, 그리고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불가능할 운용이었으나 인간을 우주로 인식하는 깨달음과 약리지를 오롯이 인지할 수 있는 상태의 도진이었기에 가능했다.
약리지와 오롯이 연결됨으로써 약리지를 우주로 정의하여 인지하는 게 가능해졌다.
동시에, 그럼으로써 약리지를 괴롭히는 바이러스 또한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지기로 약리지를 보호하고 있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
오오오오오오-!!
천마기를 운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요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에 폭주하는 일은 없다.
철저하게 도진이 원하는 형태로 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천마기이기에.
자연지기로 보호하고 있다 해도 '미숙한' 약리지에게 영향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었다.
움찔.
내부에서 피어나는 고통에 약리지의 몸이 반응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도진의 걱정이 전달된다.
거기에 약리지가.
'괜찮아요, 선배.'
환하게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해 주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약리지는 정말로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걸 넘어 오히려 기쁘기까지 했다.
어릴 적.
의사로서의 지식만이 아닌 무림인으로서의 무력까지 갖추기 위하여 약리지는 수련에 열심이었고 지치고 다친 경험이 적지 않았다.
그런 어린 시절 그녀를 보듬어 주고, 약을 발라주던 어머니의 손길을 약리지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래되어 풍화되고 흐릿해졌지만 그렇기에 아름답게 남은 감각.
그 감각을 약리지는 지금 다시 경험하게 됐다.
찌릿-
내부를 바늘로 찌르고 긁는 듯하다.
그런 통증을 유발하는 것에 대한 공포가 스멀거리며 통증에 묻어난다.
그러나 동시에.
사아아-
맞잡은 도진의 손을 통하여 흐르는 순수한 자연지기가 그 통증을 보듬어 주고 공포를 흩어 준다.
마치 어머니의 손길처럼.
그래서 약리지는 오히려 좋았다.
지치고 다친 자신을 어머니가 자상하게 쓰다듬어 주는 것만 같아서.
약리지는 웃으며 통증을 감내하였고 바이러스는 도진의 천마기에 완전히 사멸하였다.
그리고 치료가 다 끝났을 때.
마치 아이처럼 약리지는 새하얀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 * * *
치료는 성공이었다.
확신했기에 시도한 일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치료를 끝내고 나온 도진은 철저한 소독 과정을 거쳐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치료를 지켜본 소수의 이들에게 경이를 가득 담은 시선을 받았다.
"…음성, 입니다."
약리지는 대번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바이러스만을 제거했으니 완치는 아니어도 음성 판정이 나온 것이고 그렇기에 의선약가의 사람들은 경악하고 경이의 시선으로 도진을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몇 시간이나 그들은 상상도 못할 내공의 운용을 했던 도진은 그러나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진은 세 번째로, 의선 약지후와 마주하게 되었다.
대통령조차 이유가 없으면 못 본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약지후와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도 특별한 일이었다.
약지후는 마주한 자리에서 우선 고개를 숙였다.
"딸을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끼는 후배를 위해 한 일입니다. 그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딸의 일이다.
성인(聖人)이라 추앙받는 약지후라 해도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도진을 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시선으로 약지후는 사(私)가 아닌 공(公)의 부분을 논했다.
"리지를 치료하신 건 독문기공(獨門氣功)이십니까?"
"예. 맞습니다."
"그러시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약지후에게선 예상했다는 반응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실망이 묻어났다.
다른 게 아니다.
독문기공이란 건 곧 타인이 할 수 없는, 도진만이 가능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약지후가 원하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가능했을 텐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외불출의 비기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저 이외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
사문의 비기를 유출할 수 없다는 이유가 아니라 실제로 그러했다.
인간을 우주로 정의하고 인식하는 건 경계를 넘어선 이 정도가 아니고서야 흉내도 못 낼 일이고 그 상태에서 바이러스를 인식, 천마기를 그저 운용함으로써 이물질을 배제하는 걸 가르쳐 주거나 알려준다고 해서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소한 리지 정도로 육체와 혈도가 단련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혹은 그 이상으로 정신력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면 시도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제아무리 자연지기로 보호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천마기의 흉포함은 자연지기로 보호해도 다 억누를 수 없고 그렇기에 환자 스스로가 최소한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내구력을 갖추어야만 했다.
혹은 일반인의 몸으로 내부를 직접 긁어내는 듯한 고통을 흔들림없이 감내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고 있거나.
"한정적인, 수단이군요."
"예. 그나마도 리지 외에는 공식적으로 치료할 수도 없고 말이죠."
그 말대로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김도진이 '의사'가 아닌 것이 그 이유였다.
이 시대는 무협지의 시대가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선 그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의사라는 자격이.
지금 시대에서는 양방(洋方)과 한방(韓方)을 가리지 않고 자격을 갖춘 이만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도진은 그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기실 약리지를 치료한 것도 면회라는 형식을 빌려 시도한 것이었고 공식적인 치료가 아니었다.
즉. 문제를 제기하면 걸릴 수밖에 없는 행위라는 거다.
그런 이유로 리지의 치료를 지켜본 이들은 직계 중에서도 주요한 인물들로 한정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를 찾아가거나 찾아오게 만들어 치료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무형독의 테러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도 없지만 여기에 무형독이 수작을 부리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떳떳해야만 그 어떤 수작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반대로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제아무리 다른 곳이 단단해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실체가 다 파악되지 않은, 상상을 넘어선 영역에서 뒷공작을 벌이는 무형독을 상대로 약점을 만드는 건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일이었다.
의선 약지후가 그런 것을 모를 리가 없고 실망은 더 짙어졌다.
며칠 사이에 중증 환자가 몇이나 더 늘었다.
한국에서만 열 명이 넘는 환자의 증세가 중증으로 번져 공포 분위기마저 조성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약지후는 딸만이 치료된 상황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도진이 말했다.
"가주님."
"예, 소천마."
"저에게 모두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