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26화 (526/741)

525화

기인지우(杞人之憂).

기(杞)나라 사람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데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늘이 꺼질까 걱정했다는 내용이니 과연 쓸데없는 걱정이라 할 만했다.

지금 도진의 모습에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겠지만, 도진은 그런 기나라 사람과 같은 부분이 있었으니 걱정을 사서 하는 성격이 그러했다.

걱정을 대출받아 할 필요가 없다고 유지은에게 해 주었던 조언은 그러니까 도진이 전생의 삶에서 궁구하여 얻은 지혜였던 거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도 사실, 도진의 그런 부분은 다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 되지 않고 미래에 현명하게 대비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이번에 한 걱정 중 하나도 그랬다.

'무형독의 바이러스 테러를 내가 막아내거나 그걸 넘어서 고칠 수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바이러스 테러가 어떤 형태로 덮칠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것을 나의 힘으로 막아내거나 고칠 수도 있으면 좋을 텐데.

도진은 그런 생각을 했고 두 사부와 상담까지 했었다.

"이 시대에서 말하는 바이러스라는 걸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장 제도 마찬가지지."

위지혁은 우선 그렇게 답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위지혁과 장호는 도진을 통하여 세상을 보고 들으니 도진이 보거나 들은 적이 없는 것에 관해서는 알 방법이 없다.

여기에 그들의 시대는 고대 무림이니 현대의 '문명'에 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만, 그것이 독의 범주 내에 있는 것이라면 너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위지혁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도진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너는 일전의 특훈으로 깨닫지 않았느냐. 만독불침의 영역에 이를 수 있는 이치를."

그랬다.

위지혁이 독마 하연화와 처음 만났던 날의 사건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도진은 천마기를 통하여 독을 이기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치의 영역에 이르러 그 어떤 독이든 도진은 천마기를 운용함으로써 몰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도진은 총괄부에 모인 이들과 한 번씩 눈을 맞추었다.

지극한 신뢰를 담고 있는 눈동자들.

그러나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걱정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도진은 소담과 위연서만이 아닌 이들 모두의 걱정을 불식시켜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무턱대고 하는 말이 아니니까."

바이러스는 독과 결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경지에 이른 무림인은 체내에 침투한 독을 감지할 수 있다.

몸 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일반인을 넘어선 감각과 내공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다르다.

사람이 어떻게 몸 속 세균을 인지하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도진은.

그것을 할 수 있었다.

심상세계에서 위지혁과 장호가 그것이 가능함을 확인해 주었다.

"지금부터 네게 독을 주입할 것이다. 이 독을 감지하고 몰아낼 수 있다면, 바이러스 또한 인지할 수 있을 게다."

심상세계는 말 그대로 심상으로 구현하여 성립하는 공간이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심상(心象)'이기에 모르는 것은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본래라면 도진은 심상세계에서 현실과 같은 수련을 하는 게 불가능했다.

인간의 인지로 어찌 '세계'를 구축하겠느냔 말이다.

한데 그것이 가능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둘이나 도진에게 깃들었으니 그야말로 초월경(超越境)에 이르렀다 할 수 있는 위지혁과 장호였다.

물리법칙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지극한 이치를 깨달은 둘은 이 세계를 도진이 정말로 수련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세계로 성립시켰고 여기에 도진의 지식이 더해지며 더욱 완벽해졌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도진은 위지혁이 주입한 바이러스에 가까운 독을 인지하고 몰아내는 데도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제 그것을 현실에서 해내야 했다.

도진의 명에 따라 준비가 갖추어졌다.

도진이 자리에 편히 앉고 그 옆에 위연서가 무림 독감 바이러스를 채운 주사기를 두고 시립했다.

스윽-

도진의 기세가 명경지수와 같이 잔잔해지고 두 눈이 감겼다.

그리고 모든 감각이 외부에서부터 시작하여 내부로 침잠한다.

피부를 지나 근육으로, 혈맥으로, 세포에까지.

빙산의 일각을 인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정보량이 폭발적으로 도진에게 밀려들었고.

스으…….

그것을 도진은 이치에 따라 받아들이고 정리해 나갔다.

도진은 이미 두 번이나 이에 관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었다.

우서진이 앓고 있던 삼음지체를 고쳤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열양지기를 품고 있던 설표를 환골탈태 시켰을 때.

그때 생명을 품고 있는 육체를 '우주로 받아들이는 법'을 깨우쳤던 것이다.

그러니까 헤매지 않았다.

도진은 자신이라는 우주를 인지해 나갔다.

그리고 그 우주를 채우는 것들까지도.

감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흉포해 보이는 흐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가 아닌 다른 것이라 인지했던 천마기의 흐름을 느낀다.

이제는 안다.

그것 또한 자신이며 자신의 우주를 구성하는 일부라는 것을.

그러니까 그것은 결코 자신을 해치는 것이 아니며 오롯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흐름을 안다.

그 흐름으로 뒤덮인 무한한 모든 것이.

도진의 인지 하에 놓였다.

두웅……!

그리고 도진은 또 한 번, 커다란 산을 넘었음을 느꼈다.

육체 또한 스스로 그러한 자연과 같은 것이다.

본인이 인지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치에 따라 생을 이어간다.

도진은 그런 이치를 완벽하게 인지하였으니 모든 것이 그렇듯 모르고 하는 것과 알고 하는 것은 극명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고 이것은 커다란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도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어렸고 위연서가 감격하여 부복했다.

그런 위연서를 도진이 불렀다.

"위연서."

"예."

"주사를 놓도록 해."

"존명!"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위연서가 망설임없이, 그러나 더없이 극진하게 도진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즈으윽-

주사 안의 내용물이 압력에 따라 도진의 체내에 침투한다.

경계를 넘어선 도진의 감각은 그 내용물을 극명하게 느꼈고.

'…….'

현실의 경계를 넘어서, 내용물 안에 살아 움직이는 바이러스마저 감지해내는 데 성공했다.

더없이 섬세하게 벼려진 감각이 깨달음에 따라 '자신의 것'이 아닌 지극히 미세한 생물마저 감지해낸 것이다.

도진은 그것을 가만히 관조했다.

체내에서 중증으로 심화된 바이러스가 어떻게 작용하고 피해를 끼치는지 하루가 넘도록 지켜 보았고.

오오오오오-!!

이해한 순간 천마기를 일으켜 바이러스를 휩쓸었다.

스윽-

자신의 안에 침잠해 있던 도진의 손이 들리고.

사아아아…….

천마기에 분쇄된 바이러스는 사멸하여 손가락 끝에서 체외로 기화해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감축드리옵나이다! 소지존!"

도진의 곁을 지키던 위연서가 부복하여 외쳤다.

"고마워."

도진은 미소지으며 그런 위연서의 어깨를 쓸어 주었으니 감복하여 파르르 떠는 진동이 전해진다.

검증이 끝나고 샤워 후 식사를 마쳤다.

그럼으로써 모든 준비를 마친 도진은 다시 한 번 의선약가를 방문하여.

"또 뵙습니다, 가주님."

"예, 소천마."

약리지의 아버지, 의선약가의 가주 약지후를 마주했다.

시간이 없는 그에게 도진은 즉시 본론을 이야기했다.

"가주님."

"예."

"가주님의 따님, 저에게 치료를 맡겨 주십시오."

"……!"

* * * *

'…아파.'

약리지의 몽롱한 머릿속에는 그런 단어가 흐릿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잘 낫지 않던 독감이 악화되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게 되었다.

후기지수로서 봉황의 별호까지 얻었던 높은 경지에 이른 약리지였으나 그런 약리지도 버거울 만큼 독감은 그녀를 아프게 괴롭혔다.

숨을 쉴 때마다 목이 아팠고 가슴이 아렸다.

피로함에도 매순간 고통이 정신을 두드리고 찔러 잠들 수가 없었다.

의식하기에 더욱 괴롭고 겨우, 정말로 겨우 정신을 잃듯 잠에 들어도 꿈 속에서마저 고통에 허우적거리다 깨곤 했다.

'아파…….'

괴로웠다.

격리된 병실에서 혼자 누워 고통스러운 호흡을 반복하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고 그러면서도 외부의, 현실을 떠올리면 또 괴로워졌다.

'싫어.'

싫었다.

모든 게 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다 지나가고, 모두 좋게 해결되어서 다시 웃으면서 아프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열망에 약리지는 손을 펴려 했으나 그조차 쉽지 않았다.

'아…….'

꿈인 것만 같다.

몽롱한 정신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감각이 정말로 꿈이, 악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똑똑한 현실주의자인 약리지는 그렇게 도피할 수조차 없었다.

이게 현실임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부정하고 만다.

그래서 더, 힘들다.

오기가 생겨서 마음먹었던 대로 손을 펴기 위해 힘을 주어 보지만 역시 쉽지 않다.

'씨이.'

화가 난다. 무섭다.

눈물이 핑 돈다.

자신을 괴롭히는 늪에서 영원히 빠져 나가지 못하고 이대로 잠겨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파르르 떨리는 손을.

스윽-

'아…….'

누군가 잡아 주었다.

차갑지만 그것은 시원함이 되었다.

단단하지만 그래서 마음을 흔들림없이 잡아주는 감각이 약리지의 손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흐릿하던 시야에, 그러나 너무나 분명하게 손을 잡아준 이가 새겨진다.

"선, 배."

"응, 리지야."

멸균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약리지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선배가.

약리지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신기해.'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저 손을 잡아준 것만으로도 아무리 몸부림쳐도 떨어지지 않고 들러붙어 있던 고통스럽던 늪의 진흙이 씻겨 나가는 것만 같다.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약리지는 선배의 손을 통하여 흘러드는 신비롭고도 시원한 기운을 통하여 확신할 수 있었다.

"뭐에요, 이건?"

언제나처럼 물었다.

도진은 그녀를 편안하게 해 주는 미소를 지으며 답해 주었다.

"널 낫게 해 주려고 준비한 거."

"나, 나을 수 있어요?"

"그래. 지금 당장."

"진짜요?"

약리지가 한가득 웃는 얼굴로 묻는다.

기대와 신뢰를 담은 그 질문에 도진이 돌려줄 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히 진짜지. 다만 한 가지, 니가 도와줘야 할 게 있어."

"제가요? 뭘 도와드리면 되는데요?"

"쉽지만 아주 어려운 거."

'괜찮아요.'

약리지는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거라면.

자신의 세상을 온통 뒤덮은 것만 같던 고통을 물리쳐 준 손길의 선배를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약리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그 의지가 담긴 예쁜 눈동자를 마주하며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좀 아플 수도 있어. 그래도 나를 믿어 줘. 그럴 수 있겠어?"

도진의 물음에 약리지의 미소가 넘칠 것처럼 밝아졌다.

"너무 쉬운 거잖아요."

"네. 믿을게요, 선배."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적을 일으키는 건.

맞닿은 손을 통하여 도진의 천마기가 약리지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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