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화
이번 사태에서 도진은 어떤 면에 있어선 의선약가 이상으로 능숙한 대처를 보여 주었다.
천마신교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그 외의, 특히나 의선약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그럴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치 이런 류의 유행 사태를 몇 번이고 겪어본 것과 같은 모습을 어떻게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 사람의 재능과 인물을 떠나 '경험' 자체가 없었을 텐데.
허나 아니었다.
도진은 그런 경험을 몇 번이고 전생에서 했었다.
무림 독감을 시작으로 두 번이나.
그러니까 놀랍게도.
도진의 전생대로라면 이 현대에 앞으로 10년 내에 전염병의 유행이 두 번이나 더 있을 거란 이야기다.
심지어 그 중 마지막 한 번은 앞서의 두 번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심각했으며 무려 3년이나 세상을 괴롭혔던, 인류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전염병이었다.
도진은 무림 독감을 떠올린 순간 그때의 경험으로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었고 의선약가가 함께 해 주어서 더욱 효과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남자, 구약정을 강압적으로 데리고 간 이들의 단편적인 대화 속에서 알 수 있었다.
구약정이 '슈퍼전파자'였음을.
슈퍼전파자.
이쪽 분야에서 2차 감염자를 10명 이상 발생시킨 감염자를 말하는 용어.
그러니까 구약정이 10명 이상에게 무림 독감을 전파했다는 소리다.
이렇게 두고 보면 많은 부분의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일단은 아직 독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앓고 있는 약리지.
'처음엔 아마도 평범한 독감이었을 거야.'
문제는 그렇게 독감에 걸린, 약해진 상태에서 구약정과 만났다는 거다.
처음 지하철에서 마주했을 땐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에 만났을 때.
함께 식사를 할 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스크를 벗었었다.
그 후 약리지는 무림 독감을 앓게 됐다.
충분한 인과 관계가 성립해 버린다.
그리고…… 노신사다.
그 또한 구약정과 접촉하였다.
마스크를 벗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하필이면.'
도진은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전생에서 있었던 좋지 않았던 흐름을 아주 많이 좋은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렇게나 세상의 일은 인간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버리곤 한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그것이 퍼지지 않도록 감염자의 동선과 근원을 추적하는 게 기본이다.
무림 독감이 공론화되고 사건이 커지면서 장관급 인물까지 소환되었고 만회하기 위해 다급히 관리대책본부가 설치되었다.
이에 따라 감염 경로와 근원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구약정이 나타났다고, 도진은 나지윤에게 들었다.
"말이 추적이지 거창하게 할 것도 아니었어. 구약정 그 사람이 살던 빌라촌에서 세 명, 호포문에서 네 명이 나왔으니까."
구약정은 호포문의 문도가 되었고 그동안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하여 빌라촌 일대에서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봉사를 했다.
그리고 그 속죄가, 이런 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슈퍼전파자. 그것도 관심이 가장 많이 집중되는 초기의.
-와, 그럼 저 씹새끼가 이 사단 만든 거임?
-저 새끼 저거 지하철 패륜남이라면서?
-맞음 ㅇㅇ 와 진짜 ㅋㅋ 저런 새끼는 한 시라도 빨리 소각해 버리는 세상이 돼야 하는데 ㅋㅋㅋ 존나 ㅋㅋ
-그러게. 시발 저런 새끼는 즉결사형법 같은 거 적용할 수 있게 하면 안 되나?
보통은 아무리 그래도 신상이 만천하에 드러나진 않는다.
'A 씨' 같은 형태로 표시하고 신상을 공개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는.
구약정은 약리지와 처음 좋지 않은 일로 만났던 그때 지하철에서 노신사에게 해서는 안 될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약봉 약리지가 개입함으로써 인터넷에 널리 퍼지는 '동영상'이 찍혔고 자신을 알리게 되었다.
그 업보가, 또 이런 식으로 돌아온 것이다.
-근데 저새끼 치안 유지 계약한 문파에 들어갔다면서?
-? 그게 말이 됨? 누가 저딴 새끼를 받아 줌? 그것도 치안 유지 계약한 곳에?
-호포문이라던데? 나름 오래된 곳이드만 개썩은 곳인가보네.
-저딴 양아치를 받아주는 문파라고? 와 ㅋㅋㅋ 뭐냐. 진짜 존나 썩은 곳인가?
비난의 화살에 붙은 불은 자연스레 호포문에도 옮겨갔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그렇게 붙은 불이 번지지 않을 수 있도록 변호해주는 이들이 있었다는 거다.
-호포문 그런 곳 아님. 진짜 좋은 곳임.
-? 알바 벌써 풀었음?
-알바 아님. 주민인 거 인증함.
-호포문 별명이 갱생문임. 방황하는 애들 도와주고 갱생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는 진짜 좋은 곳임. 여기 사람들 중에 호포문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그럼 뭐냐. 저 새끼가 기껏 받아줬는데 거하게 사고쳤다는 거네?
호포문이 쌓아왔던 선업. 그것이 긍정적인 형태로 돌아온 것이었다.
덕분에 호포문은 비난을 피할 수 있었지만, 구약정은 그러지 못했다.
그가 쌓은 선업은 아직 악업을 덮기엔 터무니없이 모자랐으니까.
도진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구약정을 크게 동정하지는 않는다.
만약 노신사와 호포문이 아니었다면 구약정은 도진에게 있어 '천벌'을 받아야 할, 극단적으로 말해 쓰레기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쓰레기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지극히 착한 이들이 있었기에.
'선인(善人)'을 만나 교화할 수 있는 기회를 그가 잡았고 노력했기에.
선인의 노력을 짓밟는 어쩔 수 없는 재해가 그들을 휩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해요.
"응, 그렇네."
상황이 이렇게 되어 면회에 가지 못하고 영상 통화로 얼굴을 마주한 약리지는 눈가가 붉어진 모습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걸 비난만 하는 건 정말로 너무한 거 같아요.
"…그러게."
도진과 다르게 착한 아이인, 선인인 약리지와의 통화가 도진의 그런 마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한 가지만으로 되지 않는다.
도진과 같은 '천마(天魔)'가 있다면 반대로 지극한 선(善)을 추구하는 진짜 '정파(正派)'도 있다.
남사현이나 노신사 같은 사람이.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따듯하게 만드는 온기는 그런 정파에 의해 만들어지곤 한다.
그 온기가 훼손당한 일에 도진의 심기는 언짢아졌고.
"……."
"크, 크흠……."
무림 독감에 관련한 일로 모인 대책본부의 사람들과 기자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봐야 했다.
눈을 부라린 것도 아니고 기세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소천마는 그 자체만으로 그들이 눈치를 보게 만들 만큼 거대한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도진이 자신의 심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죄없는 이들을 좌불안석으로 만들진 않는다.
그러니까 그들이 그렇게 눈치를 보는 건, 그들이 도진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콕 찝어 말해 일전 태만하게 업무를 보다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았던 보건 당국의 공무원들과 그들에 동조하여 소천마를 '깔' 건수를 잡았다 생각한 기자들이 그랬다.
"에…… 그러니까 천마신교 본단의 공사 현장에서 무림 독감이 퍼졌고 그 원인이 현장에서의 미흡한 대처, 그리고 후속 조치가 아닌가……."
"아닙니다."
말을 흐리며 공격하는 공무원에게 도진은 단호히 답했다.
굳이 말장난을 하여 놀리는 것조차 번거로웠다.
그렇게 시간을 소요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도진의 태도는 날카롭기만 했고 발언한 이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아니 시발, 뒤지겠네.'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잘못으로 비난받았음에도 그들은 이렇게 된 것이 김도진이 괜히 일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책임전가를 했다.
그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남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복수를 할 건수가 없을까 눈을 굴렸고 이내 하나 찾은 것이 천마신교 본단의 공사였다.
-공사 현장에서 꽤 많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이거 잘 쓰면 건수 하나 나오겠는데요.
-어, 그러네?
큰 게 아니어도 된다.
말 그대로 '천마신교 본단 공사 현장에서 많은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시국에서는 물어뜯기 위한 명분으로 충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천마'이니 옹호 여론도 만만치 않겠지만 뭐 어떤가.
오히려 그렇기에 비난하는 세력과의 격돌로 더욱 소란은 커질 거고 그들에 대한 관심까지도 그쪽으로 쏠릴 거다.
그걸 목적으로 현황과 앞으로의 대책을 논하기 위한 이 자리에 김도진이 참석하도록 한 것이었는데.
"공사를 맡아주셨던 분들 중 일부가 무림 독감에 걸렸고, 전파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무림 독감이 퍼져 나간 것이."
"발언중입니다. 끼어들지 마세요."
"크, 크흠……."
"하지만 그것은 무림 독감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입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 꼬투리를 잡고 싶으시다면, 가장 먼저 그에 관해 파악하고 대처해야 할 부서의 태만부터 논하고 싶은데요."
"……."
할 말이 없다.
도진의 시선을 누구 하나 제대로 받아낼 수 없었다.
"무림 독감에 관하여 파악 후 즉시 그분들에 대한 지원과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의선약가와 협력하여 검사를 진행했고 격리와 처방, 그에 필요한 지원 등을 했습니다."
치료를 지원했고 주변에 퍼뜨리지 않을 수 있도록 격리 또한 시행했다.
당연히 격리를 함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 손해에 관한 부분까지도 지원을 했다는 거다.
본래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천마신교와 의선약가가 했으니 얼마 전 태만하게 일을 하다 죽도록 까인 그들로서는 반박은커녕 입조차 떼지 못할 처지였다.
태만했던 그들이 반대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한 이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 과정에서 보건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처리가 늦더군요. 일이 늦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생각하는데, 다음날까지 전화준다던 분이 전화를 안 하시더군요. 왜 그랬습니까?"
"아, 그."
도진의 시선은 물론이요 본래 그들의 편이었던 기자들까지 먹잇감을 발견한 시선을 보탠다.
주르륵…….
등이 축축해지고 제대로 망했다는 걸 직감한 그들은 또 한 번 갈기갈기 찢길 운명을 직감하며, 그럼에도 해야만 할 일을 했다.
도진 쪽으론 시선조차 주지 못하고 자료대로 현황과 앞으로의 조치를 읊었다.
그러나 그조차 순탄치 않았으니.
"마스크를 환자만 쓸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써야 효과가 높아집니다."
"하, 하지만 그것은 여러가지로 어려운 부분이……."
"그 어려분 부분을 해결하라고 있는 게 여러분들 아닙니까?"
"예, 예. 그렇지요, 예."
왜인지 모르겠지만 심기가 불편하신 소천마가 칼날같은 지적을 하니 말로 난도질하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그들은 체험하며 혼이 나갈 것만 같은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밀도가 너무 높아 몇 배나 느리게 흐른 듯한 자리가 겨우 파하고 그들은 정기가 다 빨린 듯한 모습으로 퇴장했다.
하이에나들 다수가 그들에게 붙었기에 도진은 방해없이 쌍둥이 빌딩으로 돌아왔다.
학교는 당분간 휴교였다.
무림 독감이 무림인도 안전할 수 없는 전염병인 만큼 당연한 조치였다.
전생에서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 외 사회의 대부분은 일상을 유지했지만 식당이나 유흥가 등은 혹여 전염병이 옮을까 휑했다는 기사를 보았었다.
남의 일이었다.
공장은 정상 출근이었고 허우적거리는 도진의 삶은 그 범위가 좁아 '무림 독감'이란 걸 제대로 체감하지 못했었다.
이번 생은 아니었다.
도진의 시야는 세상을 담을 만큼 넓었고 삶 또한, 세상을 덮을 만큼 커졌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부탁할게요. 누나, 그리고 선배."
"응."
"맡겨 줘."
오성아와 한유아가 도진의 말에 믿음직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 시기를 잘 넘겨줄 것이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도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이상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번 무림 독감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모두를 구원하는 것 같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최악이니까.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움직였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택할 수 있도록 도진은 움직였고.
"소지존을 뵙나이다."
위연서가 찾아왔다.
"소전주."
새카만 비단 같은 머리카락이 새하얀 블라우스와 새하얀 가운에 대비되어 더욱 돋보인다.
하얀 도화지에 스며든 순수한 흑색 같은 분위기의 미녀가 도진의 앞에 부복했다.
"이번 독감과 관련하여 보고드릴 것이 있어 찾아뵈었나이다."
독마 하연화의 진전을 이은 독마전의 소전주.
그녀가 부복한 채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독감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만들어낸 독(毒)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