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21화 (521/741)

520화

따르르릉-

"예. 전화 바꿨습니다."

-무서운 독감이 유행중이라는데 사실인가요?

"해당 부분에 관해서는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무림인도 걸리는 심각한 독감이라던데 아니에요?

"관련 자료를 취합하여 결과가 나오면 공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맞는 거예요, 아닌 거예요?

"…아직은 확답을 드릴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아씨 진짜 일 대충하네.

뚝.

"……."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따르르릉-!

그러나 그것마저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도록 또 전화가 울린다.

따르르릉-!

"예. 그건……."

따르르르릉-!

"그러니까 아직……."

난리다.

소위 말하는 '무서운 독감'에 관한 문의가 밀려들어 업무에 지장이 생길 지경이다.

이게 다 그놈의 잘나신 소천마 때문이었다.

바로 어제.

일반인과 무림인을 가리지 않는 독감이 유행하는 것 같다는 생방송을 내보낸 탓에 오늘 문의가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평소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담배도 몇 번 태울 만큼 느긋했던 근무가 아주 짜증나는 전화 응대 노가다로 변해 버렸다.

그로 인해 점심시간.

감염병과 관련된 과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다수가 소천마를 씹어대고 있었다.

"아니 씨이발 진짜. 지가 무슨 질병관리청장이야 뭐야."

"그러게 말입니다. 왜 주제 넘게 나서서 이 지랄을 내놓는 건지."

소천마 때문에 그놈의 독감이 이슈화되었고 덕분에 그들이 하루종일 전화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렇게 보면 소천마가 괜히 나서서 그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 같지만…….

'지들이 일하기 싫다고 미루다가 이렇게 된 거면서…….'

일부 직원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게으른 그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겼다.

의선약가를 통하여 심상치 않은 독감이 유행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 취합된 자료까지 받았다.

진지하게 한 번 살펴봐야 할 것 같았는데 게으른 꼰대 과장과 그 라인의 직원들이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데 일 벌일 필요 있겠냐면서 묵살해 버렸다.

-이거 단시간에 서울 쪽 자료만 취합한 거잖아. 이것만 가지고 독감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소리 해 봐. 별 거 아닌 일로 드러나면 우리만 욕 먹는 거지.

-맞습니다. 개고생하고 욕 먹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딨겠습니까.

언뜻 설득력 있는 말이긴 했다.

다만 '일하기 싫다'는 게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그걸 다 깎아먹는 게 문제였지.

"연예인까지 동원한 거 보면 진짜 우리 엿 먹이려는 거 아닐까요?"

"감히 내 말 안 들어서 기분 나쁘다 뭐 그런 걸수도 있겠네요."

생방송 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바른 엔터 TV 쪽으로도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넷비전과 합작하여 '정글 게임'을 촬영하게 된 바른 엔터 쪽에서 안티체리와 레드슈를 포함한 이들의 근황이라며 올린 거다.

-아, 여기는 요즘 독감이 유행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 촬영이 딜레이 되고 있어요.

-보세요. 진짜 금발! 예쁘죠?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정글 게임 촬영팀의 이야기, 함께 촬영하고 있는 외국 연예인들까지 소개시켜주는 영상은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여기서도 그놈의 독감 이야기가 나와 버려 시너지를 냈다.

그 시너지는 고스란히 그들을 괴롭히는 전화로 이어지고 있고.

이 점심을 다 먹고 안에 들어가면 또 그놈의 전화에 시달릴 예정이다.

'그냥 독감 조심하라는 발표만 미리 했어도 이 지랄나진 않았을 것을.'

일부 직원들은 그렇게 불만을 중얼거렸으나 조직 생활이 그렇듯 밖으로 꺼내놓진 못했다.

그리고 과장의 라인을 탄 직원 중 한 명이 말했다.

"그, 과장님."

"어. 왜."

"이렇게 된 거 입장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장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표정을 찡그렸다.

"그래야지, 뭐."

입 다물고 있으면 계속 그들을 괴롭히는 전화가 걸려올 거다.

요새 그렇게나 인터넷에 없는 게 없다던데 알아서 찾아보기나 할 것이지.

그걸 가라앉히려면 공식 입장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

일을 해야 한단 소리다.

"대충 손 잘 씻고 다니라는 발표 준비해 봐."

"알겠습니다."

주제넘는 짓을 해 귀찮게 만든 소천마가 괘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싸울 수는 없다.

그들도 게으른 거지 멍청하진 않다.

멍청하면 공무원 합격도 못한다.

너무나 당연한 의무를 하지 않아 상황이 악화되었다고는 인정하지 않지만, 그 독감이 위험하다는 게 이제는 마냥 근거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버하는 거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걸 근거없는 선동이니 유언비어니 함부로 말했다가 역풍을 맞고 싶지는 않다.

안전하게.

그냥 적당히 상투적인 발표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할 수 있고 일도 적다.

…라고, 아직도 그들은 상황을 쉽게 보고 있었다.

방침을 결정한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담배까지 태우고 20분 정도 늦게 사무실로 돌아왔고.

-보건당국, 퍼지고 있는 독감 유행에 관한 유언비어에 우려를 표해.

"아니 씨발. 이게 뭐야?"

한 적도 없는 인터뷰가 기사화된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과장이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누구 한 명 그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누구야? 누가 이따위 인터뷰를 한 거야?"

여기서 걸리면 결코 그냥은 안 끝난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걸 잘 아는 이들이 저런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할 리가 없다.

모든 걸 떠나 막중한 '책임'을 져야하는 저딴 식의 발언을 누가 하겠느냐는 말이다.

"……."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유일하게 그럴 가능성을 가진 '신입'에게로 향했다.

"……."

우중충한 분위기에 거북목이 특징인 남자.

그는 소위 말하는 '폐급'이었다.

이악물고 공부하여 공무원에 합격하긴 했는데 그를 대가로 사회성이란 걸 악마에게 줘 버린 것처럼.

-저는 담배 안 펴서요.

-아, 그래. 그럼 이것 좀 부탁해.

-…….

상사가 시킨 걸 대답도 안하고 하지도 않았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담배피러 가셨잖아요.

-?

-담배핀다고 다들 쉬는데 저 혼자 일하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아니, 하…….

상사는 반박하지 못했다.

무어라 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요, 담배피러 가면서 일 떠맡기는 건 직장내 갑질 아닙니까?

…그는 대번에 경계해야 할 폐급에 등극했다.

"영식이. 네가 인터뷰 했어?"

"…네."

"아니!"

"……."

뭐가 잘못됐다는 걸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었고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삐죽이며 눈치를 보았다.

그 모습에 과장은 복장이 터질 것 같았으나.

"과장님."

"왜!"

"…부르십니다."

윗선에 불려가야 해 그 화를 분출하지도 못했다.

과장이 현장에서야 과장이지 위에 불려가면 쳐맞는 말단에 불과하다.

"관리 똑바로 못해!!"

"…죄송합니다."

당연히 대판 깨졌다.

'씨발. 씨발. 씨발.'

폐급 하나 때문에 부서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보건 당국, "입장 잘못 전해져……."

정정 보도를 내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야 했다.

"예. 저희 또한 세간에 이야기되고 있는 독감에 관한 자료를 취합하고 내부적으로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공공기관이다보니 확실한 정보를 전달드려야 할 책임이 있고 그래서 발표가 조금 늦어진 것입니다."

통화 인터뷰로 준비한 내용을 말한다.

그럴싸하게 태만을 포장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에 의선약가에서 보낸 자료가 있었으니 일을 했다는 증거를 만드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사태 수습에 열심이었던 그들의 노력은.

"의선약가에서 자료를 보냈을 때 다들 그냥 묵살했습니다."

"예? 사실입니까?"

"네."

'폐급'의 내부 고발에 의해 화려하게 폭발하고 말았다.

독단적으로 인터뷰하여 피해를 끼친 그는 감봉 처분을 받았는데 거기에 앙심을 품고 내부 고발을 해 버린 것이다.

결과야 뭐.

-보건 당국의 거짓 해명. 비난 쇄도해…….

따르르릉-!!

-니들이 그따위로 쳐 하고도 돈 받아처먹냐!!

"뭐 했냐고 이 무능한 새끼야!!"

내부에서 터진 폭탄이 유폭하여 화려하게 터져 나가는 중이었다.

"개판이네요."

"그러게."

화려한 폭발쇼에 도진은 한 마디로 감상을 말했고 한유아가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책임전가하지 못하게, 그리고 게으른 그들이 괘씸하여 애 좀 먹으라고 동영상을 올린 것이었는데 그게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터질 거라곤 도진도 생각지 못했다.

그들의 업보 스택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뭐 덕분에 무림 독감에 관한 이야기가 오히려 미국보다 일찍 공론화되었으니 잘 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연장선상에서 미국 쪽에서도 '무림 독감'에 관한 대처를 조금 더 일찍 시작했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게 잘 풀릴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리지, 오늘도 결석이네."

"응. 좀 세게 걸린 것 같아."

언제나와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소담의 걱정스런 얼굴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약리지의 독감은 처음 감기몸살과 달리 쉽사리 낫지를 않았다.

어느새 5일째.

이틀째에 좀 나아지나 했더니 다시 심해졌고 그것이 유지되고 있다.

'감기몸살로 약해졌을 때 독감에 걸렸기 때문인가.'

무림 독감은 그 사람이 약해져 있을 때 걸릴 경우 지독하게 오래가는 경향이 있다고 전생의 뉴스에서 말한 걸 위지혁과 장호가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독감이 지속되다 보면, 중증(重症)으로 넘어갈 위험이 있다.

약리지의 경우 경지가 낮지 않은 만큼, 의선약가의 직계인 만큼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겠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번 살펴보러 가 볼게."

"응."

도진은 학교를 마치고 시간을 내어 의선약가를 방문했다.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멸균복까지 입고 개인 병실에 누워 있는 약리지를 만났다.

"진짜 고생하네, 우리 후배."

"건강이 최고의 보물이라는 말을 이제 알겠어요."

"그래. 빨리 낫자, 리지야."

"네. 그러고 싶어요."

상당히 시달린 리지는 약해져 있었다.

이런 때엔 꾸준히 얼굴을 비춰 주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기운을 북돋아 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걸 방해했다.

병문안을 마치고 나온 도진은 익숙한 기운이 태풍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시야에 그 기운의 주인이 누군가의 등에 업혀 나타났다.

"도, 도와주십시오!"

땀범벅이 되어,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다급하게 달려온 건 인연이 있는 남자였다.

지저분했던 모습을 정리하고 깔끔한 무복을 걸친 호포문의 문도가 되어 과거에 속죄하기 위해 열심인 남자.

그의 등에, 그가 저지른 무례를 용서해 주었던 노신사가 업혀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 어르신께서!"

"쿨럭! 쿨럭!"

남자의 등에 업힌 노신사가 몸을 들썩이며 힘겹게 기침을 했다.

그 기침에, 피가 배어나왔다.

도진의 얼굴이 대번에 심각하게 굳었다.

'저건.'

독감이 중증(重症)으로 번진 모습이었다.

노신사는 다급히 달려온 약지청의 지휘 하에 조치에 들어갔다.

약지청은 크게 동요하였으면서도 마음을 둘로 나눈 듯 차가운 이성으로 정확하게 대처했다.

그 사이 노신사를 업고 온 남자는 채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 남자에게 몇 명이 다가왔다.

"구약정 씨."

"네, 네?"

"무림 독감 관리대책본부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무림 독감 전파 과정의 조사에 구약정 씨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그, 저는……."

남자, 구약정이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나 대책본부에서 나온 이들은 그런 구약정의 혼란 수습을 돕는 대신 강압적으로 동행을 요구했고, 이내 그를 데리고 갔다.

'이건…….'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도진은 한 가지, 아주 나쁜 결론에 도달해야만 했다.

남자. 구약정이.

'슈퍼전파자.'

라는 결론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