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화
보건당국에 연락을 넣은 건 의선약가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주말, 그것도 일요일이니 관공서의 대부분이 쉬지만 그렇다 해서 국가 전체가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건당국에도 그런 이유로 당직을 서는 사람이 있었기에 연락을 할 수 있었다.
-예.
"일반인과 무림인을 가리지 않는 특이 독감이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관련하여 협력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 특이 독감이요.
"예. 자료를 취합하여 보내드릴 테니 검토하시고 앞으로의 방안에 관하여 의논을 하고 싶습니다."
-아, 예에. 보고하고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공무원의 목소리가 그리 좋지 않다.
의선약가의 사람은 그가 갑자기 생긴 일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귀찮아 한다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본래 '직장인'이란 게 그런 법이라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한 번 더 연락하도록 하지."
"예."
오지 않는 전화에 의선약가 소속의 중견 무인이자 의사가 다시 연락을 넣었을 때.
-아, 예. 그거요.
연락을 받은 이의 목소리를 통하여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되었다.
공무원이 말했다.
-보고를 드렸는데, 괜히 저만 깨졌습니다.
"예?"
-자료대로라면 일반인과 무림인의 독감 환자 비율이 비슷하다는 건데, 이것만으로는 소란을 일으키기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
-안 그래도 간절기이고 단순 감기나 독감이라면 구분없이 걸릴 수 있는 법이지요. 무엇보다 표본이 서울에 한정돼 있으며 적지 않습니까.
-이걸 가지고 독감 유행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달라, 이런 공고를 했다가는 저희가 오히려 욕을 먹습니다.
"……."
공무원의 말을 통해 의선약가의 의사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이 사람들이 안일하고 또 나태하구나, 라는 것을.
그러니까 그거다.
자료를 신뢰하지 못할 것은 없지만 또 부정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들은 괜히 일을 늘리고 싶어 하지 않았으며 또한 일을 벌임으로 인해 혹시 모를 지게 될 책임 또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협조를 구할 수 없게 됐다는 거네요."
"응."
도진의 말에 상황을 알려 준 한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도진은 그들의 태도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한국은 이런 형태의 전염병으로 인한 사건을 겪어 본 적이 없는 나라였다.
과거는 몰라도 현대에 와서는, 말이다.
때문에 안이하게 생각하고 대처할 수도 있다고 억지로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랬으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꼴을 보이는 건 결코 이해해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전생에서 의선약가가 비난을 받은 것도, 정의검가가 욕을 먹은 것도 그런 책임 전가에 의한 일이었으니까 더더욱.
전생에서도 의선약가는 조금 시기가 늦었지만 미국에서의 상황을 듣고 한국에서도 비슷한 독감이 유행한다는 걸 알고서는 즉시 보건당국에 연락을 했었다.
그때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으면서 후에 발표에서 의선약가가 방문한 환자들을 격리하지 않아 독감이 폭발적으로 번졌다는 소리를 했던 거다.
말이야 틀리지 않다. 그건 일단 '팩트'이기는 했다.
허나 그 시기엔 의선약가는 물론이요 미국에서조차 무림 독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시기였다.
오히려 한국에서 무림 독감을 가장 먼저 인지하고 대처를 시작한 게 의선약가였으며 보건당국에 즉시 알리기까지 했다는 걸 생각하면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의선약가로, 그리고 정의검가에까지 책임을 돌리는 그 발표가 역겹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시엔 '남의 일'이라 단순히 욕하고 말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렇게 피해를 입게 될 것이 의선약가와 정의검가, 도진의 주변이었으니 더 괘씸하다.
"어떻게 할 거야?"
한유아가 소지존의 의사를 물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가지 플랜이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에 소지존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하여 질문하는 것이었다.
도진이 잠시 생각했다.
굳이 심각한 전염병이 퍼졌다는 불안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전파력 강한 독감이 유행하고 있으니 주의해 달라.
보건당국이 딱 그 정도로 발표해 주는 것만으로도 전생에서의 공식 감염자 및 사망자 수 2위라는 불명예는 벗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일반인의 치명률이 50%가 넘느니하는 유언비어도 억제할 수 있을 테고.
하지만 아무래도 전염병에 의한 사건을 겪은 적이 없는 무사안일주의인 보건당국의 협조는 받을 수 없을 듯하다.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다.
이미 전생과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게 일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의선약가가 여러 관련 업계에 보낸 공문은 그 이름값이 있으니 완전히 무시당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다 며칠만 지나면 미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 심각성을 알리는 소식이 들려올 테고 보건당국 또한 부랴부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일을 하기 시작하겠지.
그리고 약 두 달만 지나면 이 사건은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질 거다.
그래도.
'괘씸하니까.'
그런 일 하라고 월급주는 건데 일을 안하는 인간들의 태도가 괘씸하니까.
도진은 그들이 책임 전가를 하지 못하도록 조금 움직이기로 했다.
"여기서는…… 방송의 힘을 쓰도록 하죠."
"응?"
* * * *
김도진.
잠룡의 명성은 '높이'로는 손색이 있어도 '범위'로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것이 이제 소천마라 불리면서 위상마저 어디에 두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아직 온갖 트집을 잡으며 그 명성을 훼손하고 먹칠하려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을 완전히 누르게 된다면 소천마라는 이름은 정말로 무림의 정점에 서게 될 것이었다.
그런 소천마에 대한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 중 하나가 바로 너튜브의 구독자 수, 그리고 조회수다.
도진의 개인 너튜브 채널, 구 잠룡문 현 천마신교 너튜브 채널, 그리고 바른 엔터 TV.
이 세 곳의 구독자 수와 조회수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했으니 그를 바탕으로 한 파급력 또한 대단하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
도진의 개인 채널로 예고없이 생방송이 시작됐으니 금새 사람이 몰려들었다.
-읭? 생방송?
-오 ㅋㅋ 할 거 없었는데 개꿀ㅋㅋㅋ
-치킨 시켜놓고 볼 거 없어서 불행할 뻔 했는데 감사합니다..
왁자지껄해진 채팅창.
그 옆으로 곧 화면을 채우는 두 사람이 비치기 시작했으니 도진과 소담이었다.
-와! 소천마!
-와! 비봉!
소천마 김도진과 비봉 서소담.
두 사람의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이 열광한다.
한데 오늘은 그 열광이 금방 끊기고 물음표가 채워지기 시작했으니.
-? 마스크?
-갑자기 웬 마스크?
-그 와중에 서소담 얼굴 크기 실화냐? 마스크에 다 가려져 버리네;;
도진과 소담이 뜬금없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두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일은 없었으니 사람들은 이 특이한 모습에 관심을 가졌고.
"아, 이거요. 요즘 심상치 않은 독감이 유행하는 거 같아서요. 조심하고 있습니다."
도진이 그렇게 말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독감?
-소천마도 독감에 걸려요?
성공적으로 관심을 모은 도진이 무림 독감에 관하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시다시피 요즘 본단 건설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수고해 주고 계시잖아요."
-ㅇㅇ
-완성되면 입장권 사서 관람할 수 있나요?
"관람 의견은 한 번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WA!
-천마신교 관람!
"그런데 그분들 중에 독감에 걸리신 분이 계속 나오더라구요. 신경이 쓰여서 확인해 보니 일반인 무림인 가리지 않고 독감이 확산되고 있는 듯한 자료가 나왔단 말이죠."
-헐.
"그래서 의선약가에 도움을 요청해서 본격적으로 확인해 봤는데, 이게 정말로 일반인이랑 무림인을 가리지 않는 전파력 강한 독감인 거 같아요."
-어,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공항에서 도진님이랑 의선약가 분들이 검봉 포함한 정의검가 분들 마중나간 사진 떴는데 이게 그거?
"네, 맞습니다. 이 일 때문에 간 거였어요."
-ㅁㅊ 그럼 진짜 무서운 독감 유행하는 거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요즘 시대잖아요. 위생에 신경쓰고 혹시라도 걸리면 즉시 병원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시 전파자가 될 수 있으니 마스크를 꼭 쓰는 것 정도?"
-잠깐만요. 지금 마스크 쓰고 계신데 혹시 독감 걸리신 건?
"아, 저랑 소담이는 걸리지 않았어요. 이건 마찬가지로 전염을 막기 위한 노력이에요."
"감기 걸린 사람만 마스크를 쓰는 게 아니라 걸리지 않은 사람도 마스크를 쓰는 걸로 전파 위험을 훨씬 낮출 수 있을 거라고, 의선약가 분들이 말씀하셨거든요."
사실 이번 생에서 먼저 이런 제의를 한 건 도진이지만 따지면 전생에서 의선약가가 사람들에게 제의한 걸 도진이 들은 게 먼저였으니 선후를 볼 때 의선약가가 선이다.
어쨌든 이렇게 말함으로써, 의선약가의 사람들이 말했다고 함으로써 좀 더 신뢰감을 줄 수 있다.
"아, 그리고 이번 방송에서는 랜선 게스트가 있습니다."
-랜선 게스트?
"네. 독감에 걸려 고생 중이신 우리 봉봉, 약리지 씨."
-봉봉이라고 하지 마요!
잠긴 목소리로 태클을 걸며 좌측 태블릿 화면에 약리지가 나타났다.
새하얀 얼굴이 발간 것이 독감에 걸려 있다는 걸 역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 음성이 나온 유지은 선배."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리고 우측 태블릿에는 유지은이 영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봉봉에 검봉.. 가슴이 웅장해지는 게스트 라인업이다;;
-이거 진짜 게스트만으로도 사기라니까 채널이 ㅋㅋㅋ
다들 환영해 주는 가운데 약리지부터 독감에 관한 썰을 풀어 놓았다.
-그러니까 이거, 진짜 아파요. 어제 하루종일 앓았다니까요. 살면서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어요.
-ㄷㄷㄷ 그만큼 무서운 병이에요?
-아, 아뇨. 그 정돈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렇게 제대로 독감에 걸린 게 처음이라서 그런 거라고 어른들이 말씀해 주셨어요.
-아 그렇구나.
-하긴 리지님도 후기지수일 만큼 대단한 무림인이니 따로 잔병치레 한 적이 없으시겠네
-자랑 같지만 네. 제가 잔병치레를 그동안 한 적이 없어서 매운맛을 제대로 본 거죠.
감기에 걸린지 얼마나 됐다고 무림 독감까지 연타로 걸렸으니 약리지는 소위 말하는 액땜을 제대로 했다고 해야 할까.
그에 비해 유지은은 의뢰를 수행하며 함께 했던 이들이 여럿 무림 독감에 감염되었음에도 그녀는 감염을 피했다.
-감기 같은 건 면역력 저하가 관건이라고 들었는데 저는 제법 체력을 온존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 걸린 게 아닐까요?
무림 독감의 경우 전파력이 강해 문제가 되었음을 생각하면 그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지만,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는 의견이다.
어찌되었든 병원균과 싸우는 체내의 면역력이 강하다면 무림 독감이라 해도 걸리지 않을 수 있는 거니까.
감기라고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약간의 컨디션 저하가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이겨내고 아예 항체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집에 머물면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어요.
-격리까지요?
-네. 저는 괜찮지만 제 주위에 옮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구나..
-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독감 유행에 관해서 대응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걸 좀 따라해 봤어요.
도진은 유지은의 말에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유지은이 이 방송의 목적대로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해 준 것이다.
방송의 목적은 다른 게 아니다.
보건당국이 나서주지 않으니 도진이 개인적으로라도, 영향력 있는 채널을 통하여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도록 하려는 거다.
보통의 경우 감기나 독감이면 참고 일상 생활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약국에서 감기약을 사는 정도.
여기에 도진은 최소한 병원에 들리거나 마스크를 쓰는 등의 대비라도 할 수 있도록 방송으로 유도를 한 것이다.
더하여 그들이 방문하는 병원 또한 무림 독감을 상정하고 환자를 대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여러분들도 이상하다 싶으시면 한 번 병원을 방문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마스크 쓰시고."
방송은 언제나 그랬듯 적지 않은 조회수를 기록했고 커뮤니티를 통하여 '무림 독감'에 관한 이야기도 퍼져 나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보건 당국, 퍼지고 있는 독감 유행에 관한 유언비어에 우려를 표해.
거기에 불편한 심기를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