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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19화 (519/741)
  • 518화

    무림 독감이 공론화되고 여러가지 조치가 시행되면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여론에 따라 의선약가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의선약가 이상으로 비난을 받은 가문이 있었으니 정의검가였다.

    평소 그 이름값을 한다는 지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던 정의검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치솟은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으니.

    -미국에서 귀국한 정의검가 무인들이 유행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돼…….

    밝혀진 감염 경로의 근원 중 하나가 정의검가의 무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무림 독감의 발원지가 어디인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걸로 도진은 기억한다.

    하지만 한국에 본격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가,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상황이 심각해짐에 따라 국가 단위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정의검가가 지목되었던 것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무림 독감의 유행이 늦었는데 반대로 가장 빨랐던 나라 중 하나가 미국이었다.

    그리고 정의검가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던 무가(武家)였다.

    한국의 '대문파'로 분류되는 문파 중 다수는 한국이 아니라 외국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곤 했다.

    이는 의외가 아니었으니 한국이 그만큼 '안전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괜히 한국의 후기지수들이 온실 속 화초라 불리는 게 아니다.

    한국의 비교적 좁은 영토 내 치안 수준은 높았고 빌런, 마두(魔頭)들의 활동도 활발하지 않으니 무림의 문파가 할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자연스레 대문파나 민간 무림 군사 기업은 한국보다 외국에서의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정의검가 또한 다르지 않았다.

    숭무고를 졸업한 유지은이 한국보다 외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이런 이유다.

    여기서 의도하지 않은 불행의 퍼즐이 맞춰진다.

    유지은을 포함한 정의검가의 무인들이 언제나처럼 미국에서 의뢰를 수행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그들 중 일부가 무림 독감에 걸린 채였던 것이다.

    -웬일로 전화한 거야? 내 목소리 듣고 싶었어?

    쾌활하게 묻는 유지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예쁘다. 그러나.

    -콜록콜록!

    -크흐흠.

    그녀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그렇지 못했다.

    -아! 이게 말이야, 우리가 이번에 좀 오지에 갔었거든.

    "네."

    -무장 단체가 정글에 아지트를 차렸는데 그걸 처리해 달라는 의뢰였어.

    -한 3일 정도를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싸우느라 좀 힘들었거든.

    그래서 감기에 걸린 인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도진은 들었다.

    굳이 길게, 논리적으로 따질 필요도 없는 일상의 범주에 있는 이야기였다.

    '싸움'이란 사람의 체력과 정신력을 극도로 소모하는 행위다.

    심지어 그것이 목숨을 건 무림인들의 싸움이라면 더더욱.

    말이 사흘이지 그 사흘을 수면조차 충분히 취하지 못한 채 목숨을 걸고 전투를 수행했다면 감기몸살 정도에 걸리는 건 무어라 말 할 필요도 없는 '평범한 후유증'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그것을 일상 밖의 상황으로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도진이 전생에 전혀 관련없는 입장이었음에도 정의검가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 마땅찮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선배. 전용기 타고 오시는 거죠?"

    -응. 왜? 마중나와 줄 거야?

    "네. 그러려구요."

    -어? 진짜?

    "네, 진짜요. 근데 저 혼자는 아니고 조금 다른 일로요."

    -어? 무슨 일 있어?

    "네. 좀, 생겼네요."

    무장 단체의 아지트를 토벌하는 임무 정도 되면 학생 수준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규모의 의뢰다.

    당연히 그에 필요한 인원과 장비 또한 보통이 아니니 정의검가는 전용기를 이용하였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귀국한 정의검가는 평범하게 공항을 이용하였고.

    -그날 정의검가의 무인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던 공항 이용자들을 시작으로 무림 독감이 퍼져 나간 것으로…….

    불행의 퍼즐은 완성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무림인도 걸리는 독감이 유행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림인도 걸리는 독감?

    "네."

    아직 시간에는 여유가 있다.

    도진은 천천히 '무림 독감'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랬구나. 그러고 보면, 독감에 걸린 사람을 평소보다 많이 봤네.

    미국에는 이미 무림 독감이 상당히 퍼져 있었다.

    아마 일주일 이내로 뉴스에 크게 보도될 정도로.

    -그러면…… 우리도 거기에 감염됐을 거라는 이야기구나.

    "그럴 확률이 높다고 저는 보고 있어요."

    유지은은 비교할 이가 드문 희대의 천재.

    도진이 굳이 길게 말할 것도 없이 대번에 상황을 다 이해했다.

    "지금 의선약가의 도움을 받아서 공항으로 가고 있어요."

    공항을 향해 가는 도진의 곁에는 의선약가의 의원들과 장비를 실은 차가 몇 대 함께하고 있었다.

    불행의 퍼즐이 완성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진이 약지청에게 부탁한 것이었다.

    정의검가가 유행의 근원 중 하나로 지목된 건 귀국하여 공항을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독감을 전염시켰기 때문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원인이 되고 말았던 일.

    그것은 도진의 이번 생에도 다르지 않아서 정의검가의 무인들 중 일부가 무림 독감에 이미 감염되었고 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몸을 싣고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불행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이번 생에 도진에게 주어졌다.

    정의검가는 아직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다. 몇 시간의 여유가 있다.

    그리고 도진은 그 시간을 활용하여 의선약가에 도움을 구했고 의선약가가 요청을 받아들여 주었다.

    "선배.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도와주실래요?"

    -우리 후배가 도와달라고 하는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유지은 또한, 도진의 부탁에 움직여 주었다.

    남은 건 하나. 공항의 협조를 받는 것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도진은 의선약가의 의원들과 함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장비를 갖춰 입고 안에 들어섰다.

    "어? 뭐야?"

    "영화 촬영?"

    평소 볼 수 없는 장비를 갖춰 입은 무리의 등장에 공항 이용객들이 술렁였다.

    그리고 그들 중 식견이 있는 이들이 이 무리가 무려 소천마와 의선약가의 조합임을 알아보고선 소리쳤다.

    "소천마다!"

    "누구?"

    "소천마다!"

    대번에 공항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만 소란이 과해져 질서가 무너지거나 사람들이 급하게 몰리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시민 의식에 더하여 공항 쪽에서 이미 인원을 배치해 두었던 덕분이다.

    "간략히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예."

    전염성이 강한 독감 환자가 올 예정이라 격리 구역을 만들고자 하는데 협조를 부탁드린다, 라는 내용으로 의선약가에서 공항 쪽에 미리 협조를 구했던 것이다.

    비행기는 전용기를 이용한다지만 출구까지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정의검가의 무인들은 공항 이용객과 어느 정도는 섞일 수밖에 없었는데 도진은 이 부분을 바꿈으로써 사건을 전생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 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준비는 해 두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말 그대로 갑작스러웠음에도 공항 측에서는 다행히 협조를 해 주었다.

    소천마와 의선약가의 명성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덕분에 정의검가는 다른 이용객과 섞이지 않고 준비를 마친 도진, 그리고 의선약가와 합류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뭔가 정말로 큰일이 난 거 같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죠. 하지만 이젠 아닐 거예요."

    유지은의 말에 도진이 웃으며 답했다.

    유지은의 뒤로 생각지 못했던, 임무를 마치고 피로가 쌓인 상황에 생긴 일에 어쩔 수 없이 불만이 있었던 정의검가의 무인들은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본격적인 의선약가 의원들의 모습에 주춤했다.

    격리 공간을 마련하고 멸균복까지 다 갖춰입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을 의선약가의 의원들이 안심시켜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염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렇게 갖춰입은 것이니까요."

    "저희가 극성을 떠는 것이니, 거기에 관대하게 한 번 맞춰준다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선약가 의원들의 태도에 정의검가 무인들 또한 불만을 보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여기에 함께 있던 도진과 유지은의 사이가 좋았던 덕분에 더욱 좋은 분위기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고마워, 후배."

    함께 차량을 타고 의선약가로 향하는 길에 유지은이 활짝 웃으며 도진에게 말했다.

    "뭐가요?"

    도진이 눈을 맞추며 묻자 유지은이 말했다.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이렇게 열심히 우리를 위해서 노력해 줬잖아."

    "아마 후배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전염병을 퍼뜨렸다는 비난을 받았을 거야."

    역시.

    유지은은 대번에 거기까지 생각하고선 도진에게 감사를 표한 것이었다.

    도진이 유지은의 미소에 마주하여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그랬다.

    유지은은 특히.

    -역병마녀 아님?

    -그러네. 역병 퍼뜨렸으니 역병마녀 딱 좋네 ㅋㅋㅋ 앞으로 역병마녀라 부를까?

    -이때다 싶어서 존나 분탕치네 열폭종자들 ㅅㅂ

    -꼬우신가요? 그러면 역병을 퍼뜨리지 말았어야죠..ㅋㅋㅋㅋ

    익명에 숨은 악성 악플러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했었다.

    이번 생에서 그녀의 꽃이 된 도진에게는 그런 꼴을 보기 싫었던 것 또한 열심히 움직여야 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이렇게 마스크 쓰고 이야기하는 것도 꽤나 신선한 경험이네."

    "하하. 그렇네요."

    의선약가에 도착한 정의검가의 무인들은 유지은을 포함하여 전원이 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앞서 검사를 했던 약리지의 검사 결과까지 포함하여 결론 하나가 나왔다.

    "소천마의 말씀대로였습니다. 이것은 전염성이 강한 독감으로, 무림인에게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작용하는 특이 독감입니다."

    약지청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작용한다는 건 독감이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일반인에게 더 치명적이란 이야기는 아니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도진의 질문에 약지청은 신중하게 답했다.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지만 현재까지의 표본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무림인과 일반인을 구별하지 않는, 전염성 강한 독감 바이러스.

    그것이 일반인에게는 더 치명적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더욱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한국은, 그 바이러스가 특히나 유행했던 나라였다.

    의료 수준이 높은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공식 감염자 및 사망자 수가 세계 2위였을 만큼 단기간이라고 하지만 대유행이 일어났었다.

    도진은 관심이 없었기에 흘려 보았던 뉴스를 기억하고 있던 위지혁과 장호가 말해준 부분이다.

    "보건당국에 자료와 함께 이야기를 해서 대처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변의 사람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건 했다.

    도진 자신을 위한, 전생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도 바꾸었다.

    이제 남은 건 더 나아가 사회를,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부분.

    도진은 그 부분에 관하여 약지청에게 말했고 약지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말씀하신 것처럼 보건당국에 보내기 위한 자료를 취합하고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연락은 취해 두었고 내일 일찍부터 본격적으로 대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에 관한 부분은 이미 보건당국에 알렸다.

    그리고 내일이 월요일이니 즉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약지청은 보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골든 타임은 이미 지나 버려서 어쩔 수 없지만 내일이 되기 전까지 의선약가의 이름으로 각 병원에 공문을 보내는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는 중이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의선약가가 더욱 잘 대처해 줄 것이기에 도진은 믿고 맡겼다.

    그러나.

    "철밥통 아저씨들은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가 봐."

    장난스레,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하는 한유아를 통해서.

    도진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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