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18화 (518/741)

517화

전염병.

말 그대로 개인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병으로 무협지에서도 간간이 소재로 쓰이곤 했다.

가난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전염병을 막기 위해 마을을 봉쇄하고, 불을 질러 모두 죽여 버리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형태로 진행되던 어떤 소설을 도진은 본 적이 있었다.

도진은 그 에피소드에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소설의 필력 문제를 떠나, 현대의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도진은 그와 관련한 간접적인 경험조차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세계에서 전염병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흑사병, 페스트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끔찍함은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게 아닌 이상에야 알지 못할 먼 과거의 일이었고 무엇보다 현대의 위생과 의료 수준에서 그 정도나 되는 참사는 낙후된 국가가 아니고서야 현대인이 겪을 일이 없다.

공감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험조차 없다는 거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현대에 그런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옅게나마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 도진의 전생에서 일어났었으니 세간에서 '무림 독감 유행 사건'이라 불린 일이었다.

증상 자체는 독감이었다.

기침, 가래, 몸살 등.

문제는 이 독감이 일반인에 그치지 않고 '건강한 무림인'마저 독감에 걸리게 만들었다는 거다.

더더욱 그 전파력 또한 상당했기에 국가적인 문제가 되었다.

건강한 일반인은 물론이요 무림인마저 독감에 걸린다.

그리고 그 독감은 쉬이 낫지 않아 합병증을 몰고 왔으며 그로 인한 사망자마저 나왔다.

요즘 시대에 무서운 전염병이 퍼졌다며 난리가 났었고 도진 또한 그것을 간접 체험했었다.

물론, 일반적이진 않았다.

당시 도진은 예의 공장에 취직하여 직원으로 있었는데 사장이 무조건 정상 출근을 방침으로 세웠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은 그런 말을 했었다.

-아니 요즘 세상에 무슨 전염병이래요.

-그러게요. 사람들 호들갑이 너무 심하긴 하죠.

-사람 죽었다고 하는데 팔십 넘은 노인이었다죠. 죽은 사람 흉보는 거 같아 뭐하긴 한데, 그런 사람이면 원래 갈 사람 아니었겠어요.

-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지 모르겠네요.

다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목소리 큰 일부가 그런 이야기를 떠들어댔고 그들은 형편상 공장 문을 닫아 월급이 줄어드는 게 더욱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방역한답시고, 전염을 막는답시고 며칠이라도 문을 닫는 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는 주장을 했다.

도진은 굳이 이야기에 끼진 않았으나 월급이 줄어드는 게 불편한 쪽이었기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유급 휴가는 상상도 못할 공장이었고 어느 정도는, 그들의 말에 동감하는 부분도 있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어쨌든 결국 독감을 좀 앓는 선에서 끝날 일에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그러나 아니었다.

'…….'

그 공장의 사람들은 결국 독감에 걸리지 않았기에 남의 일이 되었다.

자신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만으로도 숨이 가빠 닥치지 않은 외부의 일에 신경쓸 여력도 없었다.

거기에 시기까지 미묘하게 달랐기에 떠올리지 못했던 사건.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비할 데 없이 시야가 넓어졌고 세계 또한 넓어진 도진에게 이것은 '자신의 일'이 되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며 즉시 움직였다.

아직 공사가 진행중이었기에 임시로 본단 역할을 하고 있는 쌍둥이 빌딩의 총괄부로 향했다.

"성아 누나. 유아 선배."

"응, 도진아."

"왜 그래?"

평소보다 진지한 얼굴에 오성아와 한유아가 다가왔다.

도진은 두 사람을 곁에 두고 이 자리에 없는 슈미트라와 영상 통화까지 연결한 뒤에 말했다.

"독감에 관한 대처는 하고 있죠?"

-예, 소지존.

"응."

본단 공사는 슈미트라만이 아닌 총괄부에서도 특히 신경쓰고 있는 프로젝트다.

당연히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고 슈미트라는 물론이요 오성아와 한유아 또한 관여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독감의 유행'에 관한 부분에도 즉시, 충분한 대처가 진행되고 있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단순 독감이 아니라 전파력이 강한 위험한 전염병으로 두고 대처를 해 주세요."

-예, 소지존.

"응, 알겠어."

갑작스런 이야기였지만 '왜'라고 의문을 표하기 전에 즉시 이행부터 한다.

그것이 소천마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다.

그리고 나지윤이 안에 들어섰다.

"어땠어, 지윤아."

도진의 물음에 나지윤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네 말대로야. 일반인과 무림인의 비중이 비슷해."

그것은 독감으로 병원을 방문한 이들에 대한 통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지윤의 확인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지금의 독감이 단순 독감이 아니라 무림 독감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게 됐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로, 감기 같은 게 유행한다면 일반인의 비중이 높지 무림인의 비중이 결코 높을 수가 없다.

한데 그 비중이 비슷비슷하다면, 이것은 '건강한 무림인'마저 독감에 걸리게 만드는 특수한 전염병이라는 게 된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응."

-예, 소지존.

굳이 길게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의 말을 들은 것만으로 오성아와 한유아, 슈미트라는 더 많은 걸 생각하고 필요한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믿고 대처를 맡긴 도진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소담을 만났다.

"소담아."

"응, 도진아."

진지한 얼굴로 도진은 소담을 마주하고 말했다.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마스크를 하고 지내야 해."

"응."

갑작스런 이야기.

그러나 소담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도진이의 말이니까.

무엇이 되었든 그게 옳은 거라는 신뢰의 발로다.

"아무래도 좀 심각한 독감이 유행하는 거 같은데, 이게 무림인까지도 안전할 수 없는 거 같거든. 조심해야 돼. 알겠지?"

"응! 그럴게."

"그래. 아프면 안 돼."

"응. 안 아플게."

"그래."

활짝 웃는 소담과의 이야기를 끝내고 도진은 차에 올랐다.

자세한 이야기나 방침 등은 총괄부에 맡기면 된다.

그 사이 도진은 늦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먼저 가야 할 곳은 의선약가다.

가능하면 문자로 하고 싶었지만 운전 중이라 핸즈 프리로 전화를 걸었다.

-네, 선배.

목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 게 대번에 느껴지는 목소리로 약리지가 전화를 받았다.

"응, 리지야. 목 아플 텐데 미안해."

-아녜요, 괜찮아요.

"목이 많이 아프지? 열도 나고. 몸도 아프고."

-응, 맞아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응, 그런 독감 같아서. 지금 너희집 가려고 하는데 괜찮아?"

-네, 괜찮아요. 병문안 또 와 주시는 거죠?

"응. 확인해 보고 싶은 것도 있고."

-확인이요?

"응. 자세한 건 가서 말 해 줄게."

-네.

통화를 끝낸 도진은 역시, 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아직 유행 초기.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그렇기에 '골든 타임'이 전생에서는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번 생에서도.

액셀을 밟아, 조금 속도를 높였다.

* * * *

의선약가의 본가에 도착한 도진은 우선 중요 인물 중 시간이 있는 이를 만나고 싶다 말했고 약지청을 마주하게 됐다.

"갑자기 찾아와 죄송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소천마가 이렇게 오셨다면 보통 일이 아니겠지요."

언제나처럼 마주하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미소를 지으며 약지청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리지가 걸린 독감에 관해 걸리는 게 있어서요."

"음."

다른 사람도 아닌 '소천마'의 말이었기에 약지청은 무겁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실제로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독감이 전염성이 강한, 무림인도 안전하지 않은 독감 같습니다."

"……으음."

약지청이 진지함으로 무거워진 얼굴이 되었다.

그런 약지청에게 전생에서 겪은 일이다, 같은 소릴 근거로 내밀 수는 없었다.

도진은 그와 같은 사실이지만 근거로 쓸 수 없는 말 대신 누구나 믿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준비해 왔다.

"절대적인 표본이 될 수는 없겠지만 급한대로 조사를 해 봤습니다."

나지윤에게서 받은 자료를 건네주었다.

독감 환자의 비중이 일반인과 무림인이 비슷한 자료.

여기에 더하여.

"의선약가에 근래 내원한 독감 환자의 자료를 확인하시면 아마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자의 정보와 자료는 결코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때문에 도진은 의선약가에 방문한 환자에 관하여서는 따로 나지윤에게 조사를 부탁하지 않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벌써 많은 환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죠.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날 확률이 있습니다."

대비를 해야 한다.

도진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약지청은 그런 도진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심각한 유행으로 번질 수 있겠군요."

순수하게 이 위험한 독감이 크게 유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약지청은 말한다.

하지만 도진은, 그런 사명에 더하여 현실적인 부분까지 생각하여 여기에 온 것이었다.

-의선약가는 무엇을 했나?

-"안이했던 의선약가를 처벌해야" 목소리 높아…….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세간에서 떠들어대는 목소리는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전생에서 도진은 그런 여러 목소리들을 들었고 거기에는 의선약가에 관한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의선약가 또한 현대의 병원인 만큼 분류에 따라 3차, 상급 종합 병원으로 분류가 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무림의 '의가(醫家)'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기에 평소 경험하지 못한 심각한 독감에 의선약가를 방문한 무림인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방문한 무림인들이 앓았던 독감에 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태를 키웠다는 비난 여론이 강하게 일었던 것이다.

물론 비난 여론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의선 약지후가 가주로 있는 의선약가는 그 정도의 비난을 들어야 할 만큼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비난의 여론이 거셌던 건 그렇게 되도록, 자신들에게 화살이 집중되지 않도록 발언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그런 식으로 의선약가가, 그리고 후배가 불만의 '총알받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렇게 뛰어온 것이었다.

당연히 이 독감이 가능하면 크게 유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조치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조처에 관해서는 제가 말씀드릴 부분이 없을 테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분들도 많이 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협력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예. 그렇게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락을 드리도록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전염병이라는 건 초기에 확실하게 잡을수록 피해가 적다.

그리고 의선약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파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과거와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가 알기로……."

이야기를 끝낸 도진은 의선약가와 협력할 수 있도록 오성아와 한유아에게 연락을 넣고 부탁에 관한 준비가 진행되는 사이 약리지를 만났다.

"어서오세요, 선배."

"고생하네, 우리 후배."

약리지는 많이 아파 보였다.

만약 무림인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끙끙 앓으며 거동조차 힘들었을 정도로.

무림 독감은 그토록 무림인마저도 아프게 만들었다.

때문에, 유언비어가 그렇게나 심하게 퍼져 나간 것이기도 했다.

-무림 독감에 일반인이 걸리면 치명적이다.

-무림 독감에 걸린 일반인의 치명률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초인적인 육체에 내공마저 지닌 무림인이 꼼짝도 못하고 앓는 감기다.

그러니까 일반인이 거기에 걸리면 죽을 확률이 50%가 넘는다.

그 어떤 객관적인 근거도 없었지만 설득력을 가지고 퍼져 나간 유언비어는, 그로 인해 커다란 불안을 야기했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감정의 화살이 의선약가로 향하게 만들었다.

여론이 그러하니 정부 차원에서 의선약가의 처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 것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불안을 해소할 대상은 의선약가에 그치지 않았으니.

짧은 병문안을 끝내고 차에 오른 도진은 전화를 걸었다.

국내가 아닌 국제 전화. 그 대상은.

-응, 후배!

"네, 지은 선배."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 유지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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