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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15화 (515/741)

514화

도진의 제지에 약리지는 그럴 거라 알고 있었다는 듯 바로 멈추었다.

아직 감기 몸살이 다 낫지 않은 약리지는 오늘도 얇지만 바람막이를 걸쳤고 마스크까지 쓰고 나왔다.

평소와 다른 병약 미소녀 스킨이다.

선배라면 그런 자신을 말리고 직접 나설 수 있다는 생각을 약리지가 이미 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린 약리지는 도진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해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선배?"

약리지가 그 시선을 따라가며 도진을 불렀고.

누군가의 호통이 마치 폭탄처럼 터져 나왔다.

"거기! 뭐하는 거냐!!"

커도 보통 큰 소리가 아니었다.

노신사를 위협하던 남자를 향해 터져 나온 소리는 워낙에 커서 마치 그 자체로 실체를 가진 듯 사람을 두들기는 호통이 되었다.

"우왓!"

"뭐, 뭐야?"

상황을 숨죽이고 지켜보던 이들마저 깜짝 놀라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쿵, 쿵.

힘주어 걸으며 거리를 좁히는 노인이 있었다.

흰머리의 노인이지만 잘 단련된 근육질의 몸과 큰 키가 노쇠하였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않게 하는 사람이다.

부리부리한 눈의 노인은 무복(武服)을 걸치고 있어 그 덩치까지 더하여 무림인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 그가 노신사를 위협하던 남자의 앞에 금방 도달하여 노려보며 물었다.

"뭐하는 거냐고 물었네, 젊은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음에도 우렁우렁하다.

평범한 이라면 그 목소리와 부리부리한 눈, 덩치에 위축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상대적으로 덩치에서 밀림에도 노인에게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저 뻔뻔해서?

아니다.

화악-!

그가 제법 대단한 내공을 보유한 무림인이기 때문이다.

덩치에서 밀리던 그가 내공으로 기세를 일으키자 오히려 노인을 압도하는 듯한 모양이 되었다.

노인은 대단한 '피지컬'을 지니고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내공의 기세가 미미하였기에 남자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기세등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위를 확인한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영감은 또 뭐야! 소싯적에 주먹 좀 썼다는 거야?"

이런 식으로 남 일에 참견하는 나이 든 무림인이 요즘 시대에는 간간이 보이곤 했다.

소싯적.

무림 르네상스 이전에 태어나 꾸준히 몸을 단련해 온 이들이다.

협(俠)의 정신으로 불의를 보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단련한 무(武)를 행사하고자 하는 이들.

하지만 그들의 참견은 존경할 만한 의도와 달리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간간이 있었으니.

"영감. 요즘 젊은 무인들은 다들 한 실력 하거든?!"

무림 르네상스를 거치고 그 수혜를 입은 젊은 무인들이 그보다 이전에 태어나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이들을 앞서곤 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더 많은 시간 무의 길을 걸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저 걸음이라면.

자전거를, 오토바이를, 차를 타고 달리는 이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좋은 의도로 참견했던 늙은 무인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인터넷을 통하여 여러 번 접했던 구경꾼들은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도진만은 스윽 웃었고.

노인이 다시 한 번 그 커다란 목소리로 호통을 치며 남자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 한 실력 하던 젊은 무인이 커서 된 게 나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아!"

빠아아악!!!

"악!"

골통 깨지는 소리가 나고 남자가 나자빠졌다.

그 광경에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헉!"

"뭐야? 고수였어?"

남자는 노인의 손을 막지 못했다.

그뿐인가.

단 한 수에 바닥에 나자빠졌으니 남자와 노인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있다는 걸 모두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사람들의 말대로 고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시선들은 남자에게로 향한다.

방심해서 못 막았다 같은 건 무인들 사이에선 오히려 스스로 체면을 깎아먹는 말이다.

거기에 단 한 수로 무력화되기까지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평범한 이라면 거기서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끄으으. 이 노인이 사람을 치네! 사람을 쳐!!"

"그래, 이놈아. 어쩔 테냐."

머리를 부여잡고선 일어나 온갖 난리를 쳐댄다.

공갈 협박이 따로 없다.

그러나 노인은 거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으니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연륜을 보이며 더 해 보라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그렇게 엄살이 전혀 통하지 않자 더 강한 수를 꺼내들었으니.

"여보세요! 경찰이죠?!"

"와……."

경찰에 신고를 하는 모습에 약리지가 감탄하여 마스크 안 작은 입을 벌렸다.

"저 정도는 해야 뻔뻔하다고 하는 거네요."

"그러네."

과연 도진도 남자가 꺼낸 수에는 아주 약간 감탄을 했다.

논리가 먹히지 않는 이는 이기기가 힘들다더니 과연 그랬다.

지극히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경찰을 꺼려야 할 입장일 남자가 오히려 경찰을 부르다니.

다른 의미로 공부가 되는 광경이다.

신고를 했으니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경찰이 출동을 했다.

무림인이 엮인 일이라 경찰만 오지 않고 이곳의 치안 유지 계약을 체결한 문파의 무인들 또한 함께 왔는데.

"어?"

"태, 태상문주님?"

이게 또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태상문주님이시라면……."

"예. 저희 문의 태상문주님이십니다."

"이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 우렁우렁한 목소리의 주인이자 남자를 호쾌하게 후려친 노인이 다름아닌 이곳의 치안 유지 계약을 체결한 문파의 태상문주, 그러니까 문주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와, 뭐냐."

"꿀잼이네."

"아! 저 분이 호성(虎聲) 정경태셨구나."

지켜보던 이들 또한 흔히 볼 수 없는 상황에 웃으며 웅성거린다.

이 자리에서 누구도 편을 들어주지 않을 남자가 뻔뻔하게 경찰을 불렀는데 그 경찰과 협력하는 치안 유지 문파의 태상문주가 바로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와! 대박! 저분이 정호수 할아버지셨구나!"

약리지도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했다.

정호수라면 어제 사건에 관하여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던 친구의 이름이다.

여기서 도진은 생각했다.

'흐음.'

남자가 이곳의 골칫거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문파의 태상문주나 되는 사람이 의도하여 나타난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우연이라는 건데…….

"공무 집행이면 공정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나만 죄인 취급해도 되는 겁니까?!"

"아니, 진정하시고."

"그러니까 공정하게 서에 가서 이야기를 듣자는 거 아닙니까."

도진이 잠시 생각하는 사이 남자는 또 날뛰고 있었다.

단순히 행패를 부리는 게 아니라 이대로 가면 자신에게 불리하니 일부러 없는 꼬투리까지 잡아 더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맞은 건 난데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요!"

결국 노인, 호성 정경태가 한 마디 했다.

"이놈아, 무림인이 내공을 일으키고 위협을 하면 먼저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다는 걸 모르는 게냐?"

"그러는 당신도 무림인이잖아!"

"허허. 난 놈이로고. 우리 아이들이 골머리를 앓는 것도 엄살이 아니었구나."

남성이 워낙 날뛰어서 정리가 지체되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한 명의 중년인이 소란에 합류했다.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어? 큰아버지!"

평범한 인상이지만 부드러운 미소와 분위기가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려준다.

그의 등장에 약리지가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 호칭에서 새로 나타난 이가 누군지 대번에 드러난다.

약리지의 큰아버지.

그러니까 의선약가 당대 가주의 형.

약지청이었다.

"리지 아니냐. 여긴 어쩐 일이냐."

"어? 리지? 약봉?"

"약리지다! 대박!"

소란의 원인을 파악하려던 약지청은 생각지도 못했던 조카의 등장에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구경꾼들의 시선도 덩달아 약리지에게로 몰렸다.

"아, 저는 저기 저분이 걱정돼서 와 본 거였는데……."

그러면서 흘끔,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노신사에게로 시선이 향하는 약리지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큰아버지는 왜 여기서 나오시는 거예요, 라고 눈으로 물으니 약지청이 답했다.

"여기 두 분 형님과 여기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지."

"네에? 세 분이 아시는 사이세요?"

"그래. 꽤 오래 알고 지냈단다."

"와! 대단한 우연이네요?"

"하하. 그렇구나."

사건이 어째 요상하게 흘러간다.

동네의 골칫거리가 엮였던 사건에 엄청난 거물이 등장해 버렸고 과연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철판을 안면에 깔았던 남자도 눈을 뒤룩뒤룩 굴리고만 있었다.

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음? 안녕하십니까. 리지와 함께 계셨군요."

"네. 어쩌다 보니요."

갑자기 나타나 인사를 하는 청년이 있었다.

마치 지금 처음, 갑자기 땅에서 솟은 듯 존재감을 드러낸 청년이었는데 무려 약지청이 존대를 하니 사람들의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었고.

"헉. 천마다."

"헐."

"천마?! 어디?!"

도진을 알아본 누군가에 의해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소란이 일어났다.

"대박!"

"와. 미친. 와아아아."

지금 한국에서, 아니 아예 세계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그것도 젊은 무림인의 등장에 웅성거림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 웅성거림은 이내 도진과 소란을 일으킨 남자에게로 모였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천마. 소천마 김도진.

그가 걸어온 그동안의 행보로 보았을 때 남자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시정잡배'라 해도 김도진이라면 손을 쓸 것이라 그들은 믿었고 그것이 기대가 되어 남자에게 집중된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씨발! 씨발! 씨발! 그래 아주 잡아 먹어라! 잡아 먹어!!"

벌렁 드러누워 눈물을 흩뿌려 버렸다.

"헐."

상상도 못한 남자의 행동에 구경꾼들만이 아닌 경찰에 호성 정경태마저도 당황하고 말았다.

아예 다 포기한 듯 땅바닥에 드러누워 울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 세상에 내 편은 하나도 없지. 나만 미워하지. 씨발! 씨발! 씨발! 그냥 아주 죽여라, 그래!"

자포자기. 그리고 원망이 가득 담긴 남자의 외침이었다.

약리지에 약지청만 해도 감히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거물이었다.

눕는 것도 자리를 보고 누워야 하는 건데 이건 견적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한데 여기에 양아치들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사신보다 무서운 소천마 김도진까지 나타나 버렸으니 어찌 보면 다 포기하고 추태를 부리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명.

그런 남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해 줄 수 없어 눈에 잔뜩 힘을 준 소녀가 한 명 있었으니.

"저기요!"

성큼성큼 걸어 남자의 앞에 선 약리지였다.

팔다리를 휘적이며 소리지르던 남자가 갑자기 접근하여 자신을 부르는 약리지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아주 잠시 남자의 허우적거림이 멈췄고 약리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자세히 얘기 좀 해 봐요."

"뭐?"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불만만 말하지 말고 불만의 이유를 좀! 말 해 보라구요."

"뭐! 말하면 달라지기라도 해? 너한테 말하면, 뭐가 바뀌냐고!"

"그럴지도 모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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