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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12화 (512/741)

511화

조서강.

보육원의 장남이 벽태웅이라면 차남은 조서강이었다.

보육원 아이들의 '대장' 같은 느낌의.

보육원 아이라고 괴롭히거나 욕하는 아이가 있으면 참지 않고 달려가 맞서 싸웠다.

더 많은 걸 보고 생각해야 했던 장남 벽태웅과는 달리 조서강은 정면에서 일단 부딪치고 봤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선생들은 조서강을 '문제아'로 낙인찍었지만 반대로 조서강은 그런 어른들을 '쓰레기'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하면서.

보육원 출신이란 이유로 무시당하고 욕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에 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엇 하나 해 줄 수도 없으면서 조서강을 포함하여 저항하는 아이들을 속 편하게 문제아라고 손가락질 하니까.

그게 문제아라면 전력으로 문제아가 되어 준다, 그래.

그런 생각으로 살았고.

"…죄송합니다. 고모부, 고모."

큰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 일로 크게 의기소침해 있던 조서강을 포함한 아이들을 벽태웅은 불렀고 아직 어두운 얼굴을 통하여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도 있었다.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러지 않고선 있을 수 없을 만큼 현실에 짓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이야 깡다구로, 큰 목소리로 맞설 수 있었겠지만 머리가 굵어질 수록 무공을 배운 '부자 아이들'과의 격차가 그걸로는 메울 수 없을 만큼 벌어져 간다.

여기에 더하여 문제아라는 시선을 받으며, 그 시선을 부정할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올 거라는 걱정은 그 이상으로 동생들의 눈을 흐리고 초조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잘못된 일 같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어찌되었든 무공까지 한 수 전수해 주니 그 유혹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크게 실패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렸다면.

잘못을 알면서도 고개를 빳빳이 들 정도로 심지가 글렀다면 차라리 간단하고 또 편했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바른 심성을 품고 자랄 수 있었기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의기소침한 동생들에게, 벽태웅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

"나, 문파를 만들 거다."

"어?"

동생들의 숙인 고개가 그 말을 듣고서야 들린다.

겨우 눈을 마주하게 된 동생들에게 벽태웅이 웃음에 자신감을 담아 말했다.

"문파를 만들 거라고."

"처음은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겠지만 점점 더 커질 거야."

"그렇게 커질 때쯤이면 너희 밑에 동생들도 많이 컸겠지.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해질 테니까 동생들을 더 고용할 수도 있을 거야."

"그러면, 좋겠지?"

꿈을 이야기했다.

바라던, 아득히 멀게 느껴져 두려움에 쉽사리 내딛지 못했던 걸음을 드디어 내딛을 거라고.

거기에 도달할 거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동생들이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러려면 믿을 만한 사람이 당장 필요하단 말이지. 그러니까 너희들. 내 문파에 취직해서 같이 일하자."

동생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 * * *

벽태웅의 포부문은, 당장은 문파라기보단 회사에 가까웠다. 그것도 소규모의.

심지어 벽태웅을 포함하여도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인원으로 구성된 회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적나라하게 말해 '노가다'였다.

공사 현장에서 일당을 받고 잡부로서 일하는 것이다.

벽태웅이 말했던 '꿈'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일.

그러나 조서강을 포함한 동생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어린 나이부터 세상 물정을 알아야만 했던 삶을 살았으니까.

그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걸 잘 알았다.

우선은 이렇게 현장에서 일하며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처음 시작하는 문파들이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 일하며 기반을 다지는 건 흔한 일이었다.

학생만이 아닌 사회초년생 무림인들마저 업계에 종사하니 사람들의 인식 또한 개선되었음은 물론이다.

거기에 더하여 그저 하루 용돈벌이가 아니라 '안정된 직장에서 일한다'는 느낌이 드는 게 좋았다.

미래를 걱정하여 현재에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충실한 나날들.

물론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포부문이 회사로서 목표하는 것은 건축설계다.

단순히 힘만 쓰는 게 아니라 특별한 설계까지 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설계를 직접 실현할 수 있는 대체할 수 없는 기술과 전문 인력을 보유한 회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첫걸음이자 시간이라는 걸 동생들은 알았다.

"어허. 어린 친구들이 요령이 없구먼."

"죄송합니다."

"좀 더 빠릿하게 움직이자고!"

"네."

그러니까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고 참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부족한 부분이 많았으니까.

힘은 둘째치고 압도적인 경험의 부족이 잔소리를 듣게 만들었고 그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그래도 성실하니까."

그들 때문에 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참기가 힘들었다.

"이건 제가 옮기도록 하죠."

"오, 그러게? 고마워."

그들이 미숙해서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돋보이는 형이 아쉬운 소리를 하고 고개를 숙이고, 남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이 끝나고 회식에 참석하면 그 이상의 것들을 보아야 했다.

벽태웅이 그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한다.

"오늘 보니까 그 무거운 걸 아무렇지 않게 옮기시던데 도대체 어떻게 하시는 건가요?"

"무얼. 태웅이 넌 한 손으로도 할 수 있잖아."

"에이! 저야 그냥 힘으로 하는 거고 형님은 기술! 기술로 하는 거잖아요! 그 고명한 수법이 궁금하다는 거죠."

"푸하! 고명한 수법은 무슨! 그래도 태웅이가 궁금하다는데 한 번 자랑 좀 해볼까?"

"오! 경청하겠습니다!"

그런 회식이 또 한 번 있고 난 늦은 밤.

밤 수련을 끝낸 동생들은 말없이 고요한 동네 놀이터에 모여 앉았다.

형이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이라는 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잠룡 패밀리'의 일원이었으며.

대한민국 최고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인 황룡(蟥龍) 벽태웅.

그런 형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게, 그냥 좀 그랬다.

말로 꺼내는 것도 형의 체면에 먹칠을 하는 거 같아서 그렇게 밤 늦게 수련이 끝나고 말없이 삭이고 있자니.

"태웅이 동생들이네."

"아! 천마님!"

"아, 안녕하세요!"

갑자기 천마가 나타났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소천마 김도진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화들짝 놀라 꾸벅 인사를 했고 천마님이란 소릴 들은 도진은 그게 조금 특별하게 들려 슬쩍 웃으며 인사를 받아 주었다.

요즘 도진의 별호가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스스로가 천마가 될 사람이라 선언을 했고 그것을 사람들이 허투루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누군가는, 도진에게 악의가 있는 이들은 '마룡(魔龍)'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정말로 천마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도진이 스스로 선언한대로 천마는 지금은 과하니 소천마라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상황이라 조만간 소천마로 별호가 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배경의 소천마가 떡하니 벽태웅의 동생들 앞에 나타난 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이곳이 이제는 천마신교가 된, 잠룡문 시절 치안 유지 계약을 한 구역에 포함된 곳이기 때문이었다.

매일은 아니어도 가끔씩 도진은 연신극기공의 수련 겸 이렇게 직접 순찰을 돌곤 했고 익숙한 기척에 와 본 것이다.

그리고.

꼬르르륵-

동생들의 배가 눈치없이 울었다.

"아."

도진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뜨끈한 국밥 먹으러 갈래?"

* * * *

치이이이익-

도진과 동생들은 고깃집에 왔다. 그것도 소고깃집에.

처음엔 국밥을 먹으러 갈까 싶었는데 도진이 생각을 바꿔 소고깃집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동생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소천마님이 직접 구워주시는 소고기를 황송하게 먹게 되었다.

…솔직히 '고기 마스터'인 형이 이 부분만큼은 더 잘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불경한 생각은 금방 지워 없앴다.

"체하겠다, 얘들아. 편하게……가 힘들긴 하겠지만 내가 태웅이 선배인데 그렇게까지 어색하지 않아도 되잖아?"

"네! 노력하겠씁니다!"

"아하하. 그래."

말에 힘이 빡 들어가는 게 아무래도, 역시나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도진은 그저 웃었다.

그래도 고기가 차츰차츰 들어가면서 약간은 긴장을 푸는 게 보이긴 했다.

된장에 밥까지 주문해서 든든하게 먹였다.

여기에 술은 하지 않아서 콜라로 목을 축이면서 분위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들었고 슬쩍, 도진이 말했다.

"태웅이 생각하고 있었지?"

깜짝!

그런 단어가 동생들의 주변에 크게 뜬 것처럼 보였다.

도진이 씨익 웃고선 말했다.

"멋진 형이, 너희들 때문에 고개 숙이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마음에 걸리고 있었던 거지?"

"……네."

어떻게 아셨어요, 같은 걸 묻지는 못하고 동생들은 솔직하게 네라고 말했다.

깊은 눈동자는 자애롭다……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으로 부드러웠지만 또 깊디 깊어서 그들의 속마음을 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동생들의 인정에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 태웅이가 오히려 더 멋지다고 생각해."

어째서요.

동생들은 눈으로 조심스레 물었고 도진이 답을 해 주었다.

"남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남들에게 위압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체면을 구기는 사람은…… 그게 아니면 자신을 돋보일 수단이 없다는 소리니까."

"강 노사님, 강거혁 노사님은 누군가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데에 인색하시지 않아.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누구도 노사님을 가볍게 보지 않지. 감히 그러는 사람은 없어."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너희들에게 고마워요, 학생들이라고 한다면 너희는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 우리한테 존댓말하는데 만만하네, 라고 생각하지 않잖아. 그렇지?"

"……네."

오히려 그런 언행이 감히 함부로 대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대답하는 아이들은 무언가 알 것 같았다.

"태웅이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쌓고 있는 거야. 내가 황룡인데 알아 모셔 같은 꼴사나운 모습 대신 먼저 다가가 웃고, 말을 걸고, 관계를 다지는 거지. 그런 태웅이의 모습에 그 사람들도 마음을 열고 오랜 세월 쌓아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이야기해 주는 거야."

"아……."

"그 사람들은 태웅이를 쉽게 보지 않아. 오히려 황룡이라 불리면서도 잘난 체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은 태웅이를 더 대단하다고 생각할 거야."

"물론. 그런 태웅이를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태웅이의 이름이, 가치가 깎일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해. 너희는 어때?"

웃으며 묻는 도진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 * * *

다음날.

벽태웅의 동생들은 날아다녔다.

"얘들아, 그러다 금방 지친다."

"아닙니다. 저희는 젊으니까요!"

"어이구, 그래. 그래도 거. 그래, 그거. 그렇게 하지 말고 뒤를 잡아. 그럼 편하다."

"네! 감사합니다!"

하루아침에 요령이 생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건 무공이 그렇듯,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크나큰 변화를 가져오는 법이었기에.

서툴지만 적극적으로 웃으며 일하는 동생들의 모습은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오늘 저녁 메뉴 소고기랍니다!"

"뭐?!"

"소고기?"

"네. 저녁 안 드시는 분은 말씀하시면 따로 소고기 싸 주신다니까 잊지 말고 챙겨 가세요!"

"와, 뭐냐."

"갑자기 웬 소고기?"

"어제 소천마님이 막내들 소고기 사주셨는데 막내들만 먹이면 안 되니까 그렇게 정하셨다네요."

"헐."

"진짜 통 크시네."

"야 막내들! 고맙다. 덕분에 소고기 먹네!"

그날, 소천마의 명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

* * * *

더위가 끝을 보이고 일교차가 크던 어느 날.

도진은 문자를 한 통 받게 되었다.

-선배! 저 감기 걸렸어요..ㅠㅠ

"어? 리지가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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