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화
-"한유아가 아닌 김유아가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의미는?
한유아의 인터뷰는 과연 훌륭한 장작이었다.
-한유아가 아닌 김유아..? 이거 그, 셀프 호적 파기하겠다는 소린가?
-셀프 호적 파기 ㅋㅋㅋ
-아니 맞자너. 성을 갈겠다는 건데.
-기자 회견에서 성 갈겠다는 선언. 이건 귀하네요.
배경이 아닌 스스로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다 말한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것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중 2병에 취한 때였든 반대로 알 만큼 아는 이가 굳은 결심을 담아 한 선언이든 말이다.
다만, 거기에 누군가의 말대로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성을 갈겠다'고 한 사람은 없었기에 한유아의 선언은 큰 반향을 불러온 것이었다.
-그, 저기 말이야..
-얘들아! 유동이 할 말 있대!
-뭐?!
-유동이 할 말이 있다고?!
-안이 미친 새끼들이;;
조직적인 놀림에 그는 잠시 주춤했지만 굴하지 않고 의견을 냈다.
-금봉, 아니 한유아 어머니가 외국 사람이자너..
본래는 철저하게 언급되지 않도록 단속하던 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한유아가 금화를 나오게 되면서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그쪽에서는 결혼하면 자기 성 버리고 남편 성 따라간다던데..
-..어?
-...마사카?
-김도진이랑 결혼하면 한유아가 김유아 되는 거 아님?
-이런씹;;
-뭐요?!
-닥쳐! 여기는 한국이다. 한국법에 따라라.
-아니, 그러지 말고 김도진을 레이드 하자. 삭초제근이다.
-천마 레이드 모집(1/999)
-(2/999)
-(3/999)
-..근데, 님들.
-?
-999명 모이면 레이드 성공할 가능성이 있기는 함?
-...ㅆ뷰ㅠㅠㅠㅠㅠ..
-아..ㅋㅋ 전부다 도게자하는 엔딩이지...ㅋㅋㅋ
뭐, 그런 느낌으로 한유아의 선택과 천마신교에 관한 이미지는 호의적이었으며 긍정적이었다.
'나쁜 이미지'를 갖기엔 도진이 쌓아 온 것들이 적지 않았고 도진과 함께 하는 이들의 명성 또한 나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섣불리 흑도 이미지를 씌울 수 없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래서.
-?
-이제 천마신교는 뭐함?
* * * *
성공적으로 개파식을 끝내고 첫 걸음을 내딛게 된 천마신교의 첫 행보는 본단(本團)의 건설과 조직의 구축에 대한 논의였다.
도진이 드디어 천마심공, 더 나아가 천마신공의 5성에 이름으로써 소천마임을 선포하고 천마신교의 이름 또한 천명할 수 있게 되었다.
결코 늦지 않은, 심상세계를 감안하더라도 그 속도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경이적이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소요된 시간 동안 맺은 인연이 적지 않았으니 그것을 정식으로 정리해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산주(山主)의 자리에는 교주전을 두어야 합니다."
슈미트라가 의견을 내었고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산주, 산의 주인 되는 자리에 교주전이 놓여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 양옆으로는 독마전과 투마전을 두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도, 독마전을 포함한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바로 밑의 자리였다면 싸움이 날 수밖에 없으니 애초에 그것을 차단하기 위에 양옆으로 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비게 된 바로 밑에는 '총괄부(總括府)'가 들어가게 됐다.
총괄부는 이름 그대로 천마신교의 대소사를 총괄하는 부서로 좌우로 나뉘었으며 좌부(左府)에는 오성아가, 우부(右府)에는 한유아가 부장으로 앉았다.
좌부와 우부에 계급적인 차이는 없고 맡은 분야만이 달랐다.
"앞으로 훌륭한 도비가 되어 주세요, 유아 선배."
"…도비?"
그동안 오성아에 과중한 부담이 집중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한유아가 합류함으로써 드디어 두 날개를 가지게 되었으니 도진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담을 가주 대리로 둔 암산서가는 마음은 천마신교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당장은 이사하지 않기로 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 암산서가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뭉친 그들이 그 이름과 기다림을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를 쉬이 버리고 이사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서문호는 소담에게 결정을 맡겼지만 소담이 그것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소담의 아버지이자 당대 가주인 서문호를 포함한 어른들이 나오면 그때 진지하게 논의하기로 했다.
"괜찮아, 소담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응."
"부지는 넓으니까. 니가 올 자리는 언제든 비워둘게."
"……응!"
그리고 '대장간'이 들어서게 됐다. 명성공방의.
"번듯한 문파에 대장간이 빠지면 섭하지!"
"하하. 그렇네요."
우벽진의 기운 찬 말에 도진이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규모가 큰 문파나 가문의 경우 이름있는 대장간과 계약을 맺는 건 기본이었다.
무림인에게 있어 무기, 더 나아가 장비는 목숨을 맡기기 위한 도구였으니 말이다.
하물며 '장비'란 현대 과학의 정수가 깃들 수밖에 없으니 말이 대장간이지 요즘 대장간은 무림인에게 필요한 장비 전반을 취급하는 첨단 기업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업계에서 명성공방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명성을 자랑했으니 이 명성공방의 분점이 천마신교 안에 들어서게 될 예정인 것이다.
그리고 천마신교의 교도들을 위한 숙소와 식사를 책임지기 위한 식당 등도 빠질 수 없었으니 식사의 경우 서태주의 TJ 그룹과 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맡겨 줘."
과거였다면 부담에 숨도 못 쉬었을 텐데.
훌륭해진 덩치만큼이나 단단해진 서태주의 멘탈은 도진과 악수하면서 자신있게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 서태주의 모습을 슈미트라가 유심히 눈여겨 보는 중이었다.
"음. 훌륭한 몸이군요."
"……예?"
"혹시라도 단련에 관심이 있다면 바할라 한국 지부에 들러 주십시오. 진지하게 몸의 단련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군요."
'괜찮은 거야?'
서태주는 눈으로 물었고 도진은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도진은 몇 년 뒤 충분히 연마된 서태주에게 신마파산공을 전수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투마의 후예가 있는 상황에서 도진이 독단적으로 투마의 무공을 전수해 줄 수는 없어 넌지시, 슈미트라에게 언질만 했었는데 제법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조만간 성민혁에 이어 서태주도 투마전에 소속될 듯 보였다.
성지인의 경우엔…… 당분간은 1인 체제가 될 것 같았다.
용마(龍魔), 광룡군이 수장으로 있었던 용마전의 현판을 걸기엔 아직 그 전인이 한 명뿐이었으며 더 정진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건물은 준비할 생각이지만 아직은 준비가 덜 된 성지인이 건물에 걸 현판을 직접 새기기엔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외 천마신교의 '식객(食客)'들이 머물 수 있는 훌륭한 공간 또한 마련하기로 했으니 여기엔 소거인 강거혁과 그 제자인 벽태웅, 놀러오는 웨일스 후작가의 아이들 등을 위한 공간이 될 예정이다.
그리고 외부엔 일부러 홍보하지 않은, 그러나 지극히 중요한 조직이 있으니 답청문과 슈미트라의 정보 조직이 연계할 세이전(世耳殿)까지.
세이전은 극비인 만큼 외부 인력이 동원되지 않고 그들 조직이 자체적으로 추후 구축할 예정이다.
일단, 현 단계에서 결정된 것은 이 정도였다.
* * * *
회의를 끝내고 하루를 마무리한 도진은 오늘도 거르지 않고 심상세계에서의 수련에 열심이었다.
구우웅-!
세계 전체가, 심지어 공기마저 적이 되어 도진에게 짓쳐든다.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호흡조차 허락되지 않는 상상을 초월한 공세.
도진은 그 공세에 능숙하게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여 대항했다.
천마군림(天魔君臨).
자신의 심상을 펼쳐 세계 그 자체가 적대하는 상황에서도 오롯이 자신을 유지한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세계를 적으로 만든 자신의 스승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호오, 제법이구나."
위지혁은 그런 제자의 모습에 흡족하게 웃었다.
장면 자체는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으니 이 행위에 빠짐없이 도진의 깨우침이 깃들어 있다는 부분이다.
심상세계이기에 경지가 부족하여 현실에서는 쓸 수 없는 천마군림을 제한없이 쓸 수 있었다.
허나 '왜?'에 관하여 도진은 답을 찾지 못하였고 그 답이 바로 천마심공의 5성이자 경계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깨달음이었다.
그 답을 제자가 드디어 찾았다.
'천마심공의 5성에 이르기 위해선 천마기의 본질을 깨달아야만 한다.'
천마기의 본질.
답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니 고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한 가지 보편적인 게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천마기를 두려워하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여기서 그릇된 깨달음을 얻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위지혁의 사촌형, 심상세계의 수련에서 보았던 배교자(背敎者)였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제자는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윽고 필연에 이르러 천마기를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일체화(一體化).
천마기가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이요 일부라는 형태로 받아들였고 그 깨달음은 이치의 영역에 이르러 경계 너머로 제자는 나아갔다.
그로써 본래 심상세계에서 구사는 하고 있었으나 깨달음이 없어 텅 비어있던 행위에 드디어 깨달음이 깃들었으니 어찌 그것이 이전과 같을 수 있겠는가.
제자는 이제 그 한 걸음에 군림의 이치가 깃들고 한 번의 휘두름에 천마검공의 이치가 펼쳐진다.
마음을 담아 펼치니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공(神功)이요 그렇기에 위지혁은 비로소 제자와의 대련에 아주 조금, 진심을 담을 수 있게 됐다.
스으으…….
스스로 그러하던(自然) 것에 위지혁의 심상이 깃들고 구현된다.
절세(絶世).
세상에 견줄 데가 없는 절대의 검공이 세상을 둘로 가르고 그 정면에서 도진은 스승의 심상에 맞서 마주 검을 휘둘렀다.
……!!
소리없는, 그러나 영혼을 뒤흔드는 격돌의 여파가 퍼져 나가고.
"후욱-!"
도진은 숨을 토해내며 검에 기대어, 그러나 쓰러지지 않고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껄껄. 많이 늘었구나."
"감사합니다. 위 스승님."
몇 번 거친 숨을 토해내더니 도진은 금방 신색을 회복하고 바로 선다.
그 모습만 보아도 정말 내 제자지만 콩깍지 제외하고 대단한 녀석이라 생각하고 마는 위지혁.
"…장 스승님."
…그리고 장호였다.
도진은 위지혁과의 지도 대련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무시무시한 지도 대련에는 위지혁과의 대련만이 아닌, 모습을 감추고 도진의 빈틈을 노리려는 장호의 기척을 잡아내는 훈련 또한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습과 기척을 넘어 사람의 사고에서마저 사라져 버리는 사신(死神)을 놓치지 않는 훈련.
그것마저 병행했으니 제아무리 도진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정말 이 의지력만큼은 알아줘야 했다.
"감을 잡은 모양이구나."
"예. 지금은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술에 이치를 담아야만 무공(武功), '진무(眞武)'라 불릴 수 있다.
그리고 이치에 마음, 심상을 엮어 자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신공(神功)이 된다.
도진은 그 영역에 이르러 이치에 자신의 심상을 구현할 수 있었고 그것이 천마군림의 영역 안에서 펼쳐지는 것이 진실된 '천마신공(天魔神功)'이었다.
그 진실된 천마신공이 보여주는 신위는 의천검가에서 증명되었으니 도진의 근래 수련은 그날의 신위를 가다듬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 심상세계에서 도진이 펼치던 천마군림과 천마신공은 깨달음이 기반되지 않아 말 그대로 '사상누각'이었으나 어쨌든 심상세계이기에 본래는 불가능한 모래 위의 하늘을 찌르는 훌륭한 누각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 경험 덕분에 도진은 또 한 번 눈부신 속도로 경지를 높여 가는 중이다.
껍데기뿐이던 것에 이치와 심상을 담아 진짜로 만들어 가는 과정.
위지혁과 장호는 흐뭇하게 웃으며, 경계를 넘어선 제자의 성장을 돕고 또 지켜보았다.
* * * *
스스로 소천마임을 천명하고 천마신교 본단의 공사도 순조롭게 진행되던 어느 날.
도진은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으니 발신처가 심상치 않았다.
-무림맹(武林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