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507화 (507/741)
  • 506화

    -금화의 영애 한유아. 천마신교의 개파식에 참석!

    "큰 돈과 인력을 들였던 일이, 너로 인해 무산되었구나."

    -금화의 선택은 천마신교?

    "아니.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

    천마신교의 개파식은 전 세계의 관심 속에서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천마신교. 마교.

    어떤 쪽이든 그 강대함은 유일무이하게 무림 전체를 단일로 상대할 수 있다 말해지던 최강의 세력.

    허구이자 이야기였던 그런 부분까지도 현실이 된 듯 개파식에서 보여준 모든 것이 대단하기만 했다.

    그렇기에 천마신교는 개파식이 끝난 지금 오히려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낳았고 회자되게 만들었으며.

    -"후배의 개파식에 참석했을 뿐" 한유아. 그 진의는?

    그 안에는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배제되었던 금화와 한유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가, 금화의 영애 한유아가 천마신교의 개파식에 참석했던 탓이다.

    제아무리 금화라 해도 그런 일을 벌인 이상 언론을 억누를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금군 한유성은, 금화의 부회장 한유성은 차가운 눈으로 그 구성원 중 한 명인 한유아를 질책하였다.

    "너니까. 네가 한 일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잘 알고 있겠지."

    "……."

    "입을 다물고 있는 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무능한 인간의 태도다. 왜 그런 무능한 인간의 모습을 보일 짓을 한 거지?"

    "……."

    "입을 다물고 있어봐야 대신 책임져 주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너는 너 스스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다."

    아마도.

    아니 사실은.

    후회하고 있다.

    그날 참석한 개파식에서 그녀는 정말로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그저 참석해서. 반가운 얼굴들을, 집행부의 동기와 후배들을 보았다.

    지서는 물론이요 그동안 얼굴은커녕 연락도 조심스러웠던 동기인 폭룡 류대현과 유지은을 만났고 걱정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무런 뜻이 없는, 그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것으로 또 거짓말처럼 즐거웠다.

    그 대가를, 지금 치러야 했다.

    참았다면.

    '차선'을 택했다면 없었을 일.

    하지만 한유아는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이를 악물고, 평소 대등할 수 없었던 금군 한유성을 마주하여 주먹을 꾸욱 쥐고, 선언했다.

    "책임을 지고, 스페셜 포스 프로젝트의 책임자 자리를, 내려놓겠습니다."

    "내려놓겠다?"

    한유성이 슬쩍 웃으며 묻는다.

    그 물음이 소름끼치게 무거웠지만 한유아는 힘을 주어 버텼다.

    "네. 굳이 제가 아니어도 될 자리이니까요. 실수를 한 저는, 그 자리를 내려놓고 금화에서의 모든 자리 또한, 내려놓겠습니다."

    "그래. 사퇴하겠다. 아니, 도망가겠다?"

    "…도망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하고 싶지 않은, 하지 않아도 되는 권유와 자리의 거절입니다."

    "큭, 큭큭큭."

    한유성은 웃었다.

    재밌다는 듯.

    순수하게 재밌다는 듯.

    그것이 마치 어린 동생의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철없는 떼쓰기를 본 듯한 얼굴이어서 한유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한유아를 보며 한유성이 말했다.

    "제안하지. 이문강에게 시집가서, 의천검가를 장악해라. 그래도 금화의 명함이란 게 있으니 무공 수준은 좀 떨어지겠지만 스페셜 포스의 리더 자리도 맡을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너는 당당하게 금화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다."

    두근!

    반사적으로 심장이 뛰었다.

    금화의 일원.

    그것은 한때 한유아가 절실히도 바랐던 것.

    꾸욱-!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거절…… 하겠습니다."

    "좋아. 일주일간 생각하고 보고하도록. 나가라."

    "……."

    그녀의 말을 없는 것 취급하며 떨어진 축객령.

    한유아는 거기에 더 대꾸하지 못하고 퇴장당하고 말았다.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한유성의 내공이 만들어낸 무형의 힘에 밀려난 것이었다.

    그날 의천검가의 무인들을 모두 무릎 꿇린 김도진에 비하면 자신이 또 초라해지고 마는 한유아였다.

    꾸욱-

    그러나 무너지지 않았다.

    무너질 수 없었다.

    이미 선택을 해 버린 이상, 그녀는 리더로서 책임을 져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계약 연장 불가 통보.

    새하얀 봉투에 든 붉은 글씨는 통보였다.

    화온의, 대출을 포함한 근간을 이루는 것들의 계약 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

    한유아는 금화를 벗어나 무림인으로 오롯이 서기 위하여 화온을 설립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처음부터 일구기엔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에.

    한유아는 그 첫걸음에 '금화의 영애'로서 쓸 수 있는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결코 끊을 수 없는, 그녀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주춧돌이, 대들보가 그것이었기에 한유아의 화온은 금화를 벗어날 수 없었고 금화는 화온을 놓아주지 않았다.

    한유아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제아무리 노력해도 화온이 이름을 알리고 독립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모든 것이 한유성의 의도대로였다.

    지금이야 그것이 명확하고 스스로가 너무나 치명적이고 멍청한 실수를 했다 생각하는 한유아지만, 사실은 한유아를 그렇게 보이게 만들 정도로 한유성이 가진 것이 압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설령 맨바닥부터 시작했다 해도, 아니 그랬다면 오히려 더 나쁜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걸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기에 한유아는 후회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귀속은 또 하나의 방법으로 한유아를 옥좼으니.

    -부서 이동 인사 명령.

    화온 출신의 인재들, 한유아가 발견하고 스카우트했던 인재들에 대한 인사 이동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처음 도진에게 접근했던 것처럼 한유아는 화온을 키우기 위해 직접 인재를 발굴, 접촉하였고 그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연이 닿았고 이어졌으며 그것이 켜켜이 쌓였다.

    그들 중 일부는 화온이 아닌 다른 곳에서 힘을 보태기도 했는데 그들이 자리잡은 곳이 금화의 영향 아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닐 것이었다.

    그들이.

    "……."

    부당한 인사 이동 명령의 대상이 되었다.

    누가 봐도 명확했고 한유아는 예상하고 있던, 그러나 저항할 수 없는 횡포에 이를 악물었다.

    그녀 자신에게 그치지 않는 그녀를 옥죄기 위한 수단들.

    한유성에겐 지극히 간단하지만 한유아에겐 가슴을 후벼파는 조치들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나름의 대비는 했지만 그 대비로 무언가를 할 수가 없을 만큼 한유성의 조치는 빨랐고 단단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짊어지려 욕심을 내고 있는 사람일 뿐인 걸까.

    고인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한유아는 눈가를 훔쳤다.

    안 된다, 이래선.

    리더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런 리더 때문에 그녀를 믿고 따라주었던 이들을 불행하게 한다면.

    거기에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더 나쁜 소식을 들었다.

    부당한 인사 이동 명령을 받았던, 한유아의 화온 출신 직원들이 모두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결국 한유아는 주저앉고 말았다.

    못났다.

    세상에서 그래도 내가 잘난 줄 알았는데, 무어라도 반항한다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망상이었다는 생각에.

    "……."

    한유아는 조용히 폐업신고서를 작성했다.

    더 지속할 수 없는 화온의, 폐업신고서였다.

    '초라하구나…….'

    그 노력이 가벼웠기 때문일까. 종지부를 찍을 폐업신고서마저 가볍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우우우웅-

    '아.'

    돌연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하니 민지서의 전화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할까.

    이미 상황은 알고 있을 테니 걱정하는 전화일까.

    한유아는 조용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민지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

    "응, 지서야."

    -지금 대표님을 뵈러가는 길입니다.

    "지금 근무 시간 아니야?"

    -예, 맞습니다.

    "그런데 땡땡이 쳐도 돼? 선배 특권이란 거야?"

    일부러 가볍게 묻는다.

    하지만 민지서는 진지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엄연히 근무의 일환으로 연락을 드린 것입니다.

    "근무의 일환?"

    -예. 도착했으니 출입 허가를 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일단 나갈게."

    갑작스럽다.

    그러나 민지서가 허튼 소리를 할 리가 없으니 한유아는 얼굴과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빠른 걸음으로 출입문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

    익숙한,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민지서. 그 곁에 후배. 김도진의 기척을.

    그리고, 그 뒤로 십여 명. 모를 수가 없는 기척들.

    그녀가 직접 스카우트하였고 화온을 떠난 뒤로도 함께 했던 이들.

    그녀를 따라주었던 이들을 몰라보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사표를 내었던 이들이 도진과 함께 찾아온 것이었다.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러 왔습니다. 화온의 한유아 대표님."

    씨익 웃으며. 모두의 앞에 선 도진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 * * *

    한유아가 있던 곳은 금화의 본사다.

    당연히 그런 곳에 찾아온 천마신교의 대표, '소천마'의 등장에 회사 전체가 술렁였지만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유아의 등을 밀어 장소를 옮겼다.

    한유아가 그렇게 떠밀려 자리에 앉아 물었다.

    "비즈니스 이야기라니, 뭐야?"

    도진은 미소지은 얼굴로 뒤에 선, 한유아의 사람들과 눈을 한 번씩 맞추고선 말했다.

    "한유아 대표님."

    "……응."

    "우리 천마신교로 오지 않으실래요?"

    "……뭐?"

    "우리 천마신교로 오지 않으실래요, 라고 했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음, 그러니까요. 여기 이분들이 어디 가서도 대접받을 수 있는 인재분들이잖아요?"

    그녀가 직접 스카우트했고 공을 들였으며 화온에 헌신했던 좋은 사람들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흔하다.

    그러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흔할 수가 없다.

    그러니 도진의 말대로, 그녀가 원인이었던 횡포가 아니고서야 그들 중 어디 가서도 대접받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우리 천마신교는 만성 인재 부족이란 말이죠. 심지어 정식으로 개파하고선 더욱 그래요. 성아 누나가 요새 잠을 못 자고 있어요. 그래서."

    "소속이 없어진 이분들을 스카우트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조건을 제시하셨단 말이죠."

    "조건."

    "네. 조건은 하나인데 그게 좀 어려운 거였어요."

    그게 무엇일까.

    한유아는 짐작할 수 없었고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한유아 선배를 책임자로 데려올 것."

    "……아?"

    "그러니까. 저한테 한유아 선배를 꼬시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어휴."

    도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진지함에 장난을 섞어 말했다.

    한유아는 쉽사리 입술을 뗄 수 없었다.

    도진이 아닌, 도진의 뒤에 선 이들의 호의에 입술이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화온을 위하여, 한유아를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한유아를 도우고 받쳐 주었다.

    그런 이들이었기에 한유성의 횡포에 저항하고 대항하기 위하여 망설임없이 사표를 제출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표를 낸 그들은 이렇게 또 모여서, 한유아를 찾아왔다.

    한유아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평생에 거의 없었던 경험이었다.

    그런 한유아의 일렁이는 푸른 보석 같은 눈동자를 마주하며 도진이 말했다.

    "선배."

    "……응."

    "리더라고 해서, 무조건 앞장 서서 이끌어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난 생각해요."

    "그러면?"

    "뒤를 받쳐주는 사람들에게 등을 맡기는 것 또한, 리더로서의 면모 아닐까요?"

    "등을?"

    "네. 함께 하는 사이니까요. 일방적으로 이끌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건 어쩌면, 오만이 아닐까요?"

    "……."

    "그리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선배에게 그렇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받아 주시지 않을래요?"

    그렇게 말하고. 도진은 손을 내밀었다.

    한유아가 마주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수 있는 곳에.

    한유아는.

    스윽-

    조심스레 도진의 손을 향하여 자신의 손을 뻗었다.

    그것은 아주 조금, 그 거리가 모자랐지만.

    꾸욱-

    도진이 그만큼 더 다가감으로써,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을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