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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01화 (501/741)
  • 500화

    무림에서 집단의 다툼은 사안에 따라 무림전담타격대 등 '기관'의 참관을 허용해야만 한다.

    민간 무력 '기업'이나 민간 무림 군사 '기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무림에 속하면서 동시에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설령 무림의 색이 더 짙은 가문이라 해도 엄연히 사회의 구성원인 만큼 그에 따른 의무를 져야 했고 그렇기에 개인의 단위를 넘어 집단 단위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 무작정 불가침이라 하여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잠룡문과 의천검가의 '다툼'에 참관인 자격으로 의천검가 본가의 심처에 들어선 유상균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되었다.

    대한민국 차세대 무림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이문강.

    그리고 무림 르네상스에서부터 지금까지도 무림의 명숙으로 가장 위에 군림했던 무인 중 한 명인 동근출.

    두 사람이 완전히 망가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허나 그것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비무대 위에 오롯이 선 김도진과, 그 아래 경이를 담아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잠룡문의 문도들이 강렬하게 모든 감각을 채워 버렸다.

    '김도진…… 문주.'

    본래는 익숙하게 '학생'이라 하려 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임에도 도저히 그 학생이라는 단어를 뒤에 붙일 수 없어 강제로 문주라는 호칭으로 대체되었다.

    기세를 내뿜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위협을 당하지도 않았다.

    허나.

    그저 오롯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유상균은 도진에게 압도당하고 말았다.

    잠룡문의 문도들이 도진에게 지극한 경이를 표하는 것이 현대의 사람으로서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의 경이까지도, 유상균은 느껴야 했다.

    경계를 넘어선 고수.

    그것은 인종과 출신은 물론이요 모든 것을 넘어서 무림,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현실의 경계.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그 경계를 뛰어넘었기에 경이의 상징이 된다.

    이청범은 그런 경계를 넘어선 경이의 상징이 된 무림인이었다.

    그뿐인가.

    대한민국 정치계에서마저 거물로 통했으니 무림과 정계 양쪽에서 최고로 군림하는 의천검가의 정점, 가주가 바로 이청범이다.

    즉.

    세계에서도 군림할 수 있는 인물이자 대한민국의 정점에 서는 이들 중 한 명이 이청범이었다.

    한데.

    어째서.

    두웅-!

    비무대 위에서 조용히 한 걸음 내딛으며 이청범을 내려다보는 '후기지수' 김도진.

    "……."

    그런 김도진을 올려다보는 이청범이 오히려 한낱 도전자로 보인단 말인가.

    스스로의 감각이 이상해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예를 거둬라."

    도진이 나직이 말했다.

    "존명."

    위취련을 포함한, 잠룡문도이면서 동시에 천마신교의 교도들이었던 이들이 모두 일어섰다.

    그들을 뒤로하고 도진은 비무대를 내려와 이청범의 앞에 섰다.

    "……."

    이청범을 위시한 의천검가의 고수들이 도진을 노려본다.

    허나 그 시선에 담긴 모든 기세는, 도진의 앞에서 살랑이는 바람조차 되지 못하고 헛되이 흩어졌다.

    도진이 말했다.

    "화가 나나? 가문이 치욕을 입은 것 같아서. 아니면 가문의 문도들이, 아들이 다쳐서?"

    "건방진!"

    "뻔뻔하!"

    담담한 도진의 말에 이청범의 뒤에 있던 의천검가의 무인들이 언성을 높인다.

    그것이 번거로웠기에.

    두웅-!

    "컥!"

    꽈아앙!

    도진은 한 걸음을 더 내딛어 그들을 무릎 꿇리고 대가리를 숙이게 만들고, 침묵시켰다.

    서늘한 기운이 내린다.

    상식과 상리를 아득히 벗어난 이적에 본인들은 물론이요 지켜보던 무림전담타격대의 모두가 경악했다.

    그리고 도진은 두 눈이 미미하게 흔들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 이청범을 다시 마주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검을 뽑아. 말로는 이제 해결되지 않으니까."

    "……!"

    유상균의 눈이 커졌다. 상황은 그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가팔랐다.

    '싸운다고? 의천검가주랑?'

    다툼이 벌어졌고 그것이 심상치 않은 수위라는 건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허나 그것이 잠룡문주와 의천검가주의 다툼으로까지 번지는 건 너무나 급작스럽고 가파른 전개였다.

    그 의미와 파급력이 너무나도 클 수밖에 없으니까.

    강한 무력이 역으로 다툼의 억제력이 되는 것은 그 무력으로 일어날 다툼이, 설령 이긴다 해도 입게 될 피해가 두렵기 때문이다.

    잠룡문과 의천검가는 그런 식의 억제력이 작용할 만큼의 세력인데.

    심지어 그것이 더욱 부담될 수밖에 없는 것은 김도진의 잠룡문일 터인데.

    내공을 다 소모해 버린 듯 보이는 김도진이 오히려 의천검가주와의 비무를 넘어선 '대결'을 강권하고 있었다.

    그 강권에.

    쿠구구구구궁-!!

    이청범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연히.

    "건방, 지구나……!"

    분노하여 이글거리는 강맹한 기세가 이청범에게서 줄기줄기 피어난다.

    그것은 비유가 아닌 실재하는 기세.

    경계를 넘어선 고수의 분노가 유형화된 기(氣)의 와류로 형상화된 것이었다.

    콰가가가가가-!

    그 와류에 의한 기세를 도진은 아무렇지 않게 흘려내며 고했다.

    "이청범. 이건 전쟁이야. 너희가 안이하게 시작한. 그러니까 각오하고 덤비도록 해."

    담담하지만 일말의 자비조차 느껴지지 않는 선고.

    이청범은 거기에 사양하지 않고, 선공을 가하기로 했다.

    본래 그것은 받아줄 필요가 없는 하찮은 도발이었다.

    감히 어디서 하찮은 잡문파의 문주 따위가, 그것도 학생 따위가 대 의천검가의 가주의 앞에서 전쟁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하지만 의천검가주 이청범은 이번만큼은 그 하찮은 도발을 받아주기로 했다.

    그만큼. 눈앞의 하찮은 무인에 대한 이청범의 분노와 의천검가에 대한 모욕이 컸기 때문이다.

    의천검공(義天劍功), 천변만화(千變萬化).

    어느 순간 검이 뽑혀 나왔고 어느 순간 만개(滿開)하였다.

    그 시작을 보기도 전에 세상이 뒤덮였다.

    그것은 환검(幻劍)이자 변검(變劍)인 의천검공의 극의.

    본디 진체(眞體)를 감추기 위하여 덧씌워졌던 허초(虛招)에 이치가 깃들어 실초(實招)에 다다른 경지.

    그렇기에 그것은 하나의 검에서 시작한 화려한 검초가 무수히 만개하여 일대를 뒤덮었음에도 모든 것이 실초였다.

    본래는 눈속임, 허구에 불과해야 할 환검에 경계를 넘어선 고수의 이치와 내공이 깃들어 모든 것이 실제가 된다.

    동시에 실제가 된 모든 환검은 변검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니 그 거대한 검공은 마주하는 이에게 자연재해와 같은 초월적인 위협으로 들이닥친다.

    '아…….'

    그 검공의 대상이 아님에도, 그저 지켜보고 있음에도 유상균은 경계를 넘어선 고수의 검공에 압도되어 입을 벌렸다.

    다른 모든 것을 잊을 만큼, 그 또한 나름 상승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기에 더더욱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경계를 넘어선 고수의 진심이 담긴 검공.

    그 재해와 같은 검공에 도진이 맞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절로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스걱-

    도진의 한 번의 휘두름에 만개하여 일대를 뒤덮은 재해가 베여 소멸되었다.

    "……."

    지극한 이치를 담은 하나의 선이, 도진이 신공(神功)의 영역에서 구사한 천마검공(天魔劍功)이 천변만화하는 이치를 베어 버린 것이었다.

    유상균은 놀라는 것조차 잊고 그저 조용히 입을 벌리고 말았다.

    그것으로밖에, 반응하지 못했다.

    유상균이 그러할진대 이청범의 충격은 오죽했을까.

    그는 경계를 넘어선 고수임에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경악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도진의 한 수를 막지 못했다.

    뻐억-!

    "컥."

    걷어차였다.

    분명히 혼란스러운 중에도 경계를 넘어설 만큼의 재능과 그 재능을 갈고닦은 세월은 시각은 물론이요 온몸의 감각으로 도진의 공격을 인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허나 막지 못했다.

    빠각-!

    "꺽."

    그저 걸을 뿐이었다.

    걸어서, 간격을 좁히고.

    빡!

    걷어찬다.

    그 간단한, 그렇기에 더없이 모욕적인 공격에 이청범은 무력하게 바닥을 굴러야 했다.

    분명히 이렇다 할 기세도, 맹렬한 내공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는데 성의마저 느껴지지 않는 발길질 한 방 한 방에 담긴 경력이 무시무시했다.

    경계에 이른 고수의 눈으로도 그 이치를 읽지 못할 만큼 단순함에 담긴 이치가 고차원적이었다.

    그래서 막을 수 없었고 침투한 경력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평생 결코 볼 일이 없어야 했으며 그렇기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주의 참담한 모습에 의천검가는 얼어붙었다.

    그리고 게으른 당나귀보다 비참한 몰골로 구르고 구른 이청범은.

    웅성웅성-

    처참하게 부서진 정문 바깥으로까지 나뒹굴고 말았다.

    "헉!"

    "이청범이다!"

    외치는 주변의 소리가 이청범의 정신을 싸늘하게 얼어붙도록 만들었다.

    '안 된다.'

    대(大) 의천검가의 가주가 만천하에 추태를 드러내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었다.

    늦어 버렸지만 억지로 자세를 바로잡고 기운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궁-!!

    의천검공이 맹렬히 몸속을 돌아 침투한 경력을 해소하고 육체에 힘을 불어넣었다.

    꽈아앙-!

    그리고 완숙의 경지에 이른 복룡공의 내력이 이청범에게 한계를 넘어선 힘을 부여한다.

    주변에 둘러선 이들이 그 유형화된 기세에 밀려나며 경이의 시선을 보내는 걸 극한까지 확대된 감각으로 느낀다.

    콰득!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폭력적인 전능감에 이청범이 가문의 보검을 그러쥐었다.

    치욕스럽지만, 정말로 전력을 다해야 할 상황임을 인정했다.

    갑작스럽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잠룡문주는 괴물이었다.

    그 괴물을 잡기 위해.

    이청범은 비장의 절초를 꺼내들었다.

    파아아아앗-!

    이청범이 쥔 보검에 찬란한 빛이 깃든다.

    그것은 현실을 넘어선, 경계를 넘어선 이가 선보일 수 있는 신비의 구현.

    그렇기에 현실의 그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신비의 결집.

    검기(劍氣)였다.

    "검기다!!"

    "검기!!"

    찬란한 신비의 발현에 사람들이 크게 외친다.

    근래 들어 아주 조금 그 위상이 떨어졌다고 하나 여전히 검기는 이 시대 최고의 상징이기에.

    그 상징을 꺼내든 이청범에 사람들은 크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벅. 저벅.

    그 검기를 앞에 두고도 도진은 똑같이.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백설을 늘어뜨린 채 의천검가의 부서진 정문을 지나 이청범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청범은 그런 도진의 담담한 얼굴을 깨부수기 위해, 검을 내뻗었다.

    의천검공(義天劍功), 진검(眞劍).

    한줄기 선이 쏘아진다.

    그것은 의천검공의 절초.

    환검과 변검으로 가렸던 의천검공의 진체(眞體)요 정수다.

    그렇기에 환검과 변검이 아닌 진검(眞劍).

    가림을 포기하고 오롯이 깊은 이치만을 행사함으로써 극에 이른 의천검을 쏘아낸다.

    경계를 넘어선 후 처음으로, 생사대적을 마주한 각오로 쏘아낸 일격.

    복룡공까지 더해진 이 진검은 이청범이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강력한 한 수임을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했다.

    설령 자신보다 윗줄이라 평가받는 사자군 오군성이라 해도 정면에서 감히 받아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할 만큼.

    하지만.

    구웅…….

    아니었다.

    "……!!"

    이청범의 모든 것을 담은 생애 최고의 한 수는.

    "말도 안…… 된다."

    도진이 가볍게 뻗은 백설에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것이 얼마나 단단하고 두꺼운 것이든.

    현대 과학의 정수로 이루어진 그 어떤 방호벽이라 해도 꿰뚫어낼 수 있는 한 수가.

    미미하게 빛나는 도진의 백설에 그저, 그저 스러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이청범의 모든 것을 무위로 만들어낸 도진이 담담한 눈으로 이청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볍기 짝이 없네. 너의 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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