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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500화 (500/741)
  • 499화

    꽈아앙-!!

    동근출은 충격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듯 했다.

    비무대를 박살낼 정도로 무릎이 거칠게 처박혔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도 분명히 어마어마한 고통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을 무릎 꿇게 만든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한 기운이 그의 정신을 무겁게 때렸다.

    분명히 내공이 다해가는 중에 앞서보다 강렬한 내공을 발산한 건, 그래 의천검가에도 복룡공 같은 것이 있으니 이해하지 못할 영역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그그그긍…….

    지금 동근출의 무릎을 비무대에 처박아 버리고, 고개와 함께 다시 들 수 없게 만드는 이 형언할 수 없이 흉포하고도 압도적인 무형의 기운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세상 전체가 그를 무릎 꿇리는 것만 같았다.

    "사술……! 사술이란 말인가!"

    사술(邪術).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충격받은 이성이 그런 소릴 지껄인다.

    도진은 반응해 주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평소의 '자비'가 있는 도진이었다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으며 그 나이라 할 수 있는 조크가 제법 재밌다고 해 주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동근출은, 그렇게 말을 섞어 줄 가치조차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대가리까지 처박은 동근출을.

    빠각!

    그저 걷어찼다.

    걷어차고.

    뻐억!

    내리찍었다.

    "크아아아!!"

    일방적인 구타에 이빨이 나가고 피가 흐르는 얼굴로 동근출은 악을 쓰며 검을 휘둘렀지만.

    슷.

    도진이 가볍게 검날에 손을 대니 필사적으로 휘두른 검에 어려 있던 기운, 그리고 힘까지도 모조리 소실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일방적인 구타.

    동근출은 앞서의 이문강이 그랬던 것처럼 이성이 무너질 것 같았다.

    도진이 동근출을 짓누르던 압력을 해소해줌은 물론이요 굳이 침기를 쓰거나 정신을 부수려 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상태에 빠진 건, 도진을 상대하는 자신의 무공이 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쌓아온 것이었다.

    동근출을 이루는 모든 것의 근간.

    그것이.

    빠각-!

    새파란 애송이를 상대함에 있어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니다.

    동근출은 아직 체력이 남았고 내공이 남았으니 쌓아온 무공의 이치 또한 명확하게 풀어낼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최선을 다해 펼쳤다.

    슷.

    그러나 그것이 구현되기도 전에 막힌다.

    그저 담담히. 자비없이.

    동근출이 자아내는 평생의 이치가, 도진이 자아내는 그보다 아득히 높으면서도 단순명료하게 펼쳐지는 이치에 짓이겨져 존재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뻐걱!

    초절정에 이른 동근출의 육체는 한계를 넘어 많은 나이에도 노쇠하지 않고 오히려 비할 데 없이 단단했다.

    그런 육체가 천천히 부서진다.

    그리고 동근출의 무인으로서의 정신 또한, 무너지고 있었다.

    도진은 거기에 쐐기를 박으려 했다.

    백설의 검면이 동근출의 얼굴을 후려치기 위해 휘둘러진다.

    그 순간.

    "멈춰라!!"

    의천검가 전체를 진동시키는 막대한 내공이 담긴 사자후가 도진의 뒤에서 덮쳐들었지만.

    짜아아악-!!

    도진의 검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근출의 면상을 후려쳐 그를 비무대 바깥으로 날려 버렸다.

    쿠당탕!

    부서진 동근출이 꼴사나운 모양으로 널부러지고 도진은 담담히 몸을 돌렸다.

    비무대 아래로 경이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무릎 꿇고 있는 천마신교의 교도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너머로.

    쿠오오오오오……!

    분노로 치솟은 내공이 의천검가를 덮고 있는 경계를 넘어선 고수.

    의천검가주 이청범이 도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

    의천검가의 주변은 사유지로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않는 곳이라지만 그렇다 해서 세상과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그곳에도 24시간 상주하는 '잔바리'들이 있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잔바리는 신입 기자들을 의미하며, 그들은 기자 업계의 전통과 '똥군기'에 따라 경찰서와 각 구역의 치안 유지 계약을 맺은 문파가 사용하는 사무실 등에 상주한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며 심지어 노숙까지 하면서 그럼으로써 무엇이든, 어떤 것이든 기삿거리가 될 만한 내용을 물어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잘 풀리면 기자 대기실이라 불리는 곳에 머물수도 있고 또 운이 좋으면 마음 약한 경찰이나 무림인들이 요깃거리와 무어라도 정보 하나 정도는 건네주곤 하지만 반대로 운이 나쁘면 정말로 길거리 노숙을 하며, 눈칫밥을 먹으며 사려야 하는 곳도 있다.

    개중 가장 평가와 대우가 좋지 않은 곳이 의천검가였기에 그곳을 담당하는 잔바리들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고.

    "아니, 왜 기사를 못내는데요?!"

    "덮으랜다. 그리고 기다리면 특종 하나 준다니까 걍 닥치고 지켜 봐."

    이번 의천검가와 금화의 행사에 잠룡문주 김도진의 아버지가 책임자 중 한 사람이 됐다는 기사를 막은 것에 더더욱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꽈아아아아아앙-!!

    잠룡문주 김도진이 의천검가의 정문을 때려부수며 난입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미친듯이 셔터를 갈기며 선배들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 폭음에 반응한 건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우연찮게 근처를 지나가던 일반인들.

    그리고 그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호기심을 가지고 그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겨 풀어야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곧 의천검가의 정문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와! 형님 누님들. 보이십니까? 진짜 정문 개박살났는데요?"

    "미친. 대박."

    기자들에 구경꾼들, 그리고 사이버렉카들마저 몰려 의천검가의 정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의천검가의 말단 무인들이 다급히 입구를 포함한 주변을 막으며 버티고 섰지만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꼴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확실했고 이내 '잠룡문주 김도진이 쳐들어갔다'는 내용이 공유되며 더더욱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말단 무인들을 통솔하는, 직계이지만 능력이 부족하여 그 자리로 좌천된 경비조장이 속으로 씨발거렸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는 능력도 주제도 되지 않아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알 정도의 눈치가 있었고 지시를 받기 위해 위의 어른에게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 뭐 자세한 이야기는 일절 해주지 않고 그저 정문이나 통제하고 있으라니 열이 터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무림전담타격대입니다!"

    "양해바랍니다!"

    신고가 들어갔는지 무림전담타격대마저 나타나고 말았다.

    '아니 씨발?'

    더욱 그를 아득하게 만든 건, 그 무림전담타격대의 선두에 선 것이 거물도 보통 거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유상균.

    젊은 나이에 무림전담타격대의 대장이 된 사람.

    여기서 대장이란 직책은 군대에서 흔히 말하는 '장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장 업무를 맡은 이들 중 가장 높은 자리, 그러니까 무림으로 치면 무력대의 대주에 해당하니 생각보다는 낮지만 그것도 지방에서나 통용되는 말이다.

    무림전담타격대 서울지부의 대장은 '높은 사람'으로 가는 엘리트 코스다.

    경찰로 치면 경찰청장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란 말이다.

    심지어 그런 엘리트가 도진과 가까운 사이란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왜 저게 와?'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의천검가다.

    그런 곳에 무려 잠룡문주가 쳐들어갔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면 무림전담타격대가 발칵 뒤집히고 대장이 직접 타격대를 이끌고 오는 것도 오버가 아니란 거다.

    그저 그의 입장에선 김도진과 우호적인, 부담이 되는 인물이 왔다는 것에 식은땀이 날 수밖에 없었을 뿐.

    그리고 그의 걱정과 달리 일단 상황은 의천검가에 나쁘지 않게 진행되었다.

    "소란을 자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유상균은 나름 인지도 있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잠룡문주 김도진과 몇 번 얽히기도 했고 무림전담타격대의 얼굴이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켜보던 이들이 통제에 순순히 따라주었고 의천검가의 무인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한숨만 돌릴 수 있었다.

    "어, 어어?"

    "검봉이다!"

    "어디? 어디?"

    무림전담타격대에 이어 이번엔 검봉(劍鳳), 대한민국 최고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이 가문의 사람들과 나타나 버린 것이다.

    "정의검가다!"

    '검봉은 또 여기서 왜 나와?!'

    정의검가를 상징하는 무복을 갖춰입고 나타난 그들은 해외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근처에서 소란이 발생하고 있어 확인차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유지은은 확실히 다른 목적이 생겼으니.

    "의천검가가 결국 선을 넘었나 보네요."

    중얼거리는 듯한, 그러나 내공이 담겨 선명하게 퍼져 나가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주목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상황을 통제하던 유상균이 다가와 물었다.

    유지은이 유상균을 마주하여 싱긋 웃었다.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도진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인연이 있다고까지 할 만하다.

    하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눈인사로 대신하고서 말했다.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후배, 잠룡문주의 아버님이 여기 공사에 참여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의천검가의 소가주가 아무래도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다고 했거든요. 아마 그것 때문에, '다툼'이 벌어진 모양이에요."

    "다툼."

    "네, 다툼이요."

    다툼이라는 단어는 이 자리에서 생각 이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로 인해 이 소란이 '무림의 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무림인 개인의 비무가 불가침의 영역인 것처럼 그 단위가 커져 집단과 집단, 그러니까 문파와 문파 간의 다툼 또한 정해진 범위 내에서 불가침의 일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불법적인 부분이 없다면,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사람을 죽이는 등 싸움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는다면 어디까지나 무림인들 사이의 다툼이 되는 것이다.

    거시적인 영역에서 '무공의 발전'을 위하여 용인되는 부분은 여기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현대에서도 '무림(武林)'이라 독립된 세계로 명명되는 것이다.

    유상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잠룡문에서도, 의천검가에서도 따로 신고가 들어온 게 없으니 아직은 다툼이라 볼 수 있겠군요."

    어느 한쪽에서라도 신고가 들어왔다면 국가의 치안력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양쪽 다 신고를 하지 않고 '다툼'을 하고 있으니 아직은 지켜봐야 할 영역에 있다.

    "맞습니까?"

    이 판단이 맞냐고 유상균이 확인차 의천검가 쪽에 물었다.

    "아, 그…… 예! 맞습니다!"

    갑작스런 시선에 경비조장은 튀어오를 것처럼 놀라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다 급히 몸가짐을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쩔 수 없이 이 자리에선 그가 가장 높은 직책에 있었기에 의천검가를 대표하여 확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판단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받은 명령이 '소란이 커지지 않게 통제하라'였기에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고 만 것이다.

    그로써, 잠룡문과 의천검가의 싸움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림의 일이 되었다.

    '아, 제발!'

    그에 큰 역할을 한 경비조장은 제발 자신을 대신할 책임자가 오기를 바랐고.

    쿠우우우웅……!

    현실을 초월한, 경계를 넘은 거대한 기세에 고개를 쳐들었다.

    '가, 가주님!'

    가장 먼저 그 존재감을 느낀 유지은,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대를 뒤덮은 기세의 주인에게로 빨려들어갔다.

    거기에는, 일정을 소화하다 급보를 듣고 도착한.

    쿠구구구구궁!

    분노한 의천검가의 가주. 대한민국 최고의 고수 중 한 명인 이청범이 하늘에서 내려서고 있었다.

    타다닷-!

    그리고 한 발 늦게 그 뒤로, 의천검가의 고수들이 도열한다.

    "…무림전담타격대의 참관을 승인하겠습니다."

    이청범은 그저 그렇게 말하고서는 앞으로 나아갔다.

    처참하게 부서진 정문을 넘어서 본가의 안으로.

    그 뒤로 의천검가의 고수들이 뒤따랐으며, 마지막으로 무림전담타격대가 정문을 넘을 수 있었다.

    "……."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의천검가의 정문을 넘지 못했다.

    가주가 돌아옴으로써 기세가 산 의천검가의 무인들이 줄기줄기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누구 하나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다만 한 명, 유지은만은 싱긋 웃으며 주변을 살폈으니 높은 곳에서 안을 보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유지은이 '명당'을 찾아 움직이는 사이 이청범은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각으로 먼저 알고 사자후를 터뜨렸으나, 도진은 그런 이청범의 기세와 목소리를 무시하고 동근출을 후려쳐 날린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궁-!

    "감히……!"

    수석 장로, 거기에 아들마저 넝마가 된 모습에 이청범의 분노가 내공에 실려 폭발한다.

    의천검가주. 세계 무림에서도 이름 높은 경계를 넘어선 고수의 분노.

    그러나.

    "감히? 그건 너 따위의 자격 미달인 인간이 내뱉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야."

    그 분노는 도진의 조용한 목소리에 의미를 잃고 흩어진다.

    두웅-!

    도진의 한 걸음이 이청범과의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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