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화
'어리석은 놈.'
꽈아아앙-!
차가운 이성으로 한 갑자를 벼린 무공을 구사하며 동근출은 자신에게 맞서는 도진을 그렇게 비웃었다.
과연, 그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은 한국에서, 아니 세상 전체의 무림에 두어도 비교할 이가 없을 불세출의 무림인일 것이다.
도대체 이 나이에 어떻게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이 정도의 무공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나 '애송이'였다.
응축되고 또 응축된, 실재하는 힘이 깃든 검과 검이 격돌한다.
꽈아아아앙-!!
초절정의 경지가 내뿜을 수 있는 파괴력은 단단한 콘크리트 덩어리마저 분쇄한다.
그런 파괴력이 정면에서 격돌하였으니 발생하는 충격량은 가히 인간의 몸을 으스러뜨릴 지경이었으며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또 초절정에 이른 무림인의 육체다.
여기에 내공과 극한을 넘어선 이치를 담은 움직임을 더함으로써 감당해야 할 충격량을 최소한으로 만들 수 있다.
꽈아앙-!
충격의 해소 효과를 극대화하며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는, 그러면서 상대의 틈을 노릴 수 있는 움직임을 구사하며 거리를 벌리는 중에 동근출이 검풍(劍風)을 쏘아낸다.
내공이 물리력으로 치환되며 원거리를 타격하는 이 날카로운 칼바람은 단순한 힘의 덩어리가 아니라 의도한 위치를 정확하게 베려 드는 '초식(招式)'이다.
그것마저 가능하게 하는 것이 초절정의 경지인 것이다.
도진은 그것을 피하는 대신 이번에도 정면에서, 똑같이 검풍으로 상쇄시켰다.
꽈아아아앙-!!
그리고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동근출은 도진을 비웃었다.
'머리에 피가 몰렸구나.'
동근출은 바로 알았다.
이놈은 분명히 위험한 놈이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한다면 인정하기 싫지만,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한 놈.
그리고 그 한 가지로 인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놈.
그래. 제아무리 재능이란 것이 시간을 단축하게 한다 하여도 메꿀 수 없는 것.
내공.
잠룡의 내공은 과연 소문대로 대단치 않았다.
무림인이 이적을 일으키기 위해선 내공(內功)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내공이 없는 무림인은 결국 일반인으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
김도진은 지금 그 내공을 십분 운용하여 자신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격돌하고 있지만, 반대로 그러기 위하여 자신 이상으로 내공을 소모하고 있었다.
하지 않아도 될 소모까지도.
꽈아앙-!
맞닿는 검, 맞닿는 내공, 맞닿는 시선을 통하여 그 분노를 느낀다.
끝없이, 차갑지만 그렇기에 더욱 뜨거운 분노의 불꽃을 간접적으로 느낀다.
그래서일 것이다.
기필코 자신을 부수고 말 거라는 의지를 동근출은 느낄 수 있었고 그 감정이 이렇게 정면에서 달려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허나 그러기 위해 내공을 급속도로 소모하고 있으니 조금만 지나면, 이놈은 '일반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
멍청하기 짝이 없다.
분노에 잠식되어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다니.
나에 비해 한참을 모자란 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
내공을 아끼고 아껴, 필사적으로 정면 승부를 피하고 있을 리가 없겠으나 나의 틈을 노려도 모자랄 판에 이런 멍청한 모양이다.
동근출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확신하며, 이 건방진 애송이의 무림인으로서의 생명을 끊을 것을 다짐했다.
그래도 된다.
수위를 먼저 높인 건 이 애송이였으니까!
꽈앙-!
다시 한 번 정면 충돌에 의한 폭발과 그 충격이 동근출과 도진을 휩쓴다.
이번에도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도진은, 물론 알고 있었다.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그러나 그 최선이란 것도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도진은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앞에서.
온몸이 삐걱여 주저앉고 싶으실 텐데도 아들이 걱정할까, 아들의 앞에서 조금의 움츠림조차 없이 당당히 선 아버지의 앞에서.
어떻게 아들이 싸움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조금의 아픔도 보이지 않고, 그저 압도적인 승리만을 보여주어야만 할 자리이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따라와 준 이들의 시선이다.
이기기만 해도 된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해야만 하는 가장 최소한의 '의무'였으니까.
도진은 항상 더 나은 것,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결과물에 비해 몇 배나 더 힘든 것이라 해도.
한 집단을 가장 앞에서 이끄는 자라면 항상 그것을 목표로 하고 이루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도진은 생각했고 그렇게 배웠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도진은 해야만 한다,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간결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도진에게 있어 그것은 '한다'로 확정된다.
그러기 위하여 도진은.
두, 웅-!
억누르고 있던 천마기를 조금 더 해방했다.
'이, 이놈이?!'
오오오오오오-!!
동근출의 득의양양하던 얼굴이 무너진다.
가진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 가고 있다 여겼던 도진에게서 다시 한 번 맹렬한 기세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도진이 동근출과 격돌한다.
'이놈이 또 어디서 이런 내공이……!'
그것은 도진이 한계까지 끌어낸, 이미 괴물이 되어 버린 천마기의 진체(眞體)의 일부다.
도진만이 성장한 것이 아니다.
폭발적으로 덩치를 불리던 천마기는 도진의 성장을 압도할 정도로 거대해졌다.
도진은 그것을 억누르느라 많은 심력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거기에 대부분의 심력을 쏟으며 평소엔 억눌러야만 했던 그 힘을 일부 끌어낸 것이다.
이상(理想)은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한 집단의 가장 앞에 서는 이라면 기필코 실현할 수 있는 것만을 이상으로 삼아야만 한다.
도진은 실패해서는 안 됐고 이상과 실현의 중심을 잡아야만 했다.
이번에는 그 중심을 잡기 위해 한계까지 천마기를 운용하기로 한 것이다.
동근출과 도진의 격차는 크다.
신안(神眼)으로 보았기에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기기 위해서 도진은 한계를 넘어야 했고 그 이상으로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기필코, 완벽하게 이긴다.
여전히 꺼지지 않은, 오히려 더 맹렬하게 타오르는 분노를 담아서.
그러나.
"이, 놈이!"
'더.'
카앙-!
'더!'
꽈아앙-!
'더!!'
오오오오오오-!!
해방한 천마기의 기세는, 도진의 생각만큼 맹렬하게 타오르지가 않았다.
울컥!
피가 넘어온다.
그것을 억지로 삼켜 없던 것으로 만든다.
내부가 상하고, 머리가 타 버릴 것만 같은 부하가 걸릴 만큼 과연 해방한 천마기는 흉포하고 강하다.
하지만.
꽈아아아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
'더 세게!'
꽈아아아앙-!!
까드드드득…….
맞서는 동근출을 집어삼키지 못했다.
드드드드…….
맞닿은 동근출의 검이 흔들린다.
강한 부하가 걸리고 있다는 건 그를 통하여 명백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한 것이다.
해방한 천마기의 힘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압도적으로.
꽈아아아앙-!!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동근출을 찍어누르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뒤따르는 이들에게, 지켜보는 아버지에게 보여드려야만 하는데.
오오오오오오오-!!
해방한 천마기는 그런 이상에도, 맹렬히 타오르는 자신의 분노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밖에 안 된다고?'
오오오오오오-!!
'더, 더 할 수 있잖아.'
오오오오오오-!!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거지?'
도진이 천마기를 재촉했다.
더 해 보라고.
여기가 끝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고.
오오오오오오오-!!
꽈아아아아앙-!!
그러나 천마기는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도진의 분노를 따르지 못했다.
'어째서.'
도진은 생각했다.
어째서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하고.
위험 수위를 넘지 않기 위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내가 너무 신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억누르는 힘이 강해 천마기가 도진이 아는 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혹시.
일전 심상세계의 수련에서 보았던, 잘못된 길에 들어 천마가 되는 데에 실패했던 그와 같은 모습이 되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인가.
도진은 확답을 내릴 수 없었다.
"이노오오오오옴!!"
그리고 바깥에서 동근출의 분노성이 도진을 두드린다.
일그러진 얼굴과 거칠어진 호흡, 그리고 내공이 그 또한 힘에 부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도진은 만족할 수 없었다.
가용할 수 있는 내공의 한계가 가깝다.
그리고 있던, 도진이 원했던 결과를 낼 수 없게 될 상황이었다.
이길 수는 있지만.
이루고자 했던 이상의 형태는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맹렬히 타오르는 분노를 온전히 발산할 수 없는 것이 분노가 꺼지지 않게 만들었으며.
오오오오오오-!!
분노를 따라오지 못하는 천마기에 처음으로, 실망할 것 같았다.
'………아.'
그리고 바로 그때에, 도진은 깨달은 것이었다.
'이것은, 나의 분노구나.'
천마기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나의 의지였다.
내 것을 내 것이 아니라 여겼고 제어하고 억누르려 들었으니, 그것이 온전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미 문을 열 힘이, 경계를 넘어가기 위한 힘이 나에게는 충분하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를 넘어서지 못했던 건, 밀어야 할 문을 나 스스로 당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부하가 가해지는 건, 나가려는 힘을 억눌렀기 때문에.
해방한 천마기가 오롯이 분노를 표출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하다.
나 스스로가 그 분노를 억누르고 있으니, 천마기가 제아무리 날뛰려 해도 그러지 못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알았다.
쿠웅-!
* * * *
"하하하하하하하!! 그래,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제자야."
"……."
심상세계.
위지혁이 웃었다. 하늘을 떨쳐 울릴 만큼.
그에게 있어 이토록 기뻤던 순간이 또 있었을까 싶을 만큼 그는 기뻐서 크게 웃지 않고서는 있을 수가 없었다.
사람의 인지에서 사라질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장호마저, 지금은 그 기쁨이 기척으로 나타날 지경이었다.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의 제자가, 드디어 경계의 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래, 제자야. 신공(神功)이란 마음을 구현하는 심공(心功)이다."
"그렇기에 천마신공은 심공(心功)이며."
"그 마음을 구현할 수 있는 영역에 이른 너는 비로소 신공을 구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 천마신공(天魔神功)을!"
두웅…….
도진이 한 걸음 내딛는다.
-이놈……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던 놈의 기세가 드디어 다했다 생각했던 잡배가 본능의 단계에서 느낀 이변에 흠칫하며 한 발 물러선다.
물론, 그런 것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이은.
자신을 넘어서 고금제일의 천마가 될 제자가 드디어, 천마로서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그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던 천마신교의 이름을 잇는, 그 이름을 천명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제자가 군림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천마(天魔)의 군림(君臨)이며.
"천마의 행차다. 감히, 잡배 따위가 무릎을 세워서야 될 일이겠느냐!!"
꽈아앙-!!
동근출의 무릎이 비무대에 처박혔다.
두우웅……!
천마(天魔)의 군림(君臨)하는 걸음(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