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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98화 (498/741)

497화

빠각-!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중에도 고통은 그 색이 옅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하게, 더 아프게 이문강에게 새겨진다.

도진에게는 그렇게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더 아픈지, 그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지, 그리고 '죽지 않는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도진일 것이었으니까.

연신극기공의 수련은 지켜보는 이마저 정신이 무너질 정도로 혹독하고도 무시무시하다.

세상에서 가장 흉포한 내공인 천마기에 버틸 수 있는, 천마신공에 어울리는 육체를 강제로 만드는 단련법이니까.

때문에 더 좋은 무골(武骨)을 타고날수록 그 고통이 덜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상조차 못할 고통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 연신극기공을 천마의 기준에서 보자면 범재라 이름 붙이지도 못할, 형용조차 못할 '둔재'였던 도진이 연마한 것이다.

사실은 시도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천마신공을 익히기 위해, 그 성취를 따라가기 위해 도진은 매순간 한계를 넘어야만 했고 연신극기공으로 한계를 넘는다는 건 매순간 또한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도진은 그것을 해냈다.

심상세계이기에 목숨을 걸 수 있었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죽지 않을 수 있기에 현실에선 엄두도 못 낼 영역에마저 발을 들여야 했다.

상상도 못할 고통과 정말로 죽지 않는다뿐이지 목숨을 거는 공포까지도 도진은 이겨냈다.

그리고 그 상상도 못할 '시행착오' 끝에 얻은 답을 현실의 육체에 적용하여 온 것이다.

그 모든 경험을 다하여.

빠각-!

이문강을 두드린다.

뻐억!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생각조차 이어갈 수 없고 오직 고통만이 한계없이 때려박힌다.

카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강의 몸은 멋대로 '비무'를 이어가고 있으니 그것마저 도진의 의도대로다.

비무는 계속되어야만 하니까.

이문강이 무인으로서의 생이 끝장날 때까지.

비무.

비무이기에 목숨을 빼앗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도진에게는 목숨을 빼앗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수한 방법이 있다.

사신(死神) 장호.

위지혁 사후 천하제일인이자 무림은 물론이요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까지 불렸던 암살자이자 무인.

그 장호의 제자였기에.

스으-

도진의 백설에 기운이 어린다.

침기(沈氣).

본능의 영역에서 경고가 울리지만.

스각-!

이문강은 백설을 피하지 못하고 검을 든 팔이 '잘렸다'.

'아아아아악!'

비명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문강은 혼란에 빠져야 했으니 한 발 늦게 잘린 팔을 휘두르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야…….'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거듭 공포를 자아낸다.

스걱-

분명히 '잘린 팔'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잘리지 않은 팔'을 도진의 백설이 난도질한다.

뼈까지 베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옷이 베이고 혈선이 몇이나 그어졌다.

그런데.

'왜.'

아프지 않았다.

마취라도 당한 듯. 아니.

'사실은 잘렸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환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으아아아아아!!"

마찬가지로 마취가 되어 있었던 것처럼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성대가 드디어 목소리를 짜낸다.

이문강은 온힘을 다하여, 내공을 다 담아 감각이 있던 왼팔의 주먹을 휘둘렀고.

슷-

말아쥐었던 주먹의 손가락이 모조리 잘리는 감각을 느꼈다.

'……!!'

그래서는 안 될, 비무 중에 있어서는 안 될 한눈을 판다.

왼손을 보았다.

다행히 손가락이 제대로 붙어 있다.

하지만.

'아, 아아아…….'

감각이 없다.

이문강은 자신의 정신이 삐걱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붕괴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고통과 공포가 증폭되었다.

설령 여기서 살아남는다 해도 이렇게 어긋난 감각을 되돌릴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감각이 어긋나고 어긋남으로써 고통과 공포로 비대해진 정신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숨만 쉬는, 그러나 죽어 있는 인간을 만드는 건 이토록 쉬운 일이었다.

허나 그렇게 무너져가는 이문강의 몸은 여전히 '비무'를 하고 있으니 그것이 또 이문강의 붕괴를 가속했다.

"멈춰라!"

그리고 그제서야 지켜보던 동근출이 이문강의 내면의 위기를 느끼고 소리치며 난입했다.

도진은 굳이 끝장을 내지 않고 물러났다.

이문강은, 무인 이문강은 이미 끝났으니까.

생각보다 '다치지 않은' 이문강의 모습에 동근출은 움찔했다.

그러나 이문강의 눈을 본 순간, 이미 늦었다는 걸 알고선 분노했다.

"네놈! 감히 의천검가에 쳐들어와 이런 잔학무도한 짓을……!"

"지껄이지 마."

"뭐, 뭐라?!"

"개소리하지 않아도 상대해 줄 거니까."

"건방진 놈!!"

콰아아아아-!!

사자후와 함께 동근출의 내공이 폭발하며 일대를 뒤흔든다.

의천검가 수석 장로 동근출.

그의 내공은 경계에 걸쳐 있었다.

* * * *

비무란 건 당사자들 간의 불가침의 영역이다.

무공이 발전할 수 있도록 사회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작용하는 시스템에 의한 것.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당사자의 가족이라면 납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도진은 조금 억지라 해도 아버지를 대신하여 비무에 나설 수 있었고.

"감히……."

기세를 줄기줄기 내뿜는 동근출은 친척조차 아니었으니 본래 대신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진은 굳이 그것을 따지지 않았다.

상관없었으니까.

어차피 처단해야 할 인간이었고 잡설로 그 시간을 미룰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도진의 앞에 선 동근출의 경지는, 명백히 도진의 윗줄에 있었다.

꽈앙-!

도진의 검과 동근출의 검이 격돌하여 폭음과 충격파를 발생시킨다.

무형의 기운이 유형의 충격파를 만들어내니 초절정에 이른 무인들의 격돌이 만들어내는 이적(異跡)이다.

기운의 유형화에 이르진 못했으나 그것으로 실재(實在)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완숙에 이른 것이 초절정.

꽈앙-!

그렇기에 검풍(劍風), 칼바람이 거리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치명적인 요혈을 정확하게 노리고.

꽈아아앙-!!

맞닿는 순간에는 한계까지 응축된 기운이 폭발을 일으키고 충격파를 퍼뜨리는 것이다.

그뿐인가.

웬만한 무인이라면 그 이치를 행사하는 것만으로도 '절초(絶招)'라 불릴 만큼의 수법이 아무렇지 않게 매 순간 펼쳐지고 이어진다.

도진과 동근출은 그런 경지에 이른 초절정으로서의 이적을 비무대 안에서 찰나의 단위로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형세는 동근출 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니.

'수석 장로님이 우세하다!'

그것은 지켜보는 의천검가의 말단 무인마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명백했다.

일류니 절정이니 하는 경지의 '나눔'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틀린 시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경지의 나눔은 명백하고도 보편타당한 근거에 기반을 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경지의 차이는 그 무인 간에 있는 명백한 격차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 또한 절대적이진 않다.

경지만으로 모든 게 정해지기에는 '싸움'이란 너무나 많은 변수의 즉흥곡이니까.

똑같은 초절정이라도 수많은 내적·외적 변수가 작용할 수밖에 없고.

…그 변수를 고려하였을 때 김도진의 승률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수치로 따졌을 때 김도진은 초절정의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그 나이와 수련의 기간을 생각하면 실재임에도 허구라 생각하고 싶을 만큼 상리를 벗어난 경지다.

허나 동근출은 그런 도진보다 위의, 경계의 문턱을 밟고 있는 초절정의 끝자락에 있는 무인이다.

여기에.

하늘은 결코 인간의 기준으로 작용하지 않으니 설령 악인이라 하여도 차별이 없다.

동근출은 분명하게 악인이었으나 재능에 축복받은 인간이었고 그 축복받은 재능을 평생에 걸쳐 갈고닦았다.

그래. 무려 한 갑자, 60년이 넘는 세월을 무공을 갈고닦았으니 켜켜이 쌓인 세월은 경지 이상으로 도진을 짓누르는 것이다.

직계에게만 허락되는 복룡공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꽈앙!

계속해서 반복되는 정면 격돌에서 도진은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손해를 보고 있었다.

천마신공, 사신공, 천마기.

도진에게도 우위에 서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수련한 세월의 격차가 컸던 것이다.

또래에서, 심지어 범위를 상당히 넓혀도 도진은 압도적인 무공을 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도진보다 윗줄의 고수들이 있었으니 대한민국 최고의 무가에서도 수석 장로의 위치에 있는 동근출이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까.

'어째서?'

지켜보던 한유아는 의문을 가졌다.

상대는 도진보다 윗줄의 고수다.

그렇다면 결코 '정면 승부'를 해서는 안 된다.

하수가 고수를 이기기 위해선 정면 승부가 아닌 옆에서 틈을 찌르는 수법을 취해야만 하는데.

그리고 한유아가 아는 도진이라면 그 방식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얼마든지 꽂아 넣을 수 있을 텐데.

이해할 수 없게도 도진은 정면 승부를 고집하고 있었다.

더더욱.

꽈아앙-!

힘에서 밀림에도 도진은 결코, 손해를 봄에도 단 한 걸음도 물러나는 법이 없었다.

그저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며 충격을 해소하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손해를.

무언가 내가 모르는,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한유아는 고개를 돌렸고.

'아…….'

그 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도진의 아버지가 보인다.

분명히 성치 않으신 몸일 텐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서서 아들의 비무를 지켜보는 아버지가.

"……."

그리고 역시나 그 믿음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굳건한 '도진의 사람들'이.

그들의 시선을 짊어지고 있는 도진은 그렇기에 흔들려서도, 물러나서도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는 기억 속에서 도진이 한 말이 떠오른다.

'부모님이 보시는 비무였으니까요.'

'부모님이 지켜보시는데, 아들이 한 대라도 맞거나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힘 좀 썼죠.'

도진의 부모님이 참관했던 비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들었던 말이다.

그러니까 도진은, 지금 아버지가 지켜보는 이 비무에서 더더욱 완벽한 모습을 보여드리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말의 걱정도, 후에 반추하여도 아픈 감정이 없도록.

'아…….'

한유아는 이 순간 또 체감했다.

'리더'로서.

사람들의 가장 위에 서는 수장으로서 도진과 자신의 격차를.

한유아는.

'리더 한유아'는 그러지 못했음을 아프게 느꼈다.

때로는 손해를 보면서도,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해야 하는 순간에 그것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불확실한 가능성에 단 한 번도 걸지 않았고 불확실한 가능성을 '확실'로 이끌어낸 적이 없었음을.

그렇기에 리더가 되지 못했음을.

그러나 동시에 생각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그녀 특유의 '예언'을 하게 만드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 낳은 걱정을.

'결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최악이잖아.'

한유아에게는 보였다.

도진이 패배하는 미래가.

그것은 단순한 걱정이나 부정적인 관측이 아니라, 그녀의 몸에 배어 있는 객관적이고도 다각적인 관측에 의해 도출된 결론이었다.

리더로서 한유아는 결코 보여 주지 못할 모습을 보여주는 도진에게 패배감을 느낀다.

허나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한다면 도진이 그 이상으로 '실패한 리더'가 될 상황에 대해서 한유아는 걱정하는 것이었다.

모두의 시선에 담긴, 한 치의 의심도 찾아볼 수 없는 신뢰에 도진은 보답해야만 하는데.

한유아의 시선에는 도저히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도진에게는 아니었다.

두, 웅-!

'이, 이놈이?!'

도진에게 그것은.

'해야 한다'가 아닌 '한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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