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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94화 (494/741)
  • 493화

    공사 발주 후 바로 대대적인 홍보 기사가 배포되었다.

    -팀 스페셜 포스(가칭), 보금자리의 공사 시작!

    금화와 의천검가가 합작한 프로젝트가 드디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구성원들에 관한 이야기가 돌고 있었고 여기에 본부라 할 수 있는 건물의 공사에 들어간 것이다.

    심지어 그 부지가 정부 청사의 인근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형 특수 부대라면서 이름은 왜 영어냐 ㅋㅋㅋ

    -? 가칭이라자너.

    -그 가칭 지적당하고 나서 수정된 거임ㅋㅋㅋ

    -ㄹㅇ? 헐ㅋㅋㅋ

    -이름이야 어찌됐든간에 금화랑 의천검가가 퓨전하는 거니까 진짜 개오지는 단체 하나 나오긴 할 듯

    -ㅇㅇ 그부분은 전나 기대되긴 함.

    의천검가와 이문강에 부정적인 네티즌들의 의견도 많이 보였지만 반대로 금화까지 더해져 탄생하는 무력 단체에 관한 기대감도 적지 않았다.

    중요한 건 출범 후의 행보다.

    지금이야 부정적인 이야기가 적지 않지만 어쨌든 화려한 성과를 달성하기만 하면 무게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훅 기울 것이었으니까.

    사람들은 과연 이 '스페셜 포스'가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에 관해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관심이 큰 만큼 이번의 공사에 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는데, 별 탈 없이 공사는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규모만이 아닌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수준도 대단했던 만큼 굴지의 대기업이 참여했고 그들의 얼굴이 될 작업이었기에 '부실 공사'라는 단어는 낄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 김서우와 단강이 있었다.

    공사를 주도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다만 특정 파트를 통째로 맡아 진행하였기에 규모만 보면 웬만큼 큰 공사 하나를 단독으로 진행하는 정도여서 일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계약이 하나가 아니었으니.

    "소가주님의 단련실은 특히나 단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단강의 경우 따로 의천검가 본가의, 소가주 이문강의 수련실 리모델링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본래 단강이 이런 쪽의 시공에 특히 평가가 좋았던 덕분에 추가 계약을 할 수 있었다고 사장이 말했었다.

    "아시다시피 초절정 고수를 위한 수련실은 까다롭지 않습니까. 아끼지 말고 시공해 주십시오."

    "예."

    김서우는 원청인 경원의 임원에게 신신당부 받은 대로 예산 내에서 가장 좋은 자재를 선정하였고 직접 감독하여 꼼꼼하게 시공했다.

    기본적인 시공은 협업하는 건설 업체의 사람들이 하고 거기에 단강의, 무인들의 수련 시설에 관한 노하우를 입히는 형태였다.

    과거라면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일이었으나 요즘 시대엔 이쪽 업계의 사람들 또한 최소한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 보니 공기(工期)가 상당히 단축됐다.

    덕분에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어느 정도 틀이 잡혔고 이문강과 한유아가 시찰을 나왔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명품임을 알 수 있는 정장 무복을 갖춰 입은 이문강과 한유아가 현장을 걷는다.

    공사 현장이지만, 오히려 공사 현장이기에 더욱 돋보이는 두 사람이다.

    이문강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고 한유아는 가련함을 느끼게 하는 허허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두르고 있었다.

    겉보기엔 나란히 걷는 모습이 제법 사이가 괜찮아 보였으나.

    -여기까지 와서 그따위 매가리없는 얼굴은 하지 말지?

    -꼬투리 잡힐 일은 없을 거예요.

    주고받는 전음의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이문강의 입장에서는 홍보 자료 배포를 위한 스케줄에서마저 죽상을 하고 있는 한유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티가 나지 않게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허나 한유아는 그런 식으로 무미건조하게 대답했으니 실제의 사이는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문강이 더 화를 내지 않는 건, 그렇게 화를 돋구는 한유아의 기가 점점 꺾이고 있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려올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실제로 그런 처지이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뻗대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뻗대던 기세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제와서는 억지로 고개만 돌리고 있을 뿐 내심으로는 이미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게 읽힌다.

    그 좋은 머리로, 저항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고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마저 잃을 수 있다는 걸 이 '예쁜 트로피'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스페셜 포스의 발족과 함께 약혼식을 진행하면 모든 게 끝난다.

    그때가 되면 이 예쁜 트로피는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 되고 자신을 장식하게 될 거다.

    그것으로 기분을 전환하며 이문강은, 이제 시작할 또 하나의 계획을 떠올리며 속으로 큭큭 웃었다.

    홍보를 위한 사진 등의 자료도 다 찍었고 이문강은 본가로 향했다.

    타앙-! 타앙-!

    둔중하면서도 높은 쇳소리는 본가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문강의 단련실 공사 현장에서 터지는 소리다.

    스페셜 포스 본부 공사에 착수하기 며칠 전.

    이문강이 수련을 하다 개인 수련장이 완파되었다는 기사가 나갔었다.

    높아진 경지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나름의 홍보를 위해 내보낸 기사였으며 이 때문에 본부 공사와 함께 본가의 개인 수련장 또한 리모델링한다는 기사도 났었다.

    이 리모델링을 맡은 게 단강이었으며 리모델링의 책임자가.

    '김서우.'

    바로 잠룡 김도진의 아버지였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우연이었으나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게 납득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린 이문강의 계획이다.

    이문강은 굴욕을 겪게 한 윤상미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철저하게, 아주 철저하게 짓이기고 뭉개지 않는 한 속이 풀리지 않을 일이었다.

    그리고 그 윤상미를 손 봐주기 위해 벼르는데 항상 거슬리는 것이 또 김도진이다.

    그러니까 같이 박살낸다.

    이문강은 마음을 굳혔다.

    리스크 때문에 가능하면 안전하게 가려 했지만, 이렇게까지 된 이상 안전한 길만을 고집할 수는 없게 됐다.

    김도진을 박살낼 것이다.

    그리고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될 윤상미 또한.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처참한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그 밑작업을 위해 사용할 것이.

    "김 부장님."

    눈앞의 김서우다.

    작업복과 안전 장구를 착용하고 감독을 하던 김서우의 시선이 이문강에게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대표님. 한 대표님."

    김서우가 이문강과 한유아에게 인사했다.

    사적으로는 한유아와도 면식이 있는 사이였지만 공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었다.

    이문강이 비즈니스 성분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고생하십니다. 당연히 완벽하게 진행해 주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한 번 보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예, 그러셔야죠. 보시겠습니까?"

    "예."

    이문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공사가 잠시 중단되었다.

    "미국에서 직접 공수한 8T 타일로 마감을 하여……."

    김서우가 내부로 안내하여 설명을 해 주었고.

    "잠시만요, 김 부장님."

    "예."

    이문강이 굳은 얼굴로 설명을 끊었다.

    김서우를 마주하며 이문강이 말했다.

    "8T 타일이라 하셨습니까?"

    "예, 8T 타일입니다. 전달받은 대로 가장 좋은 자재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문강이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요. 그걸 사용하시면 안 되지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바뀌었다. 주위 사람들이 눈치를 보는 가운데 이문강이 말을 이었다.

    "초절정의 무인이 제한없이 수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D 타일을 사용해야 하잖습니까. T 클래스 타일을 쓰다니요."

    무인들을 위한 수련장은 평범하게 만들어서는 결코 제 기능을 다할 수가 없다.

    때문에 아주 특별한 재료와 특별한 기술, 그리고 공법이 필요했으며 특히나 초절정 정도 되면 마음 놓고 수련하려면 차라리 외부의 공간을 마련하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이문강이 말한 T 클래스니 D 클래스니 하는 자재는 그런 무인들의 수련장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자재의 등급이었는데, 그것도 절정까지나 해당되는 이야기지 초절정쯤 되면 제대로 힘을 쓸 경우 손상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예산 내에서 최선을 다하여 달라고 말씀하셔서 8T 타일을 저희 단강의 독자적인 기술로 덧대고 배치하여 3D에 버금가는 강도로 지었습니다. 품질에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김서우는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문강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김 부장님. 분명히 저는 이렇게 전달했습니다. 아끼지 말고 시공해 달라, 고. 그런데 이렇게 예산에서 절감하여 시공했다는 건. 마진을 더 남기기 위하여 손을 썼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 말에 김서우의 표정도 굳었다.

    "저희는 배정받은 예산을 투명하게 집행하였고 그 내역 또한 하나도 빠짐없이 제출하였습니다. 그런데 손을 쓰다니요. 말씀이 과하시군요."

    "하! 말씀이 과하다라……. 나는 분명히 아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배정받은 예산이라? 말을 전달하신 분이 그 부분에 관해서 전달하지 않았습니까?"

    이문강의 고개가 뒤로 향했다.

    거기에는 김서우에게 말을 전달했던, 단강에게 하청을 주었던 경원의 임원이 있었다.

    그 임원이 이문강의 시선에 움찔하여 말했다.

    "부,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그렇다는군요?"

    책임을 묻는 맹수의 시선이 김서우에게로 향한다.

    거기서 김서우는 깨달았다.

    이것이 이문강의 '설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문강이란 인간이 자신의 아들에게 결코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으며 무너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분명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이문강이 몰아붙인다.

    "잘못 지어진 수련장은 부수고 다시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막대한 비용의 소모도 소모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시간의 손해까지 발생하고 말았군요.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김서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해당 부분에 관해서 예산에 변경이 있었다면 명확한 문서로 전달을 해 주셔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니 저희에게 책임을 묻는 건 타당하지 않군요."

    이문강의 기세가 거세졌다.

    "타당하지 않다?"

    김서우의 기세는 그런 이문강의 기세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예. 타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럼에도 책임을 물으시겠다면 제가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고 사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외통수를 받아치는 것이었다.

    단강은 잘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의 일이란 건 잘못하지 않았어도 잘못한 게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어찌되었든 발주처는 클레임을 걸었고 원청인 경원의 임원은 그 부분에 관해서 '제대로 전달했다'고 발언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떠나 잘못을 하청인 단강에서 뒤집어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김서우는 그 잘못을 본인의 선에서 끊으려 한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렇게 풀지 않겠지만 이문강이 노리는 게 자신인 이상 이것밖에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절차상 저쪽에 과실이 있다는 걸 지적하고 이문강의 목적인 자신이 사직함으로써 회사에는 피해가 없도록 한다.

    하지만 그것을, 이문강이 용납하지 않았다.

    "하! 어이가 없군요. 사직하는 걸로 책임지겠다?"

    이문강이 입꼬리를 올려 비웃는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그것보다는, 사과를 받고 흉하지 않게 정리했으면 좋겠군요."

    "사과라고 하시면?"

    "정중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겁니다. 정중하게."

    "그것으로 이 상황에 대해서 최대한 이해하고, 부드럽게 풀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여라.

    거기서 그치지 말고 허리까지도.

    내 앞에서 숙여라.

    그렇게 하면 좋게 좋게 해결해 주겠다.

    이문강은 무언(無言)으로 그렇게 강요했다.

    그 강요에.

    "아니오. 잘못을 하지 않았으니 나는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김서우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렇게 받아쳤다.

    "…못하겠다?"

    그리고 이문강의 얼굴이 맹수처럼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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